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페르낭 폴 브로델(Fermand Paul Braudel, 1902~1985년)은 근대 이전에 유럽은 수십 년마다 한 번씩 기근에 시달렸다고 기록했다. 절박한 농민들은 곡식이 익기도 전에 수확했고, 풀이나 인육을 먹었으며, 구결을 하려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호시절에도 많은 이들이 빵이나 죽으로 대부분의 열량을 섭취했고 그마저도 풍족하지 않았다. 경제학자로버트 윌리엄 포겔(Robert William Fogel, 1926~2013년)은 기아와 조기 사망으로부터의 도피, 1700~2100년(The Escape from Hunger and Premature Death1700-2100)』에서 "18세기 초 프랑스 대표 음식의 에너지 양은 1965년완다- 그해 가장 영양이 부족한 국가였다. 대표 음식의 에너지 양만큼 낮았다."라고 썼다. 굶주리지 않은 사람들도 일을 하기에는 너무 허약했고 결국 빈곤 상태에 빠져들었다. 배고픈 유럽인들은 풍요의 땅 코케인(Cockayen) 이야기 같은 음식 포르노에 흥분했다. 코케인이라는 낙원은 나무에서 팬케이크가 자라고, 거리마다 빵이 깔려 있으며, 구운 돼지가 살을 쉽게 저밀 수 있도록 등에 칼을 꽂은 채 어슬렁거리고, 익힌 생선이 물 밖으로 뛰쳐나와 발밑에 떨어지는 나라였다.
오늘날 우리는 낙원에 산다. 우리의 문제는 열량이 너무 적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다. 코미디언인 크리스 록(Chris Rock, 1965년~)은 "이곳은 역사상 최초로 가난한 사람이 뚱뚱한 사회이다."라고 말했다. 제1세계는 대개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현대의 사회 평론가들은 기아에 쏟을 만한 분노를 비만이라는 신종 유행병에 퍼붓는다.  - P118

경제학자 스티븐 데버루(Stephen Devereux, 1959년~)는 2000년에 쓴 글에서 20세기의 세계 진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기근에 대한 취약성은 사실상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근절되었다. 아시아와 유럽의 고질적인 문제인 기근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 듯하다. 중국, 러시아, 인도, 방글라데시는 ‘기근의 땅‘이라는 가혹한 꼬리표를 떼어 버렸고, 1970년대 이후로는 에티오피아와 수단만 남았다. (그리고) 흉작과 기근 사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다. 최근에 가뭄이나 홍수로 야기된 식량 위기들은 지역과 국제사회 공동의 인도적 대응으로 적절히 해결되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20세기는 식량 부족으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한 최후의 세기로 기록될 것이다.‘

이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선진국의 빈곤층을 포함해) 굶주림은 여전히 존재하고, 2011년에는 동아프리카, 2012년에는 사헬, 2016년에는남수단에서 기근이 발생했다. 그밖에도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예멘이 기근에 가까운 상태를 겪었다. 하지만 수백 년 전에 정기적으로 발생한 대재앙의 수준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았다. - P123

맬서스의 수학은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그의 첫 번째 커브를 보자마자 여러분은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무한정 증가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부유해지고 아이가 더 많이 살아남을수록 사람들은 아이를 더 적게 낳기 때문이다. (그림 10.1 참조) 반대로, 기근 때문에 인구 증가가 장기간 꺾이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과 노인들이 대거 사망하는데, 형편이 나아지면 생존자들이 빠르게 인구를 보충한다." 한스 로슬링이 말한 것처럼 "가난한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는 인구 증가를막을 수 없다."
그의 두 번째 커브를 보고는, 지식을 응용한다면 얼마 안 되는 땅에서도 거두어들이는 식량의 양을 늘릴 수 있고, 식량 공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 P125

질소는 단백질과 DNA, 엽록소, 그리고 에너지 운반체인 ATP의 주성분이다. 질소 분자는 공기 중에 많지만 둘씩 짝을 지어 붙어 있고(그래서 화학식이 N.다.), 식물이 이용할 수 있도록 분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1909년에 카를 보슈(Carl Bosch, 1874~1940년)는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년)가 발명한 반응과 공정을 공업적으로 완성했다. 메테인(메탄)과 수증기를 이용해서 공기중의 질소를 추출한 뒤 이것을 비료로 만드는 대량생산공정이었다. 이로써 질소가 고갈된 토양에 질소를 재주입하는 데 쓰였던 어마어마한 양의 새똥을 비료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 두 화학자는 역사상 가장많은 생명 - 27억 명 - 을 구한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이다. - P127

