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맞닥뜨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진다. 눈이 아파? 잘 땐 눈을 감고 자? 몇 시인지는 어떻게 알아?
그녀는 설명해 준다. 아프지 않아. 그리고 그들이 상상하는 것 같은 어둠은 없다. 모든 건 거미집, 격자, 그리고 소리와 결의 대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대 전시관 주변을 돌면서 삐꺽거리는마루청 사이를 빠져나간다. 박물관 층계참을 킁킁대며 오르내리는발소리를,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깍깍거리는 소리를 지친 할머니가 벤치에 앉으면서 내는 신음 소리를 듣는다.
색깔? 그녀에게 있어 색은 사람들이 예상 못 하는 어떤 것이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꿈속에서, 모든 것엔 색이 있다. 박물관 건물은 베이지색, 밤색, 개암색이다. 그곳 과학자들은 라일락색, 레몬 같은 노란색, 여우 같은 밤색이다. 경비실 무선 스피커에서 피아노 화음이 축 늘어져 내려와 짙은 검은색과 복잡한 파란색을 열쇠 보관실로 향하는 복도에 비춘다. 교회 좋은 창밖으로 청동빛 아치를 기울인다. 꿀벌은 은색이다. 비둘기는 적갈색과 황갈색이며 이따금씩 황금색도 있다. 그녀와 그녀 아버지가 아침 산책 때 지나치는 거대한 삼나무들은 은은히 반짝이는 만화경이며, 바늘잎 하나하나가 다각형 빛이다.

어린이 여러분, 집 난로 속에서 석탄 한 조각이 빨갛게 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떤가요? 석탄 한 덩어리는 한때는 초록빛 풀 한 포기였고, 100만 년 전에 살았던 양치류나 갈대예요. 아니, 어쩌면 200만 년 전, 아니면 1억 년 전에 살았던 건지도 몰라요. 1억 년이라니, 상상이 가나요? 풀잎들은 평생토록 여름이 되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빛을 받아들인 다음, 그 태양 에너지를 자기 안으로 흡수해요. 나무껍질, 잔가지, 줄기로 바꾸죠. 풀들은빛을 먹고 살아요. 우리가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풀이 죽어 땅에떨어지고, 어쩌면 물속으로 떨어져 썩어서 토탄이 되면, 그 토탄은 몇 년을 거치면서 흙 속에 켜켜이 쌓인답니다. 한 달, 십 년, 심지어는 사람의 한평생이담긴 그런 영겁의 시간이 그냥 바람 한 번 훅 분 것처럼, 손가락 두 개를 딱 부딪치는 순간처럼 지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토탄은 말라서 돌처럼 되고, 그걸 누군가 땅에서 캐낸 다음, 광부가 여러분 집까지 배달해 준답니다. 그걸어린이 여러분이 직접 난로까지 가져갈 수도 있겠죠. 그렇게 태양빛 ••• 1억 년이 된 태양빛이 오늘 밤 여러분의 집을 따뜻하게 해 준답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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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5월 13일과 6월 4일, 윈스턴 처칠은 하원의사당에서 연설했다.
이 두 번의 영어 연설은 20세기 가장 자주 인용되고 가장 인상적인 연설로 여겨진다. 특히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피와 땀과 눈물밖에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 •••) 여러분은 묻습니다. 우리 정책이 무엇이냐고?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바다와 육지와 하늘에서 우리의 모든 능력을 다하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어둡고 한탄스러운 인류의 범죄사에서 유례가 없던극악무도한 폭압과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 우리는 결코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이고,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자신있게, 더욱 강한 힘으로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 섬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도 싸울 것이고, 상륙지에서도 싸울 것이고, 들판에서도 싸울 것이고, 길에서도 싸울 것이고,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영국은 결코 항복하지 않았다. 히틀러와 타협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싸웠고 1년 후에는 러시아와 미국을 차례로 동맹군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5년 후에는 히틀러를 물리쳤다. 그러나 그런 결과는 운명지워진 것이 아니었다. 만약 1940년에 유럽에서 큰 언어들이 작은언어들을 완전히 흡수해서 영국을 비롯해 유럽의 모든 국가가 서유럽에서 가장 큰 언어, 즉 독일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처칠이 하원의사당에서 영어가 아닌 독일어로 연설을 했다면 1940년 6월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 P596

