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앞의 턱이나 지하철역의 계단이 내 몸을 붙잡는 듯이 느껴지자, 장애인들은 더 이상 이동의 어려움을 국가 등이 제공하는 사회복지나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의 자유가 오줌권이) 침해당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동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인 장애인들은더 이상 편의시설을 설치해달라거나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읍소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를 계단과 횡단보도의 턱에 묶어두지 말라"며, "집 안에 더 이상 가두지 말라"며 외부의 침해로부터내 몸을 지키기 위한 방어권을 행사했다(즉 무엇을 ‘해달라‘가 아니라 ‘하지 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는 장애인 개개인에게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 만했다. 이동권이라는 새로운 권리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발명된다.
- P221

이처럼 신체적, 정신적 특성이 다수와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주류 집단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장애인의 대학 입학에 어떤 불이익을 주지는 않더라도 입학 이후 수업을 듣기 위해 계단을 기어오르든 굴러 내려가든, 교수의 말이 들리지 않으면 친구의 필기를 빌리든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면 사실상 이는 대학에 다니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세계 주요 국가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특별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해두고 있다. 바로 ‘합리적 편의 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 이다.
- P237

합리적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를 다시 표현한다면, 이는 결국
"순응을 요구할 근거가 없다면 개인이 국가나 고용주[등]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국가와 고용주[등]가 개인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당신은 혹시 나에게 장애가 없거나 장애가 없는 척하지 않으면 이 회사에, 학교에, 영화관에, 식당에, 정부 건물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에 대한 논리적근거를 ‘당신이 제공해야 한다. 당신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장애를 가진 내 모습 그대로를 존중받아야 한다. 이쯤에서 관련성을 눈치 챈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합리적/정당한 편의 제공은 결국 우리가 6장에서 살펴본 켄지 요시노의 ‘논리적 근거를 강제하는 대화‘의 원칙과 연결된다. 우리 개인이 가진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 몸의 특성, 복잡다단한 고유성을 주류 집단이 간단히 무시해버리지않아야 하며, 만약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왜 그러한지 그들이 직접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이 곧 합리적 정당한 편의 제공의 전제다.

- P240

디보티 예외주의자들의 문제는 장애 여성이 직면한 현실의 어려움을 성적인 욕망의 문제로만 환원하고, 차별이나 빈곤, 각종 건물과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성 문제 등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나 퀴어 이론가들, 장애 이론가들은 장애인들의 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하여 연구할 때 ‘장벽이 되는 요소들‘을 비장애인 중심주의ableism"나 정치적 억압, 성적 주변화 등 넓은 맥락에서 분석한다. 반면 디보티 예외주의자들은 장애 여성이 ‘디보티즘‘에 대해더 많은 정보와 폭넓은 이해를 가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이런 문제들에 접근한다.  - P271

존엄의 순환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 순환 속에서 존엄은 더 구체화되고, 더 강해지고,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을 보고 그를 더 사랑하게 되듯이, 우리는 나를 존중하는 상대방을보고 그를 더 존중하게 되고, 나를 존중하는 법률을 보고 그러한 법의 지배를 기꺼이 감내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더 깊이 사랑하고 관용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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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진저,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마흔다섯 살인데 이제야 나 말고 다른 일에 마음 쓰는 법을 배우네요. 남을 보살피는 법 말이에요. 윌리 덕분에 배우는 셈이죠. 나를 믿어줬거든요.
있죠, 이 녀석이 나를 믿어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무도 나를안 믿어주는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그럴 자격을 얻지 못했으니까 그랬겠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토니는 이야기하면서 내 뒤의 먼 곳을 응시한다.
그가 리드줄을 느슨히 잡아당겨 윌리에게 걸으라고 신호한다.
윌리의 나이든 눈이 반으로 자른 달걀 모양으로 감긴다. 녀석은 눈알을 뒤로 굴리면서 쩍 하품을 한다.
"가자, 윌리. 가서 쉬어야지."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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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수용한다accept‘고 말할 때, 그것은 철저히 자발적인 선택을 의미한다. 믿음은 나의 의지에 따라 믿거나믿지 않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수용은 오로지 나의 의지에 달려 있다. 물론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지만 장애가 문화적 다양성을 증대시켰다는 풍부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면 장애를 더 쉽게 수용할 수 있다), 근거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당신이 장애가있는 아이를 진정 가치 있고 반짝거리는 존재로 수용하고자 한다면, 그 아이에게 다른 아이에게는 없는 천재적인 수학 능력이 있는가 혹은 예술가로서의 빛나는 재능이 보이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앤드류 솔로몬이 인터뷰했던, 장애아를 둔 어머니 루스의 말은 수용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나는 우리가 신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지금 같은 관점을 갖게 된 것은아니라고 실제로 생각해요. 사람들은 상투적인 말로 우리를 위로하려고해요. "하느님은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주십니다" 라는 말처럼요. 하지만 샘이나 줄리아나 같은 장애아는 애초에 부모에게 선물이 될운명으로 태어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선물인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선택했기 때문이죠.
- P139

