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석은 없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일찍 극장에 도착해서 극장 문이 열릴 때까지 주변을 배회하다가 극장 문이 열리면 자리를 잡기 위해서 우르르 몰려들었다. 인기 공연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서 공연을 관람했다. 심지어 박스석에도 예약석이 없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하인들을 미리 보내서 자리를 맡도록 했다.
빈지문이나 무대 평판이 무대의 양쪽 끝의 홈에서 나와 무대를 가렸다. 빈지문이나 무대 평판이 걷히면 무대 배경이 바뀌어 있고, 다음 장면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이 무대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연극 소품은 거의 없었고 무대를 현실적으로 꾸미지도 않았다. 19세기가 되어서야 흔히 소품이 사용되고 무대가 현실적으로 제작됐다.
물론, 스포트라이트도 없었다. 하지만 반사판이 달린 조명이 연기자의 발 아래쪽에서 위쪽을 향하여 투사되는 각광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극장과 달리 무대를 제외한 관객석도 어둡지 않았다. 초가 가득 꽃힌 샹들리에가 객석을 밝혔고, 관객의 바이플레이를 유도했다. 바이플레이는 중심 연기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보조 연기다. 보즈웰은 바이플레이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 P320

모든 사람들은 프랜시스 버니를 패니(Fanny)라고 불렀다. 버니에게 글을 쓰는 것은 숨 막히는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그녀의 자매 중 누군가는 그녀를 내숭쟁이라 불렀다. 그녀는 누군가가자신의 일기를 보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한 심정을 일기에 담았다. 하지만 가끔 자매들끼리 일기를 공유하기는 했다. 자매중 누군가가 "패니는 평생 스스로를 억눌렀다. 그녀는 아주 겸손했다. 그녀에겐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억눌러온 감정이나 생각을 표출할 안전한 배출구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일기였고, 패니는 일기에 모든것을 쏟아냈다"라고 말했다. - P354

아주 가끔 존슨은 필연적으로 나쁜 행실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770년 그는 다음의 글을 썼다.

"모든 인간은 자신은 스스로 다짐한 일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오랜 세월을 통한 잦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만은 다짐한 일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는 굳은 믿음 때문에, 인간은 가끔 욕구에 굴복해 다짐을 지켜내지 못한 자를 항상 경멸한다. 그래서 다짐한 일을 매번 어겨 절망에 빠진 자들은 더 이상 다짐하지 않고, 교활해진 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다짐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 P372

보즈웰은 장자상속을 고집했다. 이런 그의 고집이 폐기를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이것은 만약 모든 사내아이가 보즈웰보다 먼저 세상을떠난다면, 모든 재산이 딸들이 아닌 먼 남자친척에게 상속된다는 의미였다. 장자상속에 더해 한사상속도 있었다. 한사상속이란 제1, 제2, 제3의 상속예정자를 미리 정해놓고 그 순서에 따라 가문의 지위와 명예를 이어받되 토지를 비롯한 재산에 대한 임의적인 처분권은 주지 않는 상속제도였다.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장자상속과 한사상속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장자상속은 봉건시대에는 타당한 상속제도였을 거라고 말한다. 봉건시대는 모든 위대한 지주는 소국의 군주이고 영토를 안전하게 지켜야 안보가 보장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자상속은 현대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한사상속도 비난했다.
"한사상속은 얼토당토않은 추정에 근거한다. 그 추정은 바로 대대로토지와 재산을 물려받은 남자 상속자들은 토지와 가문의 모든 재산에대해 동등한 권리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사상속에 따르면 현세대의 재산은 예를 들어 500년 전에 죽은 조상들의 바람에 따라 통제되고 관리되어야만 한다."
<오만과 편견> 속 베넷 일가가 개탄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들이없는 베넷 일가는 재산을 상속서열 상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물려줘야 했다. 바로 거만하고 우스꽝스러운 콜린스였다. - P384