세계인의 일일 평균 엄분 섭취량은 대략 9~12그램이며, 주로 6~20그램 사이에 분포돼 있지만아시아가 다른 지역보다 섭취량이 많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는 소금을 소금에서 구한 게 아니라 자연환경에서 채취해야 했다. 소금이 식탁마다 어김없이 놓이기 전에 세계는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보자. 과거에는 소금을 배출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소금을 섭취하는 게 문제였다. 대부분의 식물은 나트륨을 거의 함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의 세포외액에는 고농축 나트륨이 필요하다. 따라서 육식동물은 세포외액에 나트륨을 지닌 초식동물을 잡아먹음으로써 필요한 나트륨을 쉽게 얻지만, 초식동물은 나트륨을 섭취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친다. 이런 이유에서, 소금을 핥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동물은 사슴과 영양이 사자와 호랑이는 아니다. 또한 이누이트족과 산족처럼 육고기를 많이 먹는 수렵채집인들은 염분 요구랑을 쉽게충족했지만, 사냥한 동물을 도살하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나트륨이 풍부한 피와 세포외액을 상당히 상실했기 때문에 그들의 총염분 섭취량도 하루에 1~2그램에 불과했다. 주로 채식하며 육고기를 제한적으로 섭취한전통적인 수렵채집인과 농경인 중에서도 해변이나 내해에 소금이 퇴적된 곳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은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예컨대 솔로몬 제도의 라우족은 해변가에 살며 조리할 때도 소금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또 이란의 유목 목축인인 카슈카이족은 본거지에 자연 소금광산이있기 때문에 그들의 일일 평균 염분 섭취량은 약 10그램에 달한다. - P608

충분한 세대를 두고 고려할 때, 생존을 크게 방해하는유전자들이 전체적인 순효과에서 생존과 번식의 가능성을 어떻게든 높이지 않는 한 확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의학계는 표면적으로 결함이 있어 보이는 유전자들이 그 결함을 상쇄하는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확산되는 좋은 사례들을 제공해왔다. 예컨대 겸상적혈구 헤모글로빈은 빈혈을 초래하는 경향을 띤 돌연변이 유전자이다. 따라서 해로운유전자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 유전자는 말라리아를 억제하는 기능을하므로, 아프리카와 지중해의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지역에서 이 유전자의 전체적인 순효과는 이익이다. 따라서 치료받지 않는 고혈압인 사람이 신장에 축적된 염분 때문에 사망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염분을 축적하는 신장으로부터 어떤 조건에서 이익을 얻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어야 한다.
그 답은 간단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소금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간이 소금을 얻기 힘든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신장에 염분을 효과적으로 보유하는 사람이 땀의 발산이나 설사로 염분을 잃는 경우를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소금을 언제든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런 기능을 지닌 신장은 유해물이 되고 말았고, 결국 치명적인결과를 낳는 과도한 염분 축적과 고혈압으로 이어졌다. 이런 이유에서, 또 많은 사람이 소금을 구하기 힘들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버리고 슈퍼마켓의 소중한 고객이 되는 삶을 택한 때문에 고혈압이 세계 전역에서유행하게 됐다.  - P621

기아와 폭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전통 사회의 생존 조건에서는 절약 유전자형을 지닌 사람들이 유리했을 것이다. 풍요의 시기에 많은 지방을 저장해두었다가 빈곤의 시기에 칼로리를 상대적으로 덜 태우면  굶주림을 더 잘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만과 감량이란 두려움은 얼토당토않은 사치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기야 전통 사회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두려움이었다. 오늘날 우리를 당뇨병으로 유도하는 유전자들이 과거에는 우리가 기아를 견디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당뇨병과 고혈압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소금이나 달콤한 음식과 기름진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그런 음식들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런 음식들이 지닌 맛 때문에 우리는 소중한 영양분을 적게나마 보충할 수있었다. 고혈압의 경우에서도 보았듯이, 당뇨병의 경우도 진화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수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굶주림의 문제를 너끈하게 견뎌낸 조상들의 후손인 우리가 이제는 풍요로운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당뇨병으로 죽어가는 심각한 위험에 처한 사람이 되었으니말이다. - P650

