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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과 나
리영희

나와 님 웨일즈의 『아리랑(Song of Ariran)』 과의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60년 봄이었다. 훗날 장지락(張志樂)으로 본명이 밝혀진 주인공, ‘어느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생애에 관한 기록을 처음 읽으면서 받은 감동은 그 후 나의 삶의 방향과 내용에 지울 수 없는 크고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 나라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던 지난 30년의 지적 · 사상적 암흑 속에서 가끔 「아리랑」을 펼치는 것은 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모색하다 지치고 좌절 때문에 실의했을 때는 ‘김산(金山)‘을 찾았다. 그는 내가 감히 미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나에게 빛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곤 했다.
- P6

서장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옌안(延安)에서였다. 그곳에 머물러있던 1937년 초여름 어느 날, 나는 루쉰(魯迅)도서관에서 영문책자를 빌려간 사람들의 명단을 훑어보고 있었다. 불과 이러저러한 몇 권의 책만이 대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은 여름 내내 모든 종류의 책과 잡지를 수십권씩이나 빌려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서 "이렇게 많은 책을 빌려가고있는 사람은 누군가요?" 하고 물어보았다. 당시 나로서는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몹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중화소비에트에 파견된 조선대표입니다. 지금군정대학(軍政大學)에서 일본 경제와 물리, 화학을 가르치고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 P26

일본은 화려하기는 하지만 그림엽서류의 디자인처럼 약간은 인공적이다. 반면에 조선은 순수하고 자연적이다. 일본이 소리(音)의 나라 - 게다짝 소리, 토막토막 끊어지는 발음, 오가는 교통수단들의 소음, 미닫이 창이나 문을 끊임없이 여닫는소리, 조그마한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놓는 소리 등등 - 라면 조선은 조용하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끊임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리거나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손님을 맞이하지도 않는다. 인간관계에 스스럼 없고 태평하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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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것은 비범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18세기 런던에서 별처럼 빛났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의 모임은 단순한 클럽으로 알려져있었다. 그렇게 불려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지나치기에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들의 기여가 너무 커 왠지 아쉬움도 남는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들을 기리고 있다. 이 클럽에 들어가려면, 중요한 하나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이것이 문화에 대한 기여보다 더 중요한 요건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좋은 벗‘이 되는 것이다. 선술집인 터크즈 헤드 태번(Turk‘s Head Taverm)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모임에서 밤늦도록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논쟁을 벌일 준비가 된 좋은 벗만이 이 클럽에 들어갈 수 있었다. 후에 생긴 다른 클럽들과 달리, 이 클럽은 클럽 소유의 아지트가 없었다. 그래서 클럽 회원들은 런던의 평범한 선술집에서 만났다. - P18

어느 날 존슨은 옥스퍼드에서 쾌활한 척 생활했던 나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에서도 존슨만의 재치가 돋보였다. 이를 두고 보즈웰은 "마음속에 슬픔을 품은 그는 사람들 앞에서 명랑하게 행동했다.
그의 유쾌하고 떠들썩한 웃음은 부상당한 군인과 죽어가는 군인의 신음 소리가 들리지 않게 전쟁터에서 울려 퍼지는 드럼과 나팔 소리 같았다."고 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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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과 광주에서 청년당원이 상해로 속속 모여들었다. 국내에서 신간회가 만들어진 소식도 들려왔다. 1927년 2월 ‘민족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제휴해 창립한 민족운동단체다. 드디어 이해관계와 이념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갈라져 있는 모든 단체가 단일대오로 손을 잡았다. 폭력투쟁단체뿐만 아니라 민중을 계몽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단체도 포함되었다. 1896년 독립협회가, 1907년 13도창의군이, 1919년 임시정부도 줄기차게 시도한 단일대오가 드디어 신간회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신간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자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가슴이 뛰었다. - P201

레닌주의정치학교 3기로 입학하겠다며 경상도 안동 사람 이육사가 찾아왔다.
"저 같은 사람이야 성리학을 공부했으니 이해하기가 힘들겠지만 성리학이나 공산주의학이나 백성을 편안케 하려는 길에서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겠지요?"
국외로는 처음 나온 이육사다. 장진홍 동지가 결행한 대구은행 폭침 거사 때 붙들려 받은 수인번호 64번을 호로 정했다. 퇴계 이황 후손임을 자부하는 꼿꼿하기가 대쪽같은 사람이다. - P231

