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트럭은 멈추었다. 노모와 어린 딸과, 만삭의 아내를 이끌고 그는 이렇게 하여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遠美洞)의 한 주민이 되었다. 트럭이 멈추자 맨 처음 고개를 내민 것은 강남부동산의 주인 영감이었고 이어서 어디선가 꼬마가 서넛 튀어나와 트럭을 에워쌌다. 미장원집 여자는 퍼머를 말다 말고 흘낏 문을 열어보았다.
지물포집 사내도 도배일을 나가다 트럭이 멈춘 것을 보았다. 연립주택의 이층 창문으로 나타난 퀭한 눈의 한 청년도 트럭이 짐을 푸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국문학』, 1986. 3] - P36

다음 날 아침, 그는 이른 밥상을 앞에 놓고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이제는 새벽밥에도 익숙한 그였다. 거리를 헤매는 동안의 부실한 식사를 생각해서라도 아침밥만은 꼬박꼬박 챙겨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식욕이었다. 간밤의 과음때문이거나 모자란 잠과의 씨름 때문에 거의 그대로인 채의 밥그릇을 남겨놓고 허둥지둥 뛰어나가던 그였다. 출근 시간마다의 그 지쳐 있는 몸짓과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까지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을 아내역시 남편의 묵묵한 식욕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랫목 이불 밑에 시린 손을 묻어놓고 그녀는 심란한 표정으로 그를쳐다보았다. 지난날의 돌을 씹는 듯한, 지겨운 요식 행위에 불과했던 식사법을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도 그를 숨 막히게 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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