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손님이라는 것도 별 특징이 없었다. 어느날 한 사내가 들어와 국수 두 개를 시켰다. 손님이 방을 원해서 어머니는 안방에 상을 봐줬다. 국수와 고추다대기, 김치 한 종지가 전부였다. 사내는 빈 그릇을 하나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왜 그런가 싶어 사내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사내는 자기맞은편 국수 위에 빈 그릇을 엎어놓았다. 혹여 국수가 식을까봐 그러는 거였다. 곧이어 한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방긋 웃은 뒤 그릇을 걷고 젓가락을 들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 채 조용하고 친밀하게 국수를 먹었다. 어머니는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 일상적인 배려랄까, 사소한 따뜻함을 받아보지 못한 ‘여자의 눈‘으로 손님을 대하던 순간이었다. 밥 잘하고 일 잘하고 상말 잘하던 어머니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살면서 중요한 고요가 머리 위를 지날 때가있는데, 어머니에게는 그때가 그 순간이었을 거다. - P158

 어느 날, 나는 내가 진정으로 배곯아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리둥절해진 적이 있다. 궁핍 흑은 넉넉함을 떠나, 말 그대로 누군가의 순수한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놀라웠던 까닭이다. 오랜 세월, 어머니는 뭘 재우고, 절이고, 저장하고, 크게 웃고, 또 가끔은 팔뚝의 때를 밀다 혼자 울었다. 여자가 칼 갈아 쓰면 팔자가 드세다는데 아직까지별 큰일이 없는 걸 보면 괜찮은가 보다 능청도 떨면서, 생일이면 양지를 찢어 미역국을 끓이고, 구정에는 가래떡을 뽑고, 소풍날은 김밥을, 겨울에는 동치미를 만들어주었다. 그사이 내 심장과 내 간, 창자와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음식에 난 칼자국들 역시 내 몸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나를 건드렸다. 나는 그 사실을 몰라 더 잘 자랐다. 한 해가 지나면 어머니는 가래떡을 썰고, 다시 한 계절이 지나면 푸른 콩을 삶아 녹색 두부를 만들었다. 나는 더운 음식을 먹고 자랐고 그안에선 늘 신선한 쇠 냄새가 났다.  - P169

 언니에겐 꽃 같은 이십대를 칸막이 안에서 보내는 것보다. 지인들의 환한 안부보다, 자신이 매일 맞닥뜨려야하는 소읍의 추상적인 ‘시선‘이 더 곤욕스러운 듯했다. 시골의 무책임하면서도 집요한 시선 말이다. 한아저씨는 합격자 발표가 날 때마다 우리 집에 들러 꼬박꼬박 결과를 물어왔다. 이미 소식을 들었으면서 부러 집까지 찾아와 "어떻게 됐냐?" 물었고, 한참 자식 자랑을 한 뒤 사라지곤 했다. 언니의 얼굴은 어른을 대하는 예의와 낭패감, 미소, 수치심이 섞여 형태를 갖추지 못한 반죽처럼 흔들렸다. 명절 때도 친구 결혼식 때도, 비슷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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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 사람들 틈에 끼어 서울의 불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노량진의 이름을 생각했다. 다리량(梁) 자와 나루터진(津) 자가 동시에 들어간 곳. 1999년 내가 지나가는 곳이라 믿었던 곳. 모든 사람이 지나가는 곳. 하지만 그곳이 정말
‘지나가기만‘ 하는 곳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7년이 지난 2005년 지금도 나는 왜 여전히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걸까. 짧은 정차 후,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한 여자가 내 발을 밟으며 소리쳤다. "밀지 마요!" 우주 먼 곳 아직 이름을 가셔본 적 없는 항성 하나가 반짝하고 빛났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득히 ‘아영아, 내 손 잡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정신을 차린 뒤, 열차가 어디까지 왔는지 따져보았다.
벌써 집 근처에 가까워져 있었다. 차고 깊은 가을 밤. 지하철은 여전히 그리고 묵묵히 서울의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P148

