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일어나지 않은 일

힐러리 클린턴은 무슨 일이 있었나what Happened』에 이렇게 썼다. "2016년 11월 8일 이후 나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 하나의 질문을 골똘히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는 독특한 책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출간된 이 책은 선거에 패배한 후보가 왜 자신이 실패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 핵심에는 2016년 선거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미국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협과 거래의 한계를 넘어서는 특이하고 일탈적인 일이 일어났다는믿음이 존재한다.
설령 2012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밋 롬니가 승리했더라도 오바마가 이게 무슨 일이야What the Hell?』 같은 책을 쏠리는 없을것이다. 패배는 미국 정치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존 케리가 설령 2004년 대선에서 승리했더라도 재선에 실패한 조지W. 부시가 법치 파괴 행위에 골몰하며 극렬지지자들에게 동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미국 제46대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에 대한 연방의회의 공식적인 인준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다가 진압된 사건이 있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역겹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옮긴이.) 클린턴의 책에서, 그리고 선거 이후 진보주의자와 ‘트럼프 절대반대파never-Trumpers‘가 쏟아낸 고뇌에 찬 논평에서 묻어나는 건 2016년 선거가 2012년이나 2004년과는 다르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망했는데, 왜그렇게 된 건지 알아야 했다. - P9

바텔스의 생각은 이렇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지난 대선들에 관한 자료를 주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선거가 이상한 선거였는지 골라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이상한 선거를 고를 수 있겠는가? 비록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기이한 인물 중 하나이긴했지만, 2016년 대선의 결과는 2012년, 2008년, 2004년 대선의 결과와 엇비슷해 보인다.
2016년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놀라운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트럼프가 30% 차로 패하거나 20% 차로 이기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투표한 사람 대부분은 2012년에 선택했던당을 2016년에도 똑같이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찰할 점이 없다는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쪽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주요 주체들에서 그들이 과잉 대표되며 트럼프 당선시켰다. 그러나 숫자로만 보면 2016년 대선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전형적인 경쟁이었다.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다른 공화당 후보처럼 대했다는 사실은 정당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극심한 양극화는 2016년 선거를 2012년 롬니와 오바마 사이의 경쟁이나 2004년 케리와 부시 사이의경쟁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치적 정체성이 너무 강해서 사실상 마음을 바꿀 만한 어떤 후보도, 정보도, 조건도 없었던 셈이다. 우리는 우리 편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게 뭐가 됐든 거의 모든 것을 정당화할 것이고, 그 결과는 기준, 신념, 책임감 없는 정치다. - P15

문제는 시스템이다. 유독한 시스템은 선량한 개인들을 손쉽게 타락시킨다. 유독한 시스템은 우리에게 가치를 배반하라고 강요하는 게아니라, 가치를 줄세워서 우리가 서로를 배반하도록 한다. 각자에게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이 집단으로 행해질 때는 파괴적인 것이 된다. - P16

문제는 나름 합리적인 복잡한 시스템들이 종종 ‘논리적인 방식‘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망가진 나사나 빼먹은 정기점검을 발견하면, 사고의 원인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가 관리 비용 삭감으로 주식시장에서 이득을 보았던 사실을 놓친다면, 사고 원인 파악도 재발방지에도 실패한 셈이다. 데커는 시스템적 사고란 "어떤 한 부분도 고장 나지 않았을 때나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일 때도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 정치는 이와는 다르다. 왜냐면 이 시점에서 미국 정치가 망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진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유권자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 시스템은 각자의 동기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합리적인 행위자들로 가득 차 있다. 잘 기능하도록 애쓰는 각 부분이 모여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전체가 되어버렸다. 최악의 인물이 성공을 꾸며낸다고 해서 그것이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만약 시스템을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데커는 우리가 어떻게 탐색해나가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례들을 살펴보면, 좁은 범위의 기준을 잘 지키고 수행한 결과 사고가 난다는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고는 현재의 정치·경제·사업 구조 속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받기 위해 성과 기준을 잘 따랐기 때문에 일어난다. 어떤 것도 고장 나지 않고, 그 누구도 실수하지 않고, 아무도 규칙을 위반하지 않아도 재난은 벌어질 수 있다. - P19

불행하게도, ‘정체성 정치‘라는 말은 정치적 무기로 사용된다. 특히 역사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구성원들의 정치적 행위를 묘사하는 데 가장 자주 사용된다. 만약 당신이 흑인이고 경찰의 잔혹성을 걱정한다면, 그것은 정체성 정치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에 대해 걱정한다면, 그것도 정체성 정치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전국민 신원 조사를 폭정이라고 비난하는 시골에 사는 총기 소지자거나, 높은 세율은 경제적 성공을 가로막고 부자를 악마화한다고 불평하는 역만장자 CEO이거나, 공공장소에 예수의 그림을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은 그저 선량한 구식 정치일 뿐이다. ‘정체성 정치‘는 교묘하게 소외된 집단에만 따라붙는다.
이렇게 사용되는 ‘정체성 정치‘라는 말은 뭔가를 드러내기보다는 가린다. 이는 정치적 토론의 장에서 더 강한 집단의 관심사를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보이게 하고 약한 집단의 관심사는 이기적이고 특수한 호소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관심사를 축소하고 신뢰성을 떨어트리게 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정체성을 칼날처럼 휘두르면서 렌즈로서의 정체성을 잃었고,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려는 시도속에서 우리의 눈은 멀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을 볼 눈을 하릴없이 찾아 헤매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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