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범죄자 처벌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사람들은 범죄자 처벌이 어떤 습관적 범죄자에게는 효과가 없을뿐더러) 그 사건에 대해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만약 우리가 처벌 여부를 결정할 때 정말로 단기적 효과를 계산한다 해도 잠재적 범죄자는 그것을 예상하고 계산에 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단 범죄가 일어나고 난 후에는 처벌이 무가치해진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고, 그래서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의 배짱으로 행동하고 벌을 받지 않을수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즉각적인 효과와는 무관하게 범죄자를 처벌하는 단호한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다. 처벌하겠다는 엄포가 없으면 해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의 배짱도 없을 것이다. 올리버 웬델 홈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만일 내가 교수대에 설 (혹은 전기 의자에 앉을) 사람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의 행동을 당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피할 수 있도록 우리는 공익을 위해 당신을 희생시키고자 합니다. 원한다면 당신 자신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병사라고 생각해도 될 겁니다. 그러나 법은 약속대로 지켜져야 합니다. 정의를 "원칙의 문제" 로서 적용하는 정책이 이 약속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즉각적인 대가나 상식과의 일치와는 무관하다. 만약 사형을 기다리는 어느 죄수가 자살을 기도한다면, 우리는 그를 신속히 병원으로 후송해서 응급처치를 하고 최고의 현대 의학으로 그의 목숨을 살린 다음 그를 처형할 것이다. 그것은 "정의를 기만"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정책의 일부이다. - P323

 우리가 공동체에서 살아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된 수단은 억제 기능을 가진 그 뇌 체계에 의존한다. 유혹을 위한 체계를 이해한다고 해서 억제를 위한 체계에 기초를 둔 우리의 수단을 버릴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행동의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고, 의지, 영혼, 자아 또는 기계 속의 어떤 유령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P326

오늘날 마음과 뇌에 대한 어떤 발견들은 책임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책임의 영역을 축소하기보다는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여성을 괴롭히고 때리는 행위에서 때때로 최고조에 달하는 욕구가 많은 남성에게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범죄를 지은 남성들을 보다 관대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강력하고 광범위한 충동을 억제하는 최고의 방법으로써 보다 확실하고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어느 사악한 정신병자가 동정심이 없고 그로 인해 희생자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의 능력 수준이 낮다고 해서 처벌을 완화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그가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로 교훈을 주기 위해 더욱 확실하고 엄하게 처벌해야 하겠는가? - P328

왜 사람들의 직관은 정반대-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보다 관대하게 처벌해야 한다."와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보다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로 갈리는가? 그 이유는 억제의 역설에있다. 어떤 사람들은 소화전 앞에 주차를 못하게 하는 건 국수 가락으로한 대 때리겠다는 위협만으로 충분하다고 가정해보자.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좋지 못한 유전자, 좋지 못한 뇌, 좋지 못한 유년 시절 때문에 열 대를 때리겠다고 위협할 필요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불법 주차자를 아홉 대로 처벌하는 정책은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고 문제를 해결하지못할 것이다. 아홉 대는 보통 사람들을 막기에는 필요 이상이고 결함을 가진 사람을 막기에는 필요 이하이기 때문이다. 열 대의 형벌만이 불법주차와 채찍질을 모두 감소시킬 수 있다. 모두를 억제할 수 있고, 누구도 소화전을 막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매를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극단적인 두 정책 (가혹한 처벌과 무벌 정책)이 바람직하고, 중도적인 정책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현실적으로 사람들의 억제 경계는 단 두 개의 가치로 고정되지 않고 넓게 분산되어 있으며(어떤 사람은 한 대, 또 어떤 사람은 두 대 등등), 그래서 범행 억제의 이득과 가해 비용의 무게를 어떻게 재느냐에 따라 중간에 놓인 여러 수준의 처벌이 바람직할 것이다. - P329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악행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것이 우연한 도착 행위가 아님을 말해 준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전지전능한 권위자는 성전의 전사들을 끌어 모으는 사악한 지도자들에게는 아주 쓸 만한 후원자다. 또한 입증할 수 없는 믿음은 객관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동료들로부터 전해지기 때문에 집단마다 다르고 그래서 서로를 구별하는 견장이 된다. - P336

