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뭐랄까, 사이비 과학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과학의기준은 명확하니까요. 사실이나 검증이라는 기준이 있죠. 그렇지만종교에는 사이비가 없습니다. ‘사이비종교‘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종교적 신념체계는 비사실적 증거, 막말로 한낮 루머로부터도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기독교 역시 예수가 부활했다는 루머 위에 서 있는 종교이죠. 부활의 사실성 여부 이전에 부활 신앙의 출발은 루머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대."이거든요. 그 사실성은 상관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복되다."는 식의 말을 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기반 위에 있든 그 신념 형태가 현실 생활 속에서 작동하고 있고 수많은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해결책 아니면어떤 길을 제시해 준 것은 분명하거든요. 그 와중에 무수한 폭력도만들어졌고 잘못도 있었지만, 종교 없이는 인류사를 이야기할 수 없어요. 저는 그러한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그의미를 되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 - P575

사회자ㅡ 이제 시간도 많이 늦었고, 논의를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과학과 종교 문제에 관해 앞으로 어떤 연구나 논의들이 있어야 할지.
혹은 선생님들께서 어떤 연구나 논의를 하실지 말씀 듣는 것으로마무리를 하면 어떨까요?
신재식ㅡ 당분간 인지 과학 쪽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고요. 또한 현대과학의 질문과 도전에 대한 신학적 응답의 문제를 고민하겠지요. 기화가 되면 신학 사상사를 진화라는 관점에서 검토해 보고 싶고요.
김윤성ㅡ 저는 과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제 관심은 역사적 비교입니다. 근대 이후 우리 사회 전반과 각종교들에서 ‘과학‘과 ‘종교‘를 개념화하고 이들을 연관 짓는 방식이어떻게 변해왔는지 하는 문제를 파고들까 합니다.
장대익ㅡ 저는 당분간 밈 이론에 천착하려고 해요. 종교 뿐만 아니라 과학에서 밈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전달되는지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탐구하려 합니다.
사회자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밤늦게까지 말씀 나누시느라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P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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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병세가 아주 깊었던 어느 날, 그가 침대에 누워 케일리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케일리가 가서 아버지의 입에 귀를 갖다댔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는 늘 너를 가장 예뻐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덧붙였다. "네 엄마는 브렌다를 가장 예뻐하지."
그의 입가에 하얗고 끈끈한 침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사랑해요, 아빠." 케일리가 말했다. 그러고는 티슈를 집어 그의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아주었고, 아버지는 따뜻한 눈빛으로그녀를 쳐다보았다.
케일리는 종종 그 순간을 아버지가 당신이 가장 예뻐하는 아이가 그녀라고 말해준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늘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지금은 시내치과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저녁에도 케일리에게 할말이 거의 없는 듯했고, 케일리는 종종 그것이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이따금 케일리는 실제로 아픔이 작은 파도처럼 가슴에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음의상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상처를 말하는 거라고.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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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되면서 기독교 내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각하기 시작한 게 바로 리더십 문제입니다. 이전까지 권력을 독점하던 목사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죠. 대신 평신도 리더십이 부상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조직화된 가톨릭 교회에서 ‘만인 사제설‘을 주장하고 갈라져 나온 개신교에서 리더십은 태생부터 분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사회의 다원화가 교회에도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에 통일된 조직 체계를 이룰 수가 없는 거죠. 대신 이런 현실에 적응한 조직들, 예를 들어 소그룹 조직들이 만들어져 평신도리더십을 만들어 내고 있죠. 이제 목사나 목회자의 역할은 권력을쥐고 교회 조직을 흔드는 게 아니라 이러한 소그룹 조직들을 서로 묶고,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과학 기술이 이 변화의 촉매로 작용했죠.
- P515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초대 교회에서는 신을 사물이나 존재로,즉 현실적인 물체나 인격체로 표현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했죠. 이것은 유대교에서부터 내려온 히브리 성경적 전통을 따른 거죠. 성경에서는 신을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하죠. 예를 들어 주기도문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 아버지"하고 시작하잖아요. 주로 ‘아버지, 반석, 깃발, 왕, 목자‘ 같은 사물들로 표현되었죠. 그런데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의 신 담론을 흡수하고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전지, 전능, 완벽, 완전, 무소부재(無所不在) 같은 속성들을 가지게 되죠. 사실은 이 개념들은 그리스 철학에서 신의 속성을 가리키는 거였죠. 기독교의 초기 역사에서는 이두 속성이 경쟁을 합니다.
그런데 수백 년간 경쟁하는 과정에서 결국 그리스적 속성을 띤 신담론이 승리하게 되죠.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인들이 기도하는 것을보면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하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는 식으로 기도를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파지요. 저는 이것이 개인으로서의 기독교가 조직으로서의 기독교로 변화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재의 변화를 본다면, 이 역시 다시 바뀌지 않을까싶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아버지"로 되돌아가지는 못하겠죠. 이미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이후이니까요. - P516

