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1~3장), 사람과 장소를 근원적으로 연관된 개념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아렌트와 유사하다. 인권의 종말에 대해 논의하면서 아렌트는 장소의 박탈과 법적 인격의 박탈(그리고 그에 따른일체의 법적 권리의 상실)을 연결시킨다. 하지만 아렌트의 관심이 주로 정치적, 법적 문제에 맞추어져 있다면, 이 책은 공동체와 주체를 구성하는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층위로 시야를 확장한다. 사람은 법적 주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의례를 통해 재생산되는 성스러운 대상이기도 하다. - P26

신생아와 태아의 도덕적 지위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간과되기 쉬운데, 신생아가 사회 속으로 들어올 때 더이상 아무런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출생과 사회적 환대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었고, 그 기간 동안 아기는 아직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든가 배내옷을 입히는 것 등은 아기가 이 세상에 들어오지 못하고 문지방 단계에 있음을표시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아기는 통과의례(세례, 백일잔치)를 거쳐 사람이 되는데, 그 전에 죽을 경우 태아와 마찬가지로 장례식을 치르지않고 매장되었다. 사회에 따라 이 기간에 영아살해가 행해지기도 했다. 젖을 주지 않고 윗목에 엎어놓거나 인적이 드문 곳에 버리는 것 같은 단순한 방법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집안 식구들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이루어지는 이런 행위는 살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아기가 태어나는 즉시 국가가 개입한다. 아기는 출생과 동시에 사람으로 인지되며, 사람으로서 보호된다. 말하자면 출생이라는 사건이 통과의례를 대신하는 것이다. - P33

아렌트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인은 언제나 복수형으로, 즉 ‘주인들‘로 나타난다. 다른 말로 하면, 아렌트에게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2자적인 관계가 아니라 3자적인 관계이다. 주인과 노예가일대일로 대결하는 2자적인 관계에서는 결코 권력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우리‘를 만드는 능력이자, 우리 속에서 생겨나는, 행동의 잠재적 가능성이다.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행위하고 말하는사람들 사이의 잠재적 현상 공간인 공론 영역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함께 행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서 사람들이흩어지는 순간 사라진다." 주인들은 ‘우리‘를 만들 줄 알았기에, 권력이 있고 지배할 수 있다. 반면 노예는 고립되어 있기에 무력하다. 노예는 기껏해야 주인들에게 폭력violence으로 맞설 수 있을 뿐이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의 기원에 있는 원초적 폭력은 이렇듯 주인들이 폴리스를 구성하고 노예를 그 바깥에 두는 순간, 폴리스의 경계에 감추어져 보이지않게 된다. - P39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노예제도에 대한 장에서 고대의 전쟁들과 구별되는 현대전의 새로운 규칙들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그중 하나는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쟁의 목적은적국의 파괴에 있는 만큼, 우리는 그 방위병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한은 그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여적 또는 적의 도구가 되기를 그만두자마자 이들은 단순히 인간으로 되돌아오며 우리는 더 이상 이들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갖지 않는다. 이구절을 통해 루소는 전쟁의 승자는 패자를 죽이거나 노예로 삼을 권리가 있다는 그로티우스의 주장-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게 들렸을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구절이 고대의 전사들은 알지 못했던 어떤 "인도주의적" 전쟁 원칙을표현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루소가 이 원칙을 지지하기 위해 제시하는 거이다. 루소는 무기를 버린 적이 더 이상적이 아닌 이유는 전쟁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전쟁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이다. 전쟁 관계에서 개인이 서로 적이 되는 것은 우발적이며, 이때 개인은인간도 아니고 심지어 시민도 아니며 단순한 병사일 뿐이다. 조국의 구성원이 아니라 그 방위자일 뿐이다. 결국 국가적으로서 다른 국가만을가질 수 있을 뿐 사람들을 적으로 삼을 수는 없다" . - P41

