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누군가를 부르는 목청 좋은 여인네의 고함.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로큰롤로 주위는 산만하고 정오를 넘어선 해는 잔뜩 따가웠다. 모처럼의 나들이를 나선 여인네들의 곁을 보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재미없어하고 피곤해하는 남자가 유모차를 밀거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그들의 뒤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뒤따르는 흰옷 차림의 고독한 노인네들도 동양 최대라는 이름 아래 밑도끝도없이 걷게 만드는 공원의 구조를 피곤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들떠 있는 재잘거림과 탄성의 뒤켠에 서서 남자와 노인네들은 대체적으로 따분해하고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무관하게 온전히 즐겁다. 여자와 남자와 노인네와 아이. 그들이 지어내는 순간순간의 표정과 부딪쳐 땅에 떨어지는 토막난 대화들, 심드렁한 대꾸와 가쁜 숨소리의 곁을 스치며 그녀는 쓸쓸해한다. 어디까지라도 달라붙는 삶이라는 것의 지루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권태롭기 때문에, 피곤하기 때문에라는 제목을 단 구경이었지만 더욱 권태로워지고 더욱 피곤해지기 위한 구경이 되어버린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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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는 흔한 원소다. 지구 대기의 78%가 질소다. 대기 중에 질소 비율이 왜 이 정도로 높은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인간의 입장에서 농업에 필수 요소인 질소가 흔하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이 흔한 질소를 농업에 바로 사용할 수가 없다. 공기 속 질소는 원자 2개가 합쳐진 형태 (N2)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 두 원자는 애정 행각을벌이는 커플처럼 강하게 붙어 있어서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를 전문 용어로 ‘3중 결합‘이라 한다. ‘원자가 강해봐야 얼마나 된다고, 강제로 떼면 되지 싶겠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 질소가 분해되는 경우는 번개가 치는 순간 정도다. 번개 정도의 거대한 에너지가 있어야 아주 소량의 질소를 얻을 수 있다. 참고로 번개가 내리칠 때 중심 온도는 태양 표면 온도(약 6,000℃)의 8배 정도로 추정된다. 추정인 이유는 아무도 이를 정확히 측정할 만큼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소를 얻는 또 하나의 방법은 뿌리혹 박테리아Leguminous Bacteria를 이용하는 것이다. 뿌리혹 박테리아는 공기 속의 질소를 고정해서 식물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박테리아는 콩과 식물의 뿌리에 기생한다. 그래서 과거부터 인류는 땅의 지력이 다하면 콩을 심었다. 콩은 지력이 떨어져도 잘 자랐고, 뿌리혹 박테리아 덕분에 오히려 지력이 회복됐다. - P27

인공 비료가 대중화된 지 3년 만에 식량 생산량은 인구 증가량의 2배를 기록한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맬서스의 이론은 완전히 붕괴한 것이다. 100년간 인류를 광기로 몰았던 식량 위기가 사라졌다. 하버는 ‘공기로 빵을만든 과학자‘, ‘공기의 연금술사‘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의 영웅이 된다.
질소 고정을 연금술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지만, 질소 고정은 연금술보다 훨씬 위대하다.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데는 어쨌든 원재료가 필요하지만, 질소고정의 원재료는 공기이므로 사실상 무료다. 결과물도 더 위대한다. 금은 없어도 그만이지만, 밥없이 살 수는 없다. - P41

하버가 비료를 개발한 것도, 화학 무기를 개발한 것도 결국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는 오직 조국의 번영을 위해 이 둘을 개발했다. 그러니 우리는 결과만을 놓고, 하나는 옳은 것이었고하나는 그른 것이었다고 판단할 수가 없다. 국가주의자라면 그의 잘못을 국가에 충성하다 보니 일어난 실수 정도로 변호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시민인 우리들은 하버가 아무리 지대한 공을 세웠어도 그를 좋게 평가할 수 없다. 그는 전쟁과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확신범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 아니다. 화학 비료도 그에게는 국가의 무기였고, 독가스도 국가의 무기였다. 그래서 그는 어떤 사악한 빌런보다 강력한 빌런이다. 영화 속 최후의 빌런은 악의가 아니라 신념으로무장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완벽한 빌런 덕분에 지구 70억 인구 중에 50억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 P50