다른 지역들처럼 유럽을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유린하던 기아가 1650년부터 1900년 사이에 차근차근 사라졌다.
1600년대 말 영국과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1800년대 말에는 남프랑스와남이탈리아를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기아가 자취를 감추었다. 유명한 예외적인 사태가 있었지만, 네 가지 요인이 복합된 결과로 유럽에서는 기아가 종식됐다. 1) 잉여식량을 기근 지역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재분배한 국가 정부의 개입, 2) 육로와 해로를 통한 효과적인 식량 운송, 3)1492년 콜럼버스의 대항해 이후로 신세계에서 많은 농작물(대표적인 예는 감자와 옥수수)을 가져온 항해자들 덕분에 다각화된 농업, 4) 관개시설에 의존하지 않고 천수(天水)에 의존한 까닭에 유럽 내에서 식량 운송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흉작이 닥칠 위험이 없었다.
유럽의 기근 종식에 오점을 남긴 유명한 예외적인 사태는 1840년대 아일랜드에 닥친 감자기근이었다. 아일랜드 사태는 예외적이지만, 유럽의다른 지역들에서는 기근을 종식시킨 처음 세 요인들이 제대로 작동하지않을 때 닥칠 수밖에 없는 불행을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위의 원칙들을 입증해준 사태였다. 아일랜드 감자 기근은 유럽에서는 예외적으로 감자라는 하나의 작물에 의존했고, 감자의 질병이 확산된 때문이었다. 다른 섬(그레이트브리튼)이 민족지학적으로 다른 정부가 지배하며, 아일랜드의 기근에 비효율적이고 시큰둥하게 대응한 결과로 아일랜드 섬에 기근이 닥쳤던 것이다. - P655

