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두 체제 동안 1400만 명이 의도적 살육을 당했다. 지금은 이에 대해 우리가 통달은 못할망정 조금이라도 알기 시작할 때다. 과장된 숫자를 반복하며, 유럽인들은 그들의 문화에 수백만 명의 존재하지 않았던 유령을 집어넣고 있다. 불행히도, 그런 유령은 완전히 무력하다. 서로 경쟁적인 순교자 신화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순교자를 내세운 제국주의martyrological imperialism일 뿐이다. 1990년대의 유고내전은 부분적으로 세르비아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자민족의 희생자 수를 실제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 역사가 없어지면, 숫자는 부풀려지고 기억은 억눌려지면, 공포스러운 상황이 찾아온다. - P714

각각의 사망 기록은 하나의 독특한 삶에 대해 그 존재를 제시하지만, 내용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죽은 이의 숫자를 셀 뿐 아니라 죽은 이 한명 한 명을 개인으로 취급해야 한다. 대규모 학살에 심층 조사를 실시한 경우는 홀로코스트로, 570만 명의 유대인이 죽었고 그 가운데 540만 명이 독일의 손에 죽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숫자도 다른 숫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만 추상적인 ‘570만‘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하나의 570만 배‘로 여겨져야 한다. 그것은 뭐랄까, 한 사람의 유대인이 570만 번 죽었다는 식의 의미가 아니다. 셀수 없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 기억될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도브시아 카간은 코벨 시너고그에 있던 소녀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던 모든 이들, 코벨에서 죽은, 우크라이나에서 죽은, 동유럽에서 죽은 유럽에서 죽은 모든 유대인은 독특한 삶의 소유자였다.
기억의 문화는 어림수를 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죽은 자들에 대한기억은 그 수가 어림수가 아닐 때, 다시 말해서 마지막 단위가 0이아닐 때 쉬워진다. 따라서 홀로코스트의 경우, 트레블린카에 78만863명의 서로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마 쉬워질 것이다. - P716

나치와 소련 체제는 사람들을 숫자로 바꿔버렸다. 그들 중 일부는단지 추정치가 되어버렸고, 나머지 일부는 우리의 정밀한 추계를 통해 복원될 수 있다. 우리 학자들로서는 이 숫자들을 찾고, 이를 통해 일정한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 인간의 마음을 가진 우리로서는, 그런 숫자들을 사람들로 돌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그럴 수 없다면,
히틀러와 스탈린은 단지 우리의 세상을 마구 뜯어고쳤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마저 개조했다는 뜻이 되리라. - P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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