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는 사람들이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제시가친절하다는 말이 아니다. 친절은 자선과 같은 말이다. 노력을 수반한다. 무작위의 친절한 행동이 어쩌고 하는 내용의 자동차 범퍼 스티커처럼. 친절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의미해야지 선택적인 행동을 의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시는 모든 사람에 대해 연민 어린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평생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느낌으로 살았다. 그런데 제시는 그런나를 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았다. 우리는 함께 위험한 짓들을 저질렀지만, 나는 제시와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 P446

엄마가 그러더라, ‘네 아빠가 처음엔 내 보호자더니 나중엔 간수더구나‘라고 아빠는 나름 엄마를 돕는다는 생각에 그런 거였지. 하지만 아빠는 엄마한테 술을 일정량 배급식으로 주고 엄마를 숨겼어. 치료를 받게해주지 않았지. 우리는 엄마 가까이 가지 못했어. 아무도 그러지 못했지.
엄마는 잔인하고 불합리하게 벌컥 화를 내곤 했으니까. 우리가 뭘 하든 엄마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생각했어. 그런 한편 엄마는 우리가 공부를 잘하고, 성장하고, 무언가 성취하는 꼴을 못 봤어. 우리는 어리고 예쁘고, 우리한테는 미래가 있었지. 이제 알겠니, 샐리? 그게 엄마한테 얼마나 힘들었을지?" - P466

나는 코코아를 한 잔 타서 계단에 나가 앉았다. "누들스, 이리 와서 저거 봐!" 대답이 없었다. 새 시럽제 마개를 돌려 따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노을이 화려하고 찬란했다. 광대한 산디아산맥이 짙은 분홍색으로 물들었고 산기슭의 바위 언덕들은 불그스름했다. 강기슭에는 미루나무들이 노란색으로 작열했다. 벌써 복숭아색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또 울었다. 아름다운 걸 나 혼자 보는 건 너무 싫다. 어느새 그가 나와서 내 목에 입술을 갖다 대고 나를 감싸 안았다.
"있잖아, 저 산들은 모양이 수박 같아서 산디아"라고 하는 거야." 누들스가 말했다. "아니야. 색깔 때문이야." 내가 말했다. 제일 처음 데이트하면서 말씨름을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는 웃으면서 나에게 키스했다. 달콤한 키스. 그는 이제 멀쩡했다. 그게 약의 비참한 측면이다. 약이듣는다는 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쏙독새를구경하며 앉아 있었다. - P472

언젠가 닥터 켈리가 양손에 여섯 손가락이 달린 어린 소년을 검진했다. 부모는 수술을 원했지만 당사자인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예닐곱 살먹은 귀여운 사내아이였다.
"싫어! 난 다 가지고 있고 싶어. 내 거란 말이야. 그대로 갖고 싶어!" 나는 노련한 닥터 켈리가 그 아이를 설득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그는 그러지 않고 아이가 그 특이성을 간직하길 원하는 듯하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안 될 거 없죠." 닥터 켈리는 말했다. 부모들은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마음이 바뀌면 그때 해도 된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물론 있잖아, 저 산들은 모양이 수박 같아서 산디아"라고 하는 거야." 누들스가 말했다. "아니야. 색깔 때문이야." 내가 말했다. 제일 처음 데이트하면서 말씨름을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는 웃으면서 나에게 키스했다. 달콤한 키스. 그는 이제 멀쩡했다. 그게 약의 비참한 측면이다. 약이듣는다는 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쏙독새를 구경하며 앉아 있었다. - P524