나우루 사람들처럼 식량을 확실히 공급받게 되면서 유럽인들에게 당뇨병이 전염병처럼 번졌을 것이고, 절약 유전자형을 지닌 사람들이 당뇨병에 걸려 죽어갔을 것이다. 당뇨병에 걸린 산모가 낳은 많은 아기는 태어나면서 죽고, 당뇨병에 걸린성인은 다른 성인보다 일찍 죽고, 당뇨병에 걸린 성인의 자식과 손자는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죽어갔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수세기 동안 계속된 결과로 절약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유럽에서 조금씩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에 유럽에서 수수께끼처럼 확산됐을 것이라 추정되는 당뇨병과 오늘날 나우루 섬사람들과다른 개체군들에게 확산되고 입증된 당뇨병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요즘 당뇨병 유병률이 높은 개체군들은 풍족한 식량을 급작스레 그러나안정되게 공급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컨대 나우루 섬사람들은 10여년 동안, 예멘계 유대인은 단 한 달 동안 풍족한 식량을 안정되게 공급받은 결과로, 당뇨병 유병률이 20~50퍼센트까지 치솟았다. 현대 당뇨병전문가들의 눈에는 이런 현상이 당연하게 보였을 것이다. 나우루 섬사람들에게서 이미 확인됐듯이 절약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한 세대나 두 세대만에 자연선택으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승은 조만간 줄어들것이라 추정된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식량 생산이 수세기 동안 꾸준히증가했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1400년대부터 1700년대까지, 즉 전문가들이 당뇨병에 주목하기 훨씬 전에 당뇨병 유병률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증가했을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피마족과 나우루 섬사람들, 와니겔라족, 교육받은 인도 도시인들과 아랍의 부유한 산유국 시민들이 생활방식을 바꾼 것은 이제 한 세대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당뇨병 유병률의 급격한 변화는 유럽에서 수세기 동안 진행된 변화가 압축돼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 P656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속해 있는 사회는 다양한 인간 문화에서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 작은 조각에 불과한 사회들이 세계를지배하게 된 이유는, 그 사회들이 다른 사회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농업을 생각해내고 야생동물과 야생식물을 길들인 덕분에 테크놀로지와 정치력과 군사력에서 우위를 차지한 때문이었다. 이런 특별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산업사회들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노인을 대우하며, 분쟁을 해결하고, 비전염성 질병과 그 밖의 사회적 문제를 억제하는 데는 우월한 방법을 개발해내지 못했다. 수많은 전통 사회가 이런 문제들에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며 해결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전통 사회들, 특히 뉴기니의 전통 사회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덕분인지 나 자신의 인생관이 달라졌고 한층 풍요로워졌다. 이 책을 통해서 개별 독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가 전통 사회의 모습을 즐겁게 읽고 거기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교훈들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 P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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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곱 살인 베르너는 날아갈듯 가볍게 걷는 듯하다. 그는 또래보다 왜소하고 두 귀가 툭 튀어나왔으며 목소리는 높고 아름답다. 그의 새하얀 머리를 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선다. 눈 같고, 우유 같고, 분필 같다. 색깔이 없는 색깔이다. 매일 아침 그는신발 끈을 매고, 추위를 막기 위해 코트에 신문지를 채워 넣은 후세상을 조사하러 나간다. 그는 눈송이를 잡고, 올챙이를 잡고, 동면중인 개구리를 잡는다. 제빵사를 샅살 꼬드겨 팔지 못하는 빵을 얻어 낸다. 때마다 부엌에 나타나 아기들에게 신선한 우유를 준다. 배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조각으로 종이상자, 조잡한 쌍엽기, 장난감배 등 이것저것 만들기도 한다.
이틀에 한 번씩 그는 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서 원장을 깜짝 놀라게 한다.
"엘레나 아주머니, 우린 왜 딸꾹질을 하는 거예요?"라든가
"엘레나 아주머니, 달이 엄청나게 큰데 왜 그렇게 작게 보이는 거예요?"라든가.
"엘레나 아주머니, 꿀벌은 침을 쏘면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아나요?" 같은.
엘레나 아주머니는 알자스 출신 신교도 수녀로 감독 일보다는아이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새된 가성으로 프랑스 민요를 부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지만 셰리주에 맥을 못 추고, 선 채로잠들기 일쑤다. 어떤 날 밤에는 아이들에게 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프랑스어로 들려주느라 아이들이 늦게까지 깨어 있어도 뭐라고하지 않는다. 산과 마주한 아늑한 곳, 지붕에 2미터쯤 쌓인 눈, 포고를 알리는 관원과 추운 날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개울, 서리 내린 포도 넝쿨,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세상. - P44

