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의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서 공화당원들이 메디케어에 생각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는쉽다(실제로 많은 공화당원이 메디케어에 생각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오늘날 어떤 정당이 더 많은 건강보험 보장을 지지하는지를 두고서 유권자들이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정당 사이의 선택은 훨씬 더 선명해졌다.
또 다른 예로 임신중단 문제를 보자. 1982년 상원의원 조 바이든은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 Wade‘의 판례를 뒤집을 수 있는 헌법 수정안에 찬성했다. 그는 당시 그 투표를 두고 "미국 상원의원으로서 내가 던진가장 어려운 투표"였다고 말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은 자신의 양육 과정을 들어 그 결정을 설명했다. "여러분이 뭐라고 표현하고싶으시든 간에, 나는 아마도 내 배경의 피해자이거나, 부산물일 것입니다." 그는 또한 정치적 순간의 산물이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에 반대했지만, 그의 부통령 넬슨 록펠러는 뉴욕주 주지사로서 임신중단 제한 조치를 폐지했다. 1976년 공화당 정강은 임신중단을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렵고논쟁적인 질문들 가운데 하나"라고 일컬었다." 이어 "우리 당에는 필요한 경우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대법원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고, 모든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개헌으로 대법원의 결정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원들도 있다"라고 하며 공화당 내부의 분열을 인정했다. 의회에서도 비슷한 수의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투표를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원이든 공화당원이든 상관없이 임신중단은 어떤 경우라도 합법이어야 한다고 말할 가능성과 어떤경우라도 불법이어야 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같았다.
오늘날 바이든은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를 뒤집으려는 보수 진영의 노력에 대해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유해합니다. 그리고 우리는그것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공화당 정강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고 있지 않다. 공화당의 2016년 정강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확고히 하며,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침해 불가한 생명에 대한 기본권을 가지고있음을 단언한다." 임신중단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을 지지하는 공화당원들을 인정하기는커녕, 그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민주당원들을 공격한다. 또한 그 정강은 "민주당의 임신중단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임신중단에 대한 기본적인 제한에 대한 강경한 반대는 그들을 미국국민의 생각과 극적으로 멀어지게 한다"라고 선언한다. 건강보험 문제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 공화당 내에는 임신중단에 찬성하는 사람이있었고, 또한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유권자는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비빌 언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여지가 없다. 민주당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지지하고 공화당은 반대한다. 정치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어도 이것은 알 수 있다. - P43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하스연구소Haas Institute의 인종정치 프로젝트 책임자인 이안 헤이니 로페즈lan Haney Lopez는 20세기 미국을 ‘헤렌볼크Herrenvolk -지배 민족만을 위한 민족주의-옮긴이 자유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다수 인종 집단에게는 민주주의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매우다른 정치 제도다. 헤이니 로페즈는 "헤렌볼크 자유 민주주의는 백인들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사회의 부를 어떻게 하면 계속 아래쪽으로, 바깥쪽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며 번영을 공유하고 확장했습니다. 백인들에게 민주주의는 매우 잘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었다. - P55

사실상 남부연합의 정치적 위계질서가 남부에서 복원되면서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의 힘과 정치적 거래주의의 힘을 합치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심지어 전국 단위의 민주당이 옛 영토를 회복하고자 하는인종주의자들에게 이끌리지 않았을 때도, 영토가 종종 군벌들에게 내맡겨지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남부는 군벌들의 손에 내맡겨졌다. 그리고 남부 민주당은 권력자들의 이익에 봉사했다. 전국 단위의 민주당은 뉴딜 정책의 의회 통과, 대통령 선거 승리, 인프라 건설에 신경을 썼다. 전국 단위 민주당은 그들에게 중요한 표를 줄 수 있는 남부 민주당과 함께 일하는 것과, 탈당해서 민주당 국정 과제를 방해할 수 있는 남부 민주당에 도전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남부 민주당을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 P56

