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석은 없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일찍 극장에 도착해서 극장 문이 열릴 때까지 주변을 배회하다가 극장 문이 열리면 자리를 잡기 위해서 우르르 몰려들었다. 인기 공연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서 공연을 관람했다. 심지어 박스석에도 예약석이 없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하인들을 미리 보내서 자리를 맡도록 했다.
빈지문이나 무대 평판이 무대의 양쪽 끝의 홈에서 나와 무대를 가렸다. 빈지문이나 무대 평판이 걷히면 무대 배경이 바뀌어 있고, 다음 장면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이 무대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연극 소품은 거의 없었고 무대를 현실적으로 꾸미지도 않았다. 19세기가 되어서야 흔히 소품이 사용되고 무대가 현실적으로 제작됐다.
물론, 스포트라이트도 없었다. 하지만 반사판이 달린 조명이 연기자의 발 아래쪽에서 위쪽을 향하여 투사되는 각광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극장과 달리 무대를 제외한 관객석도 어둡지 않았다. 초가 가득 꽃힌 샹들리에가 객석을 밝혔고, 관객의 바이플레이를 유도했다. 바이플레이는 중심 연기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보조 연기다. 보즈웰은 바이플레이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 P320

모든 사람들은 프랜시스 버니를 패니(Fanny)라고 불렀다. 버니에게 글을 쓰는 것은 숨 막히는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그녀의 자매 중 누군가는 그녀를 내숭쟁이라 불렀다. 그녀는 누군가가자신의 일기를 보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한 심정을 일기에 담았다. 하지만 가끔 자매들끼리 일기를 공유하기는 했다. 자매중 누군가가 "패니는 평생 스스로를 억눌렀다. 그녀는 아주 겸손했다. 그녀에겐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억눌러온 감정이나 생각을 표출할 안전한 배출구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일기였고, 패니는 일기에 모든것을 쏟아냈다"라고 말했다. - P354

아주 가끔 존슨은 필연적으로 나쁜 행실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770년 그는 다음의 글을 썼다.

"모든 인간은 자신은 스스로 다짐한 일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오랜 세월을 통한 잦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만은 다짐한 일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는 굳은 믿음 때문에, 인간은 가끔 욕구에 굴복해 다짐을 지켜내지 못한 자를 항상 경멸한다. 그래서 다짐한 일을 매번 어겨 절망에 빠진 자들은 더 이상 다짐하지 않고, 교활해진 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다짐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 P372

보즈웰은 장자상속을 고집했다. 이런 그의 고집이 폐기를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이것은 만약 모든 사내아이가 보즈웰보다 먼저 세상을떠난다면, 모든 재산이 딸들이 아닌 먼 남자친척에게 상속된다는 의미였다. 장자상속에 더해 한사상속도 있었다. 한사상속이란 제1, 제2, 제3의 상속예정자를 미리 정해놓고 그 순서에 따라 가문의 지위와 명예를 이어받되 토지를 비롯한 재산에 대한 임의적인 처분권은 주지 않는 상속제도였다.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장자상속과 한사상속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장자상속은 봉건시대에는 타당한 상속제도였을 거라고 말한다. 봉건시대는 모든 위대한 지주는 소국의 군주이고 영토를 안전하게 지켜야 안보가 보장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자상속은 현대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한사상속도 비난했다.
"한사상속은 얼토당토않은 추정에 근거한다. 그 추정은 바로 대대로토지와 재산을 물려받은 남자 상속자들은 토지와 가문의 모든 재산에대해 동등한 권리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사상속에 따르면 현세대의 재산은 예를 들어 500년 전에 죽은 조상들의 바람에 따라 통제되고 관리되어야만 한다."
<오만과 편견> 속 베넷 일가가 개탄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들이없는 베넷 일가는 재산을 상속서열 상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물려줘야 했다. 바로 거만하고 우스꽝스러운 콜린스였다. - P384

"자네에 대한 나의 애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네. 하지만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아끼는지를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지 않겠네.
자네가 들고 다니는 수첩의 첫 장에 이를 적어두고 다시는 자네에 대한 나의 애정을 의심하지 말게나."
한 사람의 인생을 기록으로 완벽하게 남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즈웰의 기발한 유머감각, 열정과 사교성은 존슨에겐 일종의 활력소다. 존슨은 보즈웰이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고 애정을 확인받으려는 행동이 모두 진심임을 알고 있었다. 보즈웰이 존슨에게서 그토록 바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존슨은 보즈웰에게서 그가 결코 가지지 못한 아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존슨에 대한 보즈웰의 존경심은 점점 커져 거의 숭배에 이르렀다. 그런 그의 존경심은 존슨의 인정 욕구를 가득 채워 줬을 것이다.
게다가 존슨은 보즈웰의 즉흥적이고 검열받지 않고 반항적이고 음탕한 행동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보즈웰의 언행은 대체로 가볍고 엉뚱했다. 반면에 존슨의 언행은 심각하고 도덕에 얽매여 있었다. 그래서 존슨은 보즈웰을 보며 작은 위안을 얻었다. 보즈웰은 어린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제멋대로 굴었다. 존슨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언행과 사고방식이었다. 존슨은 그런 보즈웰을 부모처럼 꾸짖으면서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했다. 보즈웰 역시 존슨이 자신을 아버지처럼 꾸짖어 주길 원했다. - P389

《코르시카 이야기》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단어는 ‘자유‘다. 그는 옷맹한 코르시카 사람들의 애국심이 최고조에 달하던 순간을 함께했고,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이 출간되고 1년 뒤에 코르시카 독립군이 궤멸됐다. 제노바는 코르시카 통치권을 프랑스에 이양했다. 프랑스는 통치권을 이양받자마자 코르시카를 침략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통치하고 있다. 파스콸레 파올리는 변호사인 카를로 부오나파르테(Carlo Buonaparte) 등 몇몇과 함께 산을 넘어 도망쳤다. 카를로 부오나파르테의 아내는 그로부터 3개월 뒤에 나폴레옹을 출산했다. <사회계약론>에서 어느 날 코르시카가 유럽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한 장 자크 루소의 예언을 아이러니하게 실현시킬 인물의 탄생이었다. - P392

당시에 포스트 체이스는 고속 이동수단이었다. 포스트 체이스의 ‘포스트‘란 단어에서 이 마차가 얼마나 빠른지 예측할 수 있었다. <영어사전>에서 새뮤얼 존슨은 ‘포스트(post)‘를 ‘빠른 이동 항로나 방법‘이라 정의했다. 마부는 10마일이나 15마일마다 역마(驛馬)를 교체했고, 역로(驛路)를 따라 역마를 바꾸어 타던 역참(驛站)이 들어섰다. 참고로 포스트에는 본래 역참에서 다음 역참으로 우편물을 옮긴다는 뜻이 있었다. 19세기가 되어서야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둔다는 뜻이 생겼다. 18세기에는 우편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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