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져 있는 정체성의 규정 요소들, 예컨대 국적이나 출신 계급이나 인종이나 성별, 심지어 언어와 문화는 개인의 정체성 서사에 통합되는 한에서만 중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하고 부수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의 핵이 더 이상 이런 요소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바탕으로 정체성 서사를 써나가는 주체의 저자성authorship 자체임을 뜻한다.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나는 레즈비언이다")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 우리는 정체성운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지 못했더라도(펩femme이나 부치butch 같은 단어를 모른다 해도) 그저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인정을 표현할 수 있다("네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오늘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고 내일은 그것을부인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너 자신임을 인정한다". - P215

영아 유기가 성행한 로마에서, 그를 구조한 노예 상인은 그의 죽음을 유예했을 뿐, 그를 환대한 게 아니다. 그들의 관계를 특징짓는 것은 오히려 지속적인 적대이다. 노예 상인은 아무 때나 아이를 죽일 수 있고, 매질과 모욕으로 끊임없이 죽음을 환기시키면서 아이의 복종을 끌어내기때문이다.
이러한 고찰은 환대가 면책 혹은 망각과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부모는 아이가 자기들로부터 나왔고, 한때 자기들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부모는 무엇보다 아이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 자기들이고, 그들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이 망각으로부터 사회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 P217

‘주인‘은 내부에 타자들을 포함한다. 환대의 권리를, 칸트가 그랬듯이공간에 대한 권리이자 교제의 권리, 즉 친교의 가능성으로 충전된 현상학적 공간사회에 들어갈 권리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환대가 단지 이방인들이 겪는 문제가 아니며, 반드시 국경선과 관련된 문제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서류상으로 엄연히 미국 시민이었지만, 공공장소에대한 접근권이라는 면에서 외국인보다 못하였던, 민권운동 이전의 미국 흑인들이 좋은 예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라는이유로 다른 사람들 틈에 끼지 못하고 고립된 삶을 살아야 했던 무수한이들은 또 다른 예일 것이다. 환대의 권리가 인류의 구성원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라면, 이 권리를 부정당하는 사람은 ‘인류 공동체‘에속한다는 사실을 부정당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환대란 어떤 사람이 인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행위, 그가 사람으로서 사회 속에 현상하고 있음을 몸짓과 말로써 확인해주는 행위라고 말하기로 하자.  - P229

법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확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환대란 타자를 도덕적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환대에 의하여 타자는 비로소 도덕적인 것 안으로 들어오며, 도덕적인 언어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바로 환대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푸코의 비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는 사회 안에서어떻게 끊임없이 전쟁이 작동해왔는가를 보여주면서, 전쟁을 국경으로몰아내는 것만으로는 사회를 절대적 환대의 공간으로 만들 수 없음을암시한다. 전쟁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언제나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하는 사건으로 남아 있는 한, 사람들은 그들의자리의 안정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그들은 언제라도 인민의 적으로규정되어 성원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환대는 그러므로 전쟁의 문제를해결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환대에 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간주되는칸트의 유명한 텍스트에 ‘영구평화론‘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는 점을상기시키고 싶다. 칸트는 보편적인 환대를 영구평화의 조건으로 제시한셈이지만, 우리는 그 역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구평화야말로 절대적 환대의 조건이라고 말이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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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혼자 마네크 부인의 방 안에 서서 페퍼민트, 양초, 육십 년에 달하는 충절의 냄새를 맡는다. 가정부, 간호사, 어머니, 공범, 상담자, 요리사였던 마네크 부인은 에티엔에게 어떠한 만 가지 존재였나? 다른 모두에게는? 독일 선원들이 취해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스토브 위에서는 거미 한 마리가 매일 밤 새로 집을 짓는데, 이것이 마리로르에겐 이중의 잔혹함으로 다가온다. 다른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지구는 자전하면서 단 한순간도 멈추는 법 없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이. - P159

