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예로 들어보자. 아가시는 이 순간 헛간 교실 바로 밖에서 헤엄치고 있는 모든 물고기, 그중 한 마리를 바다에서 건져올려 껍질을 벗겨보면 신이 보낸 아주 분명한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했다. "인간의 육체적 본성이… 어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고 도덕적으로 얼마나 졸렬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가시가 충격적이라고 느낄 만큼 인간과 유사한 어류의 골격 구조(작은 머리, 척추골, 갈비뼈를 닮은 돌출 가시)는 ‘인간‘에 대한 경고였다. 어류는 인간이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비늘 덮인 존재였다. "인간은 [어류와] 그를 구별해주는 도덕적 지적 재능을 활용할 수도 있고 남용할 수도 있다. (...) 인간은 자기가 속한 유형 중 가장 낮은 위치까지 가라앉을 수도 있고, 영적인 높이로 올라갈 수도 있다. - P45

나는 더 용감한 여자아이, 더 견고한 영혼을 지닌 여자아이라면 그런 말도 웃으며 받아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문제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인지도 잘 알았다. 하지만 내 안에는 그게 없었다. 그게 뭐였든 간에 말이다. 튼튼한 뼈대처럼 강한 기개를 찾으려 더듬거렸을 때 내 손에 잡히는 건 모래뿐이었다. - P59

하지만 그동안 세상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던 남자가, 그가 추구하는 것들 때문에 조롱을 당하고 때로는 괴롭힘까지 당하던 남자가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승격된 것일까? 나는 온순하고 음울하며,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창백한 이 남자가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은 채 미끄러지듯 슬그머니 지나다니다가, 어느새 어떤 목적의 빛으로, 공기로, 빛나는 물질로, 뭐가 되었든 아무튼 그 목적으로 서서히 차오르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 P75

그건 그렇고, 데이비드는 다윈이 신을 없애버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추구는 여전히 고귀한 일이라 여겼다. 그는 자연의 사다리의 형태, 그러니까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있고 지위가 정해져 있는지를 드러내줄 가장 높은 청사진에 대한 추적을 계속 이어갔다. 다만 이제는 그 질서를 만드는 것이 신이아니라 시간이라고 믿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그 청사진은 여전히가장 결정적이고 많은 것을 알려줄 비밀들을 품고 있을 터였다. 데이비드는 물고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상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의 진짜 창조 이야기, 인간을 만드는 데 어떤 생명의 실험들이 필요한지를 알아내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가 하는 일은 다른 생물들의 우연한 실수와 성공들 속에 쓰여 있는, 잠재적으로 인류가 더욱더 진보하도록 도와줄 실마리들을 찾는 것이었다. 이는 키를 잡고 있는 창조주의 존재가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가시의 사명과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 P76

이 부부의 이름은 릴런드 스탠퍼드와 제인 스탠퍼드로, 1890년 어느 날이 부부는 블루밍턴까지 몸소 찾아와 자신들이 팰러앨토의 농지에 실험적으로 세운 작은 학교의 초대 학장이 되어줄 수 있겠냐고물었다. 데이비드는 그 제안에 따르는 넉넉한 봉급, 눈부신 기후,
태평양의 기름진 보물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전망에 구미가 당겼다. 그를 주저하게 만든 유일한 요소는 스탠퍼드 부부였다. 릴런드 스탠퍼드는 악덕 자본가로 널리 알려진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다. 그의 아내 제인은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으며, 죽은 아들과 만나려고 영매들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도덕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자신보다 열등해 보이는일개 시민의 변덕에 놀아나는 놈팡이나 노리개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봉급에 그 날씨라면….
결국 그는 1891년 스탠퍼드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나이 갓 마흔 살이 되었을 때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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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게 마련 아네요. 우리도 최소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게 아녜요?"
"왜? 이대로도 우린 살아 있는데."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엄마가 밥을 만두로 바꿔만 줬더라도………. 그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그런 쉽고 작은 일이 딸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걸 엄만 왜 몰라요?"
어머니의 부연 시선이 아무런 뜻도 지니지 않은 채 나를 보는지 내어깨 너머로 윗목의 장롱을 보는지 초점 없이 한군데 머물러 있었다.
나는 이내 어머니가 다만 나에게 잡힌 치맛자락을 놔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란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또한 내 바람이 완강하게거부당하고 있음도, 그 거부 앞에 내가 얼마나 무력한가도 알아차렸다. - P127

