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일곱 살인 베르너는 날아갈듯 가볍게 걷는 듯하다. 그는 또래보다 왜소하고 두 귀가 툭 튀어나왔으며 목소리는 높고 아름답다. 그의 새하얀 머리를 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선다. 눈 같고, 우유 같고, 분필 같다. 색깔이 없는 색깔이다. 매일 아침 그는신발 끈을 매고, 추위를 막기 위해 코트에 신문지를 채워 넣은 후세상을 조사하러 나간다. 그는 눈송이를 잡고, 올챙이를 잡고, 동면중인 개구리를 잡는다. 제빵사를 샅살 꼬드겨 팔지 못하는 빵을 얻어 낸다. 때마다 부엌에 나타나 아기들에게 신선한 우유를 준다. 배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조각으로 종이상자, 조잡한 쌍엽기, 장난감배 등 이것저것 만들기도 한다. 이틀에 한 번씩 그는 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서 원장을 깜짝 놀라게 한다. "엘레나 아주머니, 우린 왜 딸꾹질을 하는 거예요?"라든가 "엘레나 아주머니, 달이 엄청나게 큰데 왜 그렇게 작게 보이는 거예요?"라든가. "엘레나 아주머니, 꿀벌은 침을 쏘면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아나요?" 같은. 엘레나 아주머니는 알자스 출신 신교도 수녀로 감독 일보다는아이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새된 가성으로 프랑스 민요를 부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지만 셰리주에 맥을 못 추고, 선 채로잠들기 일쑤다. 어떤 날 밤에는 아이들에게 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프랑스어로 들려주느라 아이들이 늦게까지 깨어 있어도 뭐라고하지 않는다. 산과 마주한 아늑한 곳, 지붕에 2미터쯤 쌓인 눈, 포고를 알리는 관원과 추운 날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개울, 서리 내린 포도 넝쿨,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세상. - P44
두 눈 모두 선천성 백내장 치유 불가. "이것 보이니?" 의사들은묻는다. "이건 보여?" 마리로르는 앞으로 평생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살 것이다. 한때 그녀에게 익숙했던 공간 - 아버지와 함께 사는 방 네 개짜리 아파트, 그들이 사는 거리 끝에 있는 나무가 늘어선 작은 광장은 위험으로 가득 찬 미로가 되어 버렸다. 서랍들은 결코 있어선 안 되는 곳에 있다. 화장실은 아득한 나락이다. 물한 잔은 너무 가까이 있거나 너무 멀리 있고, 그녀 손가락은 너무크다. 언제나 너무 크다. 눈이 먼다는 것은 무엇인가? 벽이 있어야 할 곳인데 그녀 두 손에 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서 테이블 다리 하나가 그녀 정강이를 후벼 파는 것이다. 거리에서는 자동차가 으르렁거리고, 하늘에선 나뭇잎이 속닥거린다. 피가 그녀 귓속을 으스스 홀러 다닌다. 층계참에서, 부엌에서, 하다못해 그녀 침대 옆에서도 어른들의 목소리가 절망을 토로한다. "가엾은 아이." "가엾은 르블랑 씨." "지금껏 순탄하게 산 적이 없잖아. 저 양반 아버지는 전쟁 때 죽었지, 마누라는 애를 낳다 죽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저주를 받은 것도 아니고." "저애를 좀 봐 저 아버지를 좀 보라고." "애를 딴 데로 보내야만 해." 지난 몇 달 동안 마리로르는 타박상과 비참한 심정에 시달렸다. 범선처럼 높이 쳐 올라가는 방, 얼굴을 후려치는 반쯤 열린 문, 그녀의 유일한 성역은 침대이다. 그녀가 퀼트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려 덮고 있는 동안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 옆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더 피우며, 모형을 칼로 조금씩 깎고, 작은 망치로 톡톡톡 두드리고, 작은 샌드페이퍼로 슥슥슥 문지르며 리드미컬한, 마음을 달래 주는 소리를 낸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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