그것이 그 병마가 가져온 엄청난 변혁 중 하나였다. 모든 시민들은 대개 즐거운 기분으로 여름을 맞이하곤 했다. 그때가되면 도시가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리면서 젊은이들을 해변으로 쏟아 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이번 여름에는 가까운 바다로의 접근이 금지되고 육체는 이미 기쁨을 누릴 권리가 없었다. 그러한 조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역시 타루가 그 당시 우리들의 생활에 대한 이미지를 충실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는 물론 페스트의 전반적인 진행 과정을 더듬어 보면서, 그 병의 첫 고비는, 라디오에서 사망자 수가 매주 몇백이라는 식으로 보도하지 않고 하루에 92명, 107명, 120명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시점이 계기였다고 지적한다.
"신문과 당국은 페스트에 관해서 더할 수 없이 교묘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 그들은 13이 910에 비해서 훨씬 적은 수라는 점에서 페스트보다 몇 점 더 앞지른 것이라고 상상하는 모양이다. 그는 또한 그 전염병이 보여 주는 비장한, 또는 연극 비슷한 면면도 소개한다. 일례를 들면, 덧문을 닫은 채 인기척이 없는 어떤 동네에서, 갑자기 머리 위로 창문을 열어젖히고 큰소리로 두 번 고함을 지르고 나서는 짙은 그늘에 잠긴 방의 덧문을 다시 닫아걸고 말았다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 딴 데서는 박하 정제(錠劑)가 약국에서 동이 났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혹시 걸릴지도 모르는 전염병의 예방에 좋다고 해서 그것을 사 가지고 빨아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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