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관계는 물리학에서부터 시작된다. 발광 기관의 표면은 점액과 섬모로 뒤덮여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섬모들이 와류를 일으켜 세균크기의 입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와류에 휘말린 미생물들은 점액에 달라붙어 덩어리를 형성하고, 그중에는 V. 피셰리뿐아니라 다른 미생물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물리학은 물러가고 화학이 등장한다. V. 피셰리한 마리가 오징어를 건드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두 마리가 건드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섯마리가 건드리면, 오징어의 수많은 유전자들이 활성화된다. 어떤 유전자들은 항균물질의 칵테일을 생성하여 다른 미생물들을 처치하고 V. 피셰리만 살려주는가 하면, 또 어떤 유전자들은 효소를 분비하여 오징어의 점액을 분해하고 보다 많은 V. 피셰리를 유인하는 물질을 생성한다. 처음에는 다른 미생물들의 숫자가 1000배나 많아 V. 피셰리를 압도하지만, 순식간에 V. 피셰리가 우점종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유전자들이생성하는 화학물질들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징어의 표면에는 V. 피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더욱 많은 V. 피셰리들이 몰려들어 경쟁자들을 몰아낸다. V. 피셰리는 과학소설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낯선 행성에 착륙한 주인공이 동분서주하며 그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처럼, V. 피셰리는 오징어를 공생에 적합한 숙주로 변화시킨다. - P85
공생이란 동물들이 자신의 발생 과정 중 일부를 다른 종에게 외주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는 대신 핵심 부분을 외주에 의존하는 이유가 뭘까? 혼자서 할 수는 없는 걸까? 무균 생쥐와 무균 오징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존 롤스John Rawls에 의하면, 외주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생물은 동물의 삶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므로 그들을 제거하면 큰일 나요." 동물이 지구 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땅에는 이미 미생물이 수십억 년 동안이나 우글거리고 있었다는 점을상기하라. 즉 동물이 지구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미생물은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인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동물과인간은 온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미생물들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진화시키지 않고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미생물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건 눈가리개와 귀마개와 입마개를 한 채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미생물은 불가피한 존재일 뿐 아니라 매우 유용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들은 동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영양분이 풍부한 곳과 기온이 적당한 곳, 평탄한 정착지를 찾는 데 필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변방을 개척하는 동물들은 미생물들로부터 이러한 단서를 포착함으로써 주변 세상에 대해 가치 있는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동물과 미생물이 태곳적부터 상호작용했음을 암시하는 증거들은 오늘날에도 풍부하게 존재한다. - P90
사실 관벌레가 미생물에 반응하는 유일한 종은 아니다. 일부 해면의유충도 표면으로 기어 올라와 세균을 만났을 때 변신을 한다. 홍합, 따개비, 멍게, 산호도 마찬가지다. 아차, 굴을 빠뜨렸다(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미안하다). 해파리와 말미잘의 친척으로서 촉수를 보유하고 있는 집게히드라도 마찬가지여서, 소라게의 껍질에서 사는 세균과 접촉할 때 성체가된다. 이처럼 바다에는 세균과 접촉할 때만 생활사를 마감하는 유충들이 우글거린다. - P100
바이오필름의 존재는 표면의 특성에 대한 중요한 정보 네 가지를 제공한다. 첫째는 고형 표면이 존재한다는 것, 둘째는 표면이 상당한 기간 동안 존재했다는 것, 셋째는 표면의 독성이 별로 강하지 않다는 것, 넷째는 미생물이 오랫동안 버티는 데 충분한 영양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이 정착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이것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되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세균이 제공하는 단서에 의존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지, 나아가 다른 옵션은 뭐가 있는지. "최초의 해양 동물이 정착할 준비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때는 깨끗한 표면이 하나도 없었을걸요." 해드필드의 대답이 내게는 마치 롤스와 킹의 음성이 메아리치는 듯 들린다. "그때는 모든 게 미생물로 온통 뒤덮여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세균 집단, 즉 바이오필름의 차이가 정착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단서였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죠."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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