여러 번 강조했듯이 질소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과거에는 지구상의 생명체가 사용할 수 있는 질소가 제한돼 있었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지구가 수용 가능한 속도로 아주 조금씩 질소의 양을 늘렸고, 생명체도 이에 맞춰 조금씩 늘어났다. 하지만 인공 비료가 질소를 무한대로 공급하기 시작한 순간이 흐름이 깨져버렸다. 한번 분해된 질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공 비료 중 농작물이 흡수하는 질소의 양은 25%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질소는 빗물에 씻겨 내려가거나 지하수에 스며든다. 앞 장의 마지막 그래프를 보자. 연안 지역의 질소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연안 지역뿐 아니다. 질소가 과다하게 포함된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전 지구에 질소 비를 뿌린다. 전지구에 분해된 질소가 넘쳐나고 있다. 안정을 유지하던 지구 생태계브레이크가 박살난 것이다. 질소가 많아지면 식물도 번성하고 좋은 것아니냐고? 자연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급격한 변화는 좋은 현상이 아니다. 늘어난 질소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는 학자들도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된 적조와 녹조도 늘어난 질소의 영향이 크다. - P54

단위 제정 임무는 파리 과학아카데미로 넘어간다. 그들은 두 가지원칙을 세웠다.

하나, 표준 원기를 잃어버리더라도 언제든 다시 제작할 수 있는 단위를만들 것.
과거 단위는 원기를 제작했다. 가령 왕의 발 크기로 피트를 정했다면, 그크기로 원기를 만들어 왕궁과 지방 행정처에 배부했다. 그 원기를 참고해거래도 하고 법도 집행했다. 하지만 혼란한 시기에 원기가 사라지는 경우가많았다. 원기가 사라지면 다시 제작해야 하는데, 이때 왕의 발 크기가 이전왕과 같을 수가 없었고 단위는 늘 달라졌다. 파리 과학아카데미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원기가 사라지더라도 지구 어느 곳에서라도 같은 크기로 똑같이 만들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했다.
둘, 십진법을 사용할 것.
기존의 단위 체계는 제각각이었다. 1피트는 12인치이고, 1야드는 3 피트, 1마일은 1,760야드다. 무게를 재는 단위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였다.
운드는 16온스인데, 1쿼터는 28 파운드였다. 작은 단위에서 다음 단위로라가는 수치가 그때그때 달랐고 명칭도 제각각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정확하게 수치를 쓸 수 있게 된 것도 근래에 정리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는같은 단위여도 옆 마을에 가면 수치가 달라졌다. 그래서 파리 과학아카데미는 단위를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십진법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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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산의 초입에 아카시아꿀을 따기 위해 벌통이 놓여졌었다. 우연히 벌통 속을 보게 되었을 때 까맣게 달라붙은 수백 수천마리의 벌들에 놀라 그는 뒷걸음질을 쳤다. 스무 개 이상의 네모난 벌집마다에 모두 그처럼 수많은 벌떼가 엉겨 있었다. 아이가 떨어뜨린 사탕에 까맣게 몰려드는 개미떼를 보게 되거나 길가의 가로등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수많은 하루살이떼들과 마주쳐도 섬뜩한것은 마찬가지였다. 숫자가 많다는 것은, 많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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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날의 맛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대신 기억나는 건 가게 앞에 쭈그러져 있는 풍선 인형에 바람을 넣으면 팽팽하게 부풀면서 우뚝 서듯 무너져 있던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일어나던 생생한 느낌. 한 입 두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고 눈물이 흘러나가면서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쁜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J의 사리곰탕면이 새겨 넣은 메시지는 이랬다. ‘너는 누군가가 이틀을 꼬박 바쳐 요리한 음식을 기꺼이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존재야. 잊지마.‘ - P210

 결코 내 것일 수 없다고 여겼던, 내가 소중하다는 감각과 나를 다시 이어준 한 끼의 식사. 어떤 음식은 기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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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그의 눈빛이었다. 그는 늘나를 세상 쓸모없고 성가신 사람 보듯 바라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눈빛들은 차곡차곡 내 눈 안으로도 들어와서 언젠가부터 나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성가시고 하찮은 존재‘로 매일매일 규정되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라는 글자는 슬며시 사라지고 그저 ‘성가시고 하찮은 존재‘로서의 나만 남는다는 것을. 나에게조차 나는 성가시고 하찮았다. 그렇게 하찮을 수가 없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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