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업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 저는 오늘 날짜로 법원의 허락을 받아 제 이름을 미스 셜리 마멜스타인에서 미즈 이본 마멜로 바꾸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제 막 시작된 저의 새로운 삶 vita nuova에 부디 많은 행운을 빌어 주세요.
<하권에 계속>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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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소설이 대단한 현실 감각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위 친구들이 토니라고 부르지만 그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안토니아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우리 또래의 감정과 감수성을 지닌 생기발랄한 소녀였으며, 그녀가 여름 동안 같이 지내게된 친척들은 내 가족만큼이나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가깝게 와 닿는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경험이어서 책을 반납하며 나는 사서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모두가 실제로 일어난 얘긴가요?" 사서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럼, 일어났었고말고. 그런데 작가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이야. 물론 네 마음속에서도 일어난 거지. 그게 바로 소설이란다. 서로의 꿈을 교환하는 것......." - P178

타임스 스퀘어가 있고 또 이 도시의 유명한 의류 산업 구역의 북단을 형성하고 있는 남쪽으로 향했다. 얼마 후 지하철에서 나와 7번가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아버지와비슷한 연세의 노인들이 의류를 담은 수레를 이리저리 - 행인들과 부딪히고, 차량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 운반하는것을 보았다. 얼마나 불안정한 삶인가. 나는 인파 한가운데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식의 삶에 묻혀 버릴 순 없어, 책의 세계, 사상의 세계가 있잖아. 난 싸워서라도 그 세계로 가고 말테야. - P181

주다 삼촌에겐 그 말이 또 다른 차원의 의미로 와 닿았던모양이었다. "이 세상에는 네 돈으로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쉽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단다. 충고가 돈 드는 일은아니니까. 그렇지만 네게 뭘 해달라고 하면서 <그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좀 다른 얘기란다." - P194

그는 특히 당시 유행하던 전쟁 소설들을 경멸하였다. 「이젠 더 이상, 가령 전형적인 전쟁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혹인 사병 하나, 브루클린 출신 사병 하나, 예민한 성격의 사병하나, 그리고 의지가 박약한 소위와 비정한 성격의 중사 등으로 구성된 한 소대가 보 제스트라는 요새를 죽기 살기로공격한다는 식의 이야기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외인부대라는 것도 이젠 존재하지 않잖아요?」그러면 어떤 식의 이야기가 필요합니까?」뉴저지에 있는대학에서 왔다는 한 젊은 교수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대답을 하였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에 다음의 여섯 가지 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수없이 난도질을 당하는 그런 인물들을 다룬 소설입니다. 첫째는 가령 고향인 미네소타로 돌아가는 죽은 병사의 관 위에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는 가톨릭 군목의 기도를듣는 일. 둘째는 정글에 있는 적의 진지로 공격을 떠나는 대부분이 흑인 사병들로 구성된 부대원들에게 남부 출신의 한대령이 훈시를 하는 동안 차려 자세로 듣고 서 있는 일. 셋째는 미국 병사를 저격했다고 해서 열한 살짜리 동양인 소년을 나무에서 끌어내려 쏘아 죽이는 일. 넷째는 공산군 편을 드는 농부들을 굶겨 죽이려는 방편으로 논 위에 휘발유를 뿌려 불지르는 일. 다섯째는 공군기들이 한 마을에 네이팜탄을 퍼붓는 동안 그 마을 둘레에서 포진하고 있다가 도망치는 주민들에게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구 총알세례를 퍼붓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밤에 군 막사에서 고국 고향에 있는 친지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 소설에선 이 모든 유형의 인물들을1968년에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나무 위의 소년, 대령, 불길을 피해 도망가는 늙은 아낙네, 네이팜탄을 떨어뜨리는 젊은 조종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화자로 해서 말입니다.」 - P216

