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과연 종교는 어떻게 진화한 것인가? 윌슨은 종교의 기원을 동물의 행동에서 찾는 적응주의적 설명을 제시한다. 서열이 높은자에게 복종하는 동물들의 의례화된 행동 ritualized behavior 이 인간사회에서는 종교 행동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진화심리학자들은 종교를 그 자체로는 적응적이지 않지만 다른 적응 현상에 연계되어 나타난 부산물로 생각한다. 어두운 숲 속을 걷는데갑자기 등 뒤에서 우지끈 하며 큰소리가 났다고 하자. 그럴 때 지극히 이성적으로 소리의 크기나 속성을 분석한 다음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보다 그런 소리를 듣자마자 무조건 줄행랑을 놓는 사람이 훨씬 더 높은 확률로 살아남았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만일 그 소리가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난 소리라면 사실 도망칠 필요까지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만일 호랑이가 나를 덮치려는 소리였다면 그 자리에서 소리 분석이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짓은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 같은 행동 반응을 이성의 범주에 할애하지 않고 본능의 영역에 넘긴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행위자 탐지agent detection‘라고 부른다. - P249

구달 박사의 연구가 전환기를 맞게 된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발견이었을 것이다. 구달 박사는 탄자니아의 곰비 국립 공원에 살고 있는 침팬지들이 풀이나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개미나 흰개미의 굴속으로 집어넣었다가 살며시 끄집어내어 자기 군락을 지키려고 침입자를 물고 늘어지는 일개미들을 입으로 홀어 먹는 행동을 처음으로 관찰했다. 그때까지 오로지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고 믿고 있던 과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대발견이었다. 신기한 것은 분명히 같은 종에 속해 있는 침팬지들이건만 일본 학자들이 연구해 온 서부아프리카 기니의 보수 지방에 사는 침팬지들은 개미와 흰개미 낚시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평평한 돌 위에 견과를 올려놓고 다른 돌을 망치처럼 사용하여 단단한 껍질을 깨 먹는 행동을 보인다. 아직까지 곰비의 침팬지들 중에서 이런 행동을 보인 개체는 없다. 나는 이담에 내 영장류연구소에 아프리카 동부와 서부 출신의 침팬지 가족들을 모두 데려다 철저하게 격리하여 키우면서 한쪽 사내를 다른 집안으로 장가를 들이는 과정을 통해 이 두 집단에 오랫동안 내려오던 서로 다른 전통문화가 어떻게 새로운 사회에 전파되는지를 관찰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화는 공유되고 학습되고 축적되며 늘 변화하는 속성을 지닌다. - P260

‘다윈의 해‘를 기다려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2009년 10월에야 비로소 우리말로 소개된 그의 저서 『자유는 진화한다 Freedom Evolves에서 대니얼 데닛은 자유 의지는 결코 환상이 아니고 실재하는 객관적 현상이라며 진화 생물학과 신경과학의 최근 발견들을 바탕으로 결정론과 양립 가능함을 보여 준다.
자유의지에 대한 그의 설명을 조금 길지만 여기 인용한다.

자유 의지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같으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거의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는 것이다. 우리 행성의 대기는 단순한 초기 생명체들의 활동 결과 수억 년에 걸쳐 진화했으며, 그 결과로 가능해진 더 많은 복잡한 수많은 생명체들의 활동에 반응하여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자유 의지라는 대기는 또 다른 종류의 환경이다. 그것은 계획하고 희망하고 약속하고, 비난하고 분개하고 처벌하고 존경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감싸고 가능하게 하고 삶을 형성하는 개념적 환경이다. 우리 모두는 이 개념적 대기에서 성장하며, 그것이 제공하는 조건하에서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산술처럼 영구적이고 변함없는 안정하고 비역사적인 구성물인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상호 작용이 최근에 빚어낸 산물로서 진화했으며, 그것이 이 행성에서 처음 가능하게 한 인간의 활동 중 일부는 그것의 미래 안정성을 파괴하거나 심지어 소멸을 재촉할 수도 있다. 우리 행성의 대기가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우리의 자유 의지도 그렇다. - P283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 두뇌의 진화 단계에 또 하나의 단계를 첨가하고 그에 대한 지지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인간 두뇌의 진화를 연구하는 진화 생물학자들은 대개 세 단계를 설정한다. ‘생존의 뇌 survivalbrain‘, ‘감정의 뇌 feeling brain‘, ‘생각의 뇌thinking brain‘ 가 그들이다. 동물의 인지에 관한 수많은 관찰 결과들로 인해 생존의 뇌와 감정의 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각의 뇌로도 우리 인간의 뇌를 다른 동물의 뇌와 구별해 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우리 인간의 뇌가 다른 모든동물의 뇌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우리만이 유일하게 설명의 뇌explaining brain‘를 지닌 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시를 쓰며 신화를 만들어 내고 심지어는 신을 창조하기도 한다. 설명의 뇌는 앞의 다른 세 종류의 뇌와 달리 행위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기능한다. "세계를 손에 넣은 뒤에 온다"는 말이다. 자유 의지가 데닛의 주장대로 자연 선택의 결과라면 그 결과로 인간의 뇌가 지금처럼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자유 의지를 가능하게 하는 ‘선택 기계‘의 전 단계인 ‘상황행위 기계 situation-action machine‘는 인간 이전 단계의 수많은 동물들에 이미 존재했지만 고도의 언어 발달이 전제되어야 하는 ‘설명의 뇌는 오로지 인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화할수 있었다. 내가 설정하는 ‘설명의 뇌‘는 바로 자유 의지의 진화로 나타난 결과이다. - P286

결코 과학적 사고는 아니지만 나름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각해 보면 자유의지의 진화에 관한 내 생각은 흥미로운 순환의 고리를 그리며 신학적 결정론을 자극한다. 하느님은 왜 에덴동산의 그많은 나무들 중 하필이면 ‘지혜의 나무‘를 가지고 하와와 아담을 꼬드기셨을까? 그들이 끝내 사탄의 유혹에 빠져들고 말 것으로 ‘결정‘해 놓으신 상태에서 왜 꼭 그 나무를 선택하신 것일까? 내가 만일 신학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합목적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하느님께서 이 세상 모든 피조물 중에 우리에게만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허락하신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먼저 과학을 초대했는지도 모른다. 이쯤 해서 과학과 신학이 비로소 마주 앉으면 어떨까 기대해본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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