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은 무서운 단어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사고가 터졌을 때, 누군가 나를 구조하러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침몰 당시 방송으로 나왔던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든 알아서 각자 살아남으라‘라고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 사회가 나를 보호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처럼 공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 P141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만 20세가 되어야 합니다. 즉, 2014년에 태어난 아이는 2034년까지는 살아남아야 소방공무원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 있었다면 훗날 소방공무원이 되었을 아이가, 9세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면 그 아이는 소방공무원이 될 수 없으니까요. 즉, 한국인의 평균수명 계산은 0세에서 시작하지만, 소방공무원의 평균수명 계산은 20세부터 시작합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한다고 했을 때, 20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셈이지요. 둘째로, 20세에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같은 나이의 젊은이들보다 더 건강해야 합니다. 큰 질병이 없고 여러 체력검정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소방공무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즉, 20세까지 살아남은, 또래보다 더 건강한 이들만 소방공무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방공무원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일을 했다면, 이들은 한국인의 평균수명보다 더 오래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하며 노출되는 여러 유해인자로 인해 더 많이 아프게 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것이지요. - P151

다른 애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허우적대는 거예요. 제 발밑에서 애들이 손을 허우적대는 게 다 느껴졌어요. 저는 손을 쓸 수 없으니까. 일단 제 발이라도 잡으라고 가만있었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발을 잡았어요.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애들이... 제 발을 놓쳤어요..… 애들이 틈 사이로 와가지고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면서 손 뻗는 걸 다 봤고 다 느꼈고. (다시 봄이 올 거예요. 166쪽)

학생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고민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배와 관련해서는 선원들이 전문가니까 그들의 말을 믿었고, 무서움을 견디며 움직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까요. 선원들이 배에서 탈출하던 그 시각에 학생들은 서로 구명조끼를 찾아입혀주고, 친구들이 밟고 올라갈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내밀었습니다.
생각만으로 목이 메지만, ‘제 딸아이가 세월호를 탔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아닐 거예요. 아닐겁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경험이 많은 어른들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배에 탔던 아이들은 그 상식을 지켰다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 P163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 P177

모두 공통점이 있다. 학생들을 채근하지 않고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왔으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충분한 신뢰를 쌓기도 전에 ‘어떤 상처인지 입 밖으로 말해야 트라우마가 극복된다‘며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네가 필요할 땐 언제나 곁에 있겠다‘며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 P186

 또 다른 예로, 대학원 학생들의 우울증 유병률이 대기업에 취업한 비슷한 또래보다 높다고 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연구환경을 개선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지, 그들에게 학업을 그만두고 취업을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남성 동성애자의 HIV/AIDS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성적 지향을 비난하거나 비과학적이고 폭력적인 전환치료를 권할 수 없습니다. 어떤 요인들로 인해 동성애자 집단에서 유병률이 높아졌는지에대해 질문하고 어떻게 해야 그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윤리적이고 효과적인 개입 지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 P211

전 세계 115개국 3,340명의 남성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동성애를 처벌하거나 성적 낙인sexual stigma이 높은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은 콘돔과 윤활젤을 사용하는 경12우가 매우 낮고, HIV 검사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UN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슷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가진 아프리카와 캐리비안해 지역 국가들 중에서도 동성애를 처벌하는 국가는 처벌하지 않는 국가보다 HIV/AIDS유병률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즉, 현실에서는 동성애가 HIV/AIDS의 원인인 것이 아니라 동성애 혐오와 차별이 HIV/AIDS유병률을 증가시키는 원인인 것입니다. - P213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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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에게 쉽게 원한을 품지 않는다. 의견 차이를 놓고 며칠씩 고민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의심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싸움에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도 아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원칙이 그러하듯, 나에게도 예외는 있다. 누군가가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한다. 그건 당연히 내가 당하는 상황이 와도 마찬가지다. 정의가 승리할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재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번 달, 내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즉각적이고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내 성격상 딱히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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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지오크를 만나서 소송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그에게 이 말을 꺼내기가 결정을 내리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집행연기를 받아내고 필요한 서류에 서명을 했다면, 난 옳은 결정과 도의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의 짐은 내가 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짐은 게리 몫이었다. 만일 그가 자살을 선택했다면, 난 내 선택에만 책임이 있을 뿐 그의 선택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게리의 생존을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난 그렇게 했을 것이다. - P598

일순간, 희망은 산산이 흩어지고, 그다음에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이 이미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두려움의 장면을 낱낱이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늘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증오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 마지막 순간, 이 모든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오, 하느님. 게리, 너 어디에 있니? 어디로 가버렸니?" - P606

어머니는 남다른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와 되도록 멀리 떨어져있고 싶었던 때였지만,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상실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렸지만, 그래도 이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들이 무척 좋아하던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가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고 그의 상처를 헤아릴 수 있다는 걸 전해주려는 마음이었다. 그날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못했을모습을 내보일 수 있었다. 난 울고 말았다. 존 레논의 죽음을 위해, 그리고 내 과거의 소중한 한 부분이 유린당한 것을 애도하면서. - P621