대소쿠리, 담뱃대, 지게, 삼태기, 요란한 수가 앞뒤로 놓인 점퍼, 색이 바랜 조악한 천의 파자마, 갓 쓴 할아버지, 똥통멘 농부의 목각 인형∙∙∙∙∙…. 우리의 것이랍시고 내세운 물건들이 외국 사람, 아니 나에게 오히려 낯설고 정이 안 간다. 팔아먹을 것의 고갈, 그렇지만 팔아먹지 않고는 연명할 도리가 없는 상태, 그런 것이 바로 가난의 생태가 보다.  - P164

그러나 나는 미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내속에 감추어진 삶의 기쁨에의 끈질긴 집념을 알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지치지 않고 깊이 도사려 있으면서 내가 죽지 못해 사는 시늉을 해야 하는 형벌 속에 있다는 것에 아랑곳없이 가끔 나와는 별개의 개체처럼 생동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 P182

그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를 기억해낼 수는 없어도, 내가 형벌을 받는 동안 조금도 가엾지 않았다는 게 지금도 대견스럽게 회상됐다.
그렇지 나는 결코 나를 가엾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나는 내가 조금씩 소중스러워졌다. 소중한 나를 배고프게 내버려둘 수는 더군다나 없었다. 발딱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머니가 눈치채지 않게 소리를 죽여가며 밥상을 챙겼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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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색 털이 무성한 손이 불쑥 내 코앞까지 뻗어와 멈추었다. 그의손아귀에 펴든 패스포트 속에서 긴 머리의 아가씨가 활짝 웃고 있었다.
"예쁘군요."
그들에게는 좀 허풍스런 찬사를 보내야 하는 법인데 오후의 피곤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나른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내 앞에 선 우람한 GI는 몸집보다는 민감한 듯했다. 금방 씰쭉해지더니 사진을 나꿔채듯 제 눈앞에 가져다가 새삼스럽게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윽고 제품에 안심이 되는지 다시 입을 헤벌렸다.
나도 이때를 놓칠세라 재빨리 직업의식을 발휘했다.
"내가 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답군요. 당신은 행운아예요. 물론 그녀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셔야죠. 어때요? 이 고운 실크 스카프에다 그리면."
나는 우선 한 귀퉁이에 용의 모양을 날염한 번들한 인조 스카프를 권해보았다. 그게 우리 초상화부로서는 제일 수지가 맞는 품목이었다. - P13

그들은 늘 몹시 바빴고, 난 또 얼마나 바빴었을까. 세상에는 재미난 일들이 너무나 많았고 좋아할 것이 연달아 널려 있어서 혁이 오빠도 욱이 오빠도 눈이 돌 지경이었고, 난 또 그것을 덩달아 하느라신이 났었다.
우리집에 무상출입하는 오빠들의 유쾌한 친구들을 좋아했고, 그들이 즐기는 스포츠와 유행 음악에 덩달아 열중했고, 그들이 반한 영화배우에 나도 반했고, 그리고 부드럽고 말랑한 손과 구수한 음식 솜씨를 가진 우리들의 어머니를 또한 얼마나 사랑했던가.
나는 벽면의 난잡한 진열품들을 샅샅이 훑어보고나서 다시 한 번기타줄을 튕기고 자리에 엎드렸다.
가슴 밑 명치께가 요사이 늘 그렇듯이 체증 비슷한 거북함으로 보깨기 시작했다. 나는 엎드린 채 그 밑에 베개를 괴고 지그시 눌렀다. 난 알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랑하고픈 마음이 얼마나 세차게꿈틀대고 있는지를.
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덩달아, 누구를, 무엇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인가? - P23

