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나이는 45억 4000만 살이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시간을 이해하려고 덤벼들었다간 자칫 정신이 이상해질 지도 모르니, 지구의 역사 전체를 1년으로 환산하여 설명해보려고 한다.‘ 먼저, 이 페이지를 읽는 순간을 12월 31일 자정 직전이라고 하자(고맙게도 불꽃놀이는 9초 전에 발명되었다). 인간이 지구 상에 머문 시간은 겨우 30분 미만이고, 공룡은 12월26일 저녁때까지 세상을 지배하다가 외계에서 날아든 소행성이 지구를강타하는 바람에 멸종해버렸다(단, 새들은 살아남았다. 꽃과 포유동물은 12월초에 진화했다. 11월에는 식물이 육지에 상륙했고, 대부분의 주요 동물그룹이 바다에 나타났다. 식물과 동물은 여러 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와 비슷한 다세포생물들이 10월초에 진화했다(어쩌면 그 전에 진화했을 수도 있는데 화석이 애매모호하여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며, 설사 그렇더라도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10월 이전에는 지구 상의 생물들이 거의 모두 단세포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며, 눈을 가진 생물이 존재했더라도 육안으로단세포생물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구 상에 생명이 처음 탄생한 것은 3월 어느날이었다. - P17

그들은 코다 coda의 일부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구상의 생물은 오로지 미생물뿐이었고, 이 미생물들이 우리의 상상 속 달력에서 3월부터 10월까지 지구를 이끌어온 셈이다.
미생물들은 일곱 달 동안 지구를 비가역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들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오염 물질을 분해했다. 지구의 탄소·질소 · 황 ·인 순환 주기를 이끌며, 이 원소들을 화합물들로 전환시켜 동식물들에게 공급함과 동시에 유기물들을 분해함으로써 원소들을 자연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들은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너지를 활용하여 자신의 식량을자급자족한 최초의 생물이었다. 노폐물로는 산소를 배출했는데, 그 방출량이 너무 많아 지구의 대기 조성을 영구히 바꿔놓았다. 그러므로 우리가산소화된 세상에서 살게 된 것은 순전히 미생물들 덕분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해양 광합성 세균들은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의 절반을 만들어내며 그와 똑같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는 현재 인류세Anthropocene 라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살고 있는데, 인류세의 핵심적인 특징은 인류가 지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우리는 여전히 미생물세Microbiocene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생물세는 생명이 지구 상에 나타났을 때부터 시작되어 종말을 맞을 때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 P18

지구의 생명사에서 처음 25억 년 동안, 세균과 고세균은 대체로 별개의 진화 과정을 밟아왔다. 그러다가 한 가지 운명적 사건이 일어났다. 고세균 한 마리가 어찌어찌하여 세균 한 마리와 합병하면서 독립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숙주세포 안에 영원히 갇혀버린 것이다. 이것이 많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진핵세포의 탄생 시나리오다. 즉, 생명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생 사건이 발생하여 두 개의 거대한 생물 진영이 통합되며제3진영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세균은 1차적으로 진핵세포의 골격을 제공하고, 결국에는 미토콘드리아로 변신했다. - P20

사실 모든 개인들은 하나의 섬이라기보다는 군도에 더 가깝다.
신체의 각 부분은 각자 독특한 미생물상을 갖는다. 마치 갈라파고스제도의 다양한 섬들이 각각 특별한 거북과 펀치를 보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피부는 프로피오니박테륨 Propionibacterium, 코리네박테륨Corynebacterium,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의 영토인데 반해, 장을 지배하는 것은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이고 여성의 질을 지배하는 것은 유산Lactobacillus 이며 구강을 지배하는 것은 연쇄상구균streptococcus이다. 게다가 장기들 역시 다양해서, 소장의 초입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직장에서식하는 미생물과 매우 다르다. 치태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경우, 잇몸선 위에 사는 것과 아래에 사는 것이 다르다. 피부의 경우, 기름기가 많은 얼굴과 가슴의 기름 호수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의 열대우림이나 팔뚝과 손바닥의 사막에 사는 미생물과 다르다. 손바닥은 또 어떤가? 오른손이 왼손과 공유하는 미생물종은 2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신체 부위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다양성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다양성을 초라하게 만든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의 팔뚝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당신의 구강에 서식하는 미생물보다 내 팔뚝에 서식하는 미생물과 더욱 가깝다. - P32

장내 미생물이 형성되는 기간은 격변의 시기지만 예측 가능한 단계를밟는다. 최근 산불로 인해 새로 형성되거나 바닷속에서 솟아오른 신생 섬을 생각해보자. 지의류나 이끼와 같은 단순한 식물들이 숲과 섬을 신속히점령하면 풀과 작은 관목들이 뒤를 잇고, 키 큰 나무들은 한참 뒤에 등장한다. 생태학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천이遷移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미생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아기의 마이크로바이옴이 성인과 같은 상태에 도달하는 시점은 1년과 3년 사이의 어디쯤이다. 그다음으로는 지속적인 안정기가 찾아온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매일, 아침과 저녁, 심지어 밥 먹을 때마다 달라지지만, 그런 모든 변화도 생애 초기의 변화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다. 성인이 보유한 마이크로바이옴의 역동성은 배경에 깔린 불변성을 은폐한다. - P33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매우 사변적이지만, 내 아이디어는 이래요. 동물이 보다 이색적인 행동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미생물의 전적응pre-adaptation이 필요하다는 거죠." 롭나이트의 아이디어가 사변적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내가 보기에 지나치게 앞서나간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미생물은 많은 문을 열어줬고, 동물들은 그 문을 통해 평소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온갖 특이한 생활양식을 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물들이 습관을 공유하면 그들의 마이크로바이옴 역시 종종 수렴한다. 예컨대 나이트와 동료들은 선행 연구에서 "천산갑, 아르마딜로, 개미핥기, 땅돼지, 땅늑대(하이에나의 일종)와 같이 개미를 먹는 포유동물들은 약 1억 년 동안 독립적으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비슷한 장내 미생물을 갖고 있다"고 보고했다. - P38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미생물학자들은 많은 미생물들이 동물, 식물, 기타 가시적인 생물들과 신체를 공유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들은 담벼락, 바위, 나무껍질, 통나무에서 드문드문 자라는 울긋불긋한 지의류가 복합생물composite organism임을 알게 되었다. 즉 지의류는 미세한 조류와 균류의 공생체이며, 조류는 균류로부터 미네랄과 수분을 공급받는 대신 영양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말미잘이나 편형동물의 세포에도 조류가 있고, 왕개미의 세포에도 살아 있는 세균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나무뿌리에서 자라는 균류는 오랫동안 기생충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탄수화물을 공급받는 대가로 질소를 제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동반자 관계는 공생 symbiosis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얻었다. 이는 ‘함께‘와 ‘삶‘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를 합쳐 만든 말로 중립적 의미를 지니며, 모든 형태의 공존을 의미한다. 먼저, 한 파트너가 다른 파트너를 희생하여 이익을 얻는다면 그는 기생자parasite다(질병을 초래하는 기생자는 병원체 pathogen라고 한다). 둘째로, 한 파트너가 다른 파트너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이익을 얻는다면 그는 편리공생자commersal다. 셋째로, 두 파트너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다면 그들은 상리공생자mutualist다. 이처럼 공생이라는 범주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공존이 모두 포함된다. - P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