 사람들의 전형은 일반적으로 통계와 일치하며, 많은 경우 그 통계적 치우침은 성이나 인종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실제적 차이보다 낮게 매겨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전형적 특성이 변하지 않는다거나 사람들이 전형적 특성을 불변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그러한 특성을 그때그때 상당히 정확하게 지각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인종 집단에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생각이, 해당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그러한 특성을 공유한다는 믿음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독일인이 평균적으로 비독일인보다 더 능률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독일인이 모든 비독일인보다 더 능률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개인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면 아무 어려움 없이 전형을 무시한다.  - P362

물론 많은 전형이 부분적으로 정확하다고 해서 인종 차별, 성차별,
인종적 편견이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공적인 면에서 사람들이 개인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원리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우리가 전형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적대적인 묘사를 기초로 한 전형은 십중팔구 부정확하다. 그리고 어떤 전형들은 단지 예언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 때문에 정확해진다. 40년 전에는 여성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주지사나 대통령 후보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옳았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순전히 자격을 가로막는 장벽 때문이었다. 그들에겐 자격이 없다는 믿음 때문에 입학을 거부했던 대학 정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제도적 장벽이 철폐된 후에야 현실이 변할 수 있었다. 좋은 소식은 현실이 변하면 사람들의 전형도 함께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364

완곡 표현의 바퀴는 사람의 마음에서는 말이 아니라 개념들이 1차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어떤 개념에 새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에는 개념의 색깔이 스며든다. 개념은 적어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이름 때문에 새로워지지 않는다. 소수 인종을 가리키는 이름들은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갖고 있는 한 계속 변할 것이다. 그 이름이 어느 하나로 고정될 때 우리는 상호 존경심이 정착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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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다. 축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매년 ‘아랑규수선발대회‘를 연다. 이쯤 되면 정말 ‘어쩌라고‘와 ‘어쩌려고‘를 넘어 ‘어쩌자고‘ 하는 기분이 드는데, 행사 내용도 가관이다. 밀양에 살거나 고향이 밀양인 17세 이상 28세 이하 ‘미혼‘ 여성들이 필기시험을 치르고, 아랑이 ‘살해당한 현장‘인 영남루에 모여 ‘재예 겨루기‘를 한다. 한복을 갖춰 입고 머리도 길게 땋아 내린 여성들이 한데 모여 차를 얼마나 맛있고 곱게 우리는지, 다과상을 어떻게 차리는지, 절하는 자태는 어떤지 등으로 심사를 받고 ‘장기자랑‘까지 한다. (1등은 다음 해 축제의 성화 최종 봉송자가 된다.) 주최 측은 이 행사의 취지를 "아랑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라고 밝혔는데, 그러려면 ‘규수‘를 뽑을게 아니라 영남루에서 성폭력 가해자 규탄대회 같은 걸 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여기에 쓸 예산으로 그 어느 지자체보다도 강력한 성폭력 대응 TF팀 ‘아랑‘을 만들고 운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오랜 세월 아랑을 만들어온 방식을 갑자기 바꾸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고퀄‘은 크레인 위에서가 아니라 낡고 상한 것을 버리는 데에서 나온다. 나비가 된 아랑을 높이 띄우려고만 하지 말고, 아랑이란 글자에 ‘리‘ 하나만끼워 넣으면 아리랑이 될 뿐인 것을 무리해서 엮으려 이런저런 의미를 덧대지 말고, 시대와 윤리에 맞게 재해석된 아랑에게 제대로 하늘을 날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 P106

