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스터 - 자. 이 지갑을 가져라. 넌 하늘의 저주로 세상 풍파 다 겪는다. 내가 이리 비참한게 너에겐 복이다. 하늘은 늘 그러소서!
과소유와 쾌락 좇아 당신 명령 홀대하는,
자신이 못 느끼면 안 보려는 인간은
당신 힘을 재빨리 느끼게 하소서.
그리하여 넘치는 건 공평하게 분배하고
각자가 충분히 가지 도록, 너, 도버 알아?
에드거 - 예, 주인님.
글로스터 - 거기에 높은 머리 굽히고 갇힌 바다
무섭게 내려보는 절벽이 하나 있다.
바로 그 끝자락에 날 데려가기만 하면
궁핍한 네 신세를 고쳐주마, 내가 지닌
귀중한 물건으로, 거기서부터는
날 인도할 필요 없다.
에드거 - 팔을 이리 주세요.
거지 톰이 인도할 테니까.
(함께 퇴장) - P123

에드거 - 이 슬픈 시국의 무게를 감당해야 합니다.
해야 할 말은 두고 느끼는 걸 말하시오.
최고의 노인이 최고로 견디셨소. 젊은 우린 그만큼 보지도 살지도 절대 못할 것입니다.
(죽음의 행군을 하며 모두 퇴장)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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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진화 과정을 고려했을 때 사적 소유권의 등장은 지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기를 원시공동체형태로 살아왔으니까요.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특징 중 상당 부분은 실제로는 해당 사회의 물적 ‘토대‘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이기심‘같은 것 말입니다. - P232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됐을까요? 생산력 수준이 낮은 소규모 사회에서는 구성원이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습니다. 수렵 및 채집으로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아이들을 함께 돌보며, 맹수나 다른 부족과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구성원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야 생존 확률이 올라가니까요. 그래서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이기심보다는
‘협동‘이 생존에 중요한 덕목이 됩니다. 자신이 취득한 지식과 정보를 신속하게 구성원과 공유하고 수렵과 채집을 통해 얻은 먹을거리도 함께 나눕니다. 이기심 탓에 구성원이 서로 돕지 않는다면아무래도 생존 확률이 크게 떨어지겠지요.
- P241

인간은 인정을 갈구합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인정 요구가 본능적으로 탑재되어 있을까요?
진화심리학의 맥락에서 보면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호랑이처럼 억센 근육과 발톱도 없고 토끼처럼 재빠른 다리도 없지요. 이 탓에 혼자서 생활하면 생존과 번식확률이 크게 떨어집니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과 조건에서 어떤 개인이 무리에서 배제되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습니다. 피해야 할 두려운 상황인 것이지요.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다른 이들에게 ‘인정‘ 받는 게 중요합니다. 좋은 평판을 얻으면 무리에서 배제될 확률은 낮아지고 생존과 번식 확률은 높아집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있겠지요. 이런 삶의 방식이 진화 기간 내내 지속되면서 우리의 유전자에 인정 욕구라는 흔적을 남긴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호랑이라면 굳이 남에게 인정 따위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겠지요.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무리 속에서 확보할 필요가 없는 호랑이에게 인정 욕구가 있다면 얼마나 어색하겠어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은 오히려 무리로부터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공동체 지향적 유전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P250

물론 국가의 모든 기능이 지배계급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국가의 여러 특성 중 ‘폭력을 배타적이고 합법적으로 행사‘ 하는 측면에 주목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에는 계급투쟁의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그 때문에 피지배계급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 법원, 감목, 군대 같은 조직된 폭력 기구가 필요하지요.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은 법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습니다. 군대와 경찰은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지만, 사회의 나머지 성원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불법행위입니다. 요컨대 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면서 사회를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국가기구를 통해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면서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경제적 토대 위에 존재하는 정치적 상부구조입니다. 노예제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 맞는 노예제국가가 존재하고, 봉건제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 맞는 봉건제 국가가 존재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 맞는 자본주의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구까의 탄생은 계급사회의 발생과 맞물려 있습니다. - P272

대다수 사람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착취당하니까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노동자 주체의 혁명과 해방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억압당하고 착취당하기 때문에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애초에 노예와 농노가 혁명의 주체가 되었어야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노예와 농노는 비참한 현실에 분노해 봉기했지만,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 주체는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만한 역량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예와 농노는 현실에 대한 분노는 있었지만, 그것을 응집된 힘으로 바꿀 사상적 준비와 조직적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반면 막강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계급은 계몽사상 (공화주의)을 사상적 기치로 삼고 정치세력화 (정당)를 통해 권력을 들어쥘 수 있었습니다. 사상은 방향타의 역할을 합니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요. 조직은 그 방향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제공합니다.
- P288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회 진보는 다단계 영업과 비슷하다.
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변화된 한 사람이 추가로 두 명만 변화시키면 같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순식간에 지수함수로 증가할 테니까요.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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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하늘 속에서 살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우린 하늘 아래 사는 것이 아니다. 하늘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대기는 하나의거대한 바다 이고,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다. 이 바다는 액체 상태의 물대신 기체 상태의 공기로 이루이져 있지만 대서양이나 태평양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바다다. 우리는 자신이 땅 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가 바다 밑바닥에 붙어사는 생물이라는 의미다. 해저생물이 물속에서 살고 있듯이 우리 역시 대기 속에서 살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 (40쪽 참조)은 이렇게 적었다.
"일반인들이 하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니,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면 정말로 이상한일이다. 한 가지 이유는 하늘이 늘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늘은 우리의 삶에서 항상 배경이 되어준다. 이렇듯 어디에나 존재하는것은 너무 잘 보여서 오히려 놓치기 쉽다.
- P7

