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진단기술을 통해 장애아를 ‘걸러낼‘ 수 있는 사회는 해당 장애에 대한 의료, 사회복지 지출에 둔감해지기 쉽다. 그냥 걸러내면 될 것을 굳이 낳아서 치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은 사회에 어떤 잘못을 저지른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죄책감은 타당할까? 위 프로그램의 의미를소개하면서 연구자 황지성은 첨단기술을 활용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은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유전자진단이나 임신중절은 일정 범위 안에서는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다만 그 자유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장애아가 태어나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결국 모든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 P116
이에 관하여 철학자 데릭 파핏Derek Parfit은 비동일성 문제Non-Identity Problem라는 이름으로 논의를 전개한 바 있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혜택을 주거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할 때 모순된 상황에 봉착한다. 혜택을 주려는 행위,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시도는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영향을 받은 미래는 원래 혜택을 주거나 피해를 줄이려 했을 때 태어나게 될 아이들이 아닌 다른 아이들이 출생하는 원인의 일부가 된다. 유전자진단기술을 통해 아이의 장애를 없애려는 행위는 원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려던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의 출생으로이어진다. 그렇다면 원래 태어나려던 아이에게 혜택을 준다거나 피해를 입힌다는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Derek Parfit, Reasons and Persons, Oxford University Press, 1984, pp.351~377) - P117
조금이라도 ‘정상적‘으로 보이고, 사회통합을 용이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정각장애인에게 어린 시절 수화언어를 금지하고 구화만을 가르치는 일도 빈번하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수어는 결코 단순한 언어가 아니며, 수어를 통해 적시에 뇌 발달을 이루고 이를 기초로 구화를 보완적으로 배우는 것이 인지 발달과 사회화에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언어를 완전하게 습득하는 시기가 다소 늦어지는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구화를 완전하게 배우고 수어를 보조적으로 배우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에 더 용이하다고 주장한다. 청각장애인 교육에서 수화언어와 구화 중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수어주의 manualism 대 구어 주의oralism 간의 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 P121
스타일의 추구는 자신을 ‘무엇이 아님‘이라는 결여가 아니라 ‘무엇임‘이라고 적극적 positive으로 규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무엇이 ‘아닌 것‘이라는 소극적 형태로는 그와 같은 스타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내가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휠체어의 디자인을 고민하고 그것을 우리 몸에 맞게 조율하며 허세를 부릴 때, 우리는 분명 ‘정상성의 결여‘로서 ‘나‘를 인식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경험을하기 전까지 나는 오직 ‘정상‘이 아닌 상태로 존재했다. 나의 외모와 정신의 스타일을 추구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했다. 유사한 예는 많다. 미혼未婚은 결혼의 결여를 표현하지만 비혼非婚은 적극적으로 규정된 삶의 스타일이 될 수 있다. ‘청각장애‘는청력의 부재를 의미하지만, ‘농‘은 농문화의 존재를 전제한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농인이 아닌 아이들은 그전까지 ‘정상적인 부모가 결여된‘ 장애 가정의 자녀로 받아들여졌지만, 최근에는 자신을 ‘농인 부모의 자녀들‘ 이라는 뜻의 영문 축약어인 ‘코다. 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라고 부른다. 코다는 다른 코다를 만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통역사 역할을 해왔던 기억, 수어와 구어 모두를 유창하게 활용하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나눈다. 코다라는말도 결국 풀어 쓰면 장애를 가진 부모의 자녀라는 의미이지만, 이를 결여가 아니라 어떤 존재의 특성을 상기시키는 말로 바꾸고 스스로 ‘나는 코다입니다‘라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순간 스타일이 축현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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