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했던 소련이먼저 우주 개발에 뛰어든다. 전후 소련과 미국은 언제 전쟁이 터져도이상하지 않은 냉전 시대에 돌입했는데, 소련은 미국보다 군사력이 떨어졌고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벌어졌다. 이때 소련 지도부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장거리 발사체다.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곧바로 타격할 수 있다면 미국과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이후 미국과 각을 세운 나라들은 이 전술을 그대로 사용했다. 심지어 북한조차),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코뇰로프가 세계 최초로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을 개발하자, 소련은 이 기술에 자국의 미래가 달렸다고 보고 전력을 몰빵한다. 장거리 미사일과 우주 로켓은 달라 보이지만 같은 기술이다. 우주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다면 그 기술을 이용해 장거리 미사일도 쉽게 개발할 수 있다. - P231

또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시기에는 상대의 정보를 정확하게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찰의중요성은 미국과 소련 양측 모두 알고 있었다. 미국은 유럽과 터키 등의 미군기지에서 정찰기를 띄워 소련 깊숙이 침투해 정밀 사진을 찍었다. 1960년 미국의 U-2 정찰기가소련 본토 한가운데서 격추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만 놓고 보면 정찰기를 격추한 소련의 승리지만, 전체 과정을 보면 미국의 승리다. 미국은 원할 때 얼마든지 소련을 정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반면 소련은 미국 본토를 정찰할 능력이 없었다. 미국 가까이에 소련의 우방국이 없어 정찰기를 띄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보의 비대칭은 소련에 엄청난 공포감을 줬고, 이 공포감은 정찰위성을 만들어 우주에서 미국을 살핀다는 계획까지 이어진다. - P232

소련 붕괴 후 우주과학, 수학, 기초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해외로 빠져나갔다. 공산권 학자들은 자유 진영과의 교류 없이 수십년간 독자적으로 지식을 쌓고 있었다. 이들이 자유 진영으로 퍼지자학문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열리게 된다. 또한 소련제 무기와 로켓이이 시기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제3세계에 퍼져나갔다. 당시 러시아가얼마나 처절했느냐면, 항공모함을 고철값만 받고 팔 정도였다. 보통무기를 다른 나라에서 살 때는 제약이 많다. 가격도 비싸고,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분해나 수리를 금지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진 러시아는 푼돈과 생필품에 무기와 기술을 팔아치웠다.
우리나라도 이때 소련제 무기를 많이 구입했고, 이를 분해하며 열심히 공부한 덕에 90년대부터 성능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물론 공식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한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은이제 중동과 남아시아에 무기를 수출하는 국가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지역에 무기를 파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 P264

한국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가 정책으로 인터넷 인프라를 전국에 보급했다. 덕분에 자타가 공인하는 IT 강국인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ICT는 미국보다 2년 정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국가가 발전하는 동안 한국이 정체된 건 그놈의 공인인증서부터 언어까지 (사용량이 적은 언어는 아무래도 데이터 수집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전문가들은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은 것도 그중 하나로 꼽는다. 전국에 처음 고속 인터넷이 깔렸을 때, 기업과 공공기관은 온갖 서비스를 인터넷을 통해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없던 데이터가 쏟아졌지만, 그중에서 당장 필요한 데이터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기업과 공공기관의 눈에 남은 데이터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늘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효율적으로(?) 일해온 한국은 당연히 남는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고 날려버렸다. 보관하는 것도 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데이터의 가능성을 알지 못한 한국은 ICT 발전이 정체되었다가 뒤늦게 다시 따라가고 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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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까마귀와 코팅거, 왕극락조, 케찰만 따져도 가치가 40만 달러를 훌쩍 넘었다. 여기에는 잃어버린 진홍색과일까마귀와 불꽃바우어새, 멋쟁이라이플버드, 어깨걸이풍조, 푸른극락조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 새들은 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실제 가치를 계산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이것은 새를 한꺼번에 판다고 가정했을 경우의 금액이었다. 깃털을 뽑아서 낱개로 판다면 가치는 이보다 훨씬 높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106 마리의 새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에드윈이 모두 팔아버렸을까? 돈은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놓고?
아니면 아직 어딘가에 감춰져 있을까?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뒀을까?
이제 이 사라진 새들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나머지 새들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다.
단 한 사람.
뉴멕시코강을 헤치며 걷고 있는 한 남자만 빼면. - P217