그렇지만 전통적인 환경 운동가 그룹 - 생태작가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 1938년~)가 "기아에 대해 습관적으로무관심한 이들이라고 칭한 이들은 사람들이 유전자변형작물을 멀리하도록 광적인 반대운동을 벌였다. 선진국의 고급 유기농 식품 애호소비자들은 물론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농부들까지도 유전자변형 작물을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먼저 "자연스러움"이라는 신성하지만 무의미한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뒤, 유전자 변형 기술을 "유전자공해" "자연에 대한 농락"으로 매도하고 "생태 농업"을 기반으로한 "진정한 자연 식품을 장려한다. 그런 다음에는 과학에 무지한 대중이 가진 본질주의와 오염에 대한 원초적 직관을 활용한다. 그 결과, 일반인의 절반가량이 일반적인 토마토에는 유전자가 없지만 유전자 조작을거친 토마토에는 유전자가 있고, 식품에 유전자를 주입하면 그것이 음식을 섭취한 사람의 유전체로 흘러들며, 오렌지에 시금치 유전자를 삽입하면 시금치 맛이 난다고 믿는다는 우울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반인의 80퍼센트가 "DNA를 함유한" 모든 식품에 성분 표시 라벨을 붙이게 만드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데 찬성했다. 브랜드는 이렇게 말한다. "감히 말하건대, 환경 운동은 유전 공학에 반대함으로써 우리가 범한 그 어떤 과오보다 더 큰 손해를 끼쳤다. 우리는 사람들을 굶기고, 과학을 방해하고, 자연 환경을 해치고, 현장의 실무자들에게서 결정적인수단을 앗아갔다.""
브랜드가 혹독하게 비판한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최대 혜택을 누렸을지도 모를 일부 국가들이 유전자변형작물에 대한 반대운동 때문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아서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토양이 척박하고, 강수량 변화가 심하고, 항구와 가항) 하천이 부족한 자연 환경에 계속 시달렸으며, 도로, 철도, 운하의 연결망이 대규모로 개발된 적이 없었다." 모든 농지가 그렇듯 그곳의 토양도 황폐해졌지만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아프리카의 토양에는 화학 비료가 보급되지 않았다. 이미상용화된 동시에 아프리카에 맞게 설계된 유전자 변형 작물들이 무경간 농법(밭을 갈지 않고 도랑에 씨를 심어 농사 짓는 방법. - 옮긴이)과 점적 관개(작은관을 따라서 흐르는 물이 원하는 지점에서 방울방울 배출되도록 하는 관개법. - 옮긴이) 같은 현대식 기술과 함께 도입되었더라면 아프리카는 1차 농업 혁명의 침습적인 농법을 훌쩍 뛰어넘어 농업 증산을 이루었을 것이고, 아직도 남아 있는 영양실조의 문제를 퇴치했을 것이다. - P130

「20세기에 대규모 기근으로 사망한 7000만 명중 80퍼센트는 공산주의 정권이 강제한 집단농장, 징벌적 몰수, 전체주의적 중앙 계획의 희생자였다" 러시아 혁명, 적백내전,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구소련을덮친 기근,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1879~1953년)이 일으킨 홀로도모르(Holodomor, 대기근),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년)이 주도한 대약진 운동,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폴 포트(Pol Pot,
1925~1998년)가 강제한 영년(Year Zero) 운동, 1990년대 후반 북한에서 김정일(金正日, 1941~2011년)이 주도한 고난의 행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 P131

부의 창출創出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다시 한번 모호해지는 경우는 현대사회에서 부를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치 논쟁이 벌어질 때다. 그런 논쟁들은 애당초 분배할 만한 부가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ㅂ경제학자들은 총량 오류(lump fallacy)‘ 혹은 ‘물리적 오류(physical fallacy)‘라는 용어를 쓰면서 한정된 양의 부가 태초부터 마치 금광맥처럼 존재했고 그 후로 줄곧 사람들이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두고 다투어 왔다그 주장한다. 계몽주의의 발명품 중에는 부가 창출되었다는 자각이 포달되어 있다. 부는 주로 지식과 협력을 통해 창출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관계망을 이루어서 불가능해 보이지만 쓸모 있는 형태로 물질을 배열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재주와 노동의 결실을 결합하는 것이다. - P134