그런데 사실 이런 주술적 요소가 전혀 없는 종교란 세상에 거의없습니다. 근대적 종교이고 미신을 추방했다고 자처하는 개신교에서조차도 결코 사라진 적이 없지요. 저는 종교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문제가 중요하고, 이 주술적 요소가 종교의 수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지금 같은 제도 종교들이 없어진다고 해도, 주술적인 사고나 실천은 분명히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내러티브, 실천, 제도에 더해, 주술도 종교의 미래를 지속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추가해야겠네요. 아무튼 종교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명확하게 답을 할 수는 없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 P524

종교는 어떤 신념체계, 그리고 인간이 본성적으로 추구하는 소속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결합시켜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에서부터관혼상제까지 수많은 서비스를 완벽하게 제공해 왔습니다. 물론 사람들도 이에 납득하고 종교의 그 막강한 영향력을 받아들여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세요. 신념 체계와 조직이 분리되고 있지 않습니까? 과학이 발전하면서 기독교나 불교의 경전이나 교리를 진지하게믿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하는 설교를 싫어하는 기독교인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도 종교가 가지고 있는 조직 또는 공동체적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지 않고붙어 있습니다. 자신을 받아 줄 공동체를 갈망하는 거죠.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신념과 관계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종교 밖에서도 생겨나고 있지 않습니까?

김윤성 그렇죠. 신념 구조가 없는 조직에는 붙어 있기도 힘들고, 그조직 자체도 오래 살아남기 힘들죠.

장대의 그런 의미에서 신과 인간, 사제와 평신도 같은 위계적인 조직과 신념 체계를 가진 기존의 제도 종교를 대신하는 신념과 조직을가진 동호회 같은 모임이 종교를 대체하는 상황이 곧 오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 모임의 행태와 신념 구조에 종교라는 이름을 붙일수 있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요. - P526

DNA 보세요. 그 역사가 수십억 년이잖아요. 인간의 언어와 심지어는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손에 넣은 종교라는 복제자는 그보다 수명이 더 길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지구 표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유기 분자에 불과한 DNA에 비해 디지털화된 밈들은 전파를 타고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복제자로서의 성능만 본다면 종교 밈의 수명이 더 길지도 모르죠.
장대익ㅡ 현재 종교가 가진 최고의 유용성 또는 기능은 뭘까요? 일종의 공동체성이 그 답이 될까요?
신재식ㅡ 공동체성이지 싶어요.
김윤성ㅡ 그것은 한두 차원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인식론적 차원도 지속될 겁니다.
신재식 그렇지만 인식론적 차원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할믿음의 내용을 가르쳐서 전도하는 게 아니거든요. 일단, 교회에나오게 되면 그때부터 믿음의 내용을 배우는 겁니다. 신념 체계가무엇인지 신이 무엇인지는 일단 괄호 속에 넣어 둘 수 있는 이차적인문제입니다. - P541