전근대 비유럽 사회의 전쟁들, 특히 소규모 부족 간의 전쟁들은 전사들의 명예가 중시된다는 점, 그리고 전투가 의식화된ritualized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패싸움과 비슷한 데가 있다. 주경철에 따르면, 비유럽 사회의 전통적인 전쟁은 포로를 많이 잡아서 노예로 팔거나 부려먹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전쟁이 의식화되기 쉬웠고, 결과적으로 인명손실이 적었다. 그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예로 든다. "전쟁 초기에 양측은 가능한 한 많은 군사력을 동원하여 상대방에게 겁을 주어서 적의균형을 깨려고 한다. 그리고 초기에 몇차례 큰 성공을 거두어서 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신의 힘이 자기 편에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군대는 대부분 귀족들이 데리고 온 자기 휘하의 부하들인데, 귀족들은전장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잃는 것을 극구 피하려고 한다. 거느리는 사람 수가 많다는 것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어서 그들을 잃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전투의 규모에 비해 사상자가 많지 않았고, 승패는 흔히 몇 명의 용맹한 용사들에 의해 판가름났다. - P45

주경철은 서구 열강이 비유럽 세계를 손쉽게 식민화할 수 있었던 것은 총포의 힘 덕택이라기보다 전쟁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인들의 공통점은 더럽게 싸우고(즉 의식을 지키면서싸우지 않고) 더 나쁜 것은 죽이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대포가 아무런 극적 요소 없이 전사나 민간인들을 그냥 죽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라마틱한 싸움에 익숙해 있던 인디언들은그들이 보기에 전투가 아니라 학살에 가까운 유럽인들의 폭력 앞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 P46

이러한 비교가 비유럽인이 유럽인보다 덜 폭력적이었음을 함축하는것은 아니다. 포로의 손톱을 뽑고 머리 가죽을 벗기는 등, 비유럽인의전투 관행에는 유럽인들을 놀라게 할 만큼 잔인한 측면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잔인함이 과시적이고 의례적인 성격을 띠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적을 모욕하고 그에게서 사람으로서의 신성함을 박탈하는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는 적이 패배하기 전에는 사람이었음을 뜻한다.
반면에 현대전에서는 병사들이 처음부터 어떤 명예도 신성함도 갖지 못한 벌거벗은 생명으로 나타난다. 이들에게는 빼앗길 것이 목숨뿐이기때문에 전투의 목표 역시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것, 적을 최대한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된다. - P47

다른 사람의 생명, 자유, 재산을 침해한 자는 자연법을 위반했기에 자연적 공동체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잃는다고 로크는 말한다. 사형이 정당화되는 것은 이렇게 해서이다. 강조하는 의미에서 같은 문장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면, 그는 "전 인류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셈이기 때문에, 호랑이나 사자처럼 살해되어 마땅하다." 이 말은 두 가지를 함축하는데, 하나는 사형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형이 살인이 아닌이유는, 사형수가 숨을 거두기 전에 이미 사람자격을 박탈당하고 물건의 지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인류의 ‘자연적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한 가닥의 신성함도 걸치지 못한 벌거벗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으로서 지녔던 광휘는 온전히 이 공동체에서 빌려온것이기에,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은 그를 도살장의 가축처럼 두려움 없이 죽일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준다.다른 하나는 범죄자의 처형이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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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림자를 판 사나이

독자들은 [그림자를 판사나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원작의 이 소설은 1824년에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샤미소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프랑스대혁명 당시 아홉 살의 나이로 독일에 망명하여, 그 후 계속 독일에서 살면서 독일어로 글을 썼다. 이런 개인적 이력은 이 소설의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 - P7

보드리야르는 이 소설이 우화로서 일관성을 가지려면, 그림자가 영혼의 알레고리여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소외란 결국 영혼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샤미소가 그림자와 영혼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해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샤미소는 둘을 나눈다. 그에 따라 악마와의 거래도 두 차례로 나뉜다. 주인공은 첫번째 거래에서손실을 입은 뒤에도 다음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프라하의 학생의경우에는 두번째 거래가 없고, 첫번째 거래의 논리적 귀결로서 냉혹한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된다. 이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샤미소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팔아도, 즉 개개의 행동에 있어서는 소외되었어도 혼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강조는 원문). 하지만 개개의 행동에서 소외된 인간이 어떻게 혼을 구할 수 있겠는가? "개개의 행동에서 소외되었지만, 아직 혼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은 소외된 인간 자신의 착각(또는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소외의 극복")이 아니겠는가? "소외를 관념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좌절될 수밖에 없다. 소외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외는 악마와의 거래의 구조 그 자체,
상품 사회의 구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강조는 원문). 다시 말해  상품사회에서 인간은 영혼 상실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주장이다. - P14

