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에게 쉽게 원한을 품지 않는다. 의견 차이를 놓고 며칠씩 고민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의심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싸움에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도 아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원칙이 그러하듯, 나에게도 예외는 있다. 누군가가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한다. 그건 당연히 내가 당하는 상황이 와도 마찬가지다. 정의가 승리할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재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번 달, 내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즉각적이고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내 성격상 딱히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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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지오크를 만나서 소송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그에게 이 말을 꺼내기가 결정을 내리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집행연기를 받아내고 필요한 서류에 서명을 했다면, 난 옳은 결정과 도의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의 짐은 내가 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짐은 게리 몫이었다. 만일 그가 자살을 선택했다면, 난 내 선택에만 책임이 있을 뿐 그의 선택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게리의 생존을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난 그렇게 했을 것이다. - P598

일순간, 희망은 산산이 흩어지고, 그다음에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이 이미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두려움의 장면을 낱낱이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늘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증오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 마지막 순간, 이 모든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오, 하느님. 게리, 너 어디에 있니? 어디로 가버렸니?" - P606

어머니는 남다른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와 되도록 멀리 떨어져있고 싶었던 때였지만,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상실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렸지만, 그래도 이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들이 무척 좋아하던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가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고 그의 상처를 헤아릴 수 있다는 걸 전해주려는 마음이었다. 그날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못했을모습을 내보일 수 있었다. 난 울고 말았다. 존 레논의 죽음을 위해, 그리고 내 과거의 소중한 한 부분이 유린당한 것을 애도하면서. - P621

나도 너처럼, 그랬어야 했어. 멀리 가버렸어야 했던 거야. 그랬다면 어머니는 어쩌면 스스로 모든 것을 터득했을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을 테지. 어머니는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텔레비전을 켜는 법도 알게 됐을지도 몰라. 어머니가 지닌 두려움들을 극복하는 법도 터득했을 테고. 여러가지 면에서 어머니를 그렇게 쓰러뜨린 것은 바로 그 두려움이었어. 그 어처구니없는 수많은 두려움들이 어머니의 몸까지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지. 어머니는 모든 것에서 두려움을 느꼈어.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물도 먼지도, 그리고 약과 병, 모두 다. - P626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어. 어떤 때는 저쪽 편에서, 어디서 험한 일을 하거나 다리 밑에서 잠을 자거나할 때, 난 이런 생각을 했어.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동생이 있다. 그 애는 글도 쓰고, 유명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있어.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도 있겠구나. 그럼 난 큰아빠가 된거구나.‘ 그리고 그 아기가 여자일까. 남자일까. 네가 어렸을 때처럼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아기일까, 궁금했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때로는 힘이 됐어. 아까도 말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난 완전히 절망에 빠져 있었지. 그런데 네 생각을 하면 마음이 뿌듯했어. 그리고 말하자면 널 결코 방해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거지. 널 찾아가서, 날 인정하도록 하고 널 당황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말이야. 난 네가 우리의 과거로부터 무사히 빠져나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로 인해 그 과거를 되새기게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야. 내 생각은 이랬어. ‘우리 중에 한 사람, 단 한 사람은 이제 무사하다. 그가 해낸 거야. 난 그를 그렇게 놔두고, 그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도록 놔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거야. 그를 그렇게 놔주는 건 기쁜 일이야. 그가 우리 가족의 굴레에 묶여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 P667

그때 잠에서 깬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난 정말로 울고 있다. 나는 어둠 속에 앉아서 흐느낀다. 실제로 죽은 아이는 없는데, 울음을 그칠수가 없다. 너무 심한 상실감에 빠져서 더는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는 일어나서 시계를 본다. 새벽 4시 30분이다. 주방으로 가서 위스키를 한 잔 따른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어둠 속에 앉는다. 그렇게 오래 앉아 있다. 위스키를 다 마신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몹시싫어하는 아침 햇살이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베개로 내 얼굴을 덮는다. 몸을 웅크린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 "괜찮지 않아, 절대로 괜찮아질 수없어." 나는 나 자신을 향해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마침내 그 말 속에서 위안을 찾고, 난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 P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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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나고 게리가 사형선고를 받은 지 몇 주일이 흘렀다. 나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깊은 고통과 수치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형이 우리 가족들에게 앞으로 평생 동안 안고 살아야 할 엄청난 공포와 수치심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 차마 믿기지 않았다. 그가 맥스 젠슨과 벤부슈널, 두 사람의 가족들에게 저지른 죄 역시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난 어떻게든 이 끔찍한 현실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그건 게리가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유타의 감옥에서 공허하게 보내는 것으로 끝나야 했다.
그리고 난 내 생활을 계속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 게리 이야기를 했다. 그들에게 살인자의 동생과 친구로 지낼지, 절교할지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로 만나는 편집자들이나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난 이 무서운 진실을 어느 구석엔가 파묻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 속으로 침투해 아직 버리지 못한 내 꿈을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 P564