나도 너처럼, 그랬어야 했어. 멀리 가버렸어야 했던 거야. 그랬다면 어머니는 어쩌면 스스로 모든 것을 터득했을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을 테지. 어머니는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텔레비전을 켜는 법도 알게 됐을지도 몰라. 어머니가 지닌 두려움들을 극복하는 법도 터득했을 테고. 여러가지 면에서 어머니를 그렇게 쓰러뜨린 것은 바로 그 두려움이었어. 그 어처구니없는 수많은 두려움들이 어머니의 몸까지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지. 어머니는 모든 것에서 두려움을 느꼈어.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물도 먼지도, 그리고 약과 병, 모두 다. - P626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어. 어떤 때는 저쪽 편에서, 어디서 험한 일을 하거나 다리 밑에서 잠을 자거나할 때, 난 이런 생각을 했어.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동생이 있다. 그 애는 글도 쓰고, 유명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있어.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도 있겠구나. 그럼 난 큰아빠가 된거구나.‘ 그리고 그 아기가 여자일까. 남자일까. 네가 어렸을 때처럼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아기일까, 궁금했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때로는 힘이 됐어. 아까도 말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난 완전히 절망에 빠져 있었지. 그런데 네 생각을 하면 마음이 뿌듯했어. 그리고 말하자면 널 결코 방해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거지. 널 찾아가서, 날 인정하도록 하고 널 당황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말이야. 난 네가 우리의 과거로부터 무사히 빠져나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로 인해 그 과거를 되새기게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야. 내 생각은 이랬어. ‘우리 중에 한 사람, 단 한 사람은 이제 무사하다. 그가 해낸 거야. 난 그를 그렇게 놔두고, 그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도록 놔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거야. 그를 그렇게 놔주는 건 기쁜 일이야. 그가 우리 가족의 굴레에 묶여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 P667

그때 잠에서 깬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난 정말로 울고 있다. 나는 어둠 속에 앉아서 흐느낀다. 실제로 죽은 아이는 없는데, 울음을 그칠수가 없다. 너무 심한 상실감에 빠져서 더는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는 일어나서 시계를 본다. 새벽 4시 30분이다. 주방으로 가서 위스키를 한 잔 따른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어둠 속에 앉는다. 그렇게 오래 앉아 있다. 위스키를 다 마신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몹시싫어하는 아침 햇살이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베개로 내 얼굴을 덮는다. 몸을 웅크린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 "괜찮지 않아, 절대로 괜찮아질 수없어." 나는 나 자신을 향해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마침내 그 말 속에서 위안을 찾고, 난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 P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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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나고 게리가 사형선고를 받은 지 몇 주일이 흘렀다. 나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깊은 고통과 수치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형이 우리 가족들에게 앞으로 평생 동안 안고 살아야 할 엄청난 공포와 수치심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 차마 믿기지 않았다. 그가 맥스 젠슨과 벤부슈널, 두 사람의 가족들에게 저지른 죄 역시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난 어떻게든 이 끔찍한 현실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그건 게리가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유타의 감옥에서 공허하게 보내는 것으로 끝나야 했다.
그리고 난 내 생활을 계속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 게리 이야기를 했다. 그들에게 살인자의 동생과 친구로 지낼지, 절교할지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로 만나는 편집자들이나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난 이 무서운 진실을 어느 구석엔가 파묻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 속으로 침투해 아직 버리지 못한 내 꿈을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 P564

이 나라 안에는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수백만은 될 거야. 그리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게리와 같은 선택을 했겠지. 그렇게 죽이고 또 죽으면서 말이야. 감옥에서 보낸 그 잔인한 세월들이 그들을 그렇게 바꿔놓은 거야.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지.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이 그 삶에서 탈출할 수 있는 출구로 보이기 시작하지. 그건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출구이기도 해. 그들 중에는, 다른 모든 것들은 두려워도 죽음만은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어. 그러면 그들은 대단히 위험한 존재가 되고 말아. 그들은 가둬버릴 수도 없어. 그것이 그들에게는 자유이기 때문이야. 또 그들은 죽일 수도 없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죽음이니까. 그들은 정말로 다른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야. 그런 사람들 수천 명이, 바로 게리 같은 사람들이 이 땅을 활보하고 있어. 문제를안고 있는 아이, 그 문제는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가정문제일 수도 있겠지. 그런 아이를 그 폭력이 난무하는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넣는다고 해봐 그러면 결국 그 아이는 내 동생 게리처럼 될 가능성이 많지. - P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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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파는 자본가계급의 권력도 차르 체제와 다를 바 없는 소수자의 독재이니 당장 권력을 장악해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한꺼번에 해치우자고 했다. 이 정파의 우두머리가 레닌이었다. 레닌은 차르 정부를 타도하고 세울 정부를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또는 ‘절대다수의 소수에 대한 독재‘라고 했다. 레닌 그룹은 볼셰비키 (Bolsheviki, 다수파)를 자처하면서 반대파를 멘셰비키(Mensheviki, 소수파)라 했다. 두 정파는 1905년 4월 런던에서 연 제3차 당대회 때 완전히 갈라섰고 1917년에는 총을 들고 서로를 죽였다 - P81

사회주의혁명은 선진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라 러시아 같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약한 고리‘에서 일어난다. 그게 법칙이다. 러시아 사회주의자는 당장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패전은 혁명을 촉진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는 조국이 전쟁에 패배하게끔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레닌의 주장이었다. - P90

레닌은 평생 누군가와 싸웠는데, 싸움 상대는 대부분 적이 아니라 노선이 다른 혁명가였다. 첫 번째는 나로드니키, 다음은
‘합법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나로드니키는 테러를 일삼았고 차르를 암살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보통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그토록 위험한 나로드니키를 공격했다.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아 경찰이 단속을 느슨하게 하자 그 틈을 타 많은 청년들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토론했다. 레닌은 그렇게 형성된 ‘합법 마르크스주의‘가 혁명에 반대하는 개량주의를 퍼뜨린다고 봤다.
레닌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을 비롯한 ‘수정주의자‘와도 싸웠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가 파멸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술이발달하고 생산력이 높아지면 폭력혁명 없이도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의회활동을 통해 사회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 테니 자본주의체제의 붕괴를 기다리지말고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일상 활동으로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레닌은 유배 중인 혁명가들을 모아 러시아는 당장 혁명을 해야만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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