‘마리아 당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기나 하리까.‘
무언가 뿌듯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마리아, 당신만은 아시리다…….‘
청순한 동경이 언 몸을 깃털처럼 감쌌다.
‘마리아, 당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기나 하오리까……. 마리아,
당신만은 아시리다. 그 다음은 뭐더라….
문득 나는 내가 전에 애송한 시의 구절을 생각해내려고 골몰하고있음을 깨닫는다. 남의 흉내, 빌려온 느낌은 그것을 깨닫자 흥을 잃고 싱거워졌다. 그리고 가식 없는 나의 것만이 남았다. 그것은 무섭다는 생각과 춥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만이 온전한 나의 것이었고 그 느낌들은 절실하고도 세찼다. 나는 어두운 길을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무섭다‘를 거푸 뇌까리며 ‘무섭다‘ ‘춥다‘에 떠밀리듯이달음질쳤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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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두 체제 동안 1400만 명이 의도적 살육을 당했다. 지금은 이에 대해 우리가 통달은 못할망정 조금이라도 알기 시작할 때다. 과장된 숫자를 반복하며, 유럽인들은 그들의 문화에 수백만 명의 존재하지 않았던 유령을 집어넣고 있다. 불행히도, 그런 유령은 완전히 무력하다. 서로 경쟁적인 순교자 신화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순교자를 내세운 제국주의martyrological imperialism일 뿐이다. 1990년대의 유고내전은 부분적으로 세르비아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자민족의 희생자 수를 실제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 역사가 없어지면, 숫자는 부풀려지고 기억은 억눌려지면, 공포스러운 상황이 찾아온다. - P714

각각의 사망 기록은 하나의 독특한 삶에 대해 그 존재를 제시하지만, 내용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죽은 이의 숫자를 셀 뿐 아니라 죽은 이 한명 한 명을 개인으로 취급해야 한다. 대규모 학살에 심층 조사를 실시한 경우는 홀로코스트로, 570만 명의 유대인이 죽었고 그 가운데 540만 명이 독일의 손에 죽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숫자도 다른 숫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만 추상적인 ‘570만‘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하나의 570만 배‘로 여겨져야 한다. 그것은 뭐랄까, 한 사람의 유대인이 570만 번 죽었다는 식의 의미가 아니다. 셀수 없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 기억될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도브시아 카간은 코벨 시너고그에 있던 소녀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던 모든 이들, 코벨에서 죽은, 우크라이나에서 죽은, 동유럽에서 죽은 유럽에서 죽은 모든 유대인은 독특한 삶의 소유자였다.
기억의 문화는 어림수를 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죽은 자들에 대한기억은 그 수가 어림수가 아닐 때, 다시 말해서 마지막 단위가 0이아닐 때 쉬워진다. 따라서 홀로코스트의 경우, 트레블린카에 78만863명의 서로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마 쉬워질 것이다. - P716

나치와 소련 체제는 사람들을 숫자로 바꿔버렸다. 그들 중 일부는단지 추정치가 되어버렸고, 나머지 일부는 우리의 정밀한 추계를 통해 복원될 수 있다. 우리 학자들로서는 이 숫자들을 찾고, 이를 통해 일정한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 인간의 마음을 가진 우리로서는, 그런 숫자들을 사람들로 돌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그럴 수 없다면,
히틀러와 스탈린은 단지 우리의 세상을 마구 뜯어고쳤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마저 개조했다는 뜻이 되리라. - P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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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 사람이 소파에 앉아 시리얼을 먹다가 불현듯 어떤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그것에 대해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이를테면 사람들이 이메일 마지막에 겨우 키보드 네 번 더 누르는 수고를 안 하려고 머리글자 하나만으로 서명하는 것이 얼마나 자기를 짜증나게하는지 모른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
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혼돈은 부러져 떨어진 나뭇가지나 질주하는 자동차, 총알 하나를 거느리고 밖에서 치고 들어가 그를 으스러뜨릴 수도 있고, 아니면 반란을 일으키는 그 사람의 몸속 세포들과 함께 안에서 박차고 나와 그를 해체해버릴 수도 있다. 혼돈은 당신의 화초를 썩어 물러지게 하고, 당신의 개를 죽이고, 당신의 자전거를 녹슬게 할것이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부식시키고, 가장 좋아하는 도시를 무너뜨리고, 당신이 간신히 쌓아올린 모든 성스러운 장소를 폐허로 만들 것이다. - P15