편집자로서 나는 루카스 요더 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즐거우면서도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동시에 나는 베며 그의 두 번째 소설 「농장』을 세련되게 마무리하기 시작하노 래트너와 그의 베트남 전쟁 원고를 놓고 씨름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일은 정말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독일인 요더 씨는 인내심이 강하고 꾸준히 작업을 하는 작가로, 일단 목표가 설정되면 어떤 유혹이나 방해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반면에 베트남 참전 용사인 베노 래트너는 너무 변덕스럽고 감정의 변화가 죽 끓듯 하는 사람으로 빛을 발하는 어떤 한지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모든 영역에서 빛나는 북극의 오로라를 따라가듯 자기 방향을 잡지 못하였다. 그리고 요더 씨는 내가 한마디만 해도 제대로 방향을 잡고 그힘든 수정 작업을 공들여 하는 데 반해, 래트너는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비평적인 언사가 섞이기만 해도 한 일주일 동안은 활기를 잃고 타자기를 피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독일인 농부는 매달 목표 의식을 갖고 소설의 완성을 위해 꾸준히 매진하였지만, 베트남 참전 용사는 동남아시아의 정글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손을 뻗쳐 누가 구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글쓰기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법 사이의 이러한 대조 -오랜 훈련에서 터득한 직업적인 전문성과 이에 대조되는, 즉 한순간 번쩍이는 통찰에 의존하는 아마추어적 즉흥성 -를 래트너가 특히 더 고통스럽게 의식하는 것 같았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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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관계는 물리학에서부터 시작된다. 발광 기관의 표면은 점액과 섬모로 뒤덮여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섬모들이 와류를 일으켜 세균크기의 입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와류에 휘말린 미생물들은 점액에 달라붙어 덩어리를 형성하고, 그중에는 V. 피셰리뿐아니라 다른 미생물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물리학은 물러가고 화학이 등장한다. V. 피셰리한 마리가 오징어를 건드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두 마리가 건드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섯마리가 건드리면, 오징어의 수많은 유전자들이 활성화된다. 어떤 유전자들은 항균물질의 칵테일을 생성하여 다른 미생물들을 처치하고 V. 피셰리만 살려주는가 하면, 또 어떤 유전자들은 효소를 분비하여 오징어의 점액을 분해하고 보다 많은 V. 피셰리를 유인하는 물질을 생성한다. 처음에는 다른 미생물들의 숫자가 1000배나 많아 V. 피셰리를 압도하지만, 순식간에 V. 피셰리가 우점종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유전자들이생성하는 화학물질들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징어의 표면에는 V. 피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더욱 많은 V. 피셰리들이 몰려들어 경쟁자들을 몰아낸다. V. 피셰리는 과학소설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낯선 행성에 착륙한 주인공이 동분서주하며 그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처럼, V. 피셰리는 오징어를 공생에 적합한 숙주로 변화시킨다. - P85

공생이란 동물들이 자신의 발생 과정 중 일부를 다른 종에게 외주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는 대신 핵심 부분을 외주에 의존하는 이유가 뭘까? 혼자서 할 수는 없는 걸까? 무균 생쥐와 무균 오징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존 롤스John Rawls에 의하면, 외주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생물은 동물의 삶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므로 그들을 제거하면 큰일 나요." 동물이 지구 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땅에는 이미 미생물이 수십억 년 동안이나 우글거리고 있었다는 점을상기하라. 즉 동물이 지구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미생물은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인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동물과인간은 온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미생물들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진화시키지 않고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미생물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건 눈가리개와 귀마개와 입마개를 한 채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미생물은 불가피한 존재일 뿐 아니라 매우 유용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들은 동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영양분이 풍부한 곳과 기온이 적당한 곳, 평탄한 정착지를 찾는 데 필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변방을 개척하는 동물들은 미생물들로부터 이러한 단서를 포착함으로써 주변 세상에 대해 가치 있는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동물과 미생물이 태곳적부터 상호작용했음을 암시하는 증거들은 오늘날에도 풍부하게 존재한다. - P90

사실 관벌레가 미생물에 반응하는 유일한 종은 아니다. 일부 해면의유충도 표면으로 기어 올라와 세균을 만났을 때 변신을 한다. 홍합, 따개비, 멍게, 산호도 마찬가지다. 아차, 굴을 빠뜨렸다(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미안하다). 해파리와 말미잘의 친척으로서 촉수를 보유하고 있는 집게히드라도 마찬가지여서, 소라게의 껍질에서 사는 세균과 접촉할 때 성체가된다. 이처럼 바다에는 세균과 접촉할 때만 생활사를 마감하는 유충들이 우글거린다. - P100

바이오필름의 존재는 표면의 특성에 대한 중요한 정보 네 가지를 제공한다. 첫째는 고형 표면이 존재한다는 것, 둘째는 표면이 상당한 기간 동안 존재했다는 것, 셋째는 표면의 독성이 별로 강하지 않다는 것, 넷째는 미생물이 오랫동안 버티는 데 충분한 영양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이 정착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이것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되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세균이 제공하는 단서에 의존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지, 나아가 다른 옵션은 뭐가 있는지. "최초의 해양 동물이 정착할 준비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때는 깨끗한 표면이 하나도 없었을걸요." 해드필드의 대답이 내게는 마치 롤스와 킹의 음성이 메아리치는 듯 들린다. "그때는 모든 게 미생물로 온통 뒤덮여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세균 집단, 즉 바이오필름의 차이가 정착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단서였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죠."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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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나이는 45억 4000만 살이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시간을 이해하려고 덤벼들었다간 자칫 정신이 이상해질 지도 모르니, 지구의 역사 전체를 1년으로 환산하여 설명해보려고 한다.‘ 먼저, 이 페이지를 읽는 순간을 12월 31일 자정 직전이라고 하자(고맙게도 불꽃놀이는 9초 전에 발명되었다). 인간이 지구 상에 머문 시간은 겨우 30분 미만이고, 공룡은 12월26일 저녁때까지 세상을 지배하다가 외계에서 날아든 소행성이 지구를강타하는 바람에 멸종해버렸다(단, 새들은 살아남았다. 꽃과 포유동물은 12월초에 진화했다. 11월에는 식물이 육지에 상륙했고, 대부분의 주요 동물그룹이 바다에 나타났다. 식물과 동물은 여러 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와 비슷한 다세포생물들이 10월초에 진화했다(어쩌면 그 전에 진화했을 수도 있는데 화석이 애매모호하여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며, 설사 그렇더라도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10월 이전에는 지구 상의 생물들이 거의 모두 단세포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며, 눈을 가진 생물이 존재했더라도 육안으로단세포생물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구 상에 생명이 처음 탄생한 것은 3월 어느날이었다. - P17