1932년 4월 초, 임시정부에서 주석을 맡고 있는 백범이 보냈다는 윤봉길이 나를 찾아왔다. 지금은 임시정부를 백범 혼자서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양반 귀족 출신이 아닌 백범이 주석이다보니, 후원금도 거의 모이질 않는다고 한다. 이름만 거창하지 돈도 없고 조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단체로 작아졌다.
의열단이 임시정부와 척을 진 사이는 아니지만 그동안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임시정부에서 의열단에 처음으로 도와달라는 손길을 내밀었다. 백범이 쓴 편지도 없이 사람만 왔는데, 비공개로 대화하기를 원했다. 빈방에 둘만 마주 앉았다.
"주석께서는 애먼 의열단에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의열단이 나섰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의열단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뜻이라고 했으나 그 뜻만 들어 있지는 않다는 눈치를 못 챌내가 아니다. 레닌주의정치학교를 연 뒤로 의열단 전체가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있으니, 의열단 도움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게 들어 있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독립이라는 대의 앞에서 파벌 따위는 있을 수 없다.  - P235

국민당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달마다 들어가는 고정 경비와 수시로 들어가는 비상 경비를 따로 정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의열단 운영비도 따로 정해서 달마다 지급해주었다. 또한 조학 졸업생을 위해서 중국군 간부수준으로 지낼 수 있는 충분한 생활비와 활동비도 지원해주기로 했다. 이는 당장 근무할 부대가 없는 조선군 장교로 임관되더라도 장교대우를 받고 활동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의열단을 세운 뒤로 한순간도 돈 걱정을 안 한 적이 없고, 일본에게 붙들릴 걱정을 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처음으로 돈 걱정, 일본 걱정이 없다. 충분히 먹고 충분히 입고 충분히 훈련하는 풍족한 시간이다.
"역시 사람은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니까요." 박차정이 감탄을 했다. 관대장과 황소미와 등걸과 간국훈까지 모두 황포군관학교에서 맺은 인연 덕분이다. - P248

1935년 7월 5일, 드디어 한국독립당, 신한독립당, 조선혁명당, 대한독립당, 의열단 등은 해체를 선포하고 하나로 모여 새로운 정당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중국이 한 국공합작처럼 좌우를 가리지 않고 민족유일당을 세웠다. 중앙집행위원 여섯 명으로 김원봉과 김두봉,
김규식, 이청천, 최동오를 임명한다는 선언으로 민족혁명당이 선포되었다. 줄여서 민혁당으로 부르기로 했다. 한 자리는 백범을 영입하기 위해 비워놓았다.
김규식은 중앙집행위원 수락 연설에서 1928년 5월에 만주에서 일어난 전민족유일당회의가 열리면서부터 시도된 민족유일당운동이드디어 결실을 보았다면서 감격해했다. 이청천은 임시정부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차차 대화와 타협으로 통합을 이루어내자며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끝내 민혁당에 참여하지 않았다.
김종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백범은 좌파와 손잡지 않는다며 기대를 보이지 않았다. 조학에서 공산주의자를 양성한다며 자기 생도를 떼어간 일을 잊지 말라는 김종 말대로 유일당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잘임시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 P259

또한 민혁당에 참여한 단체가 각자 해체하고 민혁당으로 모이기로 선언했으면서도 재정을 민혁당으로 합치지 않고 여전히 따로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며 진심을 의심했다.
단일대오로 민혁당을 세워 조직까지 갖추고도 자기 세력을 버리지못하는 데 대한 반감이 참여 단체끼리도 커지고 있다.
유자명은 군대를 만들면 의열단 쪽으로 힘이 기운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은 결국 파벌주의 망령이라고 걱정했다. 나는 유자명이 하는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에 제발 살려달라고 편지나 해대는 게 외교라면 굳이 유일당이 아니어도 됩니다."
결국 공식석상에서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기다렸다는듯이 민혁당을 부정하느냐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들끓었다.
"빠져나갈 좋은 핑계를 찾았네. 김원봉은 피 흘리기만 좋아해서 무장투쟁만 고집하니까 같이 할 수 없다고도 하겠지."
김두봉은 대거 탈당이 멀지 않았음을 이렇게 예상했다.
몇 달이 되지 않아 조소앙이 민혁당을 나갔다. 다음해에 전당대회를 치르며 당을 정비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이청천이 나가고 말았다. - P262

