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나의‘이다. 나의 꽃, 나의 감정, 나의 느낌, 나의 기억………. 그것들이 ‘나‘라는 세상에 하나뿐인 개별성과 주체성, 고유성을 만든다. 이에 따른 논리로 만약 ‘나의‘ 기억, ‘나의‘ 감정, ‘나의‘ 느낌이 없다면 나의 사고, 나의 선택, 나의 판단, 나의 결정이 없고, 이에 따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인지 알지도, 자신의 삶을 살지도 못 한다. 그래도 살기는 사는데 그 삶은 마치...… ‘오리지널Original‘이 아니라 ‘보증 받은 복제품Certified Copy‘이랄까. - P17

한때는 그도 우듬지에 있었다. 보드라운 초록 잎사귀로 무성했고 햇살과 빗방울에 뒤덮여 반짝였다. 에너지로 바꾸어 고스란히 줄기에, 뿌리에 내주었다. 그 덕에 나무는 성큼성큼 성장했다. 줄기가 높이 자랄수록 그는 제자리를 지키는데도 자꾸만 아래에 놓였고 어느새인가 우듬지를 올려다보는 처지가 되었다. 새로운 우듬지에 난 이파리 사이로 햇살은 조각나 흩어져 부스러기처럼 떨어질 뿐이었고 나날이 빼빼 말랐다. 잎사귀들이 모두 떠났고 삭정이가 되더니 강풍 불어 후드득 꺾였다. 딱딱하게 굳은 심장처럼 밑동만 남아 고스란히 나무에 박혔다.
아무도 그가 죽은 줄 몰랐다.
옹이는 그가 살았고 사랑했다는 흔적이다. 더 이상 햇볕과 바람과 비를 받을 수 없어서 아무것도 줄 게 없어서 산 채로 묻혔다. 나무의 생채기가 되어버린 옹이는 무늬가 될 수 있을까.
어느 솜씨 좋은 목수가 옹이를 나무의 무늬로 살려놓을까.

옹이 가슴에 맺힌 감정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옹이가 내 삶의 무늬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옹이야말로 나의 삶을 세상에 유일한 작품으로 만들 수있다. - P25

"A가 B에 힘을 가하면 B는 같은 크기의 힘을 반대 방향으로 A한테 가한다." A가 마음일 수도, B가 마음일 수도, 둘 다 마음일 수도 있다. 어쨌든 마음이 작용한다는 것은 마음에 힘을 가하는 자극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런데 이것은 마음의 일이라 눈, 귀, 코, 혀, 살갗 등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외부의 자극뿐 아니라 기억, 상상, 욕망, 생각 같은 내부의 자극에 대해서도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자극에 대해 마음이 일으키는 반응‘을 감정이라고 한다. 어떤 자극인지, 어느 정도의 세기인지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 다른 형태와 강도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감정의 다양성이다. 최종 목표는 자신의 마음에 가해진 것과 같은 크기의 힘을 반대 방향으로 가해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 P27

기쁨은 생이라는 고해에 놓인 징검다리다. 덕분에 다음에 올 내가 수월하게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한 번 일어난 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기쁨 또한 그러하다. 우리는 기쁨을 징검다리 삼아 생을 건넌다. 기쁨이 설령 공포로 뒤바뀐다 해도 과거에 놓은 징검다리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징검다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 정확히는 나의 감정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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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시기

늘 코를 흘리고 다녔다. 콧물이 아니라 누렇고 차진 코여서 훌쩍거려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만 아니라 그때 아이들은 다들 그랬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싸잡아서 코흘리개라고 부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여해야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아이들에 대해 제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감기가 들지 않고는 절대로 코를 안 흘린다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딴 아이도 안흘렸다. 그래서 학교나 유치원 갈 때 가슴에 손수건 매다는 습관까지 없어져 버렸다. 나도 이제는 요즘 아이들이 코를 안 흘리는 걸 이상해하는 대신 그땐 왜 그렇게 코를 흘렸는지를 이상하게 여기게 되었다. - P13