두 눈 모두 선천성 백내장 치유 불가. "이것 보이니?" 의사들은묻는다. "이건 보여?" 마리로르는 앞으로 평생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살 것이다. 한때 그녀에게 익숙했던 공간 - 아버지와 함께 사는 방 네 개짜리 아파트, 그들이 사는 거리 끝에 있는 나무가 늘어선 작은 광장은 위험으로 가득 찬 미로가 되어 버렸다. 서랍들은 결코 있어선 안 되는 곳에 있다. 화장실은 아득한 나락이다. 물한 잔은 너무 가까이 있거나 너무 멀리 있고, 그녀 손가락은 너무크다. 언제나 너무 크다.
눈이 먼다는 것은 무엇인가? 벽이 있어야 할 곳인데 그녀 두 손에 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서 테이블 다리 하나가 그녀 정강이를 후벼 파는 것이다. 거리에서는 자동차가 으르렁거리고, 하늘에선 나뭇잎이 속닥거린다. 피가 그녀 귓속을 으스스 홀러 다닌다. 층계참에서, 부엌에서, 하다못해 그녀 침대 옆에서도 어른들의 목소리가 절망을 토로한다.
"가엾은 아이." 
"가엾은 르블랑 씨."
"지금껏 순탄하게 산 적이 없잖아. 저 양반 아버지는 전쟁 때 죽었지, 마누라는 애를 낳다 죽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저주를 받은 것도 아니고."
"저애를 좀 봐 저 아버지를 좀 보라고."
"애를 딴 데로 보내야만 해."
지난 몇 달 동안 마리로르는 타박상과 비참한 심정에 시달렸다. 범선처럼 높이 쳐 올라가는 방, 얼굴을 후려치는 반쯤 열린 문, 그녀의 유일한 성역은 침대이다. 그녀가 퀼트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려 덮고 있는 동안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 옆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더 피우며, 모형을 칼로 조금씩 깎고, 작은 망치로 톡톡톡 두드리고, 작은 샌드페이퍼로 슥슥슥 문지르며 리드미컬한, 마음을 달래 주는 소리를 낸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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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문제는 방언과 언어를 엄격히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구분할 때야기되는 전형적인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언어학적인 차이만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좁은 개념의 민족적 차이로도 언어와 방언이 구분된다는점이다. 이런 현상에 언어학자들은 "언어는 육군과 해군의 지원을 받는 방언이다"라고 빈정거릴 정도이다. 예컨대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방언이 아니라 별개의 언어로 규정하는 70퍼센트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는 듯하다. 실제로 내 스페인 친구들과 이탈리아 친구들은 서로 상대의말을 대부분 알아듣고, 약간만 공부하면 서로 이해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언어학자가 70퍼센트라는 기준을 적용하며 뭐라고 말하든 간에, 스페인 사람과 이탈리아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별개의 언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두 언어가 자체의 육군과 해군을 지닌 데다, 거의 1,000년 동안 별개의 정부와 교육체제를 지닌 때문이다. - P548

흔합어를 말하는 주된 단점은 언어의 기본적인 기능, "당신이 누군가에게 말하는 즉시, 당신의 언어는 당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상대에게 지체없이 알려주는 증명서 역할을 한다" 라는 기능과 관계가 있다. 전쟁 중에 간첩은 적군의 제복을 훔쳐 입기는 쉽지만, 적군의 언어와 발음을 그럴듯하게 흉내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당신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당신 편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신을 동국인이라 판단하며 당신을 도울 것이고, 적어도 곧바로는 당신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이방인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친구와 이방인의 즉각적인 구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예컨대 당신이 우즈베키스탄에 있는데 등뒤에서 누군가 미국식 억양으로 영어로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는가. 친구와 이방인의 구분은 과거에 훨씬 더 중요해서 (1장 참조), 종종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문제였다. 어떤 공동체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당신은 ‘우리 편‘으로 생각하는 어떤 집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의 경계에서 혼합어를 말하면 양쪽 집단 모두가 당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어느 쪽도 당신을 ‘우리 편‘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보호받지도 못한다. 이런 이유에서 언어집단들은 하나의 언어를 말하거나 하나의 방언 연속체를 형성하는 하나의 세계가 되지 않고, 수천 개의 개별언어를 말하는 세계로 분화된 것이 아닐까. - P552

언어 다양성과 상관관계가 있는 생태적 요인으로는 위도, 기후 변화, 생물학적 생산성, 지역별 생태학적 다양성이 주로 언급된다. 첫째, 적도에서 극지로 갈수록 언어 다양성은 감소한다. 다른 모든 조건이 똑같다고 할 때, 동일한 면적에서 고위도 지역보다 열대 지역에 언어가 더 많다. 둘째, 동일한 위도에서는 기후 변화가 계절 변화에 따라 일정하는 해마다 예측할 수 없이 변하든 간에 심한 지역일수록 언어 다양성은 감소한다. 예컨대 계절적으로 변하는 열대 사바나 지역보다 연중 내내 축축한 열대우림에서 언어 다양성이 높다. (위도와 계절적 특성 간의 상관관계를통해서, 계절에 크게 영향을 받는 고위도 지역보다 계절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열대 지역에서 언어 다양성이 높은 이유가 어느 정도는 계절적 특성이란 요인으로설명된다. 셋째, 생산성이 높은 환경일수록 언어 다양성은 증가하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사막 지역보다 열대우림 지역의 언어 다양성이 더 높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이런 결과는 사막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비생산적인환경이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일 수 있다. 끝으로, 생태적으로 다양한 지역일수록 언어 다양성은 증가한다. 특히 평평한 지역보다 험준한 산악 지역에서 언어 다양성은 높게 나타난다.
위에서 언급한 생태적 요인들은 상관관계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로는설명이 아니다. 언어 다양성을 근원적으로 설명하는 요인들로는 인구 규모, 이동성, 경제 전략이 주로 제시된다.  - P554