이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세상으로 떠났네. 난 그전엔 누가 "남편을잃었어요"라고 하면 그 말이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딱 그 느낌이야. 누군가 실종된 느낌. 폴, 차타 이모, 버디 사람들이 왜 유령이 있다고 믿고 교령회를 열어 죽은 자를 부르려 하는지 알겠어. 몇 달이고 살아 있는 사람들 생각만 하다가도, 어느 날 어떤 농담 한마디에 문득 버디가 나타나는 거야, 탱고 음악이나 수박주스에 네가 생생하게 나타나기도해. 그럴 때 네가 말을 하면 좋으련만. 넌 우리 귀먹은 고양이만큼이나 무심하지.
네가 마지막으로 온 건 며칠 전 폭설이 내렸을 때였지. 천지가 얼음과 눈으로 덮인 가운데 하루는 느닷없이 날이 포근했어. 다람쥐와 까치들이 재잘거리고 참새와 되새가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기웃거리며 노래를 불렀지. 그래서 난 창문과 커튼을 모두 활짝 열어젖혔어. 부엌 식탁에 앉아차를 마시며 잔등에 따스한 볕을 만끽했지. 앞문 포치 옆에 집을 만든 말벌들이 집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와 날아다녔어. 부엌에 들어와 윙윙거리며 나른하게 빙빙 돌아다니더구나. 하필이면 바로 이때 천장의 연기탐지기 배터리가 죽어서는 여름철 귀뚜라미처럼 짹짹 울기 시작했지. 햇빛이 찻주전자와 밀가루 단지, 향기로운 꽃이 든 은제 꽃병에 닿았어.
느른한 햇살. 네 방에 비쳐들던 멕시코의 오후 같았지. 너의 얼굴에 그햇살이 비쳤어. - P584

만일 실제로 지진이 일어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어떻게 됐을지 안다. ‘만일 했더라면‘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조만간 뜻밖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나는 파타고니아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결국 텍사스의 아마리요로 가게 되었을 것이다. 평평한 공간, 곡식 저장고들, 하늘, 회전초,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라곤 보이지 않는 곳. 데이비드 삼촌과 해리엇 숙모, 증조할머니 그레이와 함께 살게 되었으리라. 그들은 나를 문제아로 여겼겠지. 그들이 져야 할 십자가. 그들이 ‘억압된 감정의표출‘이라고 할 많은 사건이 있었을 테고, 학교 카운슬러는 그것을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라고 했겠지. 나는 소년원에서 나온 뒤 머잖아 그곳을지나던 어느 다이아몬드 드릴 시추공과 야반도주해서 몬태나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이게 믿겨질지 모르겠지만, 나의 인생은 지금과 똑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것이다. 콜로라도주 다코타 리지의 석회암 산기슭, 까마귀들이 있는 이곳에. - P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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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과 교수인 티 응우옌 C. Thi Nguyen은 좋은 컴퓨터 게임이 적절하게 제공하는 무수한 작은 문제들을 우리가 해결할 때 느끼는 ‘애씀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게임 세계가 점점 복합적으로 발전한 지난 수십 년 동안 응우옌이 말한 ‘행위 능력의 예술 The Art ofAgency‘과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것은 말하자면 수동적으로 수용하는소비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 능력 (‘Agency‘라는 단어의 가장 좋은 번역이 아닐까 한다)의 범위와 자질에 대한 예술 형식이다. 또는 자기 수용의 공감에 대한 예술 형식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게임은 까다로운 도전을 넘어서 그러한 도전에 프레임과 서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블록을 정렬해야 하는 테트리스와 같은 고전적인 몇 가지 캐주얼 게임(간단한 조작으로 짧은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게임 옮긴이)을 제외하고는 가장 초기의가장 단순한 컴퓨터 게임에서도 그 속의 우주를 향해 가는 동안 적어도 하나의 명제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은 이름에서 이미 내러티브를 알 수 있다. 즉 외계의 침략자로부터 지구를보호해야 한다는 내러티브다. 배가 고픈 팩맨은 유령에게 쫓긴다. 그리고 슈퍼마리오는 구원 마스터플롯에 따라 여자 친구를 고릴라 동키콩에게서 구해야 한다. - P203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지도 앱을 실행시켜 ‘구텐베르크로드 GutenbergRoad‘를 검색해보라.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스트리트뷰Streetview 상에서 임의의 한 지점 거리 일부, 건물 전면 등 여러분이 원하는지점을 선택하고 스크린샷을 찍어본다. 이제 여러분이 좋아하는 소셜 미디어 앱을 열고 아무런 코멘트도 쓰지 않고 이미지를 공유해보라. 이상한 느낌이 드는가? 그 느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한 작은 마을인 제퍼슨타운의 거리 사진은 아마도 여러분의 자기 서사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며, 여러분의 연락처나 프로필에 아무런 서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에게도.
인류 역사에서 스마트폰만큼 강력하고 수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 기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어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담겨 있는 넘쳐나는 무한한 정보와 활동을어느 정도 의미 있고 유용하게 선택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원숭이인우리는 가장 효과적으로 의미를 마련해주는 도구, 즉 ‘스토리‘를 이용한다. 우리는 인풋과 아웃풋을 곧바로 스토리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없다. 그리고 하나의 사진을 올리는 것도 자기 서사가 되는데,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진들은 낯선 나라의 황량한 거리 사진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장 즐겨 이야기하는 대상을 찍은 사진이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가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 P210