"영국이라는 나라가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을 위해 자연사박물관에 수백만 파운드를 쏟지는 않겠지요. 과학적으로 대단히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그만한 돈을 쓰는 것입니다!" 프리스 존스 소장이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터무니없는 말이라 논리적으로 답변을 드리기가 힘들군요."
프리스 존스 박사와 애덤스는 세상이 이미 이러한 표본들에 지식이라는 빚을 졌다고 설명했다. 윌리스와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밝혀낸 것도 그 덕분이었다. 20세기 중반, 과학자들은 박물관에 있는 오래된 알 표본들을 서로 비교해 DDT 살충제가 쓰인 이후부터 알껍데기가 얇아지고 알의 부화율도 줄었음을 밝혀냈다. 덕분에 이 살충제의 사용이 완전히 금지될 수 있었다. 좀 더 최근에는 150년 된 바닷새의 표본에서 뽑아낸 깃털 샘플을 사용해서 바닷물의 수량이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그것 때문에 다른동물들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수은에 중독된 물고기를 먹는 인간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깃털을 "바다의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 P234

나는 새를 보존하는 일이 인류에게 희망적인 비전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큐레이터들은 인류가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표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곤충, 햇빛, 독일군의 폭격, 화재, 도난으로부터 소장품을 보호해왔던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내고 있는 표본들이 과학자들이 아직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쥐고있다고 믿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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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개척된 인도 항로는 유럽에 다양한 사치품을 가져왔다. 향신료, 비단, 도자기 등 수많은 이국적인 물건이 유럽 사회에 소개됐고 큰인기를 끌었다. 그중 하나가 인디고(남색)였다. 인디고는 지금은 데님청바지에 사용될 정도로 흔하고 저렴한 염료지만, 당시에는 값비싼 물건이었다. 영국은 인디고를 얻기 위해 식민지였던 인도의 논밭을 밀어버리고 인디고(쪽과 비슷한 식물)를 길렀다. 문제는 인디고에서는 염료 외에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영국인들은 인도 농민들이 인디고를 기르게 하기 위해,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폭력적인 방식으로 방해했다. 인도 농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인디고를 기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디고밭이 19세기에는 121억 제곱미터(약 37억평)에달했다. 인도 농민들은 인디고로 힘든 삶을 살았지만, 인디고를 헐값에 사들인 영국 상인들은 큰돈을 벌어들였다. - P134

비록 착취였지만 인도 농민들은 인디고 농사에 익숙해져 있었다. 오랫동안 해오던 농사를 갑자기 옆을 순 없는 노릇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업종 변경을 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영국은 더 이상 인디고가 필요하지 않았고, 상인들은 인디고를 사지 않았다. 인디고는 식용으로쓸 수도 없었기에, 인도의 농민들은 닭 쫓던 개가 되어 거리에 나앉게된다. 이런 와중에도 영국은 "참 안됐네. 그래도 낼 건 내야지" 하면서소작료와 세금을 요구했다. 인도 농민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찬다. 애초에 영국의 강압으로 키운 인디고가 아니던가. 1917년, 한 독립운동가가 이 투쟁에 뛰어든다. 그는 색을 물들이지 않은 하얀 옷을 입고, 제국주의 영국에 저항하자고 호소한다. 인디고 투쟁 30년 뒤, 인도는 독립을 맞이하게 된다. 염색하지 않은 하얀 천을 둘렀던 독립운동가가바로 우리가 아는 유일한 인도의 독립운동가인 ‘마하트마 간디‘다. - P135

처음 A와 B 정의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고분자화합물‘은 이름 그대로 많은 원자가 결합하여 생긴, 분자량이 큰 분자가 얽혀 있는 화합물을 뜻한다. 여기서 분자가 많다는 건 분자 개수가 1만 이상이라는 뜻이다. 플라스틱의 종류가 다양한 것은 바로 이 정의 때문이다. 같은 재료를섞어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더라도 분자 개수와 결합 형태에 따라 성질이 전혀 달라진다. 그러니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면 플라스틱의 종류는 무한대다. 광고를 보다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소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대부분 고분자화합물의 형태를 살짝 바꾼 플라스틱이다. 즉, 플라스틱이라는 용어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다양한 고분자화합물을 구분해주기 귀찮아서 뭉뚱그려 붙인 명칭이다. 물건의 성분표를 봤을 때 앞에 폴리 (Poly- 많은 복합이라는 뜻)가 붙은 물질이 있다면 모두 플라스틱이다. - P143

사람들(나)의 머릿속은 온통 섹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쪽을 중심으로 설명하긴 했지만, 성기 수술을 하는 것이 꼭 외관이나 섹스 때문은 아니다. 핵심은 호르몬이다.
고환에서는 성 호르몬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여성호르몬을투여하는 MtF에게는 두 호르몬이 충돌하면서 각종 병을 유발할 수 있다. 고환을 제거하면 남성호르몬 생성이 급격히 줄어들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FtM도 마찬가지다. 유방과 난소, 자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남성호르몬을 투여하면 암 발병률이 치솟는다. 그래서 인공 페니스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만, 난소와 자궁 제거는 꼭 하는 것이좋다. - P201

