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공인된 기본 단위는 시간을 재는 초(s), 길이를 재는 미터(m), 무게를 재는 킬로그램(kg), 전류의 세기를 측정하는 암페어(A), 온도를 재는 켈빈(K), 입자 수를 세는 몰(mol), 빛의 광도를 표시하는 칸델라(cd), 총 7개다. 부피를 재는 단위인 리터(L)는 압력에 따라 수치가 달라져 1964년 폐기됐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없어 여전히 사용된다. 엄밀하게는 리터대신 세제곱데시미터를 사용한다(1L=1dm), 참고로 1데시미터는 10센티미터다(1m=10dm=100cm). - P79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전 세계 203개국이 미터법을 공식적으로사용하고 한국 역시 미터법을 사용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다른 단위를 쉽게 볼 수 있다. TV와 스마트폰의 크기는 인치로 표시하고, 원유 거래는 배럴로 이루어지며, 비행기를 타면 늘 ‘마일‘리지를 적립한다. 국제 뉴스에는 여전히 피트, 파운드, 화씨 등의 단위가 버젓이 등장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그건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는 세 나라 중 한곳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국제 사회와 산업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여전히 많은 곳에서 비표준 단위가 표준처럼 쓰이고있다(미국 외 두 나라는 라이베리아와 미얀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이 국제사회에 영향을 주는 거 같진 않다). - P83

그런데 달력을 볼 때 왜 2월만 유독 이틀이 짧은지 궁금해본 적 있는가? 아마 다들 한 번씩은 의문을 가졌겠지만 찾아보진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과학적인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그냥 넘겼겠지. 율리우스력을 제정할 때 카이사르는 홀수 달은 31일, 짝수 달은 30일로 맞췄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1년은 366일이 된다. 윤일이 있는 해는 상관이 없지만, 윤일이 없는 해는 하루를 빼야 한다. 그래서 그는 2월의 마지막 날을 빼버린다. 왜 하필 2월이었냐면, 당시에는 새해가 3월에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기준에서는 2월에서 하루를 뺀 것이 애매하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냥 마지막 달에서 하루를 뺀 것뿐이다. 이렇게 날짜를 정한 율리우스는 새 달력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일이 포함된 7월(July)에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는다. 또한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취임하기 위해 기존 달력의 11월을 1월로 선포하고 새해를 바로 시작했다. 그에 맞춰 모든 달이 두 달 앞당겨진다. 원래 January는 1월이 아니라 11월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새해의 시작인 March는 3월이 되었고, 8이라는 뜻을 가진 October 는 10월이 되었다.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최초의 로마 황제가 되는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처럼 자신의 달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역시 자신의 생일이 있던 8월 (August)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달이 30일짜리 짧은 달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역시 2월에서 하루를 떼서 8월에 붙인다.  - P95

한국에서도 1920년 에스페란토 협회가 설립됐다.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는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에스페란토를 받아들였다. 1925년 창립된 ‘조선프롤레타리아에술가동맹‘, 즉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이름은 영어가 아니라 에스페란토다. 한국뿐 아니라 자국 언어가 위험에 처한 많은 식민지 국가에서 에스페란토를 지지했다.
하지만 당시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광풍이 전 세계를 휩쓸 때였다. 국제어 지지자는 그 수가 얼마든 아웃사이더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에스페란토를 곱게 보지 않았다. 특히 나치는 에스페란토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나치와 반대되는 사상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유대인이 만든 언어가 아닌가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에스페란토를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의 언어"라고 규정하고, "유대인이 국제어를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독일에서 에스페란토는 금지되었다. 나치가 집권했을 때는 이미 자멘호프가 죽은 후였지만, 그의 자녀들은 (딸2 아들 1) 모두 나치에게 잡혀 총살당했다. 일본 역시 조선인이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공산주의를 표방한 스탈린조차 에스페란토를 탄압했다. - P111

"당구공을 만들 새로운 물질을 가져오면 1만 달러를 주겠소."
1863년, 미국의 한 신문에 실린 광고다. 당시 1만 달러는 현재 가치로 18만 달러(약 2억 원)가 넘는다. 종류가 너무 많아 플라스틱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플라스틱의 광대한 세계는 바로 이 한 줄의 광고에서 시작됐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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