첫째, 언어집단의 생존 능력은 인구수에 비례한다. 50명난 사용하는 언어은 5,000명이 사용하는 언어보다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그언어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물학적 생산성이 낮은 지역은 사람도 많이 살 수 없어 언어 다양성이 떨어지고, 각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예컨대극지방이나 사막 지역의 경우, 한 집단이 자족하며 생존하려면 수만 평방마일의 면적이 필요하지만, 생산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수백 평방마일이면 충분하다. 둘째, 계절에 상관없이 해마다 환경이 일정하면 언어집단은 주기적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집단과 빈번하게 거래하지 않고 한 곳에 거주하며 자급자족할 수 있다. 끝으로, 생태적으로 다양한 지역에는 많은 언어집단이 모여 살 수 있지만, 각 집단은 생존을 위해 해당 지역의 생태계에 맞추어 고유한 경제 전략을 구사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고도에따라 생태계의 환경이 다르다면, 산악지역에는 산악 목축인과 농경인, 저지대의 강변에는 어민, 저지대의 사바나에는 목축인이 살 수 있다. - P555

무리사회에서 국가로 발전할수록 정치는 복잡해지며 언어집단의 인구와 면적이 증가하면 언어 다양성은 줄어든다. 예컨대 오늘날 미국은 동쪽해안부터 서쪽 해안까지 영어 하나만을 사용하는 국가이지만, 인구수는전 세계가 수천 개의 언어를 사용하며 수렵채집에 의존하는 무리사회와부족사회로만 이루어졌던 때의 인구보다 약 30배나 많다. 현재 미국 영토인 땅에 원주민 무리사회와 부족사회와 군장사회가 지배하던 때에는수백 개의 언어가 사용됐지만, 이제는 영어가 그 많은 언어들을 거의 대체해버렸다. 이런 변화의 근본 원인은 프롤로그에서도 말했듯이 인구가 증가하면서 정치가 덩달아 복잡해진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수십 명으로 구성된 사회는 지도자가 없어도 집단 회의에서 대부분의 결정을 내릴수 있지만, 수백만 명으로 구성된 사회를 끌어가려면 지도자와 관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정복하고 합병한 집단의 언어를 억압하고 자국의 언어를 강요한다. 관리의 편의성과 국가 통합을 위한 정책 때문에만 지배 언어가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정복당하고 합병된 사람들이 새로운 국가에서 경제사회적인 기회를 얻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지배 언어를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언어 다양성이 줄어드는 결과는 역사적 요인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세계 곳곳은 역사적으로 ‘언어 압살(language steamroller)‘에 의해 몸살을 앓았다. 인구수, 식량, 테크놀로지 등에서 유리한 집단이 그런 이점을 활용해서 이웃한 집단을 침략해서 그 지역에자신들의 언어를 강요하며 그곳의 토착 언어를 대체하거나, 그곳 사람들을 몰아내고 죽이거나 전향자들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흔했던 언어 압살은 강대국이 국가가 없던 종족의 땅을 침략한 때에 있었다. - P557

실제로 1960년대 미국과 아일랜드와 웨일스에서 시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에 비해서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언어적으로 현격하게 뒤떨어졌고, 언어의 구사 능력을 무척 느리게습득했으며, 각 언어의 어휘력도 크게 부족했다. 그러나 이 연구들에서는 이중인어와 인과관계가 없는 변수들을 무시한 것으로 밝혀져 이런 결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다른 나라보다 미국에서 이중언어는 특히 빈곤과 관계가 있다. 미국에서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과 영어만을 사용하는 아이들을 비교하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의 출신이어서 더나은 학교를 다니고, 부모가 제대로 교육을 받고 부유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고 어휘력도 풍부하다. 따라서 이런 상관관계에 있는 변수들만 고려해서는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의 언어능력을 올바로평가할 수 없다. - P567