<2006년 대법원이 정한 ‘성별 정정 허가 기준>
1. 신청인이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만20세 이상이고 혼인한 사실이 없으며, 자녀가 없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2. 신청인이 성전환증으로 인하여 성장기부터 지속적으로 선천적인 생물학적 성과 자기의식의 불일치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오히려 반대의 성에 대하여 귀속감을 느껴온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
3. 신청인에게 상당기간 정신과적 치료나 호르몬요법에 의한 치료 등을실시하였으나, 신청인이 여전히 수술적 처치를 희망하여, 자격있는 의사의 판단과 책임 아래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4. 성전환수술의 결과, 신청인이 현재 반대의 성으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으며, 생식능력을 상실하였고, 향후 종전의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하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5.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인 경우에는 신청인이 「병역법」 제3조에따른 병역의무를 이행하였거나 면제받았어야 한다.
6. 신청인에게 범죄 또는 탈법행위에 이용할 의도나 목적으로 성별정정허가신청을 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7. 그 밖의 신청인의 성별정정이 신청인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아니하여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 P205

우리는 흔히 이슬람 문화권은 성소수자와 여성의 인권이 형편없다고 생각한다(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런데 몇몇 이슬람 국가는 다른 성소수자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특별히 트랜스젠더만은 허용한다. 가령 이란에서는 동성애자에게는 최대 사형을 내리지만, 트랜스젠더에게는 수술비와 정신과 치료비를 지원해준다. 우리가 보기에 이들의 정책은 일관성이 없다. 동성애를 처벌하면 트랜스젠더도 처벌하고, 처벌하지 않으면 모두 처벌하지 않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일관성이다. 우리에게 그들은 모두 성소수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란은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의 눈에 게이와 레즈비언은 기존의 성관념을 흔들고 종교의 권위를 위태롭게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최후에는 어쨌든 한 성에 정착하기 때문에 기존 성관념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남자가 되면 남자 역할을 하면 되고, 여자가 되면 여자 역할을 따르면 된다. 이 모순이 이해가 되는가?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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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인된 기본 단위는 시간을 재는 초(s), 길이를 재는 미터(m), 무게를 재는 킬로그램(kg), 전류의 세기를 측정하는 암페어(A), 온도를 재는 켈빈(K), 입자 수를 세는 몰(mol), 빛의 광도를 표시하는 칸델라(cd), 총 7개다. 부피를 재는 단위인 리터(L)는 압력에 따라 수치가 달라져 1964년 폐기됐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없어 여전히 사용된다. 엄밀하게는 리터대신 세제곱데시미터를 사용한다(1L=1dm), 참고로 1데시미터는 10센티미터다(1m=10dm=100cm). - P79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전 세계 203개국이 미터법을 공식적으로사용하고 한국 역시 미터법을 사용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다른 단위를 쉽게 볼 수 있다. TV와 스마트폰의 크기는 인치로 표시하고, 원유 거래는 배럴로 이루어지며, 비행기를 타면 늘 ‘마일‘리지를 적립한다. 국제 뉴스에는 여전히 피트, 파운드, 화씨 등의 단위가 버젓이 등장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그건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는 세 나라 중 한곳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국제 사회와 산업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여전히 많은 곳에서 비표준 단위가 표준처럼 쓰이고있다(미국 외 두 나라는 라이베리아와 미얀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이 국제사회에 영향을 주는 거 같진 않다). - P83

그런데 달력을 볼 때 왜 2월만 유독 이틀이 짧은지 궁금해본 적 있는가? 아마 다들 한 번씩은 의문을 가졌겠지만 찾아보진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과학적인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그냥 넘겼겠지. 율리우스력을 제정할 때 카이사르는 홀수 달은 31일, 짝수 달은 30일로 맞췄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1년은 366일이 된다. 윤일이 있는 해는 상관이 없지만, 윤일이 없는 해는 하루를 빼야 한다. 그래서 그는 2월의 마지막 날을 빼버린다. 왜 하필 2월이었냐면, 당시에는 새해가 3월에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기준에서는 2월에서 하루를 뺀 것이 애매하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냥 마지막 달에서 하루를 뺀 것뿐이다. 이렇게 날짜를 정한 율리우스는 새 달력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일이 포함된 7월(July)에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는다. 또한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취임하기 위해 기존 달력의 11월을 1월로 선포하고 새해를 바로 시작했다. 그에 맞춰 모든 달이 두 달 앞당겨진다. 원래 January는 1월이 아니라 11월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새해의 시작인 March는 3월이 되었고, 8이라는 뜻을 가진 October 는 10월이 되었다.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최초의 로마 황제가 되는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처럼 자신의 달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역시 자신의 생일이 있던 8월 (August)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달이 30일짜리 짧은 달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역시 2월에서 하루를 떼서 8월에 붙인다.  - P95