백범은 국민당이 연거푸 거절했지만 끈질기게 설득해, 장개석 개인이 돕는 조건과 중국군에 편입되는 조건으로 1940년 9월 17일에 광복군 창설을 이루어냈다. 그동안 국민당이 백범이 하는 부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은 조선의용대로 지원을 집중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개석은 윤봉길 의거 때 조선 청년을 찬양하면서 임시정부에 빚을 졌으니 백범 부탁을 끝내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공식 선포도 못한 광복군 창설식이 중국 측 인사 몇 명만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대원은 겨우 30명도 되지 않았다. 조선의용대는 초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광복군은 일본을 향해 선전포고도 했다. 공중에 대고 지르는 주먹감자랑 뭐가 다르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나라 이름으로 일본에 항전을 선포한 의미는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 P285

1942년 5월, 드디어 조선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가 임시정부와한국광복군으로 합쳐졌다. 이렇게 되자 임시정부는 한국독립당 1당체제에서 여당인 한국독립당과 야당인 조선민족혁명당으로 양당체제가 되었다. 두 당을 한독당과 민혁당이라는 약칭으로 불렀다.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나자 많은 청년이 모여들었다. 조선의용대가 화북으로 갈 때는 공산당 군대라고 여겨서 들어가기를 꺼렸는데 광복군과 합친다고 하니 공산당이 아니라 여겨서 찾아왔다고 했다. 밖으로 보이는 조선의용대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 P291

멀어지는 남쪽 땅을 보며 내 마음속에 늘 하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언제나 실패했다.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또 실패를 향해 시도한다.
앞선 실패보다 조금만이라도 더 나은 방법으로 시도한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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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곤 한다. 내 고통이나 슬픔을 친구와 나누면 친구가 부담을 느낄까 봐, 가능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어려움을해결하려 한다.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자신의 실패를 숨기는 아이들도 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도 아이는철든 모습을 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한다. 엄마가 알면 너무 슬퍼할 테니 혼자 묵묵히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자신을 숨기는 것이야말로 ‘가면 쓰기‘ 연습의 시작이다. 가면을 쓸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에서, 부모 앞에서만큼은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고 있는 것은너무나 중요하다. - P59

가면을 꼭 실수, 실패, 고통 같은 부정적 단어와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 모자란 내 모습을 숨기는 것도 가면을 쓰는 중요한 이유지만, 가면 쓰기의 일차적 목적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내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 뻔히 다 아는 상황에서도 상대를 기분좋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못난이 가면을 쓰기도 한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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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몇 개 떠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분홍색 쓰레기더미로 만들어버린 하늘 저 너머에서 분명 눈을 깜빡거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탈출하려고 그토록 애써온 지구로 다시 돌아왔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사명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하든, 얼마나 열심히 뉘우치는 어떤 피난처도 약속도 주지 않는 황량한 지구로.
나는 살면서 내 인생의 많은 좋은 것들을 망쳐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한다. 그 곱슬머리 남자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나를 아름답고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해주지 않을 것이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없고,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다.
자, 이렇게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 P208

나는 그에게 통쾌하게 반박해줄 말이 있었으면 싶었다. 현란하게, 당신이 틀렸다고 말해줄 방법이 우리는 중요하다고, 우리는 사실 아주 중요하다고 말해줄 방법. 그러나 주먹이 올라가는 게 느꺼지자마자 내 뇌가 주먹을 다시 잡아당겼다. 왜냐하면 당연히, 우리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우리는 작은 티끌들, 깜빡거리듯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정말 이상한일이지만, 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정확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없는믿음 때문에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다고생각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럴 순 없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죄를 짓고, 거짓을 말하고, 기만과 광기로, 그보다 더 나쁜 것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일이다.
아, 그것은 엉킨 실타래였다.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
복수를 하겠다고 나무로 기어 올라갔지만 높이 뜬 독수리라는 진실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진 파란 꼬리의 스킹크.
나는 오도가도 못하게 된 심정이었다. - P222