나는 어머니가 잘 익은 배추 한 포기를 꺼내 막 썰었을 때, 순하게 숨죽은 배추 줄기 사이로 신선한 핏물처럼흘러나오던 김칫국과 자그마한 기포를 기억한다. 어머니가 국수를 삶으면 나는 그 옆에 서서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렸다. 어머니는 갓 익은 면발 한두 젓가락을 건져 주었다. 그런뒤 맨손으로 김치를 집어 입속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줬다.
김치에선 알싸한 사이다 맛이 났다. 내 컴컴한 아가리 속으로김치와 함께 들어오는 어머니의 손가락 맛이랄까, 살〔肉〕맛은 미지근하니 담담했다. 식칼이 배추 몸뚱이를 베고 지나갈때 전해지는 그 서걱하는 질감과 싱그러운 소리가 나는 참 좋았다. 어둑한 부엌 안, 환풍기 사이로 들어오던 햇빛의 뼈와그 빛 가까이에 선 어머니의 옆모습, 그런 것도.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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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룬힐데 폼젤의 생애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그녀를 나치의 단순가담자로 비판한다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는 제3제국 시절 단순가담자들의 행동과 비교해서 과연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극우주의자들의 그런 선동적인 연설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미 오래전에 아주 심각한 무지와 무관심의 단계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그 옛날 아돌프 히틀러나 베니토 무솔리니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자기들을 구해 줄 거라고 믿었거나, 두 사람이 권력을 잡았을 때 최소한 암묵적으로 동조했던 세대들과는 달리 오늘날의 우리는 역사에 대한 지식을 근거로 그런 독재의 결과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다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행동한다. - P274

하지만 사실 젊은 세대 중 많은 사람이 좋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는 특히 유럽에서 2008년 금융 위기 발발과 유로 위기 이후 청년 실업률이 신기록을 세운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나라와 동독 일부 지역에 해당된다. 유럽과 미국의많은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생활 수준과 삶의 질 면에서자신들의 부모를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뿐 아니라 따라가지도 못할 것을 염려하는 첫 세대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분석이다. 이로 말미암아 한편으론 분노와 증오가 다른 한편으론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체념이 생겨난다. 정치 참여로도 자신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거라는 체념이다. - P279

그러나 통제되지 않는 금융 산업과 그 파장으로 인한 자유민주주의의 파괴 시나리오는 늦어도 1990년대 말에는 미국에서 다시 점화되었다. 빌 클린턴(1993년~2001년 재임)의 대통령직 이후 미국의 민주당과 좌파, 자유주의 세력, 영국의 신노동당, 그리고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 세력들은 경제학자들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금융 시장이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어 토니 블레어의 영국에서는 복지 정책의 축소가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독일에서는 <어젠다 2010>이라는 구호 아래 복지체계의 후퇴, 힘겹게 쟁취한 노동 시장법칙의 와해, 그리고 노동조합의 약화가 진행되었다. 복지정책의 축소와 함께 금융 시장의 엄청난 팽창과 저임금 시장의 증가가 이어졌고, 그로써 좌파들은 자신들을 찍어 준유권자들을 결과적으로 배신하게 되었다. 노동자와 중하층시민들이 바로 그 지지자들인데, 이들이 오늘날 극우로 돌아섰다. 여기서 점점 뚜렷해지는 것은 민주적 정치 엘리트들의 무지와 직무유기다. 그들은 서구 사회의 분열에 책임이 있고, 그로써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뿌리를 내리는 데 일조했다. - P292