아주 평범한 예로서 맛있는 음식 사진을 들 수 있다. 얼핏 보면 우리 눈에는 음식 사진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디지털 청중시선으로 확장해서 보면) 쾌락주의, 차별, 소셜 미디어 특유의 부분 대중과의 놀이가 담긴 자기 서사를 보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발화 행위는 우리가 어떻게 보여주려고 하는지, 우리가 해당하는 상황에 대해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스마트폰은 이야기하는 원숭이인 우리가 글자나 그림문자, 사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코멘트를 달고 반응하는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매체가 현재와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계속 추가되는 각각의 이미지는 끝없는 영웅 여정의 한걸음 한 걸음을 나타낸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휴대전화는 자기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우리 자아의 연장된 팔이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 (‘미디어는 메시지다 The Medium is the Message‘)은 이러한 휴대전화를 ‘인간의 확장‘ 혹은 ‘우리 자신의 확장‘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는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를 이미 그러한 물리적 확장으로 보았다. 즉 그는 텔레비전으로는 우리의 시력이, 라디오로는 듣는 방식이 확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마트폰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주도적으로 장악하고 결정적으로 확장했다. - P213

스마트폰은 현재의 의사소통 매체라는 기능 외에도 기억 아카이브 Memory Archives 이기도 하다(무엇보다 클라우드Cloud에서). 우리는 소셜네트워크뿐만 아니라 휴대전화에도 많은 사진과 메시지, 메모, 영수중 등 디지털로 문서화할 수 있는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스토리를 저장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서사적 자아를 형상화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이는 한편으로는우리와 우리 삶의 사진을 거의 무한대로 찍고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삶에 대한 시각적 서사를 비롯한 다른서사를 다른 사람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선택권을 통해 가능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스마트폰이 없어도 PC나 태블릿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우리와 매우 가까이에 있다. 이를테면 아침에 눈을 뜨고 알람 시계를 끌 때도 옆에 있고, 잠을 자러 갈 때도 옆에있다. 출산할 때도, 때로는 장례식에도 지니고 있으며 결혼식에는 늘지니고 있다. - P214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위계적 성질을 가지지도 않고 억압적인 제재 모델에서 생겨나지도 않은 힘은 소셜 네트워크라는 거울의 방에서사용자의 촬영된 신체에도 작용한다. 이 힘의 뛰어난 특징은 위압적인 세계성에 있으며, 이와 동시에 우리를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플랫폼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최대한 자주, 최대한상호작용하면서 머물도록 매우 정밀하게 프로그램화된 네트워크의중독성 있는 설계 Addictive Design 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이러한 정세는모든 능동적 사용자의 매일 매일의 활동을 포착하는 ‘신자유주의적디지털 판옵티콘 Panopticon‘13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실생활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온라인으로 전파하고 있으며, 나아가 알고리즘을 이용해 이러한 실생활을 평가 및 활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윤을 지향하는 플랫폼의 콘텐츠로서 이미지는 시장논리의 제약을 따르는 자원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온라인에서 서사규칙에 순응하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지탱하기 위해 자신을변경시킨다. - P220