둘째, 언어는 인간 정신이 창조해낸 가장 복잡한 작품이다. 언어마다소리와 구조가 다르고 사고의 패턴이 다르다. 따라서 한 언어가 사라지면 언어 자체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문학과 문화 및 많은 지식이 언어로 표현된다. 언어를 상실하면 그 언어로 표현된 문학과 문화와 지식도 대부분 상실한다. 언어마다 숫자체계, 기억장치, 공간의 방위체계도다르다. 예컨대 숫자는 영어보다 웨일스어나 만다린으로 세는 게 더 쉽다. 전통 사회는 주변에서 자생하는 수많은 식물과 동물의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 사회의 언어가 사라지면 민족생물학적 정보가담긴 백과사전이 사라지는 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만다린으로번역될 수야 있겠지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가 번역된 만다린으로만 읽힌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영어의 소멸을 인류의 손해라고 생각할 것이다. 부족사회 사람들도 자체의 고유한 구전문학을 지니고 있다. 그런 문학의 상실도 인류에게는 손해이다. - P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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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학자들이 150년 전 종교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이후로 채택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은 ‘기능적 접근법(functional approach)‘이었다. 학자들은 "종교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었고, 종교가 개인과 사회에게 막중한 비용을 강요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독신의 삶을 강요하고, 자식을 갖는 걸 포기하며, 거대한 피라미드를 짓는 데 물심양면으로 헌신하고, 소중한 가축만이 아니라 어린 자식과 자신까지 제물로 바치며, 똑같은 말을 지겹도록 되풀이하며 많은시간을 보내라고 요구한다. 종교에는 어떤 기능이 있어 그런 막대한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이득을 안겨주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는 애초부터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생겨났더라도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종교가 탄생하면서 인간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준 것일까? 기능적 접근법을 간략히 요약하면, "종교는 어떤 기능을행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컨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순종을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일 수 있다. - P489

다른 접근법, 즉 비교적 최근에 진화심리학에서 시작된 접근법은 이런주장에 반대한다.이접근법에 따르면, 종교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또 어떤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화된 것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어떤 군장이 종교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신하들에게 피라미드를 건설해야 한다고 설득하면 신하들을 더 쉽게 지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발한 생각을 어느 날 갑자기 떠올려 무(無)에서 종교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동료의 심리를 능숙하게 읽어내는 어떤 수렵채집인이 최근에 있었던 동료의 죽음에 낙담해서 사냥조차 나가지않는 부족민들을 염려해서, 그들에게 위안과 새로운 희망을 주려고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꾸며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종교는 우리 조상이었고, 그 위로 동물 조상이었던 생명체들이 지녔던 어떤 능력들의 부산물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 능력들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영향을 미치며 점진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획득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에서 파생된 접근법의 결론이다. - P490

믿음에 따르면, 다우저(dowser)라고 불리는 수맥탐사자가 쥐고 있는 갈라진 나뭇가지의 회전은 보이지 않는 지하수의 위치와 때로는 깊이까지알려준다. 따라서 땅주인들이 우물을 파야 할 곳을 알고 싶을 때는 다우저를 초빙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대조시험에서 확인됐듯이, 다우저가 지하수를 찾아내는 성공률은 무작위로 우물을 파는 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지질학자들조차 지하수의 위치를 찾아내기 힘든 지역의 땅주인들은 다우저에게 거액의 보수를 지급하며 지하수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물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우물을 파느라 더 많은 돈을 허비한다. 이런 믿음 뒤에는 우리가 성공한 사례만 기억하고 실패한 사례를 잊는다는 심리가 감춰져 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미신들이 성공 사례만을 증거로 삼아 진실처럼 굳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입증되지 않는 비과학적인 생각들은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하지만 작위적인 현상과 조작된 현상을 구분하는 대조시험과 과학적 방법은 반직관적이고 부자연스럽다. 따라서 전통사회에서 과학적인 접근은 눈에 띄지 않는다 - P504