 재화, 서비스, 생각이 원활히 돌게끔 하는 제도의 발달이다.
오죽하면 애덤 스미스가 부를 창출하는 원동력으로 꼽았을까. 경제학자 더글러스 세실 노스(Douglass Cecil North, 1920~2015년), 존 조지프 윌리스(John Joseph Wallis), 배리 로버트인가스트(Barry Robert Weingast, 1952년~)는역사 기록과 오늘날의 세계 곳곳을 둘러볼 때 가장 자연스러운 국가 운영 방식 중 하나는 엘리트 계층이 서로 강탈하거나 죽이지 않기로 하는일종의 연고주의(cronyism)였다고 한다. 엘리트층은 그 대가로 영토나 참정권, 특권, 전매권, 세력권을 얻거나 경제의 특정 부문을 장악해서 지대(rent,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원에 대한 독점적 접근으로 얻는 수입)를 받아 먹고살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확보했다. 18세기 잉글랜드에서는 이 같은 연고주의가 누구나 타인에게 무엇이든 팔 수 있는 개방 경제로 대체되었고, 상거래는 법규, 재산권 법률적 강제력이 있는 계약, 그리고 은행, 기업, 정부 부처 같은 기관-인맥보다는 신의성실 의무로 운영되는 조직과 제도-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오늘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시장에새로운 종류의 상품을 들인다든지, 본인이 물건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면 다른 상인들보다 싸게 판다든지, 나중에 제공할 재화나 서비스를 위해 지금 돈을 받아 둔다든지, 몇 년 동안 수익이 나지 않을 장비나 토지에 돈을 투자해 묻어둘 수가 있다. 우유가 필요할 때 편의점에가면 선반에 1리터짜리 우유가 있고, 그 우유는 희석되거나 상하지 않았으며, 판매 금액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이고, 카드를 한 번 긁고 나면, 서로 만난 적이 없고,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으며, 우리의 진정한 거래를 증명해 줄 공동의 친구가 없다고 해도 편의점 주인은 내가 우유를 갖고 나가는 것을 허락해 준다. 두서너 집 건너에서 청바지나 전동 드릴컴퓨터,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거래를 비롯해 현대 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익명의 거래가 수월하게 이루어지려면 많은제도가 갖추어져야 한다. - P139

이 논점은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 1929년~)가 2015년에 쓴 『불평등에 관하여(On Inequality)』에서 더 의미심장해진다. 프랭크퍼트는 불평등 그 자체는 도덕적으로 반대할 만한 것이 아니며, 반대해야 할 것은 빈곤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즐겁게 자극적으로 살 수 있다면, 이웃들이 얼마나 버는지, 집이 얼마나큰지, 차를 몇 대 모는지는 도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덕성의 관점에서 볼 때 모두가 똑같이 가져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문제가 아니다.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은 각자가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불평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을 편협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고르가 어떻게 하면 염소 한 마리를 얻을지 고민하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보리스의 염소를 죽일지 고민하는 것처럼, 그런 관점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불평등과 빈곤을 혼동하는 것은 총량 오류, 즉 부는 영양의 사체처럼 유한한 자원이므로 제로섬 방식으로 나누어야 하고, 따라서 더 많이 갖게 된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더 적게 갖게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부는 그렇지 않다. 산업혁명 이후에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곧 부유한 사람들이 더부유해졌을 때 가난한 사람들도 더 부유해졌음을 의미한다.  - P161

실험참가자나 국민이나 모두 - 더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나 아낌없이 베푸는 도우미, 공정한 복권에 당첨된 운 좋은 사람까지-분배 방법이 공정하다고 느낀다면, 그 결과가 불평등해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저자들은 "현재로서는 아이들이나 성인들이 불평등을 회피한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결론 내린다. 사람들은 국가가 능력을 중시한다고 느끼는 한 경제적 불평등을 받아들인다. 다만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경우에는 분노한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평등의 존재보다는 불평등의 원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더 크게 다가가는 듯 보인다. 정치인들은 복지여왕(welfare queen,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윌슨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년)이 일은 안 하면서 복지 지원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을 공격할 때 썼던용어.-옮긴이), 이민자, 외국인, 은행가, 가끔 소수 민족과 동일시되는 부자 등을 자기 몫보다 더 챙기는 사기꾼이라고 대중을 선동할 때 이 특성을 이용해 먹는다.
- P166