정체성이란 객관적인 대상처럼 존재하는 어떤 산물이 아니다. 정체성이 귀중한 이유는 우리가 각자의 인간적 상황에 맞서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수행적 가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수행적 가치가 무엇인지는 예술품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가령 반 고흐의 그림을 최고 성능의 컬러복사기를 이용해 복제한다면, 그 그림은 고ㅎ의 원작과 다를까? 수준 높은 미술평론가들조차 원작과 모작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라면, 양자의 산물로서의 가치는 동등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원작이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 왜 그런가? "위대한 예술품에 가치를 두는 궁극적인 이유는 예술품이 우리의 삶을 증진시켜서가 아니라 예술적 도전에 맞선 수행performance을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골형성부전증‘이나 ‘암‘ 또는 청각장애가 가치 있다고 말한다면, 이 역시 산물로서의 가치보다는 수행으로서의 가치를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수평적 정체성으로서 옹호하고자 하는 장애나 질병, 너무 크거나 작은 키, 인종, 특정한 정신질환, 성적 지향 등은 한 사람이 어떤 경험과 도전에 맞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역사가 체화된 인간적 속성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 P148

키가 아주 작거나 얼굴에 커다란 반점이 있는 것은 나의 책임이아니다. 하지만 그런 몸으로 태어난 것이 추하고, 존엄하지 않고, 하찮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나도 책임을 부담한다. 나에 대한 그런 손가락질의 원인은 세상의 잘못된 평가와 위계적 질서이지만, 그에 맞서 내 존재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선언할 책임은 우리자신에게 있다. 이것이 ‘정체성을 수용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취하는 실천적 태도이다.
- P154

자기 이야기를 자율적으로 써 내려가는 자기 인생의 저자라는 개념은 우리모두가 각자 고유한 이야기와 관점을 가진 개별적인 존재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차별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 역시 우리가 가진고유성, 자기 삶을 직접 작성하는 저자성authorship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이때의 ‘작성‘이란 자기 삶의 경로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자신이 걸어온 길들을 돌아보며 스스로 해명(설명)하면서, 자기 선택을 반성적reflective으로 밀고 나가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 P186

법은 이렇게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인간 존엄 보장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법은 개인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의 이야기를 삭제하기도 한다. 「정신건강복지법」을 비롯한 정신건강 관련 법체계는 지금까지 정신장애인 개개인의 이야기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 (특히 입원 결정과 관련된) 의사의 진단은 철저히 정신의학적 증상의 경중, 자신과 타인에 대한 해악 가능성을 분별하는 데 집중되었다. 설사 강제입원 요건에 해당하는정신의학적 증상을 보이더라도 환자 개인의 이야기는 복잡하고 풍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는 의사의 ‘진단‘을 곧 강제입원및 치료라는 강력한 조치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지위로 삼는, 이른바 지위 접근status approach 방식을 택하여 정신장애인의 자율성과 고유성을 간편하게 억압한다.
••••••
사회복지서비스의 적용 대상을 판단할 때 의료적인 기준은 물론 중요한 참조 사항이다. 그러나 뇌의 기질적 병변과 그에 따른 신체기능 수준이 의학적으로 어느 정도인지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은 송국현처럼 27년간 시설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 사는 바람에 혼자 자기 몸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다. 그가살아온 ‘삶의 이야기‘와 무관한 ‘신체 기능‘에 대한 판단만으로는한 사람의 실질적인 삶의 조건과 역량을 이해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 P186