요컨대 (비종교적인 의식과) 종교적인 의식이 아직도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불확실성과 위험에 직면할 때 그런 의식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의 이런 기능은 서구화된 현대 사회보다 불확실성과 위험에 더 자주 부딪쳤던 전통 사회에서 훨씬 더 중요했다. - P517

복잡한 대규모 사회에 비해서, 소규모 사회들은 세상의 거부와 구원과사후세계를 크게 강조하지는 않는다. 이런 차이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평등하던 소규모 사회가 복잡한 대규모 사회로 발전되면서 사회의 계급화와 불평등이 심화된 때문이다. 사회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왕과 귀족, 상류층과 부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가난한 농부들과노동자들을 지배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당신만큼 고통받는다면 불공평하다고 불평할 이유가 없고, 열망해야 할 좋은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본보기도 없다. 그러나 일부가 당신보다 훨씬 안락한 삶을 누리며 당신을 지배한다면, 설명하고 위안을 구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바로 그런 것을 종교가 제공한다.
복잡한 대규모 사회가 소규모 사회보다 위안과 사후세계를 강조하는두 번째 이유는, 수렵채집인이 농경인이 되어 더 큰 사회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삶이 더 팍팍해졌다는 걸 보여주는 고고학적이고 민족지학적인 증거에서 찾아진다. 농업으로 전환하면서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증가했지만 영양섭취는 악화됐다. 감염병과 신체 학대가 증가하며 수명이 줄었다. 실제로 산업혁명 기간에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위생과 건강과 오락은 축소되어 도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생활 조건은 크게 악화됐다.
세 번째 이유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복잡하고 인구밀도가 높은사회는 도덕률을 강화하고 선과 악을 거의 이분법적으로 구분한 까닭에 신정론의 문제가 더욱 심화된 때문이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며 법을 잘 지키는 데 범법자들과 세상은 우리를 잔혹하게 대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 이유가 누엇일까?
이런 세 가지 이유에서, 종교의 위안 기능이 역사적으로 나중에 발달하고 인구가 많은 사회에서 확대된 이유가 설명된다. - P520

앞에서 언급한 대로 종교의 기반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한 두 요인과학에게 빼앗긴 설명이란 종교의 원래 기능,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사회적 효율성의 증가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 기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위혐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현대 세계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심지어 성장하는 결과는 처음에는 의외로 여겨질 수 있다. 종교가 사라질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집요함 때문인 듯하다. - P521

누군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몸에 남기며 종교에 헌신하는 모습을보여준다면, 그저 입으로만 "나를 믿으시오. 나는 당신 편입니다. 나는지금 당신과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하지만 어제 샀더라면 더 싸게 샀을 것이고 내일이면 벗어 던질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믿음을 얻는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똑같은 이유에서, 진화생물학자들은 동물들의 신호(예컨대 공작의 꼬리)도 상대에게 믿음을 주려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진화한 것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암컷 공작이 커다란 꼬리를 과시하는 수컷 공작을 만나면, 우월한 척하지만 작은 꼬리를 가진 수컷보다 그 수컷이 그처럼 큰 꼬리를 갖고도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더 나은 유전자를 지니고 영양섭취도 좋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 P533

윌슨의 접근법에서, 어떤 종교의 신도수 증가는 교리의 사실 여부에관계 없이, 교리와 교리에 관련된 관례가 신도들에게 아기를 낳아 건강하게 키우고 개종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조직을 원만하게 꾸려가도록 어떻게 유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확인된다. 윌슨의 표현을 빌리면, "터무니없는 믿음도 현실 세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들을 자극하면 받아들여질 수 있다. (•••) 사실에 근거한 지식이 수용가능한 행동을 자극한다고 항상 그 자체로 충분하지는 않다. 때로는 사실과 동떨어진 상징적인 믿음체계가 더 성공한다. - 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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