사회가 많은 부를 창출하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절대적 불평등(가장 부유한 사람과 가장 가난한 사람 간의 차이)이 증가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상적인 몫을 나누어 주는 ‘소득 분배청‘이 없는 상황에서는 운이나 능력,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군가는 남들보다 새로운 기회를 더 잘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편중된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상대적 불평등(지니 계수 혹은 소득 점유율로 측정하는 불평등)이 증가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매우 큰 현상이다. 경제학자 사이먼 스미스 쿠즈네츠(Simon Smith Kuznets, 1901~1985년)의 유명한가설에 따르면, 나라가 부유해지면 국민들은 덜 평등해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농사일을 그만두고 보수를 더 많이 주는 일을 찾아 농촌을 떠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농촌에 남아 가난한 채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결국에는 밀물이 차올라 모든 배를 들어 올린다. 더 많은 사람이 현대경제에 휩쓸리면서 불평등은 감소하고 뒤집힌 U자 모양을 그린다. 시간에 따라 뒤집어진 U자 모양 곡선을 그리게 되는 이 불평등 곡선을 쿠즈네츠 곡선(Kuznets curve)이라고 부른다.24우리는 이미 앞 장에서 나라 간 불평등이 쿠즈네츠 곡선을 그린다는징후들을 보았다. 산업혁명 시기에 유럽 국가들은 증기의 힘을 빌려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일찍 보편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위대한 탈출에 성공했다. 디턴의 주장처럼, "더 나은 세계는 차별적인 세계의 조건을 만들고, 탈출은 불평등의 조건을 만든다. 그런 뒤 세계화가 진행되고 부를
창출하는 노하우가 전파되면서 가난한 국가들이 유럽을 따라잡기 시작했고 거대한 수렴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아시아 국가의 GDP가 급부상할 때(그림 8.2), 전 세계 소득 분포의 형태가 달팽이에서 쌍봉낙타로, 그러다 단봉낙타로 바뀔 때(그림 8.3), 극빈 상태로 사는 사람의 비율(그림 8.4)과그 수(그림 8.5)가 급감할 때, 세계의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징후를 확인한 바 있다. - P169

샤이델의 경고는 장구한 역사에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근대는 그가언급한 기사들보다 좀 더 온화한 방법으로 불평등을 감소시켰다. 이미확인한 바와 같이 시장 경제는 우리가 아는 최고의 전국 빈곤 퇴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한 나라 안에서 교환할 것이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청소년, 노인, 환자, 불운한 사람들, 그리고 남부럽잖게 벌어 먹고살기에는 가진 기술과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들을 부양하기에는미흡하다. (달리 말하면, 시장 경제는 평균을 극대화하지만 우리는 분산과 범위도 신경 써야 한다. 나라에서 공감의 범위가 확대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포용할)한수록(그리고 사람들이 자기가 가난해질 것에 대비해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어 할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아 둔 자원 - 정부의 재정-의 일부분을 점점 더 많이 빈곤 퇴치에 할당한다. 그 자금은 어딘가에서 나와야 한다.
법인세나 소비세, 국부 펀드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주로 누진적 소득세에서 나온다. 누진세를 내야 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더 높은 세율로 세금을 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처럼 그 손실액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분배‘가 이루어지지만, 이 명칭은 다소 부적절하다. 실제로는 최상위층의 부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 목표는 최하위층을 끌어올리는 것이지, 최상위층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74

 소득 불평등을 크게 증가시킨 두 가지 힘에는 어떤 형태로든 소비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첫 번째 힘은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소득 면에서 승자와 패자를 양산하지만, 소비 면에서는 거의 모두를 승자로 만든다. 아시아의 공장, 컨테이너선, 효율적인 소매 판매 시스템 덕분에 과거에는 부자들을 위한 사치품이었던 것들이 대중에게 공급된다. (2005년에 경제학자 제이슨 퍼먼(Jason Furman, 1970년~)은 월마트 덕분에 일반적인 미국 가정은 매년 2,300달러를 절약한다고 추정했다.)" 또 다른 힘은 기술 발전이다. 기술은 (8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소득의 가치를 계속해서 변화시킨다. 인플레이션에 맞추어 아무리 크게 조정한다고 해도, 과거의 1달러보다는 오늘날의 1달러로 훨씬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다.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냉장고, 전기, 수세식 변기, 백신, 전화기, 피임 기구, 비행기 탑승권을 살 수 있고,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들도 더 나은 것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환원이 연결해 주던 공중 전화는 무제한 통화가 가능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기술 발전과 세계화가 손을 잡자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가난 혹은 빈곤의 말뜻이 변하게 되었다. 과거에 정형화된 빈곤의 이미지는 누더기를걸친 수척한 빈민이었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은 고용주 못지않게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똑같이 플리스, 스니커즈, 청바지를 입는다. 가난한 사람은 못 가진 자로 불리고는 했다. 2011년에는 빈곤선 아래에 속하는 미국 가정의 95퍼센트 이상이 전기, 수도, 수세식 화장실, 냉장고, 가스레인지, 컬러 텔레비전을 갖고 있었다. - P188