그들은 코다 coda의 일부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구상의 생물은 오로지 미생물뿐이었고, 이 미생물들이 우리의 상상 속 달력에서 3월부터 10월까지 지구를 이끌어온 셈이다.
미생물들은 일곱 달 동안 지구를 비가역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들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오염 물질을 분해했다. 지구의 탄소·질소 · 황 ·인 순환 주기를 이끌며, 이 원소들을 화합물들로 전환시켜 동식물들에게 공급함과 동시에 유기물들을 분해함으로써 원소들을 자연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들은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너지를 활용하여 자신의 식량을자급자족한 최초의 생물이었다. 노폐물로는 산소를 배출했는데, 그 방출량이 너무 많아 지구의 대기 조성을 영구히 바꿔놓았다. 그러므로 우리가산소화된 세상에서 살게 된 것은 순전히 미생물들 덕분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해양 광합성 세균들은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의 절반을 만들어내며 그와 똑같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는 현재 인류세Anthropocene 라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살고 있는데, 인류세의 핵심적인 특징은 인류가 지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우리는 여전히 미생물세Microbiocene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생물세는 생명이 지구 상에 나타났을 때부터 시작되어 종말을 맞을 때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 P18

지구의 생명사에서 처음 25억 년 동안, 세균과 고세균은 대체로 별개의 진화 과정을 밟아왔다. 그러다가 한 가지 운명적 사건이 일어났다. 고세균 한 마리가 어찌어찌하여 세균 한 마리와 합병하면서 독립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숙주세포 안에 영원히 갇혀버린 것이다. 이것이 많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진핵세포의 탄생 시나리오다. 즉, 생명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생 사건이 발생하여 두 개의 거대한 생물 진영이 통합되며제3진영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세균은 1차적으로 진핵세포의 골격을 제공하고, 결국에는 미토콘드리아로 변신했다. - P20

사실 모든 개인들은 하나의 섬이라기보다는 군도에 더 가깝다.
신체의 각 부분은 각자 독특한 미생물상을 갖는다. 마치 갈라파고스제도의 다양한 섬들이 각각 특별한 거북과 펀치를 보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피부는 프로피오니박테륨 Propionibacterium, 코리네박테륨Corynebacterium,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의 영토인데 반해, 장을 지배하는 것은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이고 여성의 질을 지배하는 것은 유산Lactobacillus 이며 구강을 지배하는 것은 연쇄상구균streptococcus이다. 게다가 장기들 역시 다양해서, 소장의 초입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직장에서식하는 미생물과 매우 다르다. 치태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경우, 잇몸선 위에 사는 것과 아래에 사는 것이 다르다. 피부의 경우, 기름기가 많은 얼굴과 가슴의 기름 호수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의 열대우림이나 팔뚝과 손바닥의 사막에 사는 미생물과 다르다. 손바닥은 또 어떤가? 오른손이 왼손과 공유하는 미생물종은 2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신체 부위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다양성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다양성을 초라하게 만든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의 팔뚝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당신의 구강에 서식하는 미생물보다 내 팔뚝에 서식하는 미생물과 더욱 가깝다. - P32