"자네에 대한 나의 애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네. 하지만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아끼는지를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지 않겠네.
자네가 들고 다니는 수첩의 첫 장에 이를 적어두고 다시는 자네에 대한 나의 애정을 의심하지 말게나."
한 사람의 인생을 기록으로 완벽하게 남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즈웰의 기발한 유머감각, 열정과 사교성은 존슨에겐 일종의 활력소다. 존슨은 보즈웰이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고 애정을 확인받으려는 행동이 모두 진심임을 알고 있었다. 보즈웰이 존슨에게서 그토록 바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존슨은 보즈웰에게서 그가 결코 가지지 못한 아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존슨에 대한 보즈웰의 존경심은 점점 커져 거의 숭배에 이르렀다. 그런 그의 존경심은 존슨의 인정 욕구를 가득 채워 줬을 것이다.
게다가 존슨은 보즈웰의 즉흥적이고 검열받지 않고 반항적이고 음탕한 행동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보즈웰의 언행은 대체로 가볍고 엉뚱했다. 반면에 존슨의 언행은 심각하고 도덕에 얽매여 있었다. 그래서 존슨은 보즈웰을 보며 작은 위안을 얻었다. 보즈웰은 어린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제멋대로 굴었다. 존슨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언행과 사고방식이었다. 존슨은 그런 보즈웰을 부모처럼 꾸짖으면서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했다. 보즈웰 역시 존슨이 자신을 아버지처럼 꾸짖어 주길 원했다. - P389

《코르시카 이야기》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단어는 ‘자유‘다. 그는 옷맹한 코르시카 사람들의 애국심이 최고조에 달하던 순간을 함께했고,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이 출간되고 1년 뒤에 코르시카 독립군이 궤멸됐다. 제노바는 코르시카 통치권을 프랑스에 이양했다. 프랑스는 통치권을 이양받자마자 코르시카를 침략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통치하고 있다. 파스콸레 파올리는 변호사인 카를로 부오나파르테(Carlo Buonaparte) 등 몇몇과 함께 산을 넘어 도망쳤다. 카를로 부오나파르테의 아내는 그로부터 3개월 뒤에 나폴레옹을 출산했다. <사회계약론>에서 어느 날 코르시카가 유럽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한 장 자크 루소의 예언을 아이러니하게 실현시킬 인물의 탄생이었다. - P392

당시에 포스트 체이스는 고속 이동수단이었다. 포스트 체이스의 ‘포스트‘란 단어에서 이 마차가 얼마나 빠른지 예측할 수 있었다. <영어사전>에서 새뮤얼 존슨은 ‘포스트(post)‘를 ‘빠른 이동 항로나 방법‘이라 정의했다. 마부는 10마일이나 15마일마다 역마(驛馬)를 교체했고, 역로(驛路)를 따라 역마를 바꾸어 타던 역참(驛站)이 들어섰다. 참고로 포스트에는 본래 역참에서 다음 역참으로 우편물을 옮긴다는 뜻이 있었다. 19세기가 되어서야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둔다는 뜻이 생겼다. 18세기에는 우편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 P4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러나 모두가 데려가 달라고 요구하였다. 뒤에 남으면 틀림없이 죽는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행군에 따라나선다면 최소한 투쟁 중에 동지들 품안에서 죽을것이다. 그 때문에 백사에 남은 사람은 얼마 안 되었다.
1차로 100명이 레이양을 향해 떠나고 나머지 300명이 그 뒤를 따랐다. 그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행군이었기 때문에 뒤따라오는 자 중에 콜록거리는 자가 있으면 누구라도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적병에 바싹 붙어서 행군하기 때문에 단 한 번만 기침을 해도 즉각 발각되어 우리 모두가 섬멸되고 말 것이다.
모두가 허약하고 허기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전 생애를 통하여 이만한 극기를 본 적이 없었다! 상당수가 결핵에 걸렸거나 물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독감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한 행군기간에 기침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P2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타고난 능력자‘라는 가면을 쓰게 되면 노력하면서 꾸준히 배워나가는 것이 어려워진다. 고생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을 맞닥뜨리자마자 "나는 원래 잘 못하는 사람"이라며 금세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임포스터들은 자신에게는 타고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운마저 없으면 혼자 힘으로는 잘해내지 못할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르면 "나는 원래 못하는 사람이라 그래"라고 합리화하거나 포기하는 게 맞다고 결론 내린다. - P107

사람들은 임포스터 학생들의 겉모습만 보고 "포기할 줄 모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의 실험에서 봤듯 그것은 메타인지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의 반영일 수 있다. 이런성향의 학생들에게는 메타인지를 활용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메타인지는 목표를 향해 무조건 전진하는 능력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으면서 학습전략을 조절하는능력이기 때문이다. - P118