역사적으로 사회 지출은 계속 증가해왔다. 다음 단계는 보편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비슷한 것으로 엑소득세가 있다.)이다. 이 개념은 수십년 동안 떠돈 만큼 이제 안착할 때도 되었다." 사회주의의 향기가 나기는 해도 보편 기본 소득 개념은 정치적 우파로 분류되는 경제학자들에를 들어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년), 정치가들(예를 들어 리처드 닉슨)과 관련 주들(예를 들어 알래스카주)이 옹호해 왔고, 오늘날에는 정치 스펙트럼 전반에 있는 분석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생각이다. 보편 기본 소득을 도입하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재정수지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 교육, 노동, 위험 감수와 관련된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문제가 있다.) 그것이 가져올 이익은 무시할 수가 없다. 기본 소득이 생기면 누더기를 이어 붙인 것 같은숨은 복지 제도가 합리적으로 개선될 수 있고, 노동자가 로봇으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는 지금의 재앙이 풍요의 뿔로마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여신 코피아(Copia)가 지닌 물건.-옮긴이)로 바뀔 것이다. 로봇에게는 주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 넘어갈 것이고, 로봇이 제공해 줄 생산성, 안전성의 증대, 여가의 확대 같은 혜택은 널리 공유되는 한에서 사람들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기본 소득을 시험적으로 도입한 지역에 대한 연구 분석에따르면, 기본 소득이 사람들을 무기력, 무규율 상태에 빠뜨릴 것이라는우려는 필시 과장된 것으로, 시장과 로봇이 넘겨받지 못하는 공공 부문의 일자리는 여전할 테고, 하이테크 자원봉사 (high-tech volunteering)와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회들이 생겨날 것이다." 기본 소득의 실제 효과는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지만, 부수적으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하는 효과,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 P192

불평등은 빈곤과 다르고, 인류의 번영을 좌우하는 기본 요소도 아니다. 전 세계 각국의 행복감을 비교해 볼 때 불평등은 부의 총량에 비해중요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불평등의 증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희가 보편적 빈곤에서 탈출할 때는 더 불평등해지기 마련이며, 새로운부의 원천이 발견될 때마다 불평등의 물결은 다시 인다. 불평등의 축소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것들은 전염병, 대규모 전쟁, 격렬한 혁명, 국가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계몽주의 시대부터 시작된 역사의 장기적인 추세는모든 사람의 부가 증가하는 것이었다. 현대 사회는 막대한 부를 생산하는 것 외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을 향상시키는 일에 그 부를 점점 더많이 할당하고 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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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남은 여기서 마쳐야 하겠어요. 동구는 너무 늦기 전에집에 가야 하고, 실은 제가 오늘 밤에 광주에 내려가야 하거든요.
할머니 생신이라서요. 원래는 밤차를 타고 내일 아침에 닿을까 했는데 지금 시간이 별로 늦지 않았으니까 서두르면 늦은 밤에라도할머니 댁에 가서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내일 저녁에 바로 올라오십니까?"
"아니오. 19일이 할머니 생신이라서 그날 아침에 미역국이라도같이 먹고 올 생각이에요. 학교에는 월요일에 휴가를 내겠다고 말씀드려 놓았어요. 할머니 생신 때문에 휴가를 낸다니 참 유난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키워주셨기 때문에 제겐 아주 각별한 분이세요. 제가 휴가를 내기 어렵다고하면 할머니가 교장 선생님께 전화라도 하실 게 분명해요. 우리 할머니는 그런 분이죠. 오늘도 토요일인데 왜 일찍 내려오지 않느냐고 학교로 네 번이나 전화하셨어요."
"손녀 사랑이 지극하시군요. 그럼 서울에 올라오신 후에 다시 한번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모처럼 만난 자리였는데 참 아쉽네요." - P251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만······ 박영은 선생님은 돌아가신 것 같다. 믿을 만한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다. 그러니까 선생님을 더 이상 기다리지 말아라."
머리 위를 덮고 있는 숲에서 저녁 해가 아까워 온통 귀를 찢어발길 듯이 울고 있던 매미들이 한순간 잠잠해졌다. 귓속의 압력이 갑자기 심해져서 고막이 터질 것 같았고 머리가 아팠다.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오면서 숨이 막혀 나는 입만 뻐끔거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삼촌은 계속 고개를 내젓고 눈을 끔벅거리고 손을 무릎에 두었다 발바닥을 만졌다 얼굴을 쓰다듬었다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는데 가만보니까 손이 얼굴로 갈 때에는 황급히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는 것 같았다. 어리석은 곰처럼 못난 그 모습을바라보고 있으려니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서 나는 바위에서 뛰어내리고는 고함을 질렀다.
"세상에 그런 헛소리가 어디 있어? 박 선생님이 죽긴 왜 죽어?
그런 거짓말이나 하려고 나를 불렀어? 삼촌은 정말 바보야! 세상에서 제일 바보천치 똥개야!!!" - P278