남부와 민주당의 연합은 결코 순수하게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로 민주당원이었고, 당에 대한 충성은 지역 정체성으로굳건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최초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따라서 공화당에 대한 남부의 적대감은 뼈에 새겨진 것처럼 확고했다. 민주당은 부자에게서 가난한 사람에게로 부를 재분배하는 것을 지지했다(북부는 부유했고 남부는 가난했다). 프린스턴대학교교수 하워드 로젠탈Howard Rosenthal은 "20세기가 될 무렵, 남부 민주당은 민주당 내부의 좌파를 대표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스트였습니다. 당시 부의 재분배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에서 걷어서 가난한 남부에 주는 것이었습니다. 의회에서 인종 문제는 의견 불일치의 영역으로서 논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인종은 의견 불일치의 영역이 되었다. 민주당은 부유한 북부 백인들에게서 가난한 남부 백인들에게 부를 재분배하는 것만을 원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부유한 백인들에게서 가난한 흑인들에게로 부를 재분배하기를 원했다. 더군다나 1948년부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내린 군대 내 인종 분리 폐지 명령과 함께 민주당은 남부와의 기본 협약을 배반했다. ‘주의 권리‘를 정강으로 내걸고 출마한 배리 골드워터가 공화당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옛 남부연합의 많은 부분을 대변했다.
민주당이 어떻게 민권을 포용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복잡하다. 이 이야기에는 린든 존슨이나 휴버트 험프리와 같은 정치인들의 이상주의뿐만 아니라, 북부에서 비백인 유권자들을 포함하기 시작한 선거 연합체들이라는 냉정한 계산법이 포함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학적 진보주의의 논리적 결론에 따라, 왜 비백인 미국은 계속 가난한지에 대한 관심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 P58

 카바서비스는 "결국 하원 투표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원에서도 민주당 의원들보다 공화당 의원들이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민권법의 토론 종결과 통과에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경우 5분의 4가 넘었지만, 민주당의 경우 3분의 2에 불과했다"라고 썼다.
그런데 왜 민주당이 민권법을 통과시킨 정당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민권법을 통과시킨 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었고, 대통령도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들은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딕시크랫과의 동맹을 끝내기로 했다. 존슨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던 빌 모이어스Bill Moyers는 존슨이 민권법에 서명한 날 밤 침실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대통령을 보았던 일을 회상했다. 존슨이 "난 우리가 앞으로 오랫동안 남부를 공화당에 넘겨주게 되었다고 생각하네"라고 말했다고 모이어스는 기억한다."상원 다수당 원내 대표 시절 남부 민주당에 의한 인종적 평등 봉쇄를 시행했던 존슨의 말이 옳았다. 민주당의 남부 지역에대한 장악력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바로 그때가 약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 P59

남부는 민주당 텃밭이었지만, 한때 진보주의의 비전이었던 주의 재분배와 계층 상승이 흑인에게까지 확대되자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남부 민주당은 공화당과 타협할 이념적 이유가 있었고, 전국 단위 민주당과는 타협해야 할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남부 권력은 민주당을 원래보다 덜 진보적으로 만들었고, 공화당의 의회 권력을 원래보다 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당이 그 시대의 가장 깊은 정치적 분열을 두고 갈라지는 것을 막았다.
여기서 우리는 혼합 정당들 시대의 표 분할의 힘과 목적을 확인할수 있다. 남부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에, 의회와 주지사 선거에서는 보수적인 딕시크랫 민주당에 투표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 정치가 날카로운, 심지어는 폭력적인 의견 차이로 분열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러한 싸움이 정당과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속될 수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다. 민주당이 민권을 포용하고 공화당이 그 법안에 반대하는 지도자 뒤로 결집하기로 한 것은 남부 보수주의자들이 공화당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이것은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의 발판이 되었다. - P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정당은 지름길이다. 미국정치학회 보고서는 정당을 ‘통치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라고 했는데, 정당이 "조치를 위한 대안들 사이에서 적절한 선택권을 유권자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세금의 적정 수준을 모르고, 시리아 상공에 비행 금지 구역을 만드는 게 옳은 건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당, 공화당, 녹색당 또는 자유당을 지지하는지는 안다. 당을 선택하는 행위는 국가가 직면한 광범위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가치들을 정확한 정책 판단으로 바꿀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선택하는 행위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있어서 공적인 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기뢰는 선거에서 정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라고 썼다. - P29