다른 학생들이 시키는 것에 불평 없이 수긍만 하다 보니 늘 팀내에서 가장 많은 일을 떠안는 사람이 되었다. 하기 싫은 마음이있어도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에는 다 내 몫이 되었다. 남들에게 내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편했던 나는 이것이 내 역할에 맞는 행동이라고, 나는 원래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그 생각이 내 역할을 한계 지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떠한 역할을 맡느냐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을 올바로파악하고 어떻게 그 상황에 맞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다. 내가 메타인지를 느끼기도 전에 행동부터 해버리면 모니터링을 할 기회가 사라져버린다. ‘나 스스로 한번 판단해보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우선시되고 중시되어야 하는 과정인데, 이러한 자기판단의 과정 없이 행동하게 되면 가면을 쓸 확률이 높아진다. - P134

물론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큰 문제가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후과잉확신편향이 사회적 범죄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작용할 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편향이 범죄사건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킬 위험을 키울 뿐만아니라 사람들에게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편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반대로 생각하기‘가 도움이 된다. - P1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에드먼드 버크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특별히 언어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논했다. 그리고 인간은 단어의 문자적 의미뿐만 아니라 소리와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것들에서도 어떤 감정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주장을 꽤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요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란 가축은 유용하다. 그리고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절대 숭고하지는 않다. 하지만 버크가 <킹 제임스성경(King James Bible>의 한 구절을 다른 단어로 바꾸어 표현하자, 말은 상징성을 지니게 됐다.
"목에 우레를 두르고 콧구멍에서 영광을 뿜는다. 그 녀석은 맹렬하고 격렬하게 땅을 집어삼킨다. 그 누구도 그것이 나팔 소리라고 믿지않는다."
이 구절에서 버크는 "말의 유용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끔찍하고 숭고한 감정이 모두 발산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언어의 힘을 이해할 수 있는 작가가 훗날 가장 주목받는 위대한 연설가가 된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 P262

넓은 관점에서 보면 당시 영국 정치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반적으로 휘그당은 런던의 금융과 상업세력과 동맹을 맺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영제국이 번창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번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해외 전쟁을 적극 지지했다. 토리당은 스스로를 군주에게 충성하고 가톨릭교를 신봉하는 전통주의자들이라 여겼다. 자신들이 낸 토지세가 전쟁자금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지방의 상류지주 계층은 토리당을 지지했다. 하지만 두 정당의 경계에는 구멍이 많았다. 성공한 상인은 주로 자신의 자녀들을 귀족 가문과 혼인시켰고 지방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 P269

당시 잉글랜드는 요즘 말로 최소주의 국가였다. 실질적으로 경찰조직이 없었고, 상품에 세금을 부과했지만 소득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가 거의 없었다. 화재예방, 고속도로 유지보수, 물 공급, 교도소 관리 등 지금 우리가 당연히 정부의 책임이라고 여기는 영역들의 대부분이 당시에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던 민간기업의 영역이었다.
그러므로 지역 주민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지 시의원과 지주가 지역의 니즈를 지역 안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가끔 지역을 순회하는 판사가 순회 재판소를 열어 심각한 범죄를 심리했다. 그 외에는 지주가 보안판사가 되어 일종의 지역 규율에 따라 경범죄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 P278

종속의 원칙에서 소수집단은 그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지위에서 나오는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근면하고 유용한 노동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고 "우연히 노동자들 위에 서게 된 선택된 소수는 자신의 시간을이익이나 영예를 추구하고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거나 학문을 닦거나사회적 의무, 즐거운 행위 그리고 심지어 사회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를하는 데 쓴다"고 했다.
에드워드 기번은 세상에서 자신의 지위를 정확하게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운이 좋아서 적지 않은 재산을 물려받았고 일하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회고록에서 그는 로마제국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지위는 노예, 미개인 또는 무식쟁이였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자유로운 문명화된 나라에 과학과 철학의 시대에 행운을 타고난 훌륭한 가정에 태어나게 해준자연의 너그러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복종은 절대 다수의 범죄, 심지어 죽음으로 처벌받아야 할 범죄조차도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여기는 냉혹한 현실의 철학적 토대였다. 존슨은 법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성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로마제국쇠망사>에서 기변은 "사회의 내부 평화를 깨트리는 범죄의 대다수는 필요하지만 불공평한 규제 때문에 발생한다. 물권법은 다수가 탐내는 물건을 극소수만 소유하도록 제한하여 인류의 욕망을 억누른다"고 했다. - P281

"법과 정부는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부유한 자들의 결합체로 봐야 한다. 법과 정부는 가난한 자들의 공격으로 파괴될 불평등을 부유한 자신들을 위해 보전한다. 하지만 정부는 법으로 가난한 자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으면 그들을 자신들과 평등한 지위에 두고 노골적인공격을 가한다." - P282

