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소설이 대단한 현실 감각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위 친구들이 토니라고 부르지만 그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안토니아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우리 또래의 감정과 감수성을 지닌 생기발랄한 소녀였으며, 그녀가 여름 동안 같이 지내게된 친척들은 내 가족만큼이나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가깝게 와 닿는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경험이어서 책을 반납하며 나는 사서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모두가 실제로 일어난 얘긴가요?" 사서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럼, 일어났었고말고. 그런데 작가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이야. 물론 네 마음속에서도 일어난 거지. 그게 바로 소설이란다. 서로의 꿈을 교환하는 것......." - P178
타임스 스퀘어가 있고 또 이 도시의 유명한 의류 산업 구역의 북단을 형성하고 있는 남쪽으로 향했다. 얼마 후 지하철에서 나와 7번가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아버지와비슷한 연세의 노인들이 의류를 담은 수레를 이리저리 - 행인들과 부딪히고, 차량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 운반하는것을 보았다. 얼마나 불안정한 삶인가. 나는 인파 한가운데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식의 삶에 묻혀 버릴 순 없어, 책의 세계, 사상의 세계가 있잖아. 난 싸워서라도 그 세계로 가고 말테야. - P181
주다 삼촌에겐 그 말이 또 다른 차원의 의미로 와 닿았던모양이었다. "이 세상에는 네 돈으로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쉽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단다. 충고가 돈 드는 일은아니니까. 그렇지만 네게 뭘 해달라고 하면서 <그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좀 다른 얘기란다." - P194
그는 특히 당시 유행하던 전쟁 소설들을 경멸하였다. 「이젠 더 이상, 가령 전형적인 전쟁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혹인 사병 하나, 브루클린 출신 사병 하나, 예민한 성격의 사병하나, 그리고 의지가 박약한 소위와 비정한 성격의 중사 등으로 구성된 한 소대가 보 제스트라는 요새를 죽기 살기로공격한다는 식의 이야기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외인부대라는 것도 이젠 존재하지 않잖아요?」그러면 어떤 식의 이야기가 필요합니까?」뉴저지에 있는대학에서 왔다는 한 젊은 교수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대답을 하였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에 다음의 여섯 가지 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수없이 난도질을 당하는 그런 인물들을 다룬 소설입니다. 첫째는 가령 고향인 미네소타로 돌아가는 죽은 병사의 관 위에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는 가톨릭 군목의 기도를듣는 일. 둘째는 정글에 있는 적의 진지로 공격을 떠나는 대부분이 흑인 사병들로 구성된 부대원들에게 남부 출신의 한대령이 훈시를 하는 동안 차려 자세로 듣고 서 있는 일. 셋째는 미국 병사를 저격했다고 해서 열한 살짜리 동양인 소년을 나무에서 끌어내려 쏘아 죽이는 일. 넷째는 공산군 편을 드는 농부들을 굶겨 죽이려는 방편으로 논 위에 휘발유를 뿌려 불지르는 일. 다섯째는 공군기들이 한 마을에 네이팜탄을 퍼붓는 동안 그 마을 둘레에서 포진하고 있다가 도망치는 주민들에게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구 총알세례를 퍼붓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밤에 군 막사에서 고국 고향에 있는 친지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 소설에선 이 모든 유형의 인물들을1968년에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나무 위의 소년, 대령, 불길을 피해 도망가는 늙은 아낙네, 네이팜탄을 떨어뜨리는 젊은 조종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화자로 해서 말입니다.」 - P216
편집자로서 나는 루카스 요더 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즐거우면서도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동시에 나는 베며 그의 두 번째 소설 「농장』을 세련되게 마무리하기 시작하노 래트너와 그의 베트남 전쟁 원고를 놓고 씨름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일은 정말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독일인 요더 씨는 인내심이 강하고 꾸준히 작업을 하는 작가로, 일단 목표가 설정되면 어떤 유혹이나 방해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반면에 베트남 참전 용사인 베노 래트너는 너무 변덕스럽고 감정의 변화가 죽 끓듯 하는 사람으로 빛을 발하는 어떤 한지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모든 영역에서 빛나는 북극의 오로라를 따라가듯 자기 방향을 잡지 못하였다. 그리고 요더 씨는 내가 한마디만 해도 제대로 방향을 잡고 그힘든 수정 작업을 공들여 하는 데 반해, 래트너는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비평적인 언사가 섞이기만 해도 한 일주일 동안은 활기를 잃고 타자기를 피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독일인 농부는 매달 목표 의식을 갖고 소설의 완성을 위해 꾸준히 매진하였지만, 베트남 참전 용사는 동남아시아의 정글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손을 뻗쳐 누가 구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글쓰기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법 사이의 이러한 대조 -오랜 훈련에서 터득한 직업적인 전문성과 이에 대조되는, 즉 한순간 번쩍이는 통찰에 의존하는 아마추어적 즉흥성 -를 래트너가 특히 더 고통스럽게 의식하는 것 같았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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