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원하지 않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선언은 사회과학의 슬로건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라는 것은 누구이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그 개조의 주체인 "우리"가 생물학적 세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물질 덩어리라면, 우리가 어떤 행동의 가소성을 발견한다 해도 그것은 달갑지 않은 위로에 불과할 것이다. 개조의 주체인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속박된 존재가 될 것이고, 따라서 가장 사회적으로 유익한 측면에서 사람들을 주조해 내거나 우리 자신을 주조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 속의 유령은(사회 변화에 대한 의지를 포함한) 인간 의지를 기계적 인과관계에서 해방시키는 궁극적인 구원자이다. 인류학자 로렌 아이즐리의 글은 이 점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불확정성에 의해 그리고 선택과 문화적 소통의 힘에 의해, 다윈주의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인간을 감금시켰던 그 결정론적 세계의 맹목적 지배에서 이제 막 벗어나려 하고 있다. 생물학적 극단주의자들이 인간에게 강요했던 선천적 특징들이 힘없이 부서지고 있다.………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신체 기관들의 진화가 낡은 개념으로 변했고, 그 결과 이제는 마음이 인간의 운명을 조정하는 결정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월리스는 정확히 보고 또 보았다. - P66

문화와 생물학의 절대적 분리를 믿었던 사회과학자들은 말 그대로유령이 마음에 붙어 다닌다고는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과학자들은그 분리를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에 비유했다. 크로버는 이렇게 썼다.
"사회적인 것의 출현은...... 어떤 사슬의 한 고리도 아니고, 어떤 길에서의 한걸음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생명이 없던 세계에 최초로 생명이 출현한 것과 같다....… 이 순간부터는 하나가 아닌 두 세계가 있어야 한다." 로위는 문화가 "독자적인" 것이며 단지 문화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견실한 과학적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생물학에서 하나의 세포는 오직 다른 세포로부터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P67

제2개념 : 마음은 결코 빈 서판이 아니다. 빈 서판은 아무것도 할 수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마음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그저 막연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때에, 환경이 빈 서판에 무엇인가를 새겨 넣는다는 비유는 그리 엉뚱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의 체계가 과연 어떤 종류의 연산을 통해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계획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자. 빈 서판의 문제는 더없이 명백해졌다. 빈 서판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서판에 새겨진 무엇인가가 패턴을 인식하고, 그 패턴을 다른 때에 학습한 패턴들과 결합하고, 그 조합을 이용해 새로운 생각을 서판에 쓰고, 그 결과를 읽고 목표를 향해 행동을 이끌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판에 새겨진 것들은 영원히 그 자리에 남게 된다. - P76

 수감 중인 드미트리 카라마조프가 그를 방문했던 학자에게서 방금 배운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할때 누가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상해 보게 마음에는, 신경에는 머릿속에는 그러니까 이 신경이란 것은 뇌 속에 있는데...… (빌어먹을 신경!) 그 신경에는 일종의 작은꼬리가 달려 있고, 그 꼬리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곧...... 나는 두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그런 다음 그 작은 꼬리들이 다시 흔들리기 작하고...... 그러면 심상이 나타나고...... 즉시 나타나지 않고 한 순간, 1초가지나고...… 그런 다음 한 순간 같은 어떤 것, 아니 한 순간이 아니라악마가 그 순간을 빼앗아 가니까! ―심상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즉 어떤 사물 또는 행동이 나타난다고 하더군. 빌어먹을! 내가 보고 또 생각하는이유가 나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꼬리들 때문이라고, 내가 일종의 심상이고 그림자라고,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어제 라키틴이 나에게 이 모든 걸 설명하는 순간 나는 완전히 흔들리고 말았다네. 알료샤, 이 과학이란 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내가 이해하기로는 새로운 인간의 출현일세. ..… 하지만 슬프게도 신을 잃게 되지 않는가!" - P88

유전자가 전부가 아닌 두 번째 이유는 유전자의 영향이 환경에 따라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모든 유전학 교과서에서 발견할 수있다. 종이 다른 옥수수들이 같은 밭에서 자라는 경우 유전자 때문에 옥수수들의 높이가 다양해질 것이다. 그리고 같은 종의 옥수수가 서로 다른 밭에서 자라는 경우에는 환경 때문에 높이가 다양해질 것이다. 인간의 예로는 우디 앨런이 있다. 명성과 부 그리고 아리따운 여자들을 반하게 만드는 그의 능력은 모두 유머 감각을 분출하는 유전자에서 나온 것이지만, 스타더스트 메모리스에서 우디는 그를 부러워하는 어릴 적 친구에게 환경 요인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농담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 내가 아파치 인디언이었다면 그 사람들은 희극 배우가 필요 없었으니까 나는 실업자신세였을 거야." - P100

 자연 선택은 가장 능률적인 복제자가 그 대안을 누르고 번식에 성공해 수적 우세를 차지하는 도덕적으로는 중립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선택된 유전자는 리처드 도킨스의 비유를 빌리자면 "이기적인 유전자이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최대한 복제하는 과대망상 유전자이다. 적응 특성은 그것이 인간의 소망을 충족하는가 아닌가에 상관없이 유전자가 이 과대망상증을 충족하기 위해 손에 넣은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의 기능이 무엇을 위해 설계되었는가에 대한 일상적 직관과는 아주 다른 개념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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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슬람교의 가장 좋은 점과 가장 나쁜 점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이슬람교에는 원래 제도화의 원리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 권력이 이슬람교를 이용하기 쉬웠다. 그래서 국가 권력은 이슬람교를 위한 제도화를 추진했다. 여기서 이슬람교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슬람교는 본성상 어떤 사항을 "곧바로 정치적 문제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종교와 정치가 중첩되는 현상은 국가주의적 동원으로 나타나거나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나타난다. - P54