 룸펠은 루페 확대경으로 그 돌을 검사한 후 각각의 투명도를-인클루디드, 슬라이틀리인클루디드, 올모스트 루페클린* ㅡ 큰 소리로 알린다. 다섯 번째로, 게프라이터가 평가 내용을 기록할 것이다.
"모든 과정을 마칠 때까지 열 시간 교대로 일할 것입니다."
룸 펠은 고개를 끄덕인다. 벌써부터 등뼈가 쪼개지기라도 할 것같은 느낌이다. 게프라이터가 그의 테이블 밑에서 맹꽁이자물쇠를채운 자루를 끌어내 목부분을 감은 사슬을 풀더니, 벨벳 안감을댄  쟁반에 대고 뒤집는다. 보석 수천 개가 쏟아져 나온다.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 황수정, 투명감람석, 금록석, 그 사이에서 작은다이아몬드 수만 개가 반짝거린다. 대개는 여전히 목걸이, 팔찌, 커프스단추, 귀걸이에 박혀 있다.
첫 번째 사병이 그 쟁반을 자기 위치로 가져가선 약혼반지 하나를 바이스에 단단히 고정한 다음, 핀셋으로 거미발에서 비틀어 올린다. 곧 다이아몬드가 빠져나온다. 룸펠은 테이블 아래 다른 자루들을 센다. 아홉 개. "어디서 이것들을 전부……"
그는 질문을 하다 말고, 그것들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게 된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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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나 가자미 모두 갓 부화한 새끼일 때는 다른 물고기와 같이 눈이 양쪽에 하나씩 붙어 있다. 그러나 3주 정도 지나 몸길이가 10밀리미터 정도로 성장하면 눈이 이동하는 변태를 하게 된다. 넙치 종류는 오른쪽에 있던 눈이 왼쪽 눈 옆으로 이동하고, 가자미 종류는 반대로 왼쪽 눈이 오른쪽 눈 옆으로 이동하게된다. 이때부터 물 밑바닥에 바짝 붙어서 저서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눈의 위치뿐만 아니라 몸 색깔도 달라져 등 색깔이 주변의 모래나 진흙과 같은 색으로 바뀐다.
에른스트 헤켈이 말한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명제에 따라, 생물 개체의 발달 과정에서 양쪽에 있던 눈이 한쪽 방향으로이동한 것을 보고 진화 과정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왔다. 그런데 몇 년 전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Nature』에 눈이 몸의좌우측 중간에 위치한 가자미목 어류의 5000만년전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논문이 실려 이 추측을 사실로 입증하였다. - P120

복어는 어떻게 몸에 독을 가지게 됐을까? 이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먹이에 의한 것인지, 체내에서 자체 합성하는 것인지를 놓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복어의 독성이 개체 및 서식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복어가 스스로 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먹으를 통하여 독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측하는 경향이 우세하다. 이러한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실험실에서 부화하여 양식된 복어에는 독이 거의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독이 있는 자연산 복어의 소화관에서 복어의 독을 가지고 있는 조개껍데기가 발견되었고 어떤 복어는독을 가진 납작벌레를 먹이로 하는 것으로 미루어, 적어도 일부는 먹이사슬에 의하여 독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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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구성적 모순은 우정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볼 때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다. 우정은 선택을 전제하지만, 그 선택의 기준이 지위나 부 같은 물질적 조건이어서는 안 된다. 우정에 대한 많은 격언들은 벗을 선택할 때 오직 그의 영혼만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우정이 주고받음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이상, 물질적인 문제를 무시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을 초래한다. 먼저 우정이 선택적인 관계임을 분명히 하기로하자. 이 점에서 우정은 환대와 다르다. 환대는 시민적 의무이지만, 우정은 의무가 아니다. 환대를 거부하는 것(환대를 표현하지 않는 것 또는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모욕으로 해석되지만, 우정을 거절하는 것은 모욕이 아니다. 환대는 우정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보편적인 환대에 기초해 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잠재적으로 친구임을뜻한다. 하지만 확대가 우정으로 나아가는 데는 차별화의 원리가 작용한다. 우정은 차별성의 인정("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이다.  - P174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또 하나의 방법은 효도나 돌봄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 가족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이다. 조금 전에 생활보호 대상자를 애완동물에 비유했지만, 한국에서는 애완동물이 될 자격조차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폐지를주워 팔면서 혼자 사는 노인이 장성한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권을 얻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사례를 조명할 때 언론은 이 장성한 자녀에게 실제로 부양능력이 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만일 부양 능력이 있는데도 노인을 모시지 않는 거라면, 그 자녀는 ‘인륜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는다. 요컨대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도덕과풍습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의 한계‘가 논의되는 것은 자녀 역시 막노동을 하거나 몸져 누워 있는 등 극단적인 빈곤 상태에 처해 있을 때뿐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 사회는 B와 같은 사람들을 일차적으로 A의 위치로 옮겨놓으려 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만 공적부조 시스템을 가동한다. 우리는 ‘가부장제를 보완하는 국가‘라는 말로 이러한 시스템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국가는 사회의 기초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가족을 부양자와 피부양자, 대표자(호주)와 나머지구성원으로 나눈다. ‘경제‘와 ‘정치‘에 접속되어 있는 사람(돈을 벌어오고 신문을 읽는 사람은 전자, 즉 부양자-대표자이다. 후자 역시 소비자이자 유권자로서 경제와 정치에 연결되어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제한적이며 수동적인 성격을 띤다. - P184