한국에서도 1920년 에스페란토 협회가 설립됐다.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는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에스페란토를 받아들였다. 1925년 창립된 ‘조선프롤레타리아에술가동맹‘, 즉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이름은 영어가 아니라 에스페란토다. 한국뿐 아니라 자국 언어가 위험에 처한 많은 식민지 국가에서 에스페란토를 지지했다.
하지만 당시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광풍이 전 세계를 휩쓸 때였다. 국제어 지지자는 그 수가 얼마든 아웃사이더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에스페란토를 곱게 보지 않았다. 특히 나치는 에스페란토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나치와 반대되는 사상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유대인이 만든 언어가 아닌가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에스페란토를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의 언어"라고 규정하고, "유대인이 국제어를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독일에서 에스페란토는 금지되었다. 나치가 집권했을 때는 이미 자멘호프가 죽은 후였지만, 그의 자녀들은 (딸2 아들 1) 모두 나치에게 잡혀 총살당했다. 일본 역시 조선인이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공산주의를 표방한 스탈린조차 에스페란토를 탄압했다. - P111

"당구공을 만들 새로운 물질을 가져오면 1만 달러를 주겠소."
1863년, 미국의 한 신문에 실린 광고다. 당시 1만 달러는 현재 가치로 18만 달러(약 2억 원)가 넘는다. 종류가 너무 많아 플라스틱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플라스틱의 광대한 세계는 바로 이 한 줄의 광고에서 시작됐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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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는 종의 기원은 설명하지 못했지만, 지리적 위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그래서 다른 박물학자들이 지리적 데이터를 정확히 기록하지 않는 것을 크게 비난했다. "자연사에 관한 다양한 연구는 물론, 박물관들조차 지리에 대한 설명은 대개 매우 불명확하게 제공한다. 특히 남미, 브라질, 기아나, 페루일대가 가장 심각하다. 분포지역을 ‘아마존강‘이나 ‘키토‘라고만표기하면, 아마존 남쪽인지 북쪽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정확한 정보 없이는 종이 분화된 과정과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윌리스에게는 표본에 붙은 설명이 표본자체만큼이나 중요했다. - P41

극락조의 조상이 고립되어 있던 지역에는 극락조를 잡아먹는 사향고양이나 다른 고양잇과 동물이 없었다. 먹이를 놓고 경쟁해야 할 원숭이나 다람쥐도 없었다. 수백만 년 동안 나무를 베어내 서식지를 없애버리는 인간도, 깃털을 뽑으려는 사냥꾼도 없었다.
따라서 수컷들은 보호색 같은 보호 수단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다시 말해 모습이 화려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풍부한 먹이와 안전을 보장받는 고립된 장소라는 이점은 일명 ‘줄달음 선택runawayselection‘ 에 필요한 조건과 완벽히 부합했다. 극락조들은 수백만 년에 걸쳐 잘 만들어진 무대 위에서 깃털을 점점 더 화려하게 만들고, 춤 실력을 갈고닦았다. 이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표, 바로 짝짓기를 위해서였다. - P50

 월리스는 1863년에 쓴 논문에서 표본을 그렇게 많이 모은 이유를 설명했다. "각각의 종은 지구 역사를 담은 여러 권의 책들 가운데 한 권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개별 단어와 같다. 단어가 몇 개만 빠져도 그 문장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문명의 발달 과정에 반드시 수반되는 수많은 생명체의 멸종은 필연적으로 과거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 - P61

에르메스 가방과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가 나오기 전까지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은 죽은 새였다. 더 이국적이고 더 비쌀수록 더 높은 신분을 상징했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특이한 공통점이있다면 아마 새의 깃털일 것이다. 수컷 새는 암컷 새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신의 깃털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어왔지만, 인간세계에서는 그 깃털을 이용해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고, 사회적 신분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새들은 수백만 년 동안 자기들끼리만 지내면서 너무 아름답게 변해버렸다.
- P70

1886년 어느 유명한 조류학자가 깃털 열병의 심각성을 알아보기 위해 뉴욕 외곽의 쇼핑 구역에서 오후 시간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비공식적으로 조사했다. 700명의 여성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중 약 3분의 1이 새 한 마리의 깃털을 통째로 달고 있었다. 모자에 꽂힌 새들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볼 수 있는 새들이아니었다. 뒤뜰에 날아오는 흔한 새들은 패션계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유행을 선도하려면, 극락조, 앵무새, 큰부리새, 케찰, 벌새, 루피콜라새, 쇠백로, 물수리 정도는 되어야 했다. 모자가 이렇게 새들의 공동묘지가 되어가는 동안 의류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한 상인은 벌새 8000마리로 숄을 만들어 팔았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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