한 번 출타하시면 며칠 만에 돌아오실 적도 있었지만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은 어린 나에게 가장 큰 낙이었다. 사랑마루는
울타리 없는 바깥마당에 면해 있었다. 아래윗간으로 나누어진 사랑채는 마루도 길어서 가운데 기둥이 있었다. 그 가운데 기둥을 한 팔로 안거나 기대고 앉아 있으면 동구 밖으로 난 달구지길이 저 멀리 산모롱이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지점까지 바라볼수가 있었다. 
흰옷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초가지붕마다 뿜어 올린 저녁연기가 스멀스멀 먹물처럼 퍼져길과 논밭과 수풀과 동산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워버려, 마침내 잿빛 하늘을 인 거대한 한덩어리가 되었을 때도 흰옷 입은 사람이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것은 잘 분간이 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다들 흰옷을 입었다.
특히 송도 나들이를 갈 때는 때도 안 묻은 고운 흰옷으로 호사를했다. 그래도 나는 할아버지와 딴 사람이 헷갈리지 않았다. - P19

 서울 아이들은 소나기가 하늘에서 오는 줄 알겠지만 우리는 저만치 앞벌에서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노는 곳은 햇빛이 쨍쨍하건만 앞벌에 짙은 그림자가 짐과 동시에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성을 지르며 마을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 장막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자꾸나 뛴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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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은
‘나‘의 감정에서
시작된다

꽃이 없으면 열매가 없고, 열매가 없으면 씨도 없다. 그러니 시작은 ‘꽃‘이었을까, ‘씨‘였을까. 씨가 없으면 꽃이 없고, 꽃이 없으면 열매도 없고, 열매가 없으면 씨도 없다는 순서로 갈 수도있다. 꽃에서 시작됐을 거라 믿는 근거는 단순하다. 예쁘니까. 예뻐서 눈길을 끄니까 눈길이 가면 마음길이 따르고 마음길이 이르면 발길이 닿는다. 내가 꽃을 보고, 꽃도 나를 본다. 나와 나의 꽃은 부디 서로를 봐야 한다. 꽃은 나에게 반응react 이 아니라 응답response 을 기다린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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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 봉투에는 배달지 주소가 반듯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발신인의 주소는 없고 노르웨이 우체국 소인만 찍혀 있었다.
박물관 직원이 봉투를 뜯어보니 편지는 없고, 빨간색, 검은색, 주홍색 깃털이 지퍼백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직원 몇 명이 모여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중 한 사람이 지퍼백을 들고 한적한 박물관 복도를 한참 걸어갔다. 시료에 담긴 빅토리아 시대의 조류 표본을 지나고, 알과 뼈, 멸종된 생물과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 다원이 수집한 핀치새, 한때 월리스의 새들이 있었던 캐비닛을 지나 파이로데루스 스쿠타투스라고 표시된 캐비닛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큐레이터가 서랍을 당기자 범죄 증거물이라고 적힌 봉투가 보였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온 우편물을 서랍에 넣고 캐비닛 문을 조용히 닫았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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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은 체포되기 전까지는 상대방과 눈을 맞추기 어려웠던적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괜찮아요. 중요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눈을 못 마주치겠다.‘ 그런 생각을 일부러 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판결을 앞두고 있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죠. ‘아, 눈! 눈을 못 마주치겠어!" 에드윈은 이렇게 말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우스꽝스럽게 양손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에드윈이 말을 계속했다. "자폐증이있는 사람들을 보면 틱 같은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의자에 앉으면 손을 계속 비비게 되더라고요."
에드윈이 갑자기 이상한 숨소리를 내며 의자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자폐아처럼 보이는 반복적인 동작 같은 거 있죠? 어느새 저도 의자에 앉으면 앞뒤로 의자를 막 흔들고, 눈도 못 마주치고……. 그게 증상이니까요."
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말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는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이다 보니 자신의 필요에 맞는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 P290

생각해보니 옳지 않은 행위도 정당화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터 파머는 나라에서 보호하는 사자를 사냥감으로 되어온 가이드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에드윈은 자기가 물건을 훔쳐 나온 곳은 개인이 아니라 기관이고, 그 기관은 이제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 아니므로 큰 문제가되지 않는다고 했다. 롱은 그저 친구를 믿었기 때문에 플라이를 배우는 같은 대학생으로서 에드윈이 그렇게 비싼 가죽들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갖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플라이 타이어들보다 육식이 환경에는 더 나쁜 것이 아닌지 의아해했다. 플라이 타이어들은 자기들이 가진 가죽이나 깃털이 박물관 것이 아닌지 걱정하면서도 큐레이터들이 주장하는 사라진 가죽의 개수는 허수에 불과하다며 양심의 가책을 덜었다.
나는 누군가는 책임을 느끼고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시인해주기를 바랐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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