"우리가 가족에게 애착을 느끼는 것은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이들을 그 사람 자체로서 좋아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이와 달리, 물건에서 비롯되는 유대가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유대보다더 중요하였다. 가족이라는 조직 전체는 무엇보다 재산을 잘 관리하는것을 목표로 삼았고, 사람에 대한 고려는 부차적이었다."
한마디로 가부장제는 이념형으로서의 현대 사회와 원리적으로 대립한다. 현대 사회는 모든 구성원이 사람으로 나타나는 사회이며, 지위나역할 또는 이해관계를 떠나 사람으로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사회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가 모두에 대해 우정의 가능성을열어둔다. 가부장제는 이 이념형의 대립물을 구성하는데, 우선 집주인= 남자만 온전한 사람의 지위를 누리고 나머지 구성원은 그의 소유물과 비슷한 처지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물건에대한 관심이 가족 관계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가부장제에서 여자와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성원권의 불완전함은 우정의 제약으로 이어진다. 우정은 남성적인 미덕이며, 주로 남성 주체의 인격적 성숙이라는 테마와 결부된다. - P186

우정의 조건은 절대적 환대이다. 환대의 조건 또는 한계에 대한 논의들이 암시하는 바와 달리, 절대적 환대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어떤 벽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 공동체‘에 대한 환상은 매우 오래된 것이다. 혁명의 시간이나 축제의 시간에 사람들은 실제로 그런 공동체의 임재를 경험하곤 한다. 하지만 절대 공동체를 시적 형태가 아니라 산문적 형태로 현실 속에 고정시키려는 시도는 번번이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문도 없고, 문지방도 없으며, ‘자기만의 방‘ 따위는 더더구나 없는 그런 공동체에서 우정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는 비밀을 간직할 수도 고백을 할수도 없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일도 함께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97

고래들의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이 고대의 코즈모폴리스를 조직하는 원리는 열린 커뮤니케이션 - 누구나 제약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하지만 그것이 열려 있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고래들은 아무 매개 없이 동시성 속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직접 연결되어 있다. 동일한 소리의 장 안에 갇혀 있기에, 그들은 교신 대상을 선택할수 없으며 침묵 속으로 물러날 수도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서로에게 청각적으로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언제나 상대방을 침범할 수 있고, 또 상대방에 의해 침범될 수 있음을 뜻한다. 반면 도서관의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영혼들은 책을 매개로 서로에게 접근한다. 그들을 연결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소통 가능성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지평 전체를 감싸는 소리의 궁륭이 아니라, 도처에서 조용히, 산발적으로일어나는 교류들이다. 이 교류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것과 혼자 책 속으로 침잠하는 것을 모두 포괄한다. 독서와 대화 사이에는 아무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독서는 또 다른 대화 - 비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 P200

절대 공동체에 대한 환상은 이처럼 ‘개인이냐 공동체냐‘라는 잘못된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벽을 없애는 것ㅡ 문자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공동체에 대한 옹호는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쉽게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는 결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며, 공동체 정신을 추구하는 것과 사생활의 자유를 갖는 것 사이에는 본디 아무 모순도 없다. 개인에게 자리/장소를 마련해주고 그의 영토에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역할인 까닭이다. 뒤르켐이 지적했듯이, 공공성이 강화될수록 사생활의 자유는 오히려 커진다. 가부장제 하에서 기혼 여성과 미성년 자녀는 사생활의 자유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집안에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고, 가부장의 눈치를 보면서 일종의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한다. 물론 가부장의 성격이 어떠냐에 따라 그들이 느끼는압박의 정도는 달라진다. 하지만 가부장이 언제든지 그들을 야단칠 수있고 심지어 때릴 수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개인 공간에 대한 침범은 최종적으로 몸에 대한 침법으로 나타난다. 몸은 자아의 마지막 영토이자, 나머지 영토들 - "개개의 인간 존재를 둘러싼 가상의 구"에 대해개인이 행사하는 주권의 원천이다). 그런데 가부장이 이런 권력을 행사할수 있는 것은 국가가 가정을 가부장의 사적 영토로 간주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개입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가부장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사생활 박탈은 그들이 공공의 힘이 미치지않는 곳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 P202