서늘한 손가락이 내 목덜미에서 등골까지 서두름 없이 훑어내려갔다. 장독대로 올라가는 시멘트 계단 모서리에 무언가 어두운 얼룩이 묻어 있었다. 영주의 귓속에서 색깔 어두운 애벌레가 느릿느릿 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애벌레는 생전 처음으로 맡는 밤공기내음이 마음에 드는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귓바퀴의 물렁뼈 위에서 몸을 부풀리며 휴식을 취했다. 내가 바지를 쥐어뜯으며 바라만 보는 동안, 영주는 마지막으로 느릿하게 눈을 한 번 깜박이더니 여전히 하늘의 별들만 골똘히 쳐다보면서 여리게 떨던 손가락의 움직임도 멈추어버렸다. 영주의 귀에서 길고 끈적한 몸을 드러내면서 귓바퀴 계단을 한 칸 한칸 내려온 어두운 애벌레는, 할머니가 일구어놓은 향기로운 검은 흙을 만나자 탐욕스럽게 고개를 처박았다. - P294

나는 창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장님의 부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나섰다. 대문이 닫히면서, 아름다운 정원의 정경이 차츰 좁아지더니 마침내 가느다란 광채의 선이 되었다가, 갑자기 시야에는 녹슨 철문의 모습만 들어왔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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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줄 알아? 삼촌, 그런 일만 가지고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줄 알아? 그게 아니야. 선물을 준 아이들을 편애하는 선생님은 드물지 않으니까. 하지만 오준근 선생님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나를이용해 먹고 있다구. 나는 인질이나 포로처럼 이용당하고 있어. 허혁. 숨이 막힐 것 같아. 하지만 계속 이야기할 수 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무지개의 가장 사랑하는 외동딸같은, 그분을 위해서라면 내가 목숨조차 아깝지 않게 바칠 수 있는 나의 박영은선생님에게 추근댄단 말이야.
왜 나를 이용하냐구? 그것도 몰라? 삼촌은 바보야. 박영은 선생님이, 천사처럼 착한 박영은 선생님이 나를 귀여워하시니까 그런거지. 나의 교육 문제를 상담한다는 핑계가 아니라면 오준근 선생님 같은 사람이 감히 어떻게 박영은 선생님의 곁에나 앉아볼 마음을 먹겠어? 그러니까 나 때문에, 4학년이 되도록 한글도 잘 읽지못하는 바보천치 돌대가리 한동구 때문에 불쌍한 박영은 선생님은찰거머리 같은 오준근 선생님의 희롱을 꾹 참아주시는 거지. 손이참 이쁘십니다? 연애를 해본 일이 있으신가요?
허억허억. 울고 있냐구? 날더러 울고 있냐구? 삼촌은 정말 바보야! 내가 울긴 왜 울어? 땀이 나는 거지. 미칠 것 같아서, 박영은 선생님이 괴로움을 당하는 건 결국 다 나 때문이니까 심장이 터질 것같아서 땀을 흘리는 거지. 땀이 아니라 눈물이라구? 내가 여자애처럼 울고 있는 거라구? 삼촌도 똑같아! 오준근 선생님이랑 똑같이바보천치 멍텅구리야! 삼촌한테 괜히 이야기했어!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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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도 설명이 필요 없어졌다. 엔트로피와 진화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가난은 인류의 초깃값이다. 물질은 저절로 집이나 옷으로 배열되지않고, 생물은 우리의 식량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가진 재주를 다 부린다. 애덤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설명이 필요한 것은 부이다. 하지만 천재지변이나 질병에 가해자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오늘날에도 가난을 논할 때는 가난이 누구 탓인가 하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이 모든 말은 자연계에 악의가 없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진화는 이 세계에 악의가 차고 넘치게 만들어 놓았다. 자연 선택은 다음 세대에도 발현되고자 하는 유전자들의 경쟁이고, 오늘날 우리가보는 유기체들은 싹, 음식,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터에서 적수들을 몰아낸 승자의 후손들이다.  - P52

