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SDGs는 ‘현대의 아편‘이다!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비닐봉지를 줄이려고 에코백을 샀는가? 페트병에 담긴 음료를 구입하지 않기 위해 텀블러를 들고 다닐까?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구입했을까? 단언한다. 당신의 그런 선의만으로는 무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유해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온난화 대책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고 믿는 당신이 진정 필요한 더 대담한 활동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에코백과 텀블러 등을 구입하는 소비 행동은 양심의 가책을 벗게 해주며 현실의 위기에서 눈을 돌리는 것에 대한 면죄부가되고 있다. 그런 소비 행동은 그린 워시 green wash, 즉 자본이 실제로는 환경에 유해한 활동을 하면서도 환경을 위하는 척 소비자를기만하는 행위에 너무도 간단히 이용되고 만다. - P5
그렇다면 UN이 강조하고 각국 정부와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SDGs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지구 전체의 환경을 바꿀 수 있을까? 그 역시 잘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SDGs에 맞춘 몇몇 지침을 따른다고 해서 기후 변화가 멈추지는 않는다. SDGs는 알리바이 공작이나 다름없으며 눈앞의 위기를 가려주는 효과 정도밖에 없다. 일찍이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자본주의의 고달픈 현실이 불러일으키는 고뇌를 완화해주는 ‘종교‘를 가리켜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했다. SDGs는 그야말로 현대판 ‘대중의 아편‘이라 할수 있다. - P6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브란트Ulrich Brand와 마르쿠스 비센Markus Wissen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수탈함으로써 성립되는 선진국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국적 생활양식imperiale Lebensweise‘이라고 불렀다. 제국적 생활양식이란 간단히 말해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대량 생산·대량 소비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제국적 생활양식은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실현해주기 때문에 보통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글로벌 사우스의 사회집단과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탈, 나아가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생활의 대가를 글로벌 사우스에 떠넘기는 구조가 존재한다. 문제는 수탈과 대가의 전가 없이는 제국적 생활양식이 유지될수 없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조건이 악화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전제조건이며, 남북 사이의 지배종속 관계는 예외적 사태가 아니라 ‘평상시 상태‘인 것이다.‘ - P27
오늘날 독일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이 말했듯, 사람들은 제국적 생활양식의 불공정을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일 뿐이다. 진실을 견딜 수 없기에 "우리가 그 불공정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현재의 질서가 유지되길 내심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제국적 생활양식은 한층 단단해졌고, 위기 대응은 나중으로 밀렸다. 우리 한 명 한 명이 불공정에 가담해온 것이다. 하지만 그 응보가 마침내 기후 위기라는 재앙으로 중심부에도 다가오고 있다. - P34
그렇지만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도 이루었다고 선진국이 자축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오류‘다. 선진국의 환경오염이 개선된 것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의한 결과가 아니며, 자원 채굴과 쓰레기 처리 등 경제 발전에 따라오게 마련인 부정적 영향의 적지 않은 부분을 글로벌 사우스라는 외부로 떠넘긴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적인 전가를 무시한 채 선진국이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는 것이 바로 ‘네덜란드의 오류‘다. - P35
잠시 역사를 돌이켜보자. 1988년, NASA(미국항공우주국)의 연구자였던 제임스 핸슨 James Hansen은 "99퍼센트 확률로" 기후 변화가 인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미국 의회에서 경고했다. 게다가 그해에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UNEP(유엔환경계획)와 WMO(세계기상기구)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무렵에는 기후 변화 대책을 위한 국제협정이 체결될 희망이있었다. 만약 그때부터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면, 이산화탄소배출량을 매년 약 3퍼센트씩 천천히 줄이는 방식으로 기후 변화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핸슨의 경고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그 직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나아가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형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뒤덮었기 때문이다. 구 공산권의 저렴한 노동력과 시장을 눈독 들인 자본주의는 새로운 미개척지를 향해 진격했다. 경제 활동이 점점 확대되면서 자원의 소비도 한층 가속했다. 인류가 지금껏 사용한 화석연료 중 약 절반이 1989년 냉전 종결후에 소모되었을 정도다. - P38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신기술이 개발되어 효율성이 높아져도 상품이 그만큼 저렴해지는 바람에 결국은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텔레비전은 갈수록 전력 소모가 적은 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더 큰 텔레비전을 구입하는 탓에 전체적인 전력 소비량은 외려 증가하고있다. SUV 같은 대형차 판매가 늘어나서 자동차의 연비 향상이무의미해지는 것도 같은 역설에 해당한다. 신기술 덕에 효율성이 올라가 ‘상대적 디커플링‘이 일어나는 듯해도 소비량이 증가하여 효율화 효과가 상쇄되고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또한 효율화 덕에 어느 부문에서 ‘상대적 디커플링‘이 일어나도 절약된 자본과 수입이 에너지와 자원을 더욱 많이 소비하는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 쓰여서 절약이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가령 가정용 태양광 패널이 저렴해져서 아낀 돈으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갈지도 모른다. 기업 역시 잉여금이 생기면 새롭게 투자할 만한 곳을 찾을 것이다. 새로운 투자처가 친환경적일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얄궃은 일이지만, 어느 부문에서 일어난 ‘상대적 디커플링‘이 전체를 따져보면 ‘절대적 디커플링‘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 P78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린 뉴딜이 진정 추구해야 하는 목표는 파국으로 치닫는 경제 성장이 아니라 경제의 규모 축소 scale down와 속도 둔화slow down다. 애당초 기후 변화 대책은 경제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기후 변화 저지가 목표였을 터이다. 더이상 경제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기후 변화가 멈출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리튬과 코발트 채굴이 칠레와 콩고에 일으키는 문제도 완화될테고 말이다. (물론 그래도 환경 파괴는 계속되겠지만.)반대로 무한한 경제 성장을 목표하는 그린 뉴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멸종에 이르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 - P96
선진국이 쓰려 하는 자원과 에너지를 글로벌 사우스에서 사용한다면,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행복도는 틀림없이 크게 올라갈 것이다. 그러니 탄소 예산carbon budget (아직 배출해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글로벌 사우스를 위해 남겨둬야하지 않을까. - P111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는 지나친 세계화, 한쪽으로 쏠린 부, 시장을 지배하는 대기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스티글리츠가 해결책으로 구상한 ‘진보적 자본주의progressive capitalism‘를 지젝이 문제시했다. 스티글리츠는 자유시장에 대한 맹신을 비난하면서 공정한 자본주의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임금 인상,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과세, 나아가 독점 금지 강화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적인 투표로 법률과 정책을 변경하면 경제 성장이 회복되고 만인이 중산층이 되어 풍요롭게 살아가는 ‘진보적‘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법률과 정책을 변경한다고 정말로 자본주의를 길들일 수 있을까? 지젝은 이렇게 의문시했다. 애초에 법인세 인상과 사회보장비 확충이 가능했다면 한참 전에 하지 않았을까? 자본주의는 1970년대에 수익률이 저하되어 심각한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그간 필사적으로 온갖 규제를 없애서 세율을 낮추지 않았는가? 그런데 앞으로 규제를 오래전 수준이나 그 이상으로 강화한다면 자본주의 자체가 무너져버리지 않을까? 그런 일들을 자본주의가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자본주의는 또다시 목숨 걸고 저항할 것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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