우리가 기존의 (자기) 서사의 일관성을 위해 견지하는 가장 흔한인식의 왜곡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 또는 다른 사람들이 믿어야 하는 것을 믿으며 그에 따라 모든 정보를 분류한다. 렐로티우스도 프린스 모노룰루도 어느 정도 이러한 확증편향을 사용했다. 우리는 우리의 확신과 상충하는 지식보다 우리의 견해와 의도를 뒷받침하는 지식을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말하자면 우리 자신은 적어도 모순투성이인 세상을볼 때는 서사적으로 매우 좋지 못한 판단을 내린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최고의 사기꾼이다.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 선호도조차 사회학적, 경제적 허구다. 우리는 사후에 과거를 회상하며 인과관계를 만들어 ‘나는 그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사후판단편향, 혹은 잠복성 결정론 Creeping Determinism 이라고 부른다. 사회학자 던컨 와츠 Duncan Watts에 따르면 사후판단 편향은 특히 이례적인 큰성공이 관찰될 때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다. 더 특별한 성공일수록 그 성공 스토리는 더 훌륭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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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에게서 추하고 악한 모습을 봤지.
엄마는 미쳤던 거야? 아니면 선지자였어? 어느 쪽이든 난 엄마처럼 되는 걸 견딜 수 없어. 무서워, 소중하고 진실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감각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 P371

달이 그립다. 고독이 그립다.
멕시코에서는 누구든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누가 혼자 자기 방에 들어가 책을 읽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 사람이 혼자란 걸 알고가서 같이 있어준다. 샐리는 혼자 있는 적이 없다. 밤에는 샐리가 확실히 잠들 때까지 내가 곁을 지킨다.
죽음은 안내자가 없다. 죽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죽음이 어떨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P378

어느 날 밤, 그가 간 뒤 엄마가 집에 들어와 나와 같이 쓰는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술을 마시며 울다 일기장에 무언가 휘갈겨 - 말 그대로휘갈겨- 썼다.
"엄마 괜찮아?" 내가 마침내 묻자 엄마는 내 뺨을 때렸다.
" 너 엄마한테 그 말 하지 말랬잖아!" 그러고 나서 엄마는 화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엄만 그냥 업슨가에 사는 게 싫어. 네 아빠가 나한테 보내는 편지는온통 그 군함 이야기야. 그걸 배라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고 그런 데다 내삶에서 유일한 로맨스는 난쟁이 전등 세일즈맨이고!"
지금은 그게 웃기게 생각되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가슴이미어지듯 흐느껴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엄마 등을 톡톡 두드리자 엄마는 몸을 움찔했다. 엄마는 누가 몸에 손대는 걸 혐오했다. 그래서 난 그저 창문 방충망으로 새어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는 철저히 혼자였다. 내 동생 샐리가 그렇게 울 때 혼자이듯이. - P380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고, 목에는 그의 입술이, 허벅지에는 그의 손이 닿아 있곤 했다.
하루는 해가 뜨기 전 눈을 떠보니 그가 늘 있던 곳에 없었다. 방 안이조용했다. 수영하러 갔나 보다.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가보니 맥스가 변기에 앉아 있었다. 그는 검게 그을린 스푼에 무언가를 녹이고있었다. 싱크대에는 주사기가 놓여 있었다.
"안녕,"
"맥스, 그게 뭐야?"
"헤로인."