간과하기 쉬운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방법이 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것을 예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그리고 이것을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안다면?"
- 레이첼 카슨,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1956)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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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 기러기 그쪽으로 날아가면 겨울 아직 안 끝났어,
넝마 걸친 아비는자식들이 눈 돌리나
주머니 찬 아비는자식들이 친절하지.
최고 창녀 운명여신
거지에게 문 안 열어.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딸들 때문에 일 년을 세어도 못다 셀 슬픔이 있을 거야.
리어 - 오, 울화통이 내 심장을 치받고 올라온다!
화병이여, 차오르는 슬픔이여, 내려가라.
네 자리는 저 아래다. 이 딸은 어딨느냐?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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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선생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에 나오는 말인데, 좀 어렵지요? 조금 전에 학생이 이야기한 우물 있는 마을의 예로 설명하면 좋겠네요. 이 마을 사람들은 목이 마르면 동쪽으로 가서 우물물을 마시면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우물이 동쪽에 있으니까요. 여기서 ‘존재‘는 동쪽에 우물이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지요. 마을 동쪽에 우물이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존재‘의 양식이, 목이 마르면 동쪽 우물로 가서 물을 떠먹으면 된다는 ‘의식‘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마을 동쪽에 우물이 없다면 목마를 때 마을 동쪽으로 가자고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 P169

 농도가 신분적 속박에서 해방되어야 자본가는 노동자를 구하기 쉽습니다. 게다가 귀족들이 봉건적 신분 질서를 빌미로 상공업에 가하는 이런저런 규제들이 장사에 방해가 되고요. 자본가계급이 민주적 공화정을 세우려는 ‘의식‘을 갖게 된 기저에는, 노동자를 고용해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신들의 ‘존재‘ 양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혁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위인이나 영웅의 의식에도 반영된 것이고요 - P177

생산력 = 노동력 + 생산수단

빵 만드는 과정을 생각해봅시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빵 기술을 보유한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이 제빵 노동자가 ‘노동력‘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제빵에 필요한 원료와 기계가 있어야 합니다. 원료나 기계 등을 생산수단‘이라고 부릅니다. 생산수단은 다시 두요소로 나뉩니다.

생산수단 = 노동대상 + 노동수단

노동대상은 문자 그대로 노동의 대상이 되는 원료 등을 일컫습니다. 노동수단은 공구나 기계처럼 노동의 수단이 되는 것이고요.
제빵에서는 밀가루가 노동대상이고 제빵 기계는 노동수단이지요.
 생산관계란 생산 활동에서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입니다. 예컨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노예와 노예주라는 신분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노예제 사회의 ‘생산관계는 ‘노예 노예주 관계인 셈이지요.  - P189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공장을 짓고 싶은데 토지는 대부분 봉건영주에게 묶여있습니다.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가 필요한데 많은 사람이 여전히 농도로 귀족의 토지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자본가계급에게 영주- 농노 생산관계와 봉건사회의 규범들이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생산력(상공입)과 낡은 생산관계 (영주 - 농노) 사이에 모순과 갈등이 발생한 것이지요. 생산양식을 구성하는두 요소 (생산력과 생산요소) 사이의 모순과 갈등입니다.
- P196

부르주아계급의 승리로 귀족 소유의 토지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되었으며, 봉건 영지에 속박되어 있던 농노는 자신들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자유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생산력(상공업)과 낡은 생산관계(농노 영주)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새로운 생산력에 어울리는 새로운 생산관계 (노동자 자본가)가 전면 도입된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역사는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발전했습니다. 변화의 결정적인 원인은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입니다.
ㅊ부르주아계급은 기존의 봉건적 정치제도 (신분제)를 타파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공화주의 정치제도를 수립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계몽사상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공화주의 시스템의 정당성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계몽사상의 확산도 상공업의발전과 부르주아계급의 성장이라는 물질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가능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부르주아계급의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에, 계몽사상이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게 된 것입니다.
- P197

공화주의를 주창하는 계몽사상 때문에 유럽에서 부르주아혁명이 일어났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몽사상은 ‘관념‘입니다. 유물론의 관점으로 보면 관념은 결과물이며 그러한 관념을 낳은 물질세계의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계몽사상이 혁명의 근본 원인이라는 의견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근원으로 소급해 들어가지 못한 것이지요. 솔직히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문명사회라면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2,000년 전 중국의 묵자도 겸애를 이야기하며 평등사상을 설파했으니까요.. 유독 특정 시기의 유럽에서 계몽사상이 시대정신이 된 이유는 부르주아계급이 자신의 사상으로 그것을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껏 위세를 떨치는 이유가 유럽 문명의 근원인 로마제국의 국교였기 때문인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정리하자면 마르크스는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의 모순과 갈등이라는 틀로 사회의 변화 발전 과정을 분석하고 해명했습니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입니다.
- P198

요컨대 생산 활동은 사회적 차원의 협업과 분업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공동체적 성격이 강화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생산을 통제하는 권한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소수의 자본가에게 집중되며 자본가의 이윤극대화라는 목적을 위해 사용됩니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 사이의 모순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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