지역축제의 작은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나올 반응들.("심지어 아리랑이 주제래!") 혹여나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가오‘ 빠지고 눈치 보여서 그러지 못했을 성격으로 10대를 보낸 우리의 눈에는 그럼에도 결국 이 무대 위에 선 아이들이 참 눈부셨다. 이들이 「밀양아리랑」을 현대적으로 바꿔 내기 위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없이 돌려 들으며 고민했을 시간들, 서른 명의 여중생들이 아리랑에 맞는 스텝을 찾아내고 오랜 시간을 들여 발을 맞췄을 시간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힘이났다. 누군가들의 비웃음이나 놀림을 눈 딱 감고 무시하고 문득문득 꺼내 보며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쟁취해 낸 사람들에게서 얻는 어떤 기운 같은 것.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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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이 인간 본성의 한 특징. 가령 남자가 여자에 비해 더 광범위한 상황에서 섹스를 원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여성이 언제 누구와 섹스를 할지를 제어하고 싶어한다는 것 또한 우리의 진화에 깊이 뿌리박힌 인간 본성의 한 특징이다. 또한 여성의 이익이 남성의 이익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지배하는것이 다른 사람의 욕구보다 더 중요한 기본적 권리라는 것이 우리의 고유한 가치관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성의 성적 본능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무관하게 강간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이 계산법에서, 여성은 강간당하기를 싫어한다는 인간 본성에 관한 "결정론적" 이고 실재론적"인 주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주목해 보라. 그러한 주장이 없으면 강간을 막으려는 노력과 강간을 받아들이도록 여성을 사회화하려는 노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유연한 원재료라는 이른바 진보적 이론과 완전히 맞아떨어지게 된다. - P294

인간 본성을 부인하면 그 대가로 자유와 행복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은 행동주의자와 스탈린주의자들만이 아니었다. 20세기 마르크스주의는 고귀한 권위주의적 근대 정신이라 불렸던 더 큰 지적 흐름의 일부였고, 그 본질은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사회를 하향식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었다. 예를 들어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도시 설계가들이 전통과 취미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당대 도시들의 혼잡과 혼돈을 영속화시킬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인류가 재탄생할 장소를 건축해야 한다. 각사람이 전체와 질서정연한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유토피아에서 설계가들은 "깨끗한 식탁보"를 가지고 시작해서, "인간의 필요" 에 봉사하는 모든 건물과 공공 장소의 입안을 지도했다. 그들에게는 그 필요를 최소화시킨 개념이 있었다. 즉 각 개인에게는 정해진 만큼의 공기, 열, 빛 그리고 먹고 자고 일하고 출퇴근하는 등의 활동에 필요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르코르뷔지에는 가족과 친구들끼리 모이는 것도 인간의 욕구일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주방을 대신하는 거대한 공동 식당을 제안했다. 또한 그의 욕구목록에는 공공 장소에서 소집단들이 어울릴 수 있는 욕구가 포함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가 설계한 도시에는 대로, 거대한 건물, 넓은 광장들만 있고 사람들이 편하게 모여 잡담을 즐길 수 있다고 느낄 만한 소광장이나 교차로는 없었다. 가정은 "생활을 위한 기계" 여서 정원이나 장식같은 오래된 비효율 요소가 배제되었고, 또 장방형의 거대한 공영 주택단지에 효율적으로 묶였다. - P304

 상대주의적 분위기가 강한 학문의 세계에서는 이런 잔학 행위들이 다른 세계의 문화적 관습이고 문화는 사람처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 초유기체이기 때문에 이를 비난할 수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함정을 피하기 위해 페미니즘 철학자 마서 너스봄은 신체의 보전, 양심의 자유, 정치참여같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를 "주요 기능적 특성"으로 규정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것이 식민주의적인 "개화의 임무" 또는 "백인 여성의 의무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거만한 유럽인이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너스봄의 "특성"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보편적 인간 본성을 기초로 했다면 그녀의 도덕적 주장은 충분히 옹호할 만하다. 인간 본성은 인류의 모든 구성원들이 겪는 고통을 확인하는 척도를 제공한다.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를 영원한 억압, 폭력, 탐욕으로몰아넣는 반동적 교의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굶주림이나 질병 같은 불행의 요소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인간의 해로운 행동을 줄이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소와 싸우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포함된 성가신 사실들을 부인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것을 좋은 사실들과 대립시켜야 한다. 사회적 변화를 위한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인지적 · 도덕적 자원이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려면 그런 종류의 변화를 바람직한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과 노고의 보편성을 인정해야 한다.
.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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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당황의 연속 •