이상은 이야기의 결말처럼 들린다. 어쩌면 시작처럼 들릴지도 사실 그 순간은 앞에 놓인 오랜 시간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그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의 행복감에 젖어 산 시간과 그 추악하고 무서웠던 시간.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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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살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면 그냥 바다로 헤엄쳐나가 미리 죽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샐리에게 시한부 인생 선고는 선물과 같다. 어쩌면 그 사실을 알기 바로 전주에 사비에르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샐리는 신이 났다. 모든 것을 만끽한다. 하고 싶은 말은무엇이든 다 하고, 기분 좋아질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한단다. 웃기도 하고, 걸음새는 섹시하다. 목소리마저 섹시하다. 화도 내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내 동생 샐리. 언제나 온순하고 소극적이었다. 어렸을 때는 내 그늘 속에서 그랬고, 성인이 되어서는 제 남편의 그늘속에서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강인하고 얼굴이 환하다. 그 열의에는 전염성이 있다. 사람들이 우리 테이블 앞에 멈춰 서서 인사를 한다. 남자들은 샐리의 손등에 입맞춘다. 의사, 건축가, 홀아비.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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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체성 구성은 근대 후기의 개인을 도시 계획가 게오르크 프랑크 Georg Franck가 기술한 ‘주목 경제 Attention Economy‘ (그가 저술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즉 인지 자원의 자본화로 인도한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평범한 현상은 광고다. 오늘날 광고는 온갖 내러티브를 동원하여 우리의 부족한 관심을 끌려고 애쓰며, 민영방송에서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을 창출한다. 사회학자 울리히 브뢰클링은 여기서 영웅화를 통해 진부한 것이 ‘고상해지는 현상‘을 인식한다. 마케팅의 언어로 상품 또는 심지어 소비자 자신까지 영웅이 된다. 란제리 브랜드 훈케묄러 Hunkemöller는 여성 고객을 쉬어로즈 Sheroes로 칭송하고 알디쥐트ALDI-Süd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옮긴이)광고에서는 케이크 글레이즈Cake Glaze 제품을 ‘일상의 영웅‘
으로 만들었다. 언어 행위를 극도로 응축하고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은폐하며 비교적 단순한 인과관계를 따르는 광고는 일상에 확고하게스며든 미니 영웅 여정의 좋은 예다. - P151

 또한 오늘날 우리는 영웅주의가 뜨거운 모래 위에서붉은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투를 벌이는 것 말고도다른 형태의 영웅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Rousseau가 썼듯이 "영웅이라는 무리는 필연적으로 몰락할 것이다. " 세무신고에서 해상 구조에 이르기까지 시민 영웅주의에는 연방 청소년 대회 Bundesjugendspicle (독일 학교를 대상으로 매년 국가에서 실시하는 스포츠 대회 - 옮긴이)의 오랜 규칙이 적용된다. 즉 너무 많은 선수의너무 훌륭한 퍼포먼스가 낙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상승시킨다. 과거에는 누군가 어떤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면 비록 단골 지정석에서 맥주 다섯 잔을 마신 후라도 주목 경제의 측면에서 볼 때 성공적이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팔로워 수가 만 명이 되지않으면 전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브뢰클링이 ‘비대칭적 시선 체제‘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다. 즉 영웅은 언제나 자신을 올려다보는 청중이 필요하다. 브뢰클링에 따르면 "영화에서 사용되는 영웅 샷 Hero Shor은 주인공을 클로즈업하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카메라 앵글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서사는 19세기의 자유화와 행동하는 주체로의 시민의 지위 상승을 통해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즉 이 이야기에서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 영웅으로 제시되고신에 가까운 힘과 초인적인 용기를 요구하는 모험을 떠난다. 가이 리치와 같은 현시대의 감독은 아서 왕과 같은 고대 신화까지도 우리가 모두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모두가 자기의 왕이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모든 이야기의 주제는 누구나 자신의 자유를 찾고 자신의 운명을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이다. - P152

‘내러티브 Narrative‘, ‘이야기 Erzählung‘, ‘스토리Geschichte‘는 정확히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가? 우리는 이 세 가지 개념과 그 의미가 서로를 기반으로 구축된다고 생각한다. 내러티브가토대를 형성한다. 그 위에 내러티브의 문화적 표현으로서 이야기가쌓이고, 다시 그 위에 수많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스토리가 쌓인다. - P159

보로딧츠키에 따르면 이러한 언어적 차이는 우리가 사물을 기억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영어를사용하는 목격자는 사고 유발요인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목격자는 그것이 의도되지 않은 사건, 즉 불의의 사고라는 사실을 포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다른 관찰자는 이미 자신의 언어적 특징으로 말미암아 같은 사건을 다르게 인식하며, 따라서 세부적 내용도 다르게 기억한다. 이는 증인 진술과 법적 결과와 관련하여 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로딧츠키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언어는 우리가 사건을 판단하는 방식을조종한다. - P169