엘리아데가 그러지 않았나요? 종교의 기원은 직립하게 된 인간이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라고요.
김윤성ㅡ 예. 엘리아데가 그랬죠. 그런데 하늘을 우러러보고 숭배한게 종교의 기원이라는 식의 얘기는 아니고요, 직립한 덕분에 위아래라는 축이 생기고 이를 중심으로 전후좌우라는 방향이 생겨 이로부터 성스러운 중심과속된 주변을 구분하는 종교적 공간 관념이 생겨났다는 얘깁니다. 엘리아데는 직립의 결과 이런 종교적 공간 관념이생겨난 것이 인간을 다른 영장류와 본질적으로 다르게 만들어주었다고 봅니다. 상상력에 근거한 것이긴 해도, 왜 그럴듯한 해석이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영장류 사이의 연속성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구성하고 있는 특질들 중에는 다른 영장류와 단절된 것도 있지만 연속된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종교를 인간만 갖고 있는 것인지 하는 문제를 살펴려면 종교나 종교성이 진화에 있어서 단절의 영역에 속하는지 연속의 영역에 속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고고학에서는 매장풍습의 유물이나 그 흔적의 유무로 종교성의 대두를 판단하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보다 먼저 출현해서 한동안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의 유적에도 죽은 사람을 매장하고 꽃 같은 걸 바친 흔적이 남아 있고, 따라서 많은 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에게도 종교성이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죽음에 대한 태도를 종교성의 기준으로 삼는 거지요.
저도 아직은 종교성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만 지닌 특정한 정신적 능력과 관련된 현생 인류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547

장대익ㅡ 하지만 에드워드 윌슨이 사회 생물학에서 비유한 대로, 만약 외계인이 있어 지구로 내려와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관찰한다면인간의 종교적 의례와 동물의 강박 행동을 구별할 수 없을지도 모르죠. 아마도 외계인은 그런 행동들이 같은 기능을 한다고 판단할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물의 반복 행동이나 강박 행동을 가리키는용어와 종교적 의례를 가리키는 용어가 같다(ritual)는 것은 나름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 P548

김윤성ㅡ 지성을 가졌다면 당연히 종교도 갖고 있겠죠. 물론 우리가지금 지구상에서 보고 있는 종교와는 많이 다르겠지만요.
장대익 ㅡ저는 외계인에 대해서 그렇게 단언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함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교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종교성자체가 없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특히 종교성이 인지 능력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진화 과정에 따라서는 종교성 같은 부산물이 생기지 않고도 지성이 진화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지성의 진화 시나리오 중 한 가지만 알고 있기 때문에 확언하기는 힘들죠. - P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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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6월의 어느 토요일 이른 오후, 잭 케니슨은 선글라스를 쓰고스포츠카에 올라탄 뒤 차 지붕을 열고 어깨와 불룩하게 나온 배위로 안전벨트를 했다. 위스키를 사러 가려는 것이었는데, 이곳메인주 크로스비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올리브 키터리지와 마주치느니 차라리 포틀랜드ㅡ거의 한 시간 거리였다ㅡ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면 식료품점에서 두 번 마주친 다른 여자도 피할수 있었다. 그 여자가 날씨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위스키를들고 서 있었다. 날씨 이야기라니. 그 여자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도 남편과 사별했다. - P9

갑자기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
픽업트럭에 탄 남자는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다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머리가 뒤로 젖혀지는 게 보였고, 심지어 입을벌려 웃을 때 치아까지 다 보였다. 그리고 트럭에 시동을 걸고차를 후진시킬 때도 여전히 통화중이었다. 올리브는 눈앞에 펼쳐진 만을 혼자서 바라보고 있었다. 햇살은 물위로 영롱한 빛을튕겨냈고 작은 섬의 나무들은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돌멩이는젖어 있었고 조수는 썰물 때였다. 자신이 음식을 씹는 작은 소리가 들렸고, 깊은 외로움이 그녀를 공격했다. - P41

