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폭력화된 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중국 경찰(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공안이라고 하죠.)이나 군인은 단 한 사람도 라싸 중심부에 없었어요. 시위 초기에 경찰들은 사라졌지요. 경찰이 나타난 것은 시가지가 화염으로 휩싸이고, 3시간 이상이 지나 방화와 폭력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서야 나타났습니다. 경찰이 나타나자마자 시위대는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나타난 것은 거의 저녁이 다 되었을 때였습니다. 적어도 그날 낮 라싸 시내에서 시위대와 군경의 공식 충돌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니 마음이 참 찹찹해지더군요. 티베트 사람들이 제대로낚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티베트 시위대의 공격이 관공서 같은 권력 기구나 방송국 같은 선전 기구를 향하지 않고, 한족과 이슬람교도의 상점, 슈퍼마켓, 은행에 가해졌으니까요. 시위의 본질이 희석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역사적 가해자인 한족이 피해자가 되고, 역사적 피해자인 티베트 사람들이 가해자가 된 것이지요. 수많은 한을 안고 그 오랜 시간을 견뎌 온 티베트 사람들이 겨우 서너 시간의 사건으로 단순 방화 폭도로 전락해 버린 것이지요. - P454
김윤성 예나 지금이나 종교와 폭력 문제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종교에서 좀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폭력이 꼭 이런 유일신교들에만 국한된 건 아닙니다. 불교라고 해서 폭력과 본질적으로 거리가 먼 것은 아니죠. 근세 일본에서는 불교가 신토와 손잡고 바쿠후 정권의 천주교 탄압과 학살에 앞장섰습니다. 또 20년 넘게지속되고 있는 스리랑카 내전에서도 불교가 핵심에 있죠. 불교도인다수 민족 싱할라 족이 불국토를 건설하겠다는 일념 아래 힌두교도인 소수 민족 타밀 족을 차별하자, 타밀 족이 이에 반발해 종교의 자유와 민족의 독립을 요구해 왔고, 그 대립 과정에서 상호 간에 엄청난 학살이 벌어진 거죠. 이런 사례들을 보면 불교를 비폭력의 종교로 여기는 생각은 단지 만들어진 통념에 불과해 보입니다. 아무리 평화를 말하는 종교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얘기죠. - P457
해외 선교에서 가장 큰 이득을 누가 보느냐, 제가 보기에 한국 교회 상황에서는 개별 교회라고 생각해요. 개별 교회가 이득을 가장많이 보는 거죠. 피선교지 입장에서는 어느 누가 오나 관계없어요. 어느 교단이나, 어느 교회나 관계없죠. 근데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에서는 한 사람을 보냄으로써 그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가 더욱더 분명해지고, 교회 내의 통합성을 엄청 높일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교인들은 자존감과 자긍심을 높이고 긍정적 동기를 부여하는 결과를가져오죠. 우리 교회는 선교사를 파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그 교회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이것이 교인들을 고무시키는 거죠. 이것은 선교 단체의 경우에는 더 심해집니다. 선교 단체는그것이 존재 목적이니까요. - P466
장대익 과학 공동체들이 종교화되었다구요? 김윤성 그러니까 그만큼 종교라는 개념이 워낙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는 겁니다. 벨라가 말하는 시민 종교는 과거의 종교들이 사회를통합하는 기능을 했던 것처럼 성조기 같은, 어찌 보면 종교와 무관하게 세속적으로만 보이는 상징물들이 종교적 상징 못지않은 굉장한 응집력을 발휘하고, 그 힘을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분석하는 개념이지. 꼭 종교를 부정적 측면에서 보는 가치 평가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 통합적인 기능을 하는 종교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평가를 하고 있는 거죠. 장대익 물론 그 안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사회 통합적인 기능을 하는 거겠죠. 하지만 그 바깥, 그러니까 그 종교와는 다른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 통합이 아닌 거 아닐까요. 김윤성 그렇죠. 장대익 그러니까 그게 문제 아닌가요? 김윤성 그렇죠. 그러니까 빌라처럼 종교의 사회 통합 기능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완전 반대편에 사회적 갈등의 측면에 주목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는 거죠. 사회 통합 이론이 다분히 보수적이라면, 사회 갈등 이론은 진보적이죠. 장대익 그렇죠. 김윤성 어쨌든 종교는 강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억압 장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피지배자들,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킬 때 기대는 언덕이기도 했습니다. - P484
장대익 잠깐만요.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리해 보죠. 그동안 종교라는 밈의 외연이 넓어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해 왔는데, 이제는 그밈 자체의 미래가 불투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에 종교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밈은 살아남아 진화하게 될 것이고, 기존의 종교가 했었던 구체적인 역할들을 이제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밈이 다른 방향으로 혹은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계속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밈이 만드는 현상에 더 이상 ‘종교‘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게 될 것이고, 종교에 대한 논의도 전혀 새로운 지평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밈이 해 온 역할, 그 밈이 만들어 온 현상들은 계속되고 반복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P494
기독교 같은 종교는 서양에서 생성, 성장, 쇠퇴 과정을 모두 거쳐왔어요. 수명이 거의 다한 거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잖아요. 이경우 우리는 서구 기독교라는 종교의 수명을 질 수가 있습니다. 물론서구라는 지역에 한해서 말한다면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기독교는 결코 소멸하지 않았어요.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대륙을 넘어 다른 곳으로 넓게 퍼져서 수명을 더 길게 이어 가고 있죠. 특히 한국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토착 문화와 갈등하거나뒤섞이면서 변형된 형태로 계속 번성하고 있어요. 이런 예는 신종교에서는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주의 죽음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새로운 전도지, 새로운 신도, 새로운 제도, 새로운 해석을 덧붙여 가면서 계속 살아남죠. 만약 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그신종교는 집단이나 지역의 폐쇄성을 넘어 복제자의 풀(pool)을 확대하는 데 성공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장대익 그렇죠. 김윤성 전 세계가 빠르게 근대화, 세속화, 나아가 현대화, 탈현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중세성 내지는 전근대성안에서 살아 가고 있는 사회들도 많죠. 이런 식으로 사회의 변화 속도나 양상은 균일하지가 않지요. 종교는 그런 틈을 파고 들어가 살아남을 겁니다. - P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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