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트럭은 멈추었다. 노모와 어린 딸과, 만삭의 아내를 이끌고 그는 이렇게 하여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遠美洞)의 한 주민이 되었다. 트럭이 멈추자 맨 처음 고개를 내민 것은 강남부동산의 주인 영감이었고 이어서 어디선가 꼬마가 서넛 튀어나와 트럭을 에워쌌다. 미장원집 여자는 퍼머를 말다 말고 흘낏 문을 열어보았다.
지물포집 사내도 도배일을 나가다 트럭이 멈춘 것을 보았다. 연립주택의 이층 창문으로 나타난 퀭한 눈의 한 청년도 트럭이 짐을 푸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국문학』, 1986. 3] - P36

다음 날 아침, 그는 이른 밥상을 앞에 놓고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이제는 새벽밥에도 익숙한 그였다. 거리를 헤매는 동안의 부실한 식사를 생각해서라도 아침밥만은 꼬박꼬박 챙겨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식욕이었다. 간밤의 과음때문이거나 모자란 잠과의 씨름 때문에 거의 그대로인 채의 밥그릇을 남겨놓고 허둥지둥 뛰어나가던 그였다. 출근 시간마다의 그 지쳐 있는 몸짓과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까지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을 아내역시 남편의 묵묵한 식욕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랫목 이불 밑에 시린 손을 묻어놓고 그녀는 심란한 표정으로 그를쳐다보았다. 지난날의 돌을 씹는 듯한, 지겨운 요식 행위에 불과했던 식사법을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도 그를 숨 막히게 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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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 이거였다. 나는 갑자기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싶어졌다. 지구상의 중요도에 있어서 김도 못 되고, 김위에 바르는 기름도 못 되고,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되는 4차적인 (4차 산업혁명적인 게 아니라 그냥 4차적인) 존재이지만, 그래서 범국민적인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보는 순간, ‘세상에 이런 물건이?‘라는 새로운 인식과 (김솔처럼) 잊고 있던 다른 무언가에 대한 재인식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존재. 그리고 그 인식이라는 것들이 딱 김에 기름 바르는것만큼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 김솔통. 드디어 찾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두괄식을 만들어줄 첫 문장. - P19

놀라움에 발이 묶여 그 자리에 붙박인 채로 그들은
‘가벼운 몸풀기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나로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그것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들은 이제 박쥐 인간이 아니라 배트우먼처럼 보였다. 예순 개를 가뿐히 마치고 땅에 내려와 숨을 고르는 것도 왜 그리 멋지던지. 그때까지도 넋을 잃고 보고 있는 내게 언니 중한 명이 손사래 치며 말했다.
"어유 야, 놀랄 것 없어. 너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나도 네 나이 때는 딱 너같았는데, 너도 내 나이 돼봐. 그럼 이렇게 할 수 있다니까?"
오, 그렇구나,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음이 터졌다. 언니가 너무 천연덕스럽게 말해서 그 말의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뻔했다. - P35