라스칼은 "하인이란 본래 충실하지만, 그림자 없는 주인을 섬기지는 않는법"이라면서 자기를 해고해달라고 말한다. 만일 그림자가 영혼의 알레고리라면, 슐레밀은 돈보다 영혼을 더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소설에서 그림자는 영혼처럼 고상한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그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어떤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특수한 성격의 재산처럼 그려진다. 이는 딸의 혼사를 두고 미나의양친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미나의 어머니가 라스칼은 하인출신이라서 사윗감으로 부적당하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꾸한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아무도 탓할 수 없는 그림자를 갖고 있잖아." 라스칼처럼 비천하고 사악한 인간도 그림자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사위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이 대화는 그림자의 소유 여부가 신분이나 계급과는 별개라는 것도 알려준다. 실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을 제외하면 다들 그림자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림자가 조금 희미하거나 남보다 작을 수는 있겠지만(휴양지에서 만난 한 상인에 대해 슐레밀은 이렇게 회고한다. "한 번 파산한 적이 있지만 다시 재산을 모은 그남자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약간 희미하지만 커다란 그림자를 갖고있는 이였다"). - P16

나는 슐레밀에게 그림자의 상실이 일종의 스티그마stigma" 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그림자가 없는 그의 모습은 어디서나 남들의 시선을 끌며, 이어서 외면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더럽고 역겨운 것을보았을 때처럼 그를 멀리한다. 슐레밀의 행동 역시 스티그마를 지닌 사람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고, 밤과 그늘의 도움을 빌려서만 남들과 교제한다. 이는 그림자가 사람의 수행(또는 사람 연기performing person)과 관련 있는 어떤 것임을 시사한다. 스티그마란 어떤 사람의 사람자격personhood에 가해진손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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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 안에 든 돌은 밤톨만 하다. 이렇게 야심한 시간에도, 농가에서 비치는 빛만 받고도 위풍당당한 파란빛으로 타오른다. 묘하게 차가운 빛이다. 관장은 미끼가 세 개 있을 거라고 말했다. 진짜다이아몬드까지 합치면 돌이 네 개 있는 것이다. 하나는 박물관 뒤쪽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머지 세 개는 각기 다른 세 곳으로 보내질 것이다. 하나는 젊은 지질학자가 가지고 남쪽으로 갈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안 과장이 가지고 북쪽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하나는여기, 베르사유 서쪽 들판에, 자연사 박물관의 일급 자물쇠 장인인 다니엘 르블랑의 연장통 안에 있다.
모조품 셋. 진품 하나. 관장은 셋 중 누구도 자기가 진짜 다이아몬드를 가져가는 건지 모조품을 가져가는 건지 모르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진품을 가지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동하라고 말했다.
자물쇠 장인은 그가 지닌 다이아몬드는 가짜라고 혼잣말한다. 관장이 일개 장인에게 133 캐럿 다이아몬드를 줘서 파리 밖으로 내보낼 결심을 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이게 진짜 아닐까?
그는 들판을 자세히 살펴본다. 나무, 하늘, 건초, 벨벳처럼 내려오는 어둠, 이르게 뜬 희미한 별 몇 개, 마리로르는 잠들어 고른 숨을 쉰다. 셋 모두 진품을 가지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자물쇠장인은 돌을 다시 주머니에 넣어 끈을 맨 다음 배낭에 집어넣는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밀어 넣기라도 한 것처럼 가방 속 그 앙증맞은무게를 감지한다. 그것은 하나의 매듭이다. - P142

 비행기는 머리 위를 지나가면서 부드럽게 찢어지는 소리를 낸다. 비행기가 사라지기 무섭게땅이 우르르 진동한다.
밤하늘 한편, 벽처럼 늘어선 나무 너머로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다. 현란하게 번뜩이는 빛 속에서 그는 비행기가 한 대만이 아니라, 무리 지어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본다. 비행기 열두 대가 이리저리 급강하하다가 모든 방향으로 치닫는다. 일순 혼미해진 가운데, 그는 위가 아니라 마치 아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스포트라이트가 핏빛 물속을 환하게 비추며 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늘은 바다가 되어 있고, 비행기들은 굶주린 물고기가 되어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 P144