「모든 정치는 전국적이다All Politics Is National」라는 분석에서, 에모리대학교의 정치학자 앨런 어브래머위츠Alan Abramowitz와 스티븐 웹스터 Steven Webster는 20세기 후반에 어떻게 그런 행동 양식이 약해지고 또다른 천 년의 경계를 넘으면서 사실상 사라졌는지 보여준다. 어브래머위츠와 웹스터는 경합이 이뤄지는 하원 선거 지역들을 조사한 결과, 1972년과 1980년 사이 하원 선거에서의 민주당 몫과 대통령 선거에서의 민주당 몫 사이의 상관관계가 0.54 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2년과 1990년 사이에 그 수치는 0.65 까지 올라갔다. 2018년경에는 0.97에 달했다!  40년 사이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는 하원의원 투표에 있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수준과는 거리가 있는‘ 지지 예측변수에서 ‘거의 완벽한‘ 지침으로 바뀌었다.
표를 나눠주는 것은 두 정당에 대해 편안함을 느낄 때 가능하다. 즉, 한 당에 표를 몰아준다는 것의 이면에는 두 정당에 대한 편안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있다.  - P35

언뜻 보기에 이 두 가지 경향은 상반된다. 어떻게 유권자들이 투표는 이전보다 당파적으로 하면서 당에서는 더 멀어질 수 있을까? 정당에 대한 일관된 지지와 정당에 대한 충성도는 연결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고려해야 하는 핵심적 개념은 ‘부정적인 당파성‘이다. 이것은 지지하는 당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아니라 반대하는 당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기인하는 당파적 행동을 말한다. 만약 당신이 지지하는후보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단순 무식하거나 사회주의자인 상대 후보의 당선이 두려워서 투표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부정적인 열성 당원이었던 것이다. 많은 이가 부정적인 열성 당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6년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한 조사에따르면, 자칭 무당과 유권자들은 부정적인 동기에 더 이끌렸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성향을 보이는 대다수 무당파 유권자들은 자신의 성향에대한 주된 이유를 설명할 때 상대 당의 정책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조적으로 어느 당의 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에 그 당을 선택했다고말하는 사람은 각 집단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 P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주정수는 공원 시설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하여 원생들 마음대로 공원 지역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공원을 언제나 깨끗이 단장시켜놓고 섬을 찾아오는 손님만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섬에 건설한 그 자랑스런 원생들의 낙원을 증거해 보였다.
도대체 모든 것이 배반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의 낙원을 꾸미기 싫어 목숨을 내걸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행작으로부터, 원생들의 휴식과 위안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 오히려 그것을 누릴 사람들에게 모셔지고 있는 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도 배반 아닌 일이 없었다.
공원은 정말 원생들에게 모셔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셔지고 있는 공원이 섬을 구경 온 사람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고 있었다.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섬에 꾸며졌노라는 낙원 역시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사람들에게만 있었다.
소록도의 환자들에겐 낙원이 없었다. 환자들에게 낙원이 없는 한 소록도엔 낙원이 없었다. 그들의 이기적인 소문 속에만 소록도의 천국은 존재하고 있었다.
명분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섬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섬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상욱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은 것이어야 했다. - P157

나 역시 당신들의 처지가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인 줄은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주님의 위로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위로를 받는 것이 당신들의 권리일 수는 없습니다. 위로만 받으려고 하지 마시오. 당신들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이겨 넘어서려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언제까지나 당신들을 위로만 해주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하신 말씀이야말로 당신들에겐 보다 큰 위로가 되리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말을 끝내고 난 원장은 이제 장로들의 반응 같은 건 기다려볼 생각도 없다는 듯 한동안 검은 하늘로 시선을 흘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자신이 할 일을 다한 사람처럼 조용히 뱃머리를 섬쪽으로 돌려세웠다. - P180