그러므로 환대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동학대방지법을 만드는일,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는 일, 집 없는 사람에게 주거수당을 주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일은모두 환대의 다양한 형식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현대적이상은, 생산력이든 자본주의의 모순이든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떤 자동적인 힘에 의해 앞으로 굴러감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러한 공공의 노력을 통해 실현된다. - P204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는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이다." 우리는 이것을 세 가지 층위에서 확인한다. 첫째, 모든 인간 생명은 출생과 더불어 사람이 된다. 둘째, 공적 공간에서 모든 사람은 의례적으로 평등하다. 셋째,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정체성서사의 최종 편집권은 당사자에게 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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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낙인으로 취급되는 속성들은 다음과 같다. (1) 신체의 괴물스러움 (2) 정신적인 면에서의 결함(의지박약, 비정상적 열정, 잘못된 신념, 부정직 등), 어떤 사람이 감옥에 있었거나 마약중독이거나 동성애자이거나 극적이거나 실업자이거나 자살을 시도했거나 정신이상일때 우리는 그에게 이런 결함이 있을 거라고 추론한다. (3) 특정한 인종, 민족, 종교에 속해 있다는 사실. 여기서 기인하는 낙인‘종족적 스티그마‘은 가계를 따라 전해지며 가족 구성원 모두를 오염시킨다. 이러한 속성들은 지나치게 눈길을 끌어서 그것을 지닌 사람의 인격의 다른 측면들을 눈에 띄지 않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낙인을 지닌 사람이 언제나 배척당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준다는 이유로, 혹은 신체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는 이유로 격려와감사의 편지를 받는 장애인처럼, 낙인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받고사랑받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관심의 대상은 그의 인격 전체가 아니라 인격에서 돌출된 부분, 즉 낙인이다.
현대 사회는 낙인의 존재를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낙인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엄의 관념은 낙인을 초래하는 불명예스러운 속성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높이거나 낮추는차이들이 모두 사소하고 우연적이며 비본질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내포한다. 이에 따라 낙인자the stigmatized와 정상인the normals의 만남은 어떤종류의 기만을 수반하곤 한다. 정상인은 낙인을 포용하는 듯한 몸짓을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낙인자가 자신과 동등한 인간임을 믿지 않는다. 미디어에 종종 나오는, 낙인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통합 의례 - 고아들에게 키스하는 연예인,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정치인 등등-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사회‘를 대표하여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는 이 정상인들은 자기 앞에 있는 낙인자들을 아무나 덥석 껴안음으로써 자기가 그들에 대해 아무런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과시하려한다. 하지만 정상인들이 이렇게 낙인자들의 몸을 함부로 만질 수 있는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관계의 불평등성을 드러내는것이다. - P122

말하자면 고프먼은 의례의 교환에 참여할 자격이라는 측면에서 다음 세 가지 경우를 제시하는 셈이다. 의례의 교환에 동등한 자격으로참여하면서 상대방에게 존중의 의례를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경우, 특정한 행동 노선을 따를 때만 조건부로 의례 교환에 참여할 수 있는경우, 의례 교환의 장에서 배제되어 ‘탈인격화‘의 과정을 겪는 경우, 여기서 뒤의 두 경우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원권이 불완전하다고 할 수있다. - P127

모욕을 의례적 코드의 위반으로 정의할 때 생겨나는 역설은 의례적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 즉 행위자들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의례적 권리/의무가 달라지는 사회에서는 의례적 지위가 낮은 사람(실제로 모욕적인 대접을 받을 가능성이 큰 사람일수록 이론적으로는 더 적은 모욕을경험한다는 점이다. 왕이나 영주처럼 고귀한 신분에게는 작은 결례도큰 모욕이 될 수 있다. 모욕은 그것이 손상시키는 것, 즉 명예의 중대함에 비례하여 중대해지기 때문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일수록 그에게 저질러질 수 있는 무례함의 한도가 커진다. 노예처럼 아무런 명예를 갖지않은 자에게는 어떤 행동을 해도 모욕이 되지 않는다. - P127

결투는 모욕에 대한 제도화된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행위자들은 이를 통해 자신이 명예를 가진 인간임을 주장한다. 모욕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예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는 뜻이므로, 결투 사회의 구성원들은 모욕을 당했을 때자기가 실제로 느끼는 모욕감과 별개로 결투를 신청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낀다. 결투는 신분적 특권이지만, 이런 의미에서 의무이기도 하다.
모욕을 씻을 기회가 남아 있는 한, 모욕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아직 불명예가 아니다. 모욕당한 자가 신분에 어울리는 명예 의식을 보여주못했을 때 모욕은 비로소 진정한 불명예로 변한다. 그는 그가 속한 집단 - 귀족, 신사, 또는 남성에 속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들으며, 자격이 없는데도 그 집단에 계속 남아 있음으로써 그 집단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이 된다.  - P128