일반적으로 포퓰리스트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약속을 남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권력을 잡거나권력에 참여하게 되면 곧장 약속과 현실 사이의 불균형에 빠진다. 근자의 역사에서는 우익 포퓰리즘 정부와 정부 참여자들이 대체로 다음의 두 경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예는 충분하다. 즉, 유권자들의 관심을 정반대 방향으로 돌리든지, 아니면 내부 다툼으로 정당이 와해되든지 둘중 하나다.  - P305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극우 선동가들은 민주주의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기때문이다. 그에 대한 책임은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있다. 시장의 힘을 과도하게 키운 것도 바로 신자유주의적정책이다. 그로써 사회적 연대를 약속했던 사회 계약은 해지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의문시되는 전환점에 서 있다. 만일 남아 있는 민주 정당과 중도 시민들이 이 계약을 어떻게 새로 체결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면 향후 수년 안에 우익 포퓰리즘의 물결이 온 유럽을 휩쓸면서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온건한 시민층과 모든 사회 엘리트들은 과거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증명해야 한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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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않게 피클병 실험은 단순한 이산화탄소 사냥 이상의 경험이 되었다. 이 실험을 통해 나는 빠른 변화의 시기에 유기체가 맞닥뜨릴 어려움을 절실히 깨달았다. 온도 실험을 한 번 더 하려고 피클병을 열었지만, 피클 특유의 톡 쏘는 향이 예전 같지 않았다. 성냥을 켜보니 며칠이 지났는데도 이산화탄소가 거의 축적되지 않았다. 냉장고의 냉기와 보온등의 열기를 오가는 일이 소금물 속 미생물에게 버거웠던 모양이다. 이는 모든 생물이, 심지어 염분에 강한 세균조차 불안정한 기후에서는 힘겨워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열파, 한파, 그 밖의 극한 날씨는 이미 현대 기후변화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사건들이 광범위한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기회로도 작용하고 있다. 여기야말로 기후변화 생물학의 완벽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 P55

"유연성이 관건입니다." 월든 호수 연구의 핵심 결론을 요약하며 프리맥이 말했다. 일부 종에게는 기온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내장되어 있어 날씨가 더워지면 정해진 날짜에 상관없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가 안정적일 때는 어차피 모두 똑같은 일정에 따라 움직이므로 이런 형질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융통성 있는 식물이 유리해진다. 보수적인 종보다 다만 얼마라도 먼저 자라 꽃을 피우고 에너지를 저장하기 때문이다. 느림보들은 빼앗긴 땅을 되찾지 못하고 결국 재빨리 대처한 이웃에게 자리를 내준다. 어떤 경우에는 군집 전체가 곤경에 처한다. 예를 들어 활엽수 아래에 피는 야생화는 제 머리 위로 나뭇잎이 그늘을 드리우기 전에 싹을 틔워 몇 주 동안 온전히 태양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날씨가 일찌감치 따뜻해지고, 융통성이 뛰어난 나무가 재빨리 잎을 내 하늘을 가려버리면 초봄의 광합성 기회를 빼앗긴 풀들은 정상적인 생장과 개화 일정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일부는 종자를 맺을 힘조차 잃는다. 이로써 소로의 숲에서 생존은 점차 제 이웃의 일정을 쫓아가는 데 달려 있게 되었다. 프리맥의 말처럼 "일찍 잎을 피울 수 없는 식물은 경쟁에서 뒤처진다." 그렇다면 기후변화가 바꾸는 것은 기온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관계를 바꾼다. - P67

봄철의 새소리를 자연이 내는 가장 웅장한 목소리‘라고 불렀던소로는 월든 호수의 모든 새 울음소리를 기억했으므로, 매년 남쪽에서 건너온 새들이 도착한 시간을 추적할 수 있었다. 그가 새에 관해기록한 자료는 이름과 날짜를 적은 긴 목록이라 얼핏 보면 식물 관찰 기록과 유사하다. 그러나 유사점은 거기까지다. 이제 봄은 식물의 입장에서 평소보다 훨씬 일찍 찾아오지만, 새들은 여전히 소로의 시대와 같은 일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열대지방에서 이주했든 옆 동네에서 왔든 새는 온도가 아닌 빛의 신호를 따른다. 봄이되어 낮이 길어지는 때를 기다렸다가 이동한다는 뜻이다. 한편 기후변화는 적어도 낮의 길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이 차이가 바로 생물학자들이 타이밍 불일치라고 부르는 현상의 배경이다. 벌새가 도착하기도 전에 꽃꿀이 잔뜩 든 꽃을 피우는 식물이나, 늘 먹던 곤층의 부화 시기를 놓쳐 굶주리게 된 제비떼 등이 그 희생자다. 달라진 속도에 반응하든, 달라진 자극에 반응하든, 서로 오래 길든 좋은어느덧 자신이 길은 제대로 찾아왔으나 때를 잘못 맞추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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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이미 현실이 된 세계