사실 올리브는 나이를 먹으면서 왜 남편에 대한 마음이 굳어버렸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그것은 그녀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었다. 긴 결혼생활 동안 그들 사이에 생겨난 긴 돌담-그들 사이를 갈라놓았지만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곳에 이끼로 덮인 따뜻하고 움푹 팬 자리가 있어서, 때로 느닷없는 이해의 웃음이 터질 때면 두 사람 사이의 그 자리에 햇빛이 일렁이기도 했다 이더욱 높아지고 단단해져서 작은 구멍에 꽃이 피기는커녕 담을따라 얼음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달리 말하면 그들 사이에뭔가가 생겼고,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어떤 날에는여기는 돌덩이가 더해진 자리, 저기는 돌멩이 한 무더기 (크리스토퍼의 사춘기, 오래전 그녀와 같은 학교 동료 교사였던 짐 오케이시에 대한 감정, 시도라는 여자와 헨리가 벌인 어이없는 애정행각, 죽음의 협박 속에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면서 헨리와 함께 견딘 범죄의 공포, 크리스토퍼가 이혼하고 타운을 떠난 것)가 보태진 자리라고 짚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노년으로 향하면서 그들 사이에 왜 그렇게 높고 끔찍한 담이 세워졌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쪼그라들수록 헨리의 심장은 더욱 굶주렸다. - P50

그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가 참 우렁찼다. 그것이 올리브의 신체감각을 자극했다. 전율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공포를 느꼈다. 몸이 기름에 흠뻑 적셔진 상태에서 누가 성냥을켜서 갖다댄 것처럼. 그의 웃음이 일으킨 공포, 전율, 그 느낌은악몽 같았지만, 한편으로 그녀 자신이 쑤셔박혀 있던 거대한 캔의 뚜껑이 방금 열린 것 같았다.
"진짜예요." 올리브가 말했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돌아누웠다. "얼른 저리 가요, 잭."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눈을 꼭 감았다. 제발,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알지 못했다. 제발, 그녀가 다시 생각했다. 제발.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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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폭력화된 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중국 경찰(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공안이라고 하죠.)이나 군인은 단 한 사람도 라싸 중심부에 없었어요. 시위 초기에 경찰들은 사라졌지요. 경찰이 나타난 것은 시가지가 화염으로 휩싸이고, 3시간 이상이 지나 방화와 폭력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서야 나타났습니다. 경찰이 나타나자마자 시위대는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나타난 것은 거의 저녁이 다 되었을 때였습니다. 적어도 그날 낮 라싸 시내에서 시위대와 군경의 공식 충돌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니 마음이 참 찹찹해지더군요. 티베트 사람들이 제대로낚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티베트 시위대의 공격이 관공서 같은 권력 기구나 방송국 같은 선전 기구를 향하지 않고, 한족과 이슬람교도의 상점, 슈퍼마켓, 은행에 가해졌으니까요. 시위의 본질이 희석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역사적 가해자인 한족이 피해자가 되고,
역사적 피해자인 티베트 사람들이 가해자가 된 것이지요. 수많은 한을 안고 그 오랜 시간을 견뎌 온 티베트 사람들이 겨우 서너 시간의 사건으로 단순 방화 폭도로 전락해 버린 것이지요.
- P454

김윤성 예나 지금이나 종교와 폭력 문제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종교에서 좀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폭력이 꼭 이런 유일신교들에만 국한된 건 아닙니다. 불교라고 해서 폭력과 본질적으로 거리가 먼 것은 아니죠. 근세 일본에서는 불교가 신토와 손잡고 바쿠후 정권의 천주교 탄압과 학살에 앞장섰습니다. 또 20년 넘게지속되고 있는 스리랑카 내전에서도 불교가 핵심에 있죠. 불교도인다수 민족 싱할라 족이 불국토를 건설하겠다는 일념 아래 힌두교도인 소수 민족 타밀 족을 차별하자, 타밀 족이 이에 반발해 종교의 자유와 민족의 독립을 요구해 왔고, 그 대립 과정에서 상호 간에 엄청난 학살이 벌어진 거죠. 이런 사례들을 보면 불교를 비폭력의 종교로 여기는 생각은 단지 만들어진 통념에 불과해 보입니다. 아무리 평화를 말하는 종교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얘기죠. - P457