유선 씨나 혜정 씨가 충분히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될 수 있다.
고 하더라도 이것을 우리 공동체가 제도적인 수준에서 고려하는 데는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유선 씨와 혜정 씨의 저자성이 ‘법 앞에서‘ 철저히 무시된다면 이를 개선할 방법은 무엇일까? 뉴욕대 로스쿨 교수 켄지 요시노Kenji Yoshino는 현대 사회에서 장애인, 소수 인종, 성적 소수자 등을 대놓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은 많이 없어졌지만, 이 사람들에게 주류 집단에 동화同化되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커버링 covering‘ 압력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커버링은 말하자면, 자신이 가진 비주류적인 특성을 ‘티 내지 말라‘는 요구다. 여성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여성의 몸이 가진 특별한 상황(생리나 출산 등)을티 내지 말 것을 암묵적,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조직 문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지만 장애로 인한 특성을 숨기기를 원하는 사회 분위기 같은 것이 그 예다. 켄지 요시노는 커버링에 대한 법적인 대응 방법을 고민하면서, 그중 하나로 ‘논리적 근거를 강제하는 대화reason-forcing conversation‘를 제안한다. 나는 이것으로 개인의 고유성을 무시하는 법체계를 다소나마 개선할 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해볼 수있다고 생각한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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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진단기술을 통해 장애아를 ‘걸러낼‘ 수 있는 사회는 해당 장애에 대한 의료, 사회복지 지출에 둔감해지기 쉽다. 그냥 걸러내면 될 것을 굳이 낳아서 치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은 사회에 어떤 잘못을 저지른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죄책감은 타당할까? 위 프로그램의 의미를소개하면서 연구자 황지성은 첨단기술을 활용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은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유전자진단이나 임신중절은 일정 범위 안에서는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다만 그 자유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장애아가 태어나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결국 모든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 P116

 이에 관하여 철학자 데릭 파핏Derek Parfit은 비동일성 문제Non-Identity Problem라는 이름으로 논의를 전개한 바 있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혜택을 주거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할 때 모순된 상황에 봉착한다. 혜택을 주려는 행위,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시도는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영향을 받은 미래는 원래 혜택을 주거나 피해를 줄이려 했을 때 태어나게 될 아이들이 아닌 다른 아이들이 출생하는 원인의 일부가 된다. 유전자진단기술을 통해 아이의 장애를 없애려는 행위는 원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려던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의 출생으로이어진다. 그렇다면 원래 태어나려던 아이에게 혜택을 준다거나 피해를 입힌다는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Derek Parfit, Reasons and Persons, Oxford University Press, 1984, pp.351~377)
- P117

 조금이라도 ‘정상적‘으로 보이고, 사회통합을 용이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정각장애인에게 어린 시절 수화언어를 금지하고 구화만을 가르치는 일도 빈번하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수어는 결코 단순한 언어가 아니며, 수어를 통해 적시에 뇌 발달을 이루고 이를 기초로 구화를 보완적으로 배우는 것이 인지 발달과 사회화에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언어를 완전하게 습득하는 시기가 다소 늦어지는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구화를 완전하게 배우고 수어를 보조적으로 배우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에 더 용이하다고 주장한다. 청각장애인 교육에서 수화언어와 구화 중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수어주의 manualism 대 구어 주의oralism 간의 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 P121

스타일의 추구는 자신을 ‘무엇이 아님‘이라는 결여가 아니라 ‘무엇임‘이라고 적극적 positive으로 규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무엇이 ‘아닌 것‘이라는 소극적 형태로는 그와 같은 스타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내가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휠체어의 디자인을 고민하고 그것을 우리 몸에 맞게 조율하며 허세를 부릴 때, 우리는 분명 ‘정상성의 결여‘로서 ‘나‘를 인식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경험을하기 전까지 나는 오직 ‘정상‘이 아닌 상태로 존재했다. 나의 외모와 정신의 스타일을 추구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했다.
유사한 예는 많다. 미혼未婚은 결혼의 결여를 표현하지만 비혼非婚은 적극적으로 규정된 삶의 스타일이 될 수 있다. ‘청각장애‘는청력의 부재를 의미하지만, ‘농‘은 농문화의 존재를 전제한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농인이 아닌 아이들은 그전까지 ‘정상적인 부모가 결여된‘ 장애 가정의 자녀로 받아들여졌지만, 최근에는 자신을 ‘농인 부모의 자녀들‘ 이라는 뜻의 영문 축약어인 ‘코다.
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라고 부른다. 코다는 다른 코다를 만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통역사 역할을 해왔던 기억, 수어와 구어 모두를 유창하게 활용하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나눈다. 코다라는말도 결국 풀어 쓰면 장애를 가진 부모의 자녀라는 의미이지만, 이를 결여가 아니라 어떤 존재의 특성을 상기시키는 말로 바꾸고 스스로 ‘나는 코다입니다‘라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순간 스타일이 축현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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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지만 죽은 상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왜 초조한지 퍼뜩 깨닫는다. 저들의 부서진 부분들이 꼭 나를 닮아서다. 나도 오래도록 내 안의 나침반을 잃은 채 살아왔다. 건강하고 좋은 것을 알아보는 스위치가 꺼져버렸다. 누군가가 아무리 크고 시끄러운몸짓으로 다가와도 나를 깨우지 못했다. 나도 이 남자들처럼 하루하루를 멍하니 보냈다. 땅만 내려다보면서, 신발을 질질 끌면서 나자신과 주변 모두로부터 숨어들면서.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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