형님, 일전에 읽은 예언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c.1606)

어두운 밤, 퍼붓는 빗속에 텐트를 쳤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높이 올라왔기를 작동 중인 세탁기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폴대가 세차게 흔들리는 텐트에 몸을 구겨 넣었다. 거센 바람이 텐트의 젖은 입구를 후려치며 얼굴에 물보라를 뿌려댔다. 폭풍은 밤늦도록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젖어드는 침낭에 누워있다 보니 괜한 짓을 했다 싶어 후회막급이었다. - P12

복잡한 개념이라도 서사가 덧입혀지는 순간 공감대가 형성된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중심으로 철학적 담론의 틀을 짜고, 칼 세이건이 상상 속 우주선의 빛나는 갑판에서 천체물리학을 가르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야기는 객관적 사실만으로는 건들 수 없는 뇌의 구역에 파고들어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는 방식을 바꾸는 화학물질의 분비를 자극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학습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방식은 결국 이야기로 전달하고 이야기로 듣는 것에 달려 있다. 연구자로 살아가는 동안 처음에는 무관심에 가까웠던 기후변화에 대한 내 태도도 이야기를 통해 완벽하게 달라졌다. 그러나 내 마음가짐을 바꾼 이야기는신문의 머리기사나 치열한 정책 논쟁에 있지 않았다. 내가 연구하는 동물과 식물의 삶에서 실제로 벌어진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 나를 바꿔놓았다. - P16

 지난 30년간 우리 인간이 대처의 필요성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이에 지구의 다른 종들은 이미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연의 대응을 살펴보면, 아무리 복잡하고 해석이 달라도 결국 미래 기후 시나리오의 결과는 변화에 직면한 개별 동물과 식물의 반응과 행동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어떤 환경에서든 개의치 않고 살 수 있다면 날씨가 달라지는 것쯤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필요조건은 결코 일반화할 수 없다. 세상에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것도 모두 세분화한 환경조건 때문이다. 지구상의 수백만 좋은 각자자기가 사는 곳의 특수한 생태적 상황에 적응해 변해왔다. 환경이 달라지면 대응이 불가피하고, 변화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어지면 결국 생태계 전체의 틀이 통째로 새로 짜이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현재의 기후변화가 심각한 위기로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가 속도인 것도 그래서다.  - P17

1971년 두 명의 새내기 고생물학자가 미국지질학회 연례 회의에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說‘이란 이론을 들고나왔다. 대학원 시절부터 친구이자 공동 연구자였던 나일스 엘드리지와 스티븐 제이 굴드는 오랫동안 고생물학 분야의 골칫거리였던 한 질문에 새로운 답을 제시했다. "잃어버린 고리는 어디에 있는가?" 만약 진화가 정말로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이라면 한 형태가 다른 형태로 바뀌는 전이 과정이 화석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화석 속 종들은 수백, 수천만년 전 지층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별다른 변화 없이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다윈도 이 문제를 아주 잘 인지했던 터라 "내 이론을반박할 가장 명백하고 심각한 이의 제기"라고 불렀고, 《종의 기원》에서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함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9장을통째로 할애할 만큼 신경 썼다. 암석이란 특정한 조건에서만 생성되고 게다가 극히 일부 암석에만 화석이 남아 있으므로, 대부분의 종과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은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다. 다윈은 "자연이 남긴 지질 기록은 세계 역사의 불완전한 보존이다. ••• 곳곳에 짧은 장만 남아 있고, 그마저도 몇 줄씩 흩어져 있는게 고작이다"라는 훌륭한 비유를 남겼다. 엘드리지와 굴드도 지질기록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은 중간단계의 화석이 귀한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바로 빠른 진화다. 만일새로운 종이 긴 시간 동안 천천히 발생하지 않고 (지질학적 관점에서)하루아침에 생성되었다면, 그 변신 과정은 흔적을 남길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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