1906년 어느 봄날 아침, 난데없이 닥친 지진으로 그가 수집한 반짝이는 표본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 전까지는.
수백 개의 유리단지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고, 그의 어류 표본들이 깨진 유리와 넘어진 선반들에 의해 절단되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최악의 피해를 입은 건 이름들이었다. 조심스럽게 유리단지에 넣어둔 주석 이름표들이 온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창세기가 거꾸로 펼쳐진 끔찍한 지진 속에서, 그가 꼼꼼하게 이름 붙인 물고기 수천 마리가 다시 수북이 쌓인 미지의존재들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 콧수염을 기른 과학자는 평생의 노고가 자기 발치에서 내장을 쏟아내는 파괴의 잔해 한가운데서 이상한 짓을 했다.
그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 지진이 전하는 명백한 메시지, 즉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메시지에 그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소매를 걷어붙이고 허둥지둥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세상의 하고많은 무기 중에서 바늘 하나를 찾아 들었다.
그는 엄지와 검지로 바늘을 잡고는 바늘귀에 실 한 올을 꿰더니 그 파괴의 잔해에서 그나마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물고기 하나를 겨냥했다. 그러고는 한 번의 유연한 동작으로 바늘을 물고기의 목살에 찔러 넣어 이름표를 꿰매붙였다. 폐허에서 구해낼 수 있는모든 물고기에 이 작은 동작을 반복했다.
이제는 절대 이름표를 유리단지 안에 어정쩡하게 넣어두는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각자의 이름을 바로 그 물고기의 피부에 꿰매 붙였다. 목에, 꼬리에, 눈알에 꿰매 붙인 이름들. 이 작은 혁신은 도전적인 소망을 담고 있었다. 이제 그의 작업은 혼돈의 맹공 앞에서도 안전하게 버호받을 것이라는, 다음번 혼돈의 공격 때는 그의 질서가 흔들힘 없이 우뚝 서 있을 거라는 도전적인 소망. - P17

루퍼스가 죽은 이후 데이비드의 일기장은 색채들로 폭발하기 시작했다.24 들꽃, 고사리, 아이비, 나무딸기 등 이 세계에서 뜯어올 수 있는 자연의 모든 파편을 꼼꼼하게 스케치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림의 기교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 그림들은 문질러 번진 연필 얼룩, 잉크 자국, 지우개 자국, 지나치게 열심히 그리려다 흘린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그 미숙함 속에는 그의 집착과 필사적인 마음, 자신도 모르는 것들의 형상을 붙잡아두기 위해 근육의 온 힘을 동원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 P30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괴로운 시기에 수집이 줄 수 있는 달콤한 위안에 관해 연구해왔다. 수십 년간 강박적인 수집가들과 상담해온 심리학자 워너 뮌스터버거 Werner Muensterberger는 《수집: 다루기 어려운 열정Collecting: An Unruly Passion》에서 수집 습관이 모종의 "박탈 혹은 상실 혹은 취약성"이 발생한 후 급격히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새롭게 하나를 수집할 때마다 수집가에게는 폭발적인 도취감을 주는 "무한한 힘의 환상"이 흘러넘친다고 말했다. 그라나다대학에서 수년간 수집가들을 연구한 프란시스카 로페스-토레시야스Francisca López-Torrecillas는 스트레스나 불안을 겪는 사람들이 수집에 의지해 고통을 달랜다며 비슷한 현상을 지적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뮌스터버거가 지적하듯, 유일한 위험은 여느 강박과 마찬가지로 수집 습관이 "신나는" 일에서 "파멸적인 일로 바뀌는 어떤 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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