우리는 순수한 폭력, 아무런 상징성도 띠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폭력과 의례로서의 폭력을 구별해야 한다. 체벌은 폭력인 동시에 일종의 의례이다. 체벌이 체벌당하는 사람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말해준다. 다른 모든 의례와 마찬가지로, 체벌은 맞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을 포함한 행위자 모두가 행위의 의미와 절차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그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무언의 협력을 할 때만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 P129

우리는 이렇게 해서 모욕의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모욕은 타인의 인격을 부정할 뿐 아니라 그러한 부정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사람의 동의를 강요한다(모욕하는 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개새끼야. ‘나는 개새끼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복창해. 이제 개처럼 엎드려서 내 발을 핥아). 하지만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의 일부이며, 질서의 일부이다. 결국 모욕은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폭력이다. - P131

신분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근대화(또는 현대화modernization)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바꾸어놓는다. 우리는 근대화를 하나의 위치 체계에서또 다른 위치 체계 수직적인 구조에서 수평적인 구조 또는 개인들의 위치가 고정된 체계에서 이동성이 높은 체계로의 전환이나, 부와 특권을 분배하는 특정한 원리에서 또 다른 원리로의 이행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인력거꾼 김첨지 같은 이들이 ‘똑같은 사람‘으로 여겨지기 시작하고, 사람대접을 받게 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니면 근대화란 신분적인 정체성 외에 다른 정체성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들 모두를 감싸고 있는 ‘사회‘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사회의 발견‘은 근대화의 핵심적인 사건이다. - P142

사회가 19세기에 비로소 발견(또는 발명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논자들은 이 개념의 확산을 빈곤의 문제에 대한 국가적 개입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사회주의적인정책들은 빈민에 대한 시혜이거나(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혁명론』 빈곤이 가져오는사회적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자크 동즐로, 『사회보장의 발명 정도로 그 의의가 축소된다. 이 점에서 아렌트의 우파적인 비판과 동글로의 좌파적인 비판은 기묘하게도 수렴된다. 흥미로운 점은 아렌트는 사회가 발견되는 시점을 로베스피에르의 집권기로 잡고 있는 데비해 동즐로는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변질되는 1848년으로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사회의 발견은 그 전까지 사회 성원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신분 질서가 와해되면서 공적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 것과 관련이 있으며, 사회정책의 실시에는 이들이 사회 성원으로서 어엿한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을 마련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아렌트의 견해와 달리 사회적 권리의 인정은 ‘정의의 정치‘에서 ‘동정의 정치‘로의 이행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 정의의 정치를 인민 전체에게 확대하기 위한 조건인 것이다. - P146

또한 나는 신분의 폐지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필연적인 것도 아니고(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에서 결정적인 것도 아님을 상기시키려 한다. 한국 사회가 신분제로 회귀하고 있다는 증거는 많다. 단지 소득수준이나교육수준이 아니라 주거지, 학교, 소비시장, 심지어 언어 (이중언어 사용과 단일언어 사용)에서 계층적인 분리가 뚜렷해지고 있고, 법은 그것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촉진하는 중이다. 즉, 한두 개의 기준이 아니라 모든 기준에서 구별되는 특수한 계층들이 생겨나 사회 안에 별개의사회를 형성하고 있는데, 신분이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반동‘이라고 일컫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일 것이다(반동‘이란 거꾸로간다는 뜻이며, 역사가 결국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기대를 드러낸다). 긴 안목에서 본다면 신분의 폐지는 인류의 역사상 매우 이례적이며 삽화적인 사건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 P166

마지막으로 나는 신분주의와 학교 폭력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고싶다. 우리 사회의 신분주의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가장 날카로운 경고음은 교실에서 나온다. ‘일진‘이 더 이상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실 내의 위계는 사회의 위계를 닮았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지배 문화의 요구에 가장 잘부응하는 아이들이 꼭대기에 있고, ‘자본‘이 가장 부족한 아이들이 밑바닥에 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은 아래 있는 아이들을 괴롭힌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장난삼아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관계를지배하는 감정은 경멸이다. 학교는 겉으로는 존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모욕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힘센 어른은 힘없는 아이들을 막 대해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겉치레로 하는 말과 진짜 메시지를 구별할 만큼 영리해진 아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아이를 경멸함으로써 학교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마치 어른들이 입 밖에 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의 진실을 아이들이 연극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날마다 상연되는 잔혹극. 그러니 이 연극에서 몇명쯤 죽어나가더라도 너무 호들갑 떨지 말기로 하자. 지금 아이들은 사회에 나갔을 때 꼭 필요한 두 가지 기술-경멸하는 법과 경멸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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