이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도 애나는 여전히 메리를 보살피고있다. 내게 문을 열어준 사람도 애나였고, 메리에게 마실 것을 가져다준 사람도, 화초에 물을 주는 사람도 애나였다. 메리가 무릎이아파 잘 서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리와 현재 남자친구인 마이크를 맺어준 사람도 애나였다. 지금은 애나가 체격도 더 작고 겁도더 많지만, 메리가 이뤄낸 여러 성공들(자식, 손자, 민첩한 유머 감각끝없이 이어진 로맨스)을 애나는 갖지 못했지만, 여전히 애나는 메리의 보호자다. 말하자면 지금도 애나는 메리의 그네를 밀어주고있는 셈이다. 이 지구에서 자신이 뽑아낼 수 있는 소박한 기쁨들―중력, 아이스티, 햄스터-로 메리에게 설렘과 기쁨을 안겨주려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메리는 또 어떤가. 거의 모든 말과 반응에서 메리가 얼마나 애나를 고마워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메리는 인형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랑을 지지해준다. 메리는 인형의 목에 걸린 색색 가지 구슬로 된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내가 만들었어!" 나는 자기 방에 혼자 앉아 조용히 나일론 실에 구슬을 하나하나 꿰며, 친구를 위한 깜짝 선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메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메리가 수용소에서 자신을 보호해준 애나에게 영원히 은혜를 갚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보답하는 그 행위에서 진짜 의미를 발견했다는것을.
- P224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P227

 그런데 이유가 뭘까? 그는 왜 평화주의라는 인기 없는 대의에 그토록 전념했을까? 데이비드가 판단하기에 전쟁은 한 국가의 가장 훌륭하고 똑똑한 인재를 고갈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형 루퍼스의 죽음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좋은 자질을지닌 남자들이 싸우러 나가 죽으면 "부적합한" 자들이 남아서 번식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수백 명의 관중을 앞에 두고 말했다. "한 국가가 낳은 최고의 인재들을 파괴하는 일에 내보내면, 차선의 사람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메울 것입니다. 약한 자들, 악한 자들, 낭비하는 자들이 번식하고 나라를 다 차지해버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우생학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다. - P283

분기학자들은 모든 생물이 진화의 나무에서 어느 가지에 속하는지를 밝혀내는 일에 사생결단하듯 매달린다. 그들의 제1원칙은 단순하다. 타당한 하나의 진화적 집단은 특정한 한 조상의 모든 자손을 포함해야 하며, 다른 것은 하나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려 한다면 진화의 나무에서 당신이 원하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 척추동물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좋다. 척추동물에는 척추가 있는 모든 생물이 포함된다. 뱀은? 포함. 지렁이는? 제외, 포유동물에 대해 말하고 싶은가? 괜찮다. 단, 그러려면 젖을 만들 수 있는 최초의 생물의 모든 후손을 아울러야 한다. 고양이, 개,
고래, 다 좋다. 파충류는 하나도 넣으면 안 된다! 이제 무슨 말인지이해했을 것이다. - P237

분기학자들은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을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을 상기시킨다. 한순간이라도 비늘이라는 외피에 시선을 다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더 많은 걸 밝혀주는 다른 유사점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거라고. 예를들어 페어와 소는 둘 다 호흡을 하게해주는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지만 연어에게는 없다. 페어와 소는 둘다 후두개(기관을 덮는 작은 덮개 모양의 피부)가 있다. 연어는?
유감스럽게도 후두개가 없다. 그리고 페어의 심장은 연어의 심장보다는 소의 심장과 구조가 더 비슷하다. 이런 설명들이 계속 이어지며, 마침내 페어는 연어보다는 소와 더 가깝다는 결론으로 학생들을 이끌어간다.
그들이 생명의 나무를 베는 톱질 속도를 본격적으로 높이는건 이때부터다. 윤에 따르면, 분기학자들은 사람들이 일단 이 사실-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들 중 다수가 자기들끼리보다는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나면 이상한 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보이기 시작할 거라고 했다. "어류"가 견고한 진화적 범주라는 말은 실제로 완전히 헛소리라는 진실 말이다. 윤의 설명을 빌리면, 그것은 마치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거나 "시끄러운 모든 포유동물은 한 범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 P239

그러다가 물고기에 관해 생각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빛 물고기 한 마리가 내 머릿속에서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알겠는가. 해왕성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 그건 정말이다. 바로 몇 년전에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가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 P263

침대 위 내 옆에서 아내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내 어깨를 찰싹 때린다. "진정해, 뒤척쟁이" 그녀가 우물우물 말한다. 내가 계속 뒤척이고 있다는, 들썩거리고 돌아누우며 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내가 자기와 함께 평화로움 속으로, 깊은 잠 속으로, 우리의 연한 파란색 이불의 부드러운 솜 파도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랄뿐이다.
나는 따스함이 넘쳐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생각한다. 가장 희망적이었던 순간에조차, 나의 하찮은 뇌는 그녀만큼 한없이 도취시키는 존재를 꿈에도 결코 상상해내지 못할 거라고.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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