 그녀는 뿌듯하다고 말했다. 베르너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도 했다. "넌 영리한 아이니까." 그녀는 말했다. "넌 잘해 낼 거야." 그녀는 끊임없이 그의 옷깃을 바로 잡고 또 바로 잡았다. "일주일만 있으면 오는데요."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마치 몸속에서 일어난 홍수가 서서히 그녀를 잠식하기라도 하듯, 그녀 눈에 눈물이 서서히 고이는 것이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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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이 구름에서 지붕으로 지붕에서 처마로 졸졸 흐른다. 베르너는 그의 이마를 지붕창에 지그시 누르면서,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를, 코크스 제조 가마와 용광로와 가스 공장의 거대한 벽에 에워싸인 채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옥상들 중 딱 한 옥상 바로 아래 지붕을 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이 드러난 구불구불한 탑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탄광과 공장을, 수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땅을, 그의 시야 너머 마을과 도시들까지, 계속 빠르게 팽창해 나가는 독일이라는 기계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기 삶을 내려놓을 준비가 된 100만 명의 남자들을 응시한다.
안녕하세요. 그는 마음속으로 말한다. 아니면 하일 히틀러라고할까요. 모두가 후자를 택한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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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맞닥뜨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진다. 눈이 아파? 잘 땐 눈을 감고 자? 몇 시인지는 어떻게 알아?
그녀는 설명해 준다. 아프지 않아. 그리고 그들이 상상하는 것 같은 어둠은 없다. 모든 건 거미집, 격자, 그리고 소리와 결의 대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대 전시관 주변을 돌면서 삐꺽거리는마루청 사이를 빠져나간다. 박물관 층계참을 킁킁대며 오르내리는발소리를,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깍깍거리는 소리를 지친 할머니가 벤치에 앉으면서 내는 신음 소리를 듣는다.
색깔? 그녀에게 있어 색은 사람들이 예상 못 하는 어떤 것이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꿈속에서, 모든 것엔 색이 있다. 박물관 건물은 베이지색, 밤색, 개암색이다. 그곳 과학자들은 라일락색, 레몬 같은 노란색, 여우 같은 밤색이다. 경비실 무선 스피커에서 피아노 화음이 축 늘어져 내려와 짙은 검은색과 복잡한 파란색을 열쇠 보관실로 향하는 복도에 비춘다. 교회 좋은 창밖으로 청동빛 아치를 기울인다. 꿀벌은 은색이다. 비둘기는 적갈색과 황갈색이며 이따금씩 황금색도 있다. 그녀와 그녀 아버지가 아침 산책 때 지나치는 거대한 삼나무들은 은은히 반짝이는 만화경이며, 바늘잎 하나하나가 다각형 빛이다.

어린이 여러분, 집 난로 속에서 석탄 한 조각이 빨갛게 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떤가요? 석탄 한 덩어리는 한때는 초록빛 풀 한 포기였고, 100만 년 전에 살았던 양치류나 갈대예요. 아니, 어쩌면 200만 년 전, 아니면 1억 년 전에 살았던 건지도 몰라요. 1억 년이라니, 상상이 가나요? 풀잎들은 평생토록 여름이 되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빛을 받아들인 다음, 그 태양 에너지를 자기 안으로 흡수해요. 나무껍질, 잔가지, 줄기로 바꾸죠. 풀들은빛을 먹고 살아요. 우리가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풀이 죽어 땅에떨어지고, 어쩌면 물속으로 떨어져 썩어서 토탄이 되면, 그 토탄은 몇 년을 거치면서 흙 속에 켜켜이 쌓인답니다. 한 달, 십 년, 심지어는 사람의 한평생이담긴 그런 영겁의 시간이 그냥 바람 한 번 훅 분 것처럼, 손가락 두 개를 딱 부딪치는 순간처럼 지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토탄은 말라서 돌처럼 되고, 그걸 누군가 땅에서 캐낸 다음, 광부가 여러분 집까지 배달해 준답니다. 그걸어린이 여러분이 직접 난로까지 가져갈 수도 있겠죠. 그렇게 태양빛 ••• 1억 년이 된 태양빛이 오늘 밤 여러분의 집을 따뜻하게 해 준답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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