‘의좋은형제축제‘라는 문구를 처음 보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의좋은 형제? 밤마다 쌀가마니를 서로의 집에 몰래 옮기다가 달빛 아래 딱 마주쳤다는 그 동화 속 형제? 근데 이걸로 축제를, 그것도 사흘씩이나 한다고? ‘의좋은 형제‘와 ‘축제‘라는 이 터무니없는 조합(누군가에게는 ‘의좋은‘과 ‘형제‘의 조합부터가 터무니없겠지만) 앞에서 우리는 웃지 않을 수 없었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순간부터 집에서 쌀봉지만 봐도 피식거리며 축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우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 P15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랬다. 마술을 보는 그 시간 동안 그가 우리에게 부린 마술. 이렇게 감화되면 안 되는데…… 얼마간의 냉소를 다시 장착해야 하는데 ...... 하는 각성의 순간도잠시. 그 또한 마술쇼가 끝나고 다른 팀이 무대에 오른 후에도 축제장 한편에 서서 인형을 받지 못해 아쉬워하는 아이들, 마술 공연 때는 없었는데 어디선가 몰려든 아이들에게까지 계속 인형을 만들어 주느라 예정보다 한 시간가량 더 지체했던 마술사 앞에서 다시 사그라들고 말았다. 어쩜 저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정성껏 인형을 만들고 있는지. 그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었다. - P25

하나의 예술이자 수련인 어떤 행위, 그것도 이제는 고리타분하게 여겨져 세상으로부터 저 멀리 떠밀려 버린 듯한 어떤 행위를 끝까지 붙들고 모든 것을 쏟아 내는 사람들의 존재는 언제나 우리에게 조마조마한 존경심을 갖게 한다. 몇 시간 뒤, 무대 옆 게시판에 입상자 명단과 장원작이 나붙자 입상을 고대했을 백발의 참가자들이 몰려들어 내심의 섭섭함을 숨기거나 혹은 숨기지 않은 채 치열하게 작품에 관해 토론하고 바닥에 쭈그려앉아 노트에 장원작을 베껴 적는 모습 또한 그랬다. 주름진 손등에 불거진 핏줄이 꿈틀댈 때마다 그들의 진지하고 오래된 열정이 꿈틀대는 것 같아 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들 만큼. - P38

이미 수차례 읽은 책 같은 풍경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다.‘라는 한 문장이면 끝나는 뻔한 이야기. 하지만 ‘이곳‘ 안에도 또 ‘이곳저곳‘이 있었다. 읍내를 통째로 무대로쓰는 이 거대한 연극의 한가운데에서 과거와 현재가 자꾸 겹쳤다.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휴대폰 가게, 영어 학원 등이 자리한 읍내가 너무 현실적이고(현실이니까……….) 일상적인(일상이니까….) 공간이라서 더 그랬다. 아까 마주친 학생들과 주민들을 행렬 안에서 발견해서 더 그랬다. 자꾸 상상하게 됐다. 동네 친구들끼리 모이면 장난이나 치고 깔깔대며 소소한 일상을 일궈 가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전란 앞에 의기투합하여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평범한 날들과 작별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7시에 GS25 앞에서 만나!" "김밥천국 앞에서 윗동네랑 합류하자!" 같은 약속아래 모여 드는 모습을 그 안에서 모두가 의병으로서 만나는 모습도.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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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잎에 감싸인 여름별장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저녁이 되어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졌어도 오래된 장작이 다 탈때까지 우리는 말없이 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장작이 타고, 타다 무너지는 것을 싫증도 내지 않고 바라보며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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