언젠가부터 소위 말하는 ‘솔직함‘이라는 것들에 지쳤다. 솔직함은 멋진 미덕이고,
나 역시 각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실하려고 노력하며,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곤 하지만, 솔직함을 무기 삼아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이들을 볼 때마다 일종의 환멸 같은게 생기는건 어쩔 수없다. 이를테면 매해 4월 16일을 전후로 온오프에서 자주 보고 들었던 "세월호 이제 지겹다" 같은 말들. "요즘같은 시대에 이런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으로 시작하는(조심스러우면 하지 마………) 어린이나 난민, 성소수자같은 사회적 약자를 사회 바깥으로 더 밀어내고 배제하는 말들. ‘쿨하다‘가 한 시대의 정신으로 각광받으면서 윤리적 노팬티 상태가 패션인 양 포장되며 쏟아지는 무례한 독설들. 그런 말들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라는 비난과 조롱들.
깨어 있는 사람인 척하는 가식이다, ‘맞말‘하는 걸로 도덕적 우월성을 획득하려는 피시충이다, 약자를 위하는척하지만 결국 약자를 이용해서 자기만족을 채우는 위선자들이다. 적어도 난 솔직하다.....… 등등.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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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가 중원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통일한 뒤 수백 년 동안 한나라는 여러 지역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 외곽 지역에서 한나라식 유물이 발견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지만 한나라의 문화가 모든 지역에 똑같은 모양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저마다 각자 방식으로 해석해 고유한 미술을 만들었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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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아름다운 동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폭이 좁은 문을 빠져나오는 사이 장롱의 옆구리가 또 동전만큼 뜯겨나가고 말았다. 농의 한쪽을 부여잡고 그 무게로 숨이 턱에 닿고 있던 그는 새로 생긴 흠집을 자세히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상앗빛으로 드러난 나무의 속살과 거친 나뭇결의 성난 부스러기가 옛 상처보다 한결 선명하게 도드라졌을 것이란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만그만한 생채기는 열 자짜리 장롱의앞과 뒤에 이미 여러 개 있었다.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의 안타까움만 빼고 나면 생채기는 머지않아 세월의 또 다른 무늬로 자리잡을 것이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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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도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죽은 뒤의 세계로 간 조상을 향해 왜 제사를 지내라고 한건가요?

그게 오랜 세월에 걸쳐 유학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한 문제였습니다. 이런 모순에도 공자는 살아 있는 사람이 바쳐야 할 예를 먼저 생각했어요. 한 번 선조는 이승을 떠나도 영원한 선조일 테니 후손은 후손으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단 거지요.
내세에 대한 특별한 관점이 없다 보니 유교는 다른 사상이나 종교와도 무리없이 섞일 수 있었습니다. 현실은 유교가 지배하되 인간의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나 죽은 뒤의 영역은 민간신앙과 도교가 채웠어요. 그 신들을 천상에서 일하는 관료라고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지상에서 신하의 미덕을 다하는 신하가 높은 직위에 오르듯 신들도 충이나 효, 올곧음 등을 지키면 높은 직위의 신이 된다고요. - P335

그럼요. 이 같은 무덤을 배장묘(陪葬墓)라 합니다. 황제 무덤 옆에 묻힌다고 해서 배석한다의 ‘배‘를 쓰죠. 당연히 황제의 허락이 필요했고요. 계급과 직위에 따라 가까이 묻힐 사람과 멀리 묻힐 사람도 구분했습니다. 가까이 묻힐수록 가문의 영광이었지요. 배장묘는 황제의 권력이 강할 때라야 생길 수 있었던 무덤 형태입니다. 황제라 해도 보잘것없는 권력밖에 지니지 못했다면 아무도 그 곁에 묻히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중국에선 한나라와 그 이후에 세워진 당나라때 배장묘가 가장 많이 조성됐습니다. 이때 황제의 권세가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 P351

현재까지 동북아시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은 한나라 시기에 구체화됐다. 유교와 도교의 여러 상징이 미술의 형태로 사람들의 삶에 깊이 들어왔고 동시에 ‘중국다운 미술‘이 자리 잡는다.

· 유교의 상징
한나라 때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유교와 도교 문화가 화려하게꽃핌. 이에 따라 상징들도 분명하게 정리되기 시작.
예용 • 봉황 · 투실투실한 알곡 • 연리목·기린 등.
- 천자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길한징조. 태평성대의 상징.

•도교의 상징
달토끼 전설이 도교에서 시작됨. 신선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의 형태로 구전되면서 미술 작품으로 남게 됨.
서왕모- 불로장생의 영약을 관리하는 신선, 달에서 살면서 서쪽을 다스림, 달과 해를 뜨게 함. 토끼, 삼청조, 삼족오, 구미호, 두꺼비등을 부림.
- 시대에 따라 전설이나 미술 표현이 변하기도 함.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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