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8일 금요일

"아, 여기구나" 에이바가 말했다. "이제 그 멍청이들을 어떻게 찾지?"
숀은 길 건너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영화는 한 시간 반 뒤에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극장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수백 명이었다. 해가 진 후라, 보도에 가로등이 줄지어서 있어도 얼굴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에이바는 웨스트우드가 백인 영역이라고 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거의 다 흑인이었고, 고등학생이 많았다. 레이와 친구들을 찾으려면 더 다가가야 했다.
에이바는 숀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숀은 누나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나이 많은 아이들에게 보이기 싫어 손을 뺐다.
"아 놔, 내가 무슨 아기야."
- P13

"숀!" 에이바가 외쳤다. 하지만 기뻐하는 목소리였다.
그날 밤의 사람들과 요란한 함성. 숀은 이런 것들이 해롭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것이 화재라면, 그들은 불꽃이었다. 그들도 일부였고, 그 불길 속에서 다칠 일은 없었다. - P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렇다면 과연 종교는 어떻게 진화한 것인가? 윌슨은 종교의 기원을 동물의 행동에서 찾는 적응주의적 설명을 제시한다. 서열이 높은자에게 복종하는 동물들의 의례화된 행동 ritualized behavior 이 인간사회에서는 종교 행동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진화심리학자들은 종교를 그 자체로는 적응적이지 않지만 다른 적응 현상에 연계되어 나타난 부산물로 생각한다. 어두운 숲 속을 걷는데갑자기 등 뒤에서 우지끈 하며 큰소리가 났다고 하자. 그럴 때 지극히 이성적으로 소리의 크기나 속성을 분석한 다음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보다 그런 소리를 듣자마자 무조건 줄행랑을 놓는 사람이 훨씬 더 높은 확률로 살아남았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만일 그 소리가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난 소리라면 사실 도망칠 필요까지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만일 호랑이가 나를 덮치려는 소리였다면 그 자리에서 소리 분석이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짓은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 같은 행동 반응을 이성의 범주에 할애하지 않고 본능의 영역에 넘긴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행위자 탐지agent detection‘라고 부른다. - P249

구달 박사의 연구가 전환기를 맞게 된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발견이었을 것이다. 구달 박사는 탄자니아의 곰비 국립 공원에 살고 있는 침팬지들이 풀이나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개미나 흰개미의 굴속으로 집어넣었다가 살며시 끄집어내어 자기 군락을 지키려고 침입자를 물고 늘어지는 일개미들을 입으로 홀어 먹는 행동을 처음으로 관찰했다. 그때까지 오로지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고 믿고 있던 과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대발견이었다. 신기한 것은 분명히 같은 종에 속해 있는 침팬지들이건만 일본 학자들이 연구해 온 서부아프리카 기니의 보수 지방에 사는 침팬지들은 개미와 흰개미 낚시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평평한 돌 위에 견과를 올려놓고 다른 돌을 망치처럼 사용하여 단단한 껍질을 깨 먹는 행동을 보인다. 아직까지 곰비의 침팬지들 중에서 이런 행동을 보인 개체는 없다. 나는 이담에 내 영장류연구소에 아프리카 동부와 서부 출신의 침팬지 가족들을 모두 데려다 철저하게 격리하여 키우면서 한쪽 사내를 다른 집안으로 장가를 들이는 과정을 통해 이 두 집단에 오랫동안 내려오던 서로 다른 전통문화가 어떻게 새로운 사회에 전파되는지를 관찰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화는 공유되고 학습되고 축적되며 늘 변화하는 속성을 지닌다. - P260

‘다윈의 해‘를 기다려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2009년 10월에야 비로소 우리말로 소개된 그의 저서 『자유는 진화한다 Freedom Evolves에서 대니얼 데닛은 자유 의지는 결코 환상이 아니고 실재하는 객관적 현상이라며 진화 생물학과 신경과학의 최근 발견들을 바탕으로 결정론과 양립 가능함을 보여 준다.
자유의지에 대한 그의 설명을 조금 길지만 여기 인용한다.

자유 의지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같으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거의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는 것이다. 우리 행성의 대기는 단순한 초기 생명체들의 활동 결과 수억 년에 걸쳐 진화했으며, 그 결과로 가능해진 더 많은 복잡한 수많은 생명체들의 활동에 반응하여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자유 의지라는 대기는 또 다른 종류의 환경이다. 그것은 계획하고 희망하고 약속하고, 비난하고 분개하고 처벌하고 존경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감싸고 가능하게 하고 삶을 형성하는 개념적 환경이다. 우리 모두는 이 개념적 대기에서 성장하며, 그것이 제공하는 조건하에서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산술처럼 영구적이고 변함없는 안정하고 비역사적인 구성물인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상호 작용이 최근에 빚어낸 산물로서 진화했으며, 그것이 이 행성에서 처음 가능하게 한 인간의 활동 중 일부는 그것의 미래 안정성을 파괴하거나 심지어 소멸을 재촉할 수도 있다. 우리 행성의 대기가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우리의 자유 의지도 그렇다. - P283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 두뇌의 진화 단계에 또 하나의 단계를 첨가하고 그에 대한 지지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인간 두뇌의 진화를 연구하는 진화 생물학자들은 대개 세 단계를 설정한다. ‘생존의 뇌 survivalbrain‘, ‘감정의 뇌 feeling brain‘, ‘생각의 뇌thinking brain‘ 가 그들이다. 동물의 인지에 관한 수많은 관찰 결과들로 인해 생존의 뇌와 감정의 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각의 뇌로도 우리 인간의 뇌를 다른 동물의 뇌와 구별해 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우리 인간의 뇌가 다른 모든동물의 뇌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우리만이 유일하게 설명의 뇌explaining brain‘를 지닌 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시를 쓰며 신화를 만들어 내고 심지어는 신을 창조하기도 한다. 설명의 뇌는 앞의 다른 세 종류의 뇌와 달리 행위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기능한다. "세계를 손에 넣은 뒤에 온다"는 말이다. 자유 의지가 데닛의 주장대로 자연 선택의 결과라면 그 결과로 인간의 뇌가 지금처럼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자유 의지를 가능하게 하는 ‘선택 기계‘의 전 단계인 ‘상황행위 기계 situation-action machine‘는 인간 이전 단계의 수많은 동물들에 이미 존재했지만 고도의 언어 발달이 전제되어야 하는 ‘설명의 뇌는 오로지 인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화할수 있었다. 내가 설정하는 ‘설명의 뇌‘는 바로 자유 의지의 진화로 나타난 결과이다. - P286