"도대체 절더러 지금 무얼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원장은 거의 신경질적인 어조가 되고 있었다.
"무얼 어떻게 하다니? 원장이 내게 그걸 물어서 쓰나?"
황장로가 원장을 나무랐다.
"그야 원장이 할 일이란 간단하지. 원장은 그저 앞으로도 뱃심 좋게 우리 문둥이들을 부려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원장은 문둥이들만잘 부려주면 되는 게야. 지금까지 이야기도 내 그래서 원장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하고 귀띔을 해준 게 아닌가 말야."
"••••••."
"겁먹지 말고 죽도록 일을 부리라 이 말이지. 그렇게 지내온 놈들이라 하려고만 들면 무슨 일이고 끝장을 보고 말 위인들이니까. 게다가 원장은 이번 일에 대해 추호도 망설일 필요가 없는 명분이 있지 않나. 그건 원장이 우릴 부려댈 명분도 명분이지만 우리들 쪽에서도 지금까지 감당해온 숱한 고난들 가운데서 모처럼 명분다운 명분이 서는 일이거든. 하지만 원장이 먼저 겁을 집어먹은 꼴을 보이면 모든 건 끝장이야. 저 위인들 가슴 속에 숨겨진 독기는 아닌 게아니라 제 몸을 던져 둑을 쌓아올리라면 능히 그렇게 할 수도 있을것이지만, 원장이 겁을 먹은 기색을 보이고 보면 그건 하루 아침 동안에도 잔인스런 심술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 P2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임상에서 시지각과 시각적 표상의 유사점을 관찰한 사례는 최소한 한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영국의 신경과 의사 헨리 헤드와 고든 홈스는 후두엽에 미미한 손상을 입은 이로 인해 완전 실명은 아니지만 시야에 맹점이 생긴 환자 다수를 진료했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상세한 질문을 던져서 맹점이 나타난 지점이 심상이 나타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1992년에는 마사 패라가 이끄는 연구진이 후두엽절제술로 인해 한쪽 눈의 시각을 부분적으로 상실한 한 환자의 사례를 보고했다. 그 환자는 마음의 눈의 시야각도 축소되었는데, 시각을 상실한부위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시각적 표상 기능과 시지각 기능에서 최소한 일부 요소는 분리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는 1986년에 머리에 부상을 입은 뒤 완전색맹이 되어 나와 상담했던 화가 씨의 경우였다.  1 씨는갑자기 색 지각 능력을 상실하고 비탄에 빠졌지만, 색을 기억할 수도 마음속에 그려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더더욱 고통스러워했다. 심지어 이따금씩 나타나는 시각편두통 증상에서도 색이 빠져 있었다. 1 씨 같은 환자들의사례는 지각 기능과 표상 기능이 시각피질의 위쪽에서 아주 밀접하게 쌍을 이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 P256

"정상 시력인 친구들은 저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질문을 던지면 친구들은 보지 못할 뻔했던 것을 발견합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이건 일종의 호혜 관계예요. 서로의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여기에 내가 풀 수 없는 (그러나 기분 좋은)역설이 하나 있다. 경험과 기술 사이에, 세계를 직접 경험해서 얻은 지식과 무언가를 매개로 얻은 지식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맞다면, 언어는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까? 가장 인간적인 발명품인 언어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언어가 있기에 우리 모두가,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도,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있지 않은가. - P2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들어가며

일어나지 않은 일

힐러리 클린턴은 무슨 일이 있었나what Happened』에 이렇게 썼다. "2016년 11월 8일 이후 나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 하나의 질문을 골똘히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는 독특한 책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출간된 이 책은 선거에 패배한 후보가 왜 자신이 실패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 핵심에는 2016년 선거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미국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협과 거래의 한계를 넘어서는 특이하고 일탈적인 일이 일어났다는믿음이 존재한다.
설령 2012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밋 롬니가 승리했더라도 오바마가 이게 무슨 일이야What the Hell?』 같은 책을 쏠리는 없을것이다. 패배는 미국 정치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존 케리가 설령 2004년 대선에서 승리했더라도 재선에 실패한 조지W. 부시가 법치 파괴 행위에 골몰하며 극렬지지자들에게 동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미국 제46대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에 대한 연방의회의 공식적인 인준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다가 진압된 사건이 있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역겹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옮긴이.) 클린턴의 책에서, 그리고 선거 이후 진보주의자와 ‘트럼프 절대반대파never-Trumpers‘가 쏟아낸 고뇌에 찬 논평에서 묻어나는 건 2016년 선거가 2012년이나 2004년과는 다르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망했는데, 왜그렇게 된 건지 알아야 했다. - P9