이 나라 안에는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수백만은 될 거야. 그리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게리와 같은 선택을 했겠지. 그렇게 죽이고 또 죽으면서 말이야. 감옥에서 보낸 그 잔인한 세월들이 그들을 그렇게 바꿔놓은 거야.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지.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이 그 삶에서 탈출할 수 있는 출구로 보이기 시작하지. 그건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출구이기도 해. 그들 중에는, 다른 모든 것들은 두려워도 죽음만은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어. 그러면 그들은 대단히 위험한 존재가 되고 말아. 그들은 가둬버릴 수도 없어. 그것이 그들에게는 자유이기 때문이야. 또 그들은 죽일 수도 없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죽음이니까. 그들은 정말로 다른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야. 그런 사람들 수천 명이, 바로 게리 같은 사람들이 이 땅을 활보하고 있어. 문제를안고 있는 아이, 그 문제는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가정문제일 수도 있겠지. 그런 아이를 그 폭력이 난무하는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넣는다고 해봐 그러면 결국 그 아이는 내 동생 게리처럼 될 가능성이 많지. - P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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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파는 자본가계급의 권력도 차르 체제와 다를 바 없는 소수자의 독재이니 당장 권력을 장악해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한꺼번에 해치우자고 했다. 이 정파의 우두머리가 레닌이었다. 레닌은 차르 정부를 타도하고 세울 정부를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또는 ‘절대다수의 소수에 대한 독재‘라고 했다. 레닌 그룹은 볼셰비키 (Bolsheviki, 다수파)를 자처하면서 반대파를 멘셰비키(Mensheviki, 소수파)라 했다. 두 정파는 1905년 4월 런던에서 연 제3차 당대회 때 완전히 갈라섰고 1917년에는 총을 들고 서로를 죽였다 - P81

사회주의혁명은 선진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라 러시아 같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약한 고리‘에서 일어난다. 그게 법칙이다. 러시아 사회주의자는 당장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패전은 혁명을 촉진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는 조국이 전쟁에 패배하게끔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레닌의 주장이었다. - P90

레닌은 평생 누군가와 싸웠는데, 싸움 상대는 대부분 적이 아니라 노선이 다른 혁명가였다. 첫 번째는 나로드니키, 다음은
‘합법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나로드니키는 테러를 일삼았고 차르를 암살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보통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그토록 위험한 나로드니키를 공격했다.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아 경찰이 단속을 느슨하게 하자 그 틈을 타 많은 청년들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토론했다. 레닌은 그렇게 형성된 ‘합법 마르크스주의‘가 혁명에 반대하는 개량주의를 퍼뜨린다고 봤다.
레닌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을 비롯한 ‘수정주의자‘와도 싸웠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가 파멸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술이발달하고 생산력이 높아지면 폭력혁명 없이도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의회활동을 통해 사회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 테니 자본주의체제의 붕괴를 기다리지말고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일상 활동으로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레닌은 유배 중인 혁명가들을 모아 러시아는 당장 혁명을 해야만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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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자살했을 때, 우리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심리적 부검을 합니다. 그 사람의 의학적 기록과 사회적 관계를 검토하며무엇이 그 개인을 자살로 몰고 갔는지에 대해 파악하지요. 한국과 같이 한 사회의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을 때, 우리는 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 공동체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직후부터 시작됐습니다. 비정규직 고용이 전 사회적으로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한 때입니다. 2000년대에 한국사회를 아프게한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에게 삶보다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원인으로 저는 비정규직 고용을 주목합니다. 이시기부터 저임금으로, 위험한 작업환경을 감수하며 고용불안속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가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에서 일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자신이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일해야 했습니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패자부활전이 존재하지 않는, 해고된 이들을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될 수 있고,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고용불안은 삶을 뿌리째 흔드는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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