언어 덕분에 생각은 개인의 머리 안에서 추상화되고 조합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고 그 공동체 안에서 축적될 수가있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년)은 언어의 힘을 다음과같이 비유했다. "내 촛불로 자신의 양초에 불을 붙인 사람은 나를 침침하게 하지 않고서도 불빛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내게서 생각을 받은 사람은 내 생각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도 가르침을 얻는다." 최초의 공유애플리케이션으로서 문자가 발명되자(그리고 이후에 인쇄술이 발달하고 문해력이 확산되며 전자 미디어가 발명되자 언어의 힘은 더욱 세졌다.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네트워크는 인구가 증가하고 사람들이 섞이고 도시 집중화가 진행됨에 따라 계속 확대되었다. 그리고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생존에 필요한 최저선을 돌파하게 되자 더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대화하는 여유를 누리게 되었다. - P55

반계몽주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안이 종교적 신앙이다. 어떤 것을 신앙에 기초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마땅한 이유 없이 그것을 믿는다는 뜻이며, 또한초자연적 존재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이성과 충돌한다. 종교는 휴머니즘과도 자주 충돌한다. 인간의 안녕보다 도덕적 선을 더 강조하면서, 가령 구세주를 인정하거나, 신성한 이야기를 인가하거나, 제의나 터부를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켜 그런 관행을 강요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을 처벌하거나 악마로 몰아세울 때 항상 그 같은 충돌이 일어난다. 종교가 생명보다 영혼에 더 가치를 부여할 때도 휴머니즘과 충돌하는데, 이런 가치 부여는 그 어감처럼 구원적이지는 않다. 내세에 대한 믿음은 건강과 행복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지상에서의 삶은 우리 존재 중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세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임을 의미하고, 순교는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일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종교와 과학의 불화로 말하자면, 갈릴레오 재판과 스콥스 원숭이 재판에서부터 줄기세포 연구와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런 불화를 대표하는 전설과 사건이 역사에 즐비하다. - P61

두 번째 반계몽주의 이념은, 사람은 어떤 초유기체(superorganism) — 씨족, 부족, 민족, 종교, 인종, 계급, 국가의 소모품이며 따라서 지고선은 그런 집합체의 영광이지, 그 구성 세포인 인간의 안녕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민족주의가 명백한 예이다. 여기서 초유기체는 민족 국가, 즉 정부를 가진 민족 집단이다. - P62

좌파의 또 다른 경향은 인간의 이익을 또 다른 초월적 존재인 생태계에 종속시키는 운동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낭만적인 녹색 운동(greenmovement)은 인간의 에너지 포획을 엔트로피에 저항하고 인간의 번영을 증진하는 방법으로 보는 대신 자연에 대한 극악한 범죄라고 보고, 자연이 결국에는 자원전쟁, 오염된 공기와 물, 문명을 파멸시키는 기후 변화의 형태로 무섭게 보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은 과학 기술과 경제 성장을 뉘우치고 중단하는 것이며 더 소박하고 자연적인 생활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데 있다고 믿는다.위협들을 풀어놓은 것은 그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비록 기술 문명이 어렵사리 파멸을 피한다고 해도, 세계는 폭력과 부정이 판치는 디스토피아 - 테러리즘, 드론 무기, 착취 공장, 폭력단, 밀매, 난민, 불평등, 사이버 폭력, 성폭행, 증오 범죄가 난무하는 멋진 신세계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걱정한다.
다른 성격의 쇠퇴주의는 정반대의 문제로 괴로워한다. 근대성이 삶을 힘들게 하고 위험에 빠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너무 즐겁고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비판자들에 따르면 건강, 평화, 부는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부르주아적 유희에불과하다. 기술 자본주의가 공급하는 이 속물적인 쾌락에 젖을 때 사람들은 결국 원자화되고, 체제 순응적이고, 소비주의와 물질주의가 가득하며, 부조리하고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영혼을 좀먹는 황무지로 내몰리게 된다. 이 부조리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소외, 불안, 아노미, 무기력, 부정직, 권태, 위기감, 혐오감으로 고생하고, "고도(Godot)를 기다리면서 황무지에서 발가벗은 채 점심을 먹고 있는 투명 인간들이 된다.   - P64

남은 반계몽주의 이념 두 가지는 좌파와 우파의 경계를 넘나든다.
거의 200년 동안 다양한 부류의 작가들이 현대 문명은 진보하기는커녕 꾸준히 퇴보해서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고 선언해 왔다. 『서양사의 쇠퇴 개념(The Idea of Decline in Western History)』에서 역사학자 아서 허먼(ArthurHerman, 1956년~)은 지난 2세기 동안 인종, 문화, 정치, 혹은 생태계의 악화를 경고해 온 예언자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정말 세계는 오래전부터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어떤 쇠퇴주의는 우리가 프로메테우스처럼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과학 기술에 손을 댔다고 한탄한다.‘ 우리는 신들에게서 불을 훔쳤을 때부터 스스로 멸망할 운명에 빠지고 말았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핵무기, 나노 기술, 사이버 테러, 바이오 테러, 인공 지능 등 세계를 노리는 실존적 - P64

