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더니 펑파이가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자네도 저 청년만큼이나 어리고 순진하군. 계급적 정의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전의 필수적인 수단이야. 의심나는 경우에는 보다 적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이 죽여야 해.
자네는 지주들이 지배했던 하이펑의 실정과 그들이 자행한 잔인한 짓거리를 모르고 있어. 만일 내가 본 것을 자네가 직접 보았더라면 여기에 아무런 의문도 없었을거야. 농민들의 행위는 지주들이 한 짓거리의 100분의 1도 안되네. 지주들에 비하면 농민들은 아주 극소수밖에 죽이지 않았지. 자기를 방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농민들은 알고 있네. 만일 자신들의 계급적 적을 혼쭐내지 않으면 농민들은 사기를 잃을 것이고,
혁명의 성공에도 의심을 품게 될 것이네. 이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또한 자네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 P262

그날 밤 우리는 한 천주교 성당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책이 몇 권 있었다. 아무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성경책을 집어 들고 신약을 읽었다. 예수가 하이루펑에 있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무엇을 명령하였을까? "나는 눈물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고 말했으리라. 예수는 민중을 갈취하는 지주와 환전상(換錢商)을 미워하였다. 그는 선한 것과 악하지 않은 것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악을 멸망시키는 것은 선하다. 악을 권력에 머물러 있게 하여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선하지 못한 것이다.
- P266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 박애라는 것이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박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동지들끼리는 그토록 친절하면서도 적에 대해서는 그토록 잔인하다. 톨스토이 같은 박애주의자는 이럴 때 뭐라 말하고 무엇을 느낄까? 틀림없이 톨스토이는 러시아 백성들이 나무에 묶인 채 맞아죽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잔인함을 끝장내는것은 잔인함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이 어둠을 비춰주는 빛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처형되는 것을 보았는데 나는 항상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내전에 참가하여 싸우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각자 자기의 철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남에게 그런 고통을 주기보다는 내가 그런 운명에 떨어지는 쪽이 더 견디기 쉽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누가 죽느냐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안다. 지배계급은 학살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수세대에 걸쳐서 살육을 해왔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싸울 뿐이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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