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수는 공원 시설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하여 원생들 마음대로 공원 지역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공원을 언제나 깨끗이 단장시켜놓고 섬을 찾아오는 손님만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섬에 건설한 그 자랑스런 원생들의 낙원을 증거해 보였다.
도대체 모든 것이 배반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의 낙원을 꾸미기 싫어 목숨을 내걸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행작으로부터, 원생들의 휴식과 위안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 오히려 그것을 누릴 사람들에게 모셔지고 있는 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도 배반 아닌 일이 없었다.
공원은 정말 원생들에게 모셔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셔지고 있는 공원이 섬을 구경 온 사람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고 있었다.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섬에 꾸며졌노라는 낙원 역시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사람들에게만 있었다.
소록도의 환자들에겐 낙원이 없었다. 환자들에게 낙원이 없는 한 소록도엔 낙원이 없었다. 그들의 이기적인 소문 속에만 소록도의 천국은 존재하고 있었다.
명분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섬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섬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상욱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은 것이어야 했다. - P157

나 역시 당신들의 처지가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인 줄은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주님의 위로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위로를 받는 것이 당신들의 권리일 수는 없습니다. 위로만 받으려고 하지 마시오. 당신들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이겨 넘어서려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언제까지나 당신들을 위로만 해주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하신 말씀이야말로 당신들에겐 보다 큰 위로가 되리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말을 끝내고 난 원장은 이제 장로들의 반응 같은 건 기다려볼 생각도 없다는 듯 한동안 검은 하늘로 시선을 흘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자신이 할 일을 다한 사람처럼 조용히 뱃머리를 섬쪽으로 돌려세웠다. - P180

"도대체 절더러 지금 무얼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원장은 거의 신경질적인 어조가 되고 있었다.
"무얼 어떻게 하다니? 원장이 내게 그걸 물어서 쓰나?"
황장로가 원장을 나무랐다.
"그야 원장이 할 일이란 간단하지. 원장은 그저 앞으로도 뱃심 좋게 우리 문둥이들을 부려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원장은 문둥이들만잘 부려주면 되는 게야. 지금까지 이야기도 내 그래서 원장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하고 귀띔을 해준 게 아닌가 말야."
"••••••."
"겁먹지 말고 죽도록 일을 부리라 이 말이지. 그렇게 지내온 놈들이라 하려고만 들면 무슨 일이고 끝장을 보고 말 위인들이니까. 게다가 원장은 이번 일에 대해 추호도 망설일 필요가 없는 명분이 있지 않나. 그건 원장이 우릴 부려댈 명분도 명분이지만 우리들 쪽에서도 지금까지 감당해온 숱한 고난들 가운데서 모처럼 명분다운 명분이 서는 일이거든. 하지만 원장이 먼저 겁을 집어먹은 꼴을 보이면 모든 건 끝장이야. 저 위인들 가슴 속에 숨겨진 독기는 아닌 게아니라 제 몸을 던져 둑을 쌓아올리라면 능히 그렇게 할 수도 있을것이지만, 원장이 겁을 먹은 기색을 보이고 보면 그건 하루 아침 동안에도 잔인스런 심술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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