그렇다. 세계가 손수레에 실려 지옥으로 굴러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유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생각이 지적으로 바뀔 때는 그렇게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장밋빛 안경을 끼고 본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발견했다. 자신은 이혼, 해고, 사고, 병, 혹은 범죄의 희생양이 될확률이 일반 사람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서그들의 사회로 질문이 바뀌면 폴리애나에서 이요(Eeyore, 「위니 더 푸(Winniethe Pooh)」에 나오는 우울하고 비관적인 당나귀. 옮긴이)로 돌변한다.
여론 연구자들은 이것을 낙관주의 간극(optimism gap)이라고 부른다.
20여 년 동안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지만, 여론 조사원이 유럽인들에게 내년에 그들 자신의 경제적 상황이 좋아질지 나빠질지를 물었을 때 절반 이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했지만, 그들 나라의 경제적 상황에 관해 물었을 때는 절반 이상이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영국인대다수가 이민, 10대 임신, 쓰레기, 실업, 범죄, 반달리즘, 마약이 국가적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사는 지역의 문제라고 생각하는사람은 거의 없다. - P73

저널리즘의 습성과 인지 편향이 서로 맞물려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리가 세계의 상태를 믿을 만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은 숫자에 있다. 폭력에 희생된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의 수를 기준으로 몇 퍼센트나 되는가? 아픈 사람이 얼마나 되고, 굶주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가난한 사람, 문맹자,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 수는 늘어나고 있는가, 줄어들고 있는가? 정량적 사고방식은 일견 촌스러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실은 도덕적이고 개화된 사고 방식이다. 우리와 가장 가깝거나 가장 유명한 사람들에게 특권을 주지 않고, 모든 인간의 생명을 동등한 가치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고통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고, 그 후에는 어떤 수단이 고통을 줄이는데 가장 유용할지를 알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 P77

글쎄, 폭력의 수치가 항상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면 순환된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낮다고 해도 다시 올라가는 것은 시간 문제 아닐까?
아니다. 시간에 따른 변화는 통계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변동이 있기는 해도 순환적이지 않으며, 양극단 사이를 오가는 추처럼 왕복운동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어느 때나 역전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역전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뜻은 아니다. (주식 투자에서, 사실은 예측할수 없는 변동인데도 많은 투자자가 ‘경기 순환으로 착각하고 큰 손해를 본다.) 진보는 긍정적으로 변해 가는 추세 속에서 그런 역전이 덜 빈번해지거나, 덜 극심해지거나,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멈출 때 이루어진다.
정말 폭력이 감소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뉴스에서 학교 총격사건(또는 폭탄 테러, 포격, 축구장 난동, 술집의 칼부림 사건)을 보지 못했는가?
감소는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y>x"라는 진술은 "y=0."이라는 진술과 다르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크게 감소할 수는 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폭력 수위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폭력이 감소해 왔는가 하는 문제와 완전히 무관하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현재의 폭력 수준을 과거의 폭력 수준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폭력 수준을 볼 때마다 오늘 아침의 뉴스 제목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지금에 비해 그 정도가 아주 심했음을 알게 된다. - P80

물론 비관주의에도 밝은 면이 있다. 공감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갈수록 무감각해지는 시대에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는 불행에 관심을 갖게된다. 요즘 우리는 시리아 내전을 인도주의적 비극으로 인정한다. 이전시대의 전쟁들, 즉 중국의 국공 내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할, 한국 전쟁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당했지만 그런 비극으로 기억되지는 않았다. 내가 클 때 괴롭힘은 남자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졌다. 2011년에 버락 오바마가 했듯이, 언젠가 미국 대통령이 연설 중에 그 폐해를 언급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인류를 더 염려함에 따라, 우리 주위의 불행들을 우리의 기준이 상승한 징표가 아니라 세계가 그만큼 몰락한 징표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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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성공은 버나드의 머리를 핑핑 돌게 만들었고, 성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모든 좋은 마취제가 다 그렇듯이) 그때까지는 꽤나 못마땅하다고 느꼈던 세계와 완전히 타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를 중요하다고 인정해주는 한 세상의 모든 질서는 한없이 좋기만 했다. 하지만 성공으로 인해 타협이 이루어졌음에도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특권을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비판한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드높였으며 그로 하여금 훨씬 큰 인물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한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와 동시에 성공의 기쁨을 누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모든 여자를 갖게 되었다는 상태 역시 진심으로 기뻤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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