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 사람들 틈에 끼어 서울의 불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노량진의 이름을 생각했다. 다리량(梁) 자와 나루터진(津) 자가 동시에 들어간 곳. 1999년 내가 지나가는 곳이라 믿었던 곳. 모든 사람이 지나가는 곳. 하지만 그곳이 정말
‘지나가기만‘ 하는 곳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7년이 지난 2005년 지금도 나는 왜 여전히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걸까. 짧은 정차 후,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한 여자가 내 발을 밟으며 소리쳤다. "밀지 마요!" 우주 먼 곳 아직 이름을 가셔본 적 없는 항성 하나가 반짝하고 빛났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득히 ‘아영아, 내 손 잡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정신을 차린 뒤, 열차가 어디까지 왔는지 따져보았다.
벌써 집 근처에 가까워져 있었다. 차고 깊은 가을 밤. 지하철은 여전히 그리고 묵묵히 서울의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P148

나는 어머니가 잘 익은 배추 한 포기를 꺼내 막 썰었을 때, 순하게 숨죽은 배추 줄기 사이로 신선한 핏물처럼흘러나오던 김칫국과 자그마한 기포를 기억한다. 어머니가 국수를 삶으면 나는 그 옆에 서서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렸다. 어머니는 갓 익은 면발 한두 젓가락을 건져 주었다. 그런뒤 맨손으로 김치를 집어 입속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줬다.
김치에선 알싸한 사이다 맛이 났다. 내 컴컴한 아가리 속으로김치와 함께 들어오는 어머니의 손가락 맛이랄까, 살〔肉〕맛은 미지근하니 담담했다. 식칼이 배추 몸뚱이를 베고 지나갈때 전해지는 그 서걱하는 질감과 싱그러운 소리가 나는 참 좋았다. 어둑한 부엌 안, 환풍기 사이로 들어오던 햇빛의 뼈와그 빛 가까이에 선 어머니의 옆모습, 그런 것도.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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