1790년 초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을 발표했다.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에서 그는 어떻게 선의의 혁명이 대학살과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군인들을 다루는 법을 알고 진정한 지도력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장군이 사람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군대를 이끄는 자가 그대의 주인이 된다." - P285

데이비드 개릭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복원하려고 작으나마 그만의 연출력을덧붙이려고 노력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관객의 기대에 완전히 부응했다. 햄릿이 그의 어머니에게 하는 욕설은 삭제됐고, 비극에서 저속하거나 웃긴 장면도 삭제됐다. <리어왕(King Lear)>에서 바보광대는 사라졌고, <맥베스>에서 술 취한 짐꾼도 사라졌다. 그리고 <햄릿>에선 무덤지기가 등장하는 장면과 펜싱 시합을 하는 장면이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비극 작품에서 희극적 요소를 제거했을 뿐만아니라 비극적 요소도 대부분 제거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1681년 네이엄 테이트(Nahum Tate)가 각색한 <리어왕>은 해피엔딩이었다. 코델리아는 마지막에 죽지 않았고 에드거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리어왕의 왕국을 물려받았다. 한편 리어왕은 왕좌에서 물러나 글로스터와 켄트와 함께 평화로운 노년을 보냈다. 아서 머피에 따르면, 이 해피엔딩을 본 관객은 환희에 휩싸여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1823년이 되어서야 비극적 결말이 복원됐고, 바보광대는 1838년에 <리어왕>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P295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존슨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개략을 비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보즈웰은 존슨을 약올릴 생각으로 개릭이 자신의 명성에 대해서 너무 자만한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듣고 존슨이 보즈웰을 쏘아붙였다.
"이보게, 개릭이 겸손한 걸세. 생각해보게나. 자네가 언급했던 유명인사들은 저 멀리 떨어져서 박수갈채를 받지. 하지만 개릭은 면전에서 박수갈채를 받고 그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리지. 그리고 매일 밤 수많은 찬사와 박수갈채를 마음에 담고 집으로 돌아간다네. (중략) 이 모든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면, 친구 두어 명에게 긴 막대기를 두고 내 앞을 걸어가라고 하겠네. 그러면서 그 긴 막대기로 내가 가는 길을 막는사람들을 넘어뜨리게 말이야." - P3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랬더니 펑파이가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자네도 저 청년만큼이나 어리고 순진하군. 계급적 정의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전의 필수적인 수단이야. 의심나는 경우에는 보다 적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이 죽여야 해.
자네는 지주들이 지배했던 하이펑의 실정과 그들이 자행한 잔인한 짓거리를 모르고 있어. 만일 내가 본 것을 자네가 직접 보았더라면 여기에 아무런 의문도 없었을거야. 농민들의 행위는 지주들이 한 짓거리의 100분의 1도 안되네. 지주들에 비하면 농민들은 아주 극소수밖에 죽이지 않았지. 자기를 방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농민들은 알고 있네. 만일 자신들의 계급적 적을 혼쭐내지 않으면 농민들은 사기를 잃을 것이고,
혁명의 성공에도 의심을 품게 될 것이네. 이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또한 자네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 P262

그날 밤 우리는 한 천주교 성당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책이 몇 권 있었다. 아무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성경책을 집어 들고 신약을 읽었다. 예수가 하이루펑에 있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무엇을 명령하였을까? "나는 눈물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고 말했으리라. 예수는 민중을 갈취하는 지주와 환전상(換錢商)을 미워하였다. 그는 선한 것과 악하지 않은 것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악을 멸망시키는 것은 선하다. 악을 권력에 머물러 있게 하여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선하지 못한 것이다.
- P266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 박애라는 것이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박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동지들끼리는 그토록 친절하면서도 적에 대해서는 그토록 잔인하다. 톨스토이 같은 박애주의자는 이럴 때 뭐라 말하고 무엇을 느낄까? 틀림없이 톨스토이는 러시아 백성들이 나무에 묶인 채 맞아죽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잔인함을 끝장내는것은 잔인함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이 어둠을 비춰주는 빛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처형되는 것을 보았는데 나는 항상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내전에 참가하여 싸우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각자 자기의 철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남에게 그런 고통을 주기보다는 내가 그런 운명에 떨어지는 쪽이 더 견디기 쉽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누가 죽느냐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안다. 지배계급은 학살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수세대에 걸쳐서 살육을 해왔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싸울 뿐이다. - P2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