물론 우리는 테러리스트의 논리를 (코란이 아니라) 근대화의 맥락에서 다뤄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슬람 세계가 부딪힌 문제를 근대화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있다. 이슬람 세계는 서구 근대화에 갑자기 노출되었다. 근대화의 충격을 "통과하고" 충격을 완화할 상징적, 환상적 공간이나 장막을 구성할 겨를도 없이 근대화에 직면했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는 이란의 샤shah 정권처럼) 근대화를 피상적으로 모방하거나, 적당한 상징적 환상을 만들지 못한 채 곧바로 폭력적 실재에 기대어 무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근대화를 피상적으로 모방하는 방법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폭력을 휘두르는 세력은 이슬람의 진리와 서구 세계의 거짓이 싸울 수밖에 없고 둘을 이어주는 상징적 매개체가 없다고 선언한다. "근본주의자"가 제시하는 이 해법은 근대적 현상으로서 이슬람교 전통과 곧바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이들의 해법에서 나타난 신은 초자아다운 실재로서 외설스런 초자아적 신성을 실현하고자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살해욕구를 발산한다.  - P58

하지만 이슬람교는 여자를 불신한다. 그런데 이슬람교가 여자를 불신하는 방식은 오히려 여성 주체성이 품은 외상적, 전복적, 창의적, 폭발적 힘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물론 부정적으로 드러내긴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극동처럼 여자를 어머니 여신으로 높일 것인가? 이슬람처럼 여자를 불신하여 여성 주체성의 힘을 드러낼 것인가?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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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일찍 일어난다. 날이 새고 얼마 있다 잠이 깬 나는, 좁은 침대에 누운 채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선생님 기척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머리맡에 둔 손목시계를 들고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본다. 5시 5분이다. - P9

나는 잠자코 불을 보고 있었다. 장작과 장작 사이에 약간의 틈을 주고 늘어놓으면 그 틈새로 신나게 불길이 솟구친다. 사이를 떼어놓으면 그 순간 불길이 약해지고 빨갛던 장작이 하얀 연기를 내면서 까매진다. 장작을 가까이 갖다붙이면 다시 불꽃이 일어난다. 불꽃은 장작과 장작 사이에서 태어나는 덧없는 생물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은 불타는 장작 소리만 이따금 튈 뿐, 빗소리도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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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그들은 덴버에게 미안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세서에게. 어쩌면 누군가를 경멸했던 자신들의 지난날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로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으면서도, 그 사람에게 역경이 안장도 없는 말을 타고 찾아오면 재빨리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에 발을 걸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저 착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 P406

"세서." 그가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어루만진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그의 믿음직한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잡는다.
"나? 내가?" - P445

흔들어서 달랠 수 있는 외로움이 있다. 팔짱을 끼고 무릎을 끌어당겨 세운 채 몸을 흔들고, 계속 흔든다. 이런 동작은 배의 흔들림과는달리, 몸을 흔드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가라앉혀준다. 그것은 내면의 문제다. 피부처럼 팽팽하게 감싸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배회하는 외로움도 있다. 몸을 흔들어도 진정시킬 수 없다. 그것은 살아 있어서,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메마르고 확산되는 그것은 자기 자신의 발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 P446

이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124번지 뒤로 흐르는 시내 근처에는 그녀의 발자국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발자국은 아주 친숙하다. 아이든 어른이든 발을 대어보면, 꼭 맞을 것이다. 발을 빼면, 마치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것처럼 발자국은 다시 사라진다.
곧 모든 흔적이 사라지고, 발자국뿐 아니라 물과 그 물 아래 있는것 전부가 잊힌다. 남는 건 날씨뿐이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행방이 묘연한 이들의 숨결이 아니라 처마를 스치는 바람, 혹은 너무 빨리 녹는봄의 얼음이다. 그저 날씨뿐. 물론 키스를 바라는 아우성도 없다.

빌러비드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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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에 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 마음이 백지라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존재한단 말인가? 아이를 한두 명 키워본 사람, 이성애적 관계를 경험해 본 사람, 아이들은 언어를 학습하는 반면에 애완 동물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주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의 재능과 기질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유전과 환경으로 단순화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모든 행동은 그 둘의 상호 작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지 않았는가?" - P7

그럼에도 모든 사회는 그 나름의 인간 본성이론과 함께 유지되며,
우리의 주류 지식인 사회에도 하나의 명확한 이론이 존재한다. 그 이론은 공공연히 표명되거나 채택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신념과 정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확신의 구름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그 구름은 여름날의 파리 떼처럼 그를 따라 이동한다." 오늘날 지식인들의 경우 그 확신의 많은 부분이 심리학 그리고 사회적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그 확신들을 ‘빈 서판‘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은 어떤 고유한 구조와도 무관하며, 사회나 그 자신이 그 위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새겨 넣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 P27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이론, 즉 인간 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모든 종교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이 포함되어 있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들이 각각의 종교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현대 지식 세계에서는 빈 서판이 세속 종교가되었다. 그것은 가치의 원천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그 이론이 무에서 생겨나는 복잡한 마음이라는 믿기 힘든 기적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회의론자들과 과학자들이 그 학설에 도전하면 어떤 신자들은 신앙의 위기에 빠지고 또 어떤 신자들은 이교도와 불신자들을 향해 격렬한 공격을 퍼붓는다. 그러나 많은 종교적 전통들이 결국에는 과학의 명백한 위협들(가령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의 혁명적 이론)을 참고 받아들였듯이, 우리의 가치관도 빈 서판의 종말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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