‘피부색‘이라는 단어를 밝은 베이지색과 동일시하면 완전히 잘못된 현실 묘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피부색‘이라는 단어 자체는 백색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탈로 간주하는 사회적 자기 서사의 표현이다. 이는 레이코프와 보로딧츠키가 연구했듯이 우리의 인지 격차를 보여준다. ‘피부색‘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러한인지 격차가 다시 재생산 및 강화되며, 사람들을 배제하고 평가절하한다. 말하자면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고려해야 할 대상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이러한 모든 내러티브가 ‘피부색‘이라는 눈에 띄지 않는 단어에 담겨 있다. 언어는 이러한 식으로 차별하는 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파괴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힘도가지고 있다. - P174

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일단 먼저 주장한다는 의미다.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 청중은 언어유희라는 틀 안에서 그의 주장이 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한정된 시간동안 화자와 청자는 ‘마치 인 것처럼‘ 함께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현실에 대해말하고 쓰는 방식을 모방한다. 앵글로색슨의 허구 이론에서는 이를 ‘믿는척하기 Make-Believe‘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허구적 사실은 듣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과 함께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실처럼 보이는 순간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영화관 관객은 영화표를 구매함으로써 일라이저 우드 Elijah Wood가호빗이고 백발의 늙은 남자들이 마법을 쓰고 반지가 눈에 보이지 않게사라지게 하고 악을 끌어들인다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주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상상력으로 주어진 내용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장하지 않으면서 주장하는 것이다. 독문학자 베니타 헤르더 Benita Herder가 자신의 저서 『이미지와 허구 Bild und Fiktion』에서 ‘검‘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 설명하듯이, 집단으로 ‘믿는 척하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큰 규칙은 우리의 언어다. 우리에게는 특정 글자의 조합이 글자 이상의 것처럼 행위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동의가 있다. 이를테면 waff 라는 알파벳 문자로는 검치호랑이나공격자에 맞서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 하지만 ‘무기를 제공하다 Waffeanbicien"라는 말로 실제 전쟁이 시작되거나 끝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이미지로도 충분히 그것이 가능하다. - P178

이미지는 우리가 어떤 사태나 실상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같은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그 이미지를 규범으로 받아들인다. 두건을 두른 여성 이미지는 이주나 통합 논쟁을 설명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 독일에 살고 있는 무슬림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증거처럼 사용된다. 독일에 거주하는 무슬림 여성의 70퍼센트가 두건을 착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러한 이미지 뒤에서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편파성은 어디로 이어질까? 베텔스만 재단 Bertelsmann Stiftung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절반이 이슬람을 위협적이라고 느낀다. 특정 이미지가 과잉 노출됨으로써 독일의 문화적 동질성이 두건을 쓴 여성들로 인해 도전받는다는 내러티브가 생겨났다.
덧붙여 말하자면 유대교나 반유대주의를 다루는 뉴스나 기사에서는 종교적 소수자를 묘사하는 편파적인 성(性) 표현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여기에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 유대 모자를 착용한 뒤통수가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전형적으로 키파Kippah를 쓴 남성 모습만 보인다. 놀라운 사실은 독일에 살고 있는 유대인 중 절반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 여성도 유대인 남성과 똑같이 반유대주의 폭력의 피해자다. 그러나 유대인 여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어 연출되지 않기 때문에 기사에 등장하는 경우는드물다.
무슬림과 유대인에게서는 상징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그들 문화와 종교의 작은 일부분을 일반화하고 이를 다시 이주 주제와 혼합하는 반면, 상징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보도가 그 자체로 위험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세 번째 예가 있다. 바로 극우주의다. 극우주의에서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뒷모습이 열심히 작동하는데 이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군화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극우주의자와 네오나치Neo-Nazis가 그들의 옷차림으로 쉽게 식별될 수 있다고 넌지시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독일에는 법원 판결에 따라 극우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허용된 정당이 존재하는데 그들 중 누구도 연방의회에서 군화를 신지는 않는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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