바텔스의 생각은 이렇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지난 대선들에 관한 자료를 주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선거가 이상한 선거였는지 골라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이상한 선거를 고를 수 있겠는가? 비록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기이한 인물 중 하나이긴했지만, 2016년 대선의 결과는 2012년, 2008년, 2004년 대선의 결과와 엇비슷해 보인다.
2016년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놀라운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트럼프가 30% 차로 패하거나 20% 차로 이기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투표한 사람 대부분은 2012년에 선택했던당을 2016년에도 똑같이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찰할 점이 없다는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쪽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주요 주체들에서 그들이 과잉 대표되며 트럼프 당선시켰다. 그러나 숫자로만 보면 2016년 대선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전형적인 경쟁이었다.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다른 공화당 후보처럼 대했다는 사실은 정당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극심한 양극화는 2016년 선거를 2012년 롬니와 오바마 사이의 경쟁이나 2004년 케리와 부시 사이의경쟁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치적 정체성이 너무 강해서 사실상 마음을 바꿀 만한 어떤 후보도, 정보도, 조건도 없었던 셈이다. 우리는 우리 편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게 뭐가 됐든 거의 모든 것을 정당화할 것이고, 그 결과는 기준, 신념, 책임감 없는 정치다. - P15

문제는 시스템이다. 유독한 시스템은 선량한 개인들을 손쉽게 타락시킨다. 유독한 시스템은 우리에게 가치를 배반하라고 강요하는 게아니라, 가치를 줄세워서 우리가 서로를 배반하도록 한다. 각자에게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이 집단으로 행해질 때는 파괴적인 것이 된다. - P16

문제는 나름 합리적인 복잡한 시스템들이 종종 ‘논리적인 방식‘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망가진 나사나 빼먹은 정기점검을 발견하면, 사고의 원인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가 관리 비용 삭감으로 주식시장에서 이득을 보았던 사실을 놓친다면, 사고 원인 파악도 재발방지에도 실패한 셈이다. 데커는 시스템적 사고란 "어떤 한 부분도 고장 나지 않았을 때나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일 때도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 정치는 이와는 다르다. 왜냐면 이 시점에서 미국 정치가 망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진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유권자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 시스템은 각자의 동기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합리적인 행위자들로 가득 차 있다. 잘 기능하도록 애쓰는 각 부분이 모여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전체가 되어버렸다. 최악의 인물이 성공을 꾸며낸다고 해서 그것이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만약 시스템을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데커는 우리가 어떻게 탐색해나가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례들을 살펴보면, 좁은 범위의 기준을 잘 지키고 수행한 결과 사고가 난다는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고는 현재의 정치·경제·사업 구조 속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받기 위해 성과 기준을 잘 따랐기 때문에 일어난다. 어떤 것도 고장 나지 않고, 그 누구도 실수하지 않고, 아무도 규칙을 위반하지 않아도 재난은 벌어질 수 있다. - P19

불행하게도, ‘정체성 정치‘라는 말은 정치적 무기로 사용된다. 특히 역사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구성원들의 정치적 행위를 묘사하는 데 가장 자주 사용된다. 만약 당신이 흑인이고 경찰의 잔혹성을 걱정한다면, 그것은 정체성 정치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에 대해 걱정한다면, 그것도 정체성 정치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전국민 신원 조사를 폭정이라고 비난하는 시골에 사는 총기 소지자거나, 높은 세율은 경제적 성공을 가로막고 부자를 악마화한다고 불평하는 역만장자 CEO이거나, 공공장소에 예수의 그림을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은 그저 선량한 구식 정치일 뿐이다. ‘정체성 정치‘는 교묘하게 소외된 집단에만 따라붙는다.
이렇게 사용되는 ‘정체성 정치‘라는 말은 뭔가를 드러내기보다는 가린다. 이는 정치적 토론의 장에서 더 강한 집단의 관심사를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보이게 하고 약한 집단의 관심사는 이기적이고 특수한 호소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관심사를 축소하고 신뢰성을 떨어트리게 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정체성을 칼날처럼 휘두르면서 렌즈로서의 정체성을 잃었고,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려는 시도속에서 우리의 눈은 멀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을 볼 눈을 하릴없이 찾아 헤매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