장내 미생물이 형성되는 기간은 격변의 시기지만 예측 가능한 단계를밟는다. 최근 산불로 인해 새로 형성되거나 바닷속에서 솟아오른 신생 섬을 생각해보자. 지의류나 이끼와 같은 단순한 식물들이 숲과 섬을 신속히점령하면 풀과 작은 관목들이 뒤를 잇고, 키 큰 나무들은 한참 뒤에 등장한다. 생태학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천이遷移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미생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아기의 마이크로바이옴이 성인과 같은 상태에 도달하는 시점은 1년과 3년 사이의 어디쯤이다. 그다음으로는 지속적인 안정기가 찾아온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매일, 아침과 저녁, 심지어 밥 먹을 때마다 달라지지만, 그런 모든 변화도 생애 초기의 변화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다. 성인이 보유한 마이크로바이옴의 역동성은 배경에 깔린 불변성을 은폐한다. - P33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매우 사변적이지만, 내 아이디어는 이래요. 동물이 보다 이색적인 행동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미생물의 전적응pre-adaptation이 필요하다는 거죠." 롭나이트의 아이디어가 사변적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내가 보기에 지나치게 앞서나간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미생물은 많은 문을 열어줬고, 동물들은 그 문을 통해 평소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온갖 특이한 생활양식을 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물들이 습관을 공유하면 그들의 마이크로바이옴 역시 종종 수렴한다. 예컨대 나이트와 동료들은 선행 연구에서 "천산갑, 아르마딜로, 개미핥기, 땅돼지, 땅늑대(하이에나의 일종)와 같이 개미를 먹는 포유동물들은 약 1억 년 동안 독립적으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비슷한 장내 미생물을 갖고 있다"고 보고했다. - P38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미생물학자들은 많은 미생물들이 동물, 식물, 기타 가시적인 생물들과 신체를 공유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들은 담벼락, 바위, 나무껍질, 통나무에서 드문드문 자라는 울긋불긋한 지의류가 복합생물composite organism임을 알게 되었다. 즉 지의류는 미세한 조류와 균류의 공생체이며, 조류는 균류로부터 미네랄과 수분을 공급받는 대신 영양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말미잘이나 편형동물의 세포에도 조류가 있고, 왕개미의 세포에도 살아 있는 세균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나무뿌리에서 자라는 균류는 오랫동안 기생충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탄수화물을 공급받는 대가로 질소를 제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동반자 관계는 공생 symbiosis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얻었다. 이는 ‘함께‘와 ‘삶‘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를 합쳐 만든 말로 중립적 의미를 지니며, 모든 형태의 공존을 의미한다. 먼저, 한 파트너가 다른 파트너를 희생하여 이익을 얻는다면 그는 기생자parasite다(질병을 초래하는 기생자는 병원체 pathogen라고 한다). 둘째로, 한 파트너가 다른 파트너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이익을 얻는다면 그는 편리공생자commersal다. 셋째로, 두 파트너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다면 그들은 상리공생자mutualist다. 이처럼 공생이라는 범주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공존이 모두 포함된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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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동물원에서

바바 Baba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변에 모여든 들뜬 아이들의 성화에 동요하지 않고, 캘리포니아의 폭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 몸, 발톱을 문지르는 면봉에도 개의치 않는다. 이 같은 냉담함과 태연자약함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녀석은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살고, 든든한 갑옷을 입었으며, 지금은 사육사의 허리에 손발을 칭칭 감은 채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전하고 수월한 삶을 사는 동물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 P7

우리는 모두 일종의 동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너 나할 것 없이 누구나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풍부한 미생물 군집을 하나씩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집합적으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또는 마이크로바이오타 microbiota 라고 불리는 이들은 우리의 체표면, 체내, 때로는 세포 안에서도 산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세균이지만 다른 미생물들도 있는데, 진균(예를 들면 효모)과 고세균anchaea (나중에 언급할 ‘신비의 그룹)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몸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바이러스 집단도 존재하는데, 그들을 통틀어 바이롬virome이라고 한다. 바이러스는 모든 미생물들을 감염시키며, 때로는 숙주의 세포까지도 감염시킨다. 이 같은 미생물들은 육안으로 전혀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세포들이 갑자기 불가사의하게 사라진다면, 마이크로바이옴은 희끄무레한 물질로 남아 사라진 동물의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마이크로바이옴에 완전히 뒤덮여 자신의 세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동물들도 있다. 예컨대 해변은 가장 단순한 동물 중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 몸은 세포 몇 겹만 한 두께이지만 그 역시 우글거리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소굴임이 틀림없다. 어쩌다 해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해면을 뒤덮고 있는 세균들만 관찰할 수 있을 뿐 정작 숙주인 해면은 거의 보이지 않을 것이다. - P9

"우리는 모두 혼자 태어나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다"고 했을 때, 오슨웰스는 큰 실언을 한 셈이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공생자로 존재하며, 공생 symbiosis이란 ‘상이한 생물들이 함께 사는 것‘을 가리키는 놀라운 용어다. 어떤 동물들은 미수정란 상태에서 이미 미생물에게 점령되고, 어떤 동물들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첫 번째파트너를 고른다. 우리는 미생물의 면전에서 평생을 살며, 우리가 음식물을 먹을 땐 미생물도 함께 먹는다. 우리가 여행할 땐 그들도 동행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죽을 때, 그들은 우리를 분해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모두 일종의 동물원이다. 우리는 하나의 몸으로 둘러싸인 거주지이자 여러 종으로 구성된 집합체이며, 하나의 세계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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