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만 아니다. 축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매년 ‘아랑규수선발대회‘를 연다. 이쯤 되면 정말 ‘어쩌라고‘와 ‘어쩌려고‘를 넘어 ‘어쩌자고‘ 하는 기분이 드는데, 행사 내용도 가관이다. 밀양에 살거나 고향이 밀양인 17세 이상 28세 이하 ‘미혼‘ 여성들이 필기시험을 치르고, 아랑이 ‘살해당한 현장‘인 영남루에 모여 ‘재예 겨루기‘를 한다. 한복을 갖춰 입고 머리도 길게 땋아 내린 여성들이 한데 모여 차를 얼마나 맛있고 곱게 우리는지, 다과상을 어떻게 차리는지, 절하는 자태는 어떤지 등으로 심사를 받고 ‘장기자랑‘까지 한다. (1등은 다음 해 축제의 성화 최종 봉송자가 된다.) 주최 측은 이 행사의 취지를 "아랑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라고 밝혔는데, 그러려면 ‘규수‘를 뽑을게 아니라 영남루에서 성폭력 가해자 규탄대회 같은 걸 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여기에 쓸 예산으로 그 어느 지자체보다도 강력한 성폭력 대응 TF팀 ‘아랑‘을 만들고 운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오랜 세월 아랑을 만들어온 방식을 갑자기 바꾸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고퀄‘은 크레인 위에서가 아니라 낡고 상한 것을 버리는 데에서 나온다. 나비가 된 아랑을 높이 띄우려고만 하지 말고, 아랑이란 글자에 ‘리‘ 하나만끼워 넣으면 아리랑이 될 뿐인 것을 무리해서 엮으려 이런저런 의미를 덧대지 말고, 시대와 윤리에 맞게 재해석된 아랑에게 제대로 하늘을 날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 P106

지역축제의 작은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나올 반응들.("심지어 아리랑이 주제래!") 혹여나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가오‘ 빠지고 눈치 보여서 그러지 못했을 성격으로 10대를 보낸 우리의 눈에는 그럼에도 결국 이 무대 위에 선 아이들이 참 눈부셨다. 이들이 「밀양아리랑」을 현대적으로 바꿔 내기 위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없이 돌려 들으며 고민했을 시간들, 서른 명의 여중생들이 아리랑에 맞는 스텝을 찾아내고 오랜 시간을 들여 발을 맞췄을 시간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힘이났다. 누군가들의 비웃음이나 놀림을 눈 딱 감고 무시하고 문득문득 꺼내 보며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쟁취해 낸 사람들에게서 얻는 어떤 기운 같은 것.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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