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정파는 자본가계급의 권력도 차르 체제와 다를 바 없는 소수자의 독재이니 당장 권력을 장악해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한꺼번에 해치우자고 했다. 이 정파의 우두머리가 레닌이었다. 레닌은 차르 정부를 타도하고 세울 정부를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또는 ‘절대다수의 소수에 대한 독재‘라고 했다. 레닌 그룹은 볼셰비키 (Bolsheviki, 다수파)를 자처하면서 반대파를 멘셰비키(Mensheviki, 소수파)라 했다. 두 정파는 1905년 4월 런던에서 연 제3차 당대회 때 완전히 갈라섰고 1917년에는 총을 들고 서로를 죽였다 - P81
레닌은 평생 누군가와 싸웠는데, 싸움 상대는 대부분 적이 아니라 노선이 다른 혁명가였다. 첫 번째는 나로드니키, 다음은
‘합법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나로드니키는 테러를 일삼았고 차르를 암살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보통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그토록 위험한 나로드니키를 공격했다.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아 경찰이 단속을 느슨하게 하자 그 틈을 타 많은 청년들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토론했다. 레닌은 그렇게 형성된 ‘합법 마르크스주의‘가 혁명에 반대하는 개량주의를 퍼뜨린다고 봤다.
레닌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을 비롯한 ‘수정주의자‘와도 싸웠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가 파멸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술이발달하고 생산력이 높아지면 폭력혁명 없이도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의회활동을 통해 사회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 테니 자본주의체제의 붕괴를 기다리지말고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일상 활동으로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레닌은 유배 중인 혁명가들을 모아 러시아는 당장 혁명을 해야만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 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