결코 과학적 사고는 아니지만 나름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각해 보면 자유의지의 진화에 관한 내 생각은 흥미로운 순환의 고리를 그리며 신학적 결정론을 자극한다. 하느님은 왜 에덴동산의 그많은 나무들 중 하필이면 ‘지혜의 나무‘를 가지고 하와와 아담을 꼬드기셨을까? 그들이 끝내 사탄의 유혹에 빠져들고 말 것으로 ‘결정‘해 놓으신 상태에서 왜 꼭 그 나무를 선택하신 것일까? 내가 만일 신학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합목적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하느님께서 이 세상 모든 피조물 중에 우리에게만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허락하신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먼저 과학을 초대했는지도 모른다. 이쯤 해서 과학과 신학이 비로소 마주 앉으면 어떨까 기대해본다. - P2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내가 경험한 기도의 묘미는 잗다란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데 큰 기도는 잘 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큰 기도는 과욕이나 허욕 아니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기도였으니 안 들어주시는 게 당연하고, 잗다란 기도는 잔근심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잗다란 근심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니까 들어주실 수밖에. 기도의 은총은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에 있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기도한다. - P168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몸에는 혀만 있는 게 아니다. 입맛이 원한다고 딴 기관에 해로운 걸 마냥 먹게 할 수도 없다. 내 몸의 그 까다로운 비위는 나 아니면 맞출 수가 없다. 또한 내 손맛에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곰삭은 맛, 내 고향의 맛, 엄마의 손맛이 깃들어 있다. 그걸 기억하고 동의해주는 게 내 몸이니 나하고 내 몸이 가장 죽이 잘 맞을밖에.
이 세상엔 맛있게 만든 음식과 맛없게 만든 음식이 있을 뿐, 인간의 몸이 몇만 년에 걸쳐 시험해보고 먹을 만하다고 판단한 자연의 산물 중 맛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 P186

비록 곱단이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곱단이가 딴 데로 시집가면서 느꼈을 분하고 억울하고 절망적인 느낌을요. 나는 정신대할머니처럼 당한 사람의 원한에다 곱단이처럼 그걸 면한 사람의 한(恨)까지 보태고 싶었어요.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 하긴 했지만 면하기 위해 어떻게 했나요. 강도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얼떨결에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강도는 죄가 없고 자살이 되나요?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기쁨 그 향기로운 숨결을 모조리 질식시켜버린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 P201

 늘 뭔가를 시키고 부탁만 해서 미안하지만 한가지만 더 하겠다. 만약 엄마가 더 늙어 살짝 노망이 든 후에도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면 그건 사회적인 노망이 될 테니 그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 네가 모질게 제재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말년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다오. - P2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회도 또한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 독자적인 인생의 보람을 창조하지 못함으로써 변동에 방치되고, 다양화에서 낙오되고 절망하게 되는 사람의 비중이 커지면,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잘못하면 전복되기 때문이다.
자기 나름대로 보람을 창조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 속에 잠자는가능성을 찾아내야만 한다. 아무리 어렵고 고생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시대를 살아나가기 위하여는 그것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나의 체험을 소개하면서 말한 것들이 21세기를 무대로 활약할 독자들의 인생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된다면 나로서는 분수를 넘어서 자기 과거를 돌이켜 본 가치가 있을 것이다. - P2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퍼레이드가 끝나고, 내가 재학 당시에는 ‘유우(宇)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지금의 ‘유우 소학교‘(일본에서는 국민학교를 소학교라 함옮긴이 주)의 강당에서 6백 명의 후배들 앞에서 강연을 하였다. 강연이라고 하지만 불과 15분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었는데,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던 탓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에서튀어 나왔다.
"나를 가리켜서 재주가 뛰어나다라든가 두뇌가 명석하다고 말해 주시는 것은 대단히 기쁩니다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廣中平祐)는 뛰어난 노력가일 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것을 뻔뻔스럽게 말했다고 여겨지지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향의 국민학교, 중학교후배들에게 그것이 제일 말하고 싶었고, 또 말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다. - P182

요약해 보면, 학자는 자기 학문만을 연구하면 안 된다. 자기 학문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학문이나 경제 정세나 사회 현상 등과 관련시키는 다양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현대 사회는 바로 그 다양한 길로 나가려 하고 있다. 하나의 명제(국가 목표)가 있어서 그것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거나, 오직 그것을 향하여 노력하면 된다는 논리가 통하던 과거의 단순한 시대와는 다르다.
나는 21세기를 맡을 젊은이들이 그러한 넓은 시야를 가지고 학문을 하기를 원한다. 우선 인간은 각자 개성을 가지며 다양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학구적인 시야로 학문을 전개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의 ‘학문의 발견‘으로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