해외 선교에서 가장 큰 이득을 누가 보느냐, 제가 보기에 한국 교회 상황에서는 개별 교회라고 생각해요. 개별 교회가 이득을 가장많이 보는 거죠. 피선교지 입장에서는 어느 누가 오나 관계없어요.
어느 교단이나, 어느 교회나 관계없죠. 근데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에서는 한 사람을 보냄으로써 그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가 더욱더 분명해지고, 교회 내의 통합성을 엄청 높일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교인들은 자존감과 자긍심을 높이고 긍정적 동기를 부여하는 결과를가져오죠. 우리 교회는 선교사를 파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그 교회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이것이 교인들을 고무시키는 거죠. 이것은 선교 단체의 경우에는 더 심해집니다. 선교 단체는그것이 존재 목적이니까요. - P466

장대익 과학 공동체들이 종교화되었다구요?
김윤성 그러니까 그만큼 종교라는 개념이 워낙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는 겁니다. 벨라가 말하는 시민 종교는 과거의 종교들이 사회를통합하는 기능을 했던 것처럼 성조기 같은, 어찌 보면 종교와 무관하게 세속적으로만 보이는 상징물들이 종교적 상징 못지않은 굉장한 응집력을 발휘하고, 그 힘을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분석하는 개념이지. 꼭 종교를 부정적 측면에서 보는 가치 평가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 통합적인 기능을 하는 종교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평가를 하고 있는 거죠.
장대익 물론 그 안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사회 통합적인 기능을 하는 거겠죠. 하지만 그 바깥, 그러니까 그 종교와는 다른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 통합이 아닌 거 아닐까요.
김윤성 그렇죠.
장대익 그러니까 그게 문제 아닌가요?
김윤성 그렇죠. 그러니까 빌라처럼 종교의 사회 통합 기능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완전 반대편에 사회적 갈등의 측면에 주목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는 거죠. 사회 통합 이론이 다분히 보수적이라면,
사회 갈등 이론은 진보적이죠.
장대익 그렇죠.
김윤성 어쨌든 종교는 강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억압 장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피지배자들,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킬 때 기대는 언덕이기도 했습니다.  - P484

장대익 잠깐만요.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리해 보죠. 그동안 종교라는 밈의 외연이 넓어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해 왔는데, 이제는 그밈 자체의 미래가 불투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에 종교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밈은 살아남아 진화하게 될 것이고, 기존의 종교가 했었던 구체적인 역할들을 이제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밈이 다른 방향으로 혹은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계속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밈이 만드는 현상에 더 이상 ‘종교‘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게 될 것이고, 종교에 대한 논의도 전혀 새로운 지평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밈이 해 온 역할, 그 밈이 만들어 온 현상들은 계속되고 반복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P494

기독교 같은 종교는 서양에서 생성, 성장, 쇠퇴 과정을 모두 거쳐왔어요. 수명이 거의 다한 거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잖아요. 이경우 우리는 서구 기독교라는 종교의 수명을 질 수가 있습니다. 물론서구라는 지역에 한해서 말한다면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기독교는 결코 소멸하지 않았어요.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대륙을 넘어 다른 곳으로 넓게 퍼져서 수명을 더 길게 이어 가고 있죠. 특히 한국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토착 문화와 갈등하거나뒤섞이면서 변형된 형태로 계속 번성하고 있어요. 이런 예는 신종교에서는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주의 죽음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새로운 전도지, 새로운 신도, 새로운 제도, 새로운 해석을 덧붙여 가면서 계속 살아남죠. 만약 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그신종교는 집단이나 지역의 폐쇄성을 넘어 복제자의 풀(pool)을 확대하는 데 성공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장대익 그렇죠.
김윤성 전 세계가 빠르게 근대화, 세속화, 나아가 현대화, 탈현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중세성 내지는 전근대성안에서 살아 가고 있는 사회들도 많죠. 이런 식으로 사회의 변화 속도나 양상은 균일하지가 않지요. 종교는 그런 틈을 파고 들어가 살아남을 겁니다. - P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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