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몇 개 떠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분홍색 쓰레기더미로 만들어버린 하늘 저 너머에서 분명 눈을 깜빡거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탈출하려고 그토록 애써온 지구로 다시 돌아왔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사명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하든, 얼마나 열심히 뉘우치는 어떤 피난처도 약속도 주지 않는 황량한 지구로. 나는 살면서 내 인생의 많은 좋은 것들을 망쳐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한다. 그 곱슬머리 남자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나를 아름답고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해주지 않을 것이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없고,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다. 자, 이렇게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 P208
나는 그에게 통쾌하게 반박해줄 말이 있었으면 싶었다. 현란하게, 당신이 틀렸다고 말해줄 방법이 우리는 중요하다고, 우리는 사실 아주 중요하다고 말해줄 방법. 그러나 주먹이 올라가는 게 느꺼지자마자 내 뇌가 주먹을 다시 잡아당겼다. 왜냐하면 당연히, 우리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우리는 작은 티끌들, 깜빡거리듯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정말 이상한일이지만, 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정확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없는믿음 때문에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다고생각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럴 순 없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죄를 짓고, 거짓을 말하고, 기만과 광기로, 그보다 더 나쁜 것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일이다. 아, 그것은 엉킨 실타래였다.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 복수를 하겠다고 나무로 기어 올라갔지만 높이 뜬 독수리라는 진실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진 파란 꼬리의 스킹크. 나는 오도가도 못하게 된 심정이었다. - P222
이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도 애나는 여전히 메리를 보살피고있다. 내게 문을 열어준 사람도 애나였고, 메리에게 마실 것을 가져다준 사람도, 화초에 물을 주는 사람도 애나였다. 메리가 무릎이아파 잘 서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리와 현재 남자친구인 마이크를 맺어준 사람도 애나였다. 지금은 애나가 체격도 더 작고 겁도더 많지만, 메리가 이뤄낸 여러 성공들(자식, 손자, 민첩한 유머 감각끝없이 이어진 로맨스)을 애나는 갖지 못했지만, 여전히 애나는 메리의 보호자다. 말하자면 지금도 애나는 메리의 그네를 밀어주고있는 셈이다. 이 지구에서 자신이 뽑아낼 수 있는 소박한 기쁨들―중력, 아이스티, 햄스터-로 메리에게 설렘과 기쁨을 안겨주려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메리는 또 어떤가. 거의 모든 말과 반응에서 메리가 얼마나 애나를 고마워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메리는 인형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랑을 지지해준다. 메리는 인형의 목에 걸린 색색 가지 구슬로 된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내가 만들었어!" 나는 자기 방에 혼자 앉아 조용히 나일론 실에 구슬을 하나하나 꿰며, 친구를 위한 깜짝 선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메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메리가 수용소에서 자신을 보호해준 애나에게 영원히 은혜를 갚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보답하는 그 행위에서 진짜 의미를 발견했다는것을. - P224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P227
그런데 이유가 뭘까? 그는 왜 평화주의라는 인기 없는 대의에 그토록 전념했을까? 데이비드가 판단하기에 전쟁은 한 국가의 가장 훌륭하고 똑똑한 인재를 고갈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형 루퍼스의 죽음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좋은 자질을지닌 남자들이 싸우러 나가 죽으면 "부적합한" 자들이 남아서 번식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수백 명의 관중을 앞에 두고 말했다. "한 국가가 낳은 최고의 인재들을 파괴하는 일에 내보내면, 차선의 사람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메울 것입니다. 약한 자들, 악한 자들, 낭비하는 자들이 번식하고 나라를 다 차지해버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우생학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다. - P283
분기학자들은 모든 생물이 진화의 나무에서 어느 가지에 속하는지를 밝혀내는 일에 사생결단하듯 매달린다. 그들의 제1원칙은 단순하다. 타당한 하나의 진화적 집단은 특정한 한 조상의 모든 자손을 포함해야 하며, 다른 것은 하나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려 한다면 진화의 나무에서 당신이 원하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 척추동물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좋다. 척추동물에는 척추가 있는 모든 생물이 포함된다. 뱀은? 포함. 지렁이는? 제외, 포유동물에 대해 말하고 싶은가? 괜찮다. 단, 그러려면 젖을 만들 수 있는 최초의 생물의 모든 후손을 아울러야 한다. 고양이, 개, 고래, 다 좋다. 파충류는 하나도 넣으면 안 된다! 이제 무슨 말인지이해했을 것이다. - P237
분기학자들은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을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을 상기시킨다. 한순간이라도 비늘이라는 외피에 시선을 다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더 많은 걸 밝혀주는 다른 유사점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거라고. 예를들어 페어와 소는 둘 다 호흡을 하게해주는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지만 연어에게는 없다. 페어와 소는 둘다 후두개(기관을 덮는 작은 덮개 모양의 피부)가 있다. 연어는? 유감스럽게도 후두개가 없다. 그리고 페어의 심장은 연어의 심장보다는 소의 심장과 구조가 더 비슷하다. 이런 설명들이 계속 이어지며, 마침내 페어는 연어보다는 소와 더 가깝다는 결론으로 학생들을 이끌어간다. 그들이 생명의 나무를 베는 톱질 속도를 본격적으로 높이는건 이때부터다. 윤에 따르면, 분기학자들은 사람들이 일단 이 사실-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들 중 다수가 자기들끼리보다는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나면 이상한 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보이기 시작할 거라고 했다. "어류"가 견고한 진화적 범주라는 말은 실제로 완전히 헛소리라는 진실 말이다. 윤의 설명을 빌리면, 그것은 마치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거나 "시끄러운 모든 포유동물은 한 범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 P239
그러다가 물고기에 관해 생각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빛 물고기 한 마리가 내 머릿속에서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알겠는가. 해왕성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 그건 정말이다. 바로 몇 년전에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가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 P263
침대 위 내 옆에서 아내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내 어깨를 찰싹 때린다. "진정해, 뒤척쟁이" 그녀가 우물우물 말한다. 내가 계속 뒤척이고 있다는, 들썩거리고 돌아누우며 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내가 자기와 함께 평화로움 속으로, 깊은 잠 속으로, 우리의 연한 파란색 이불의 부드러운 솜 파도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랄뿐이다. 나는 따스함이 넘쳐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생각한다. 가장 희망적이었던 순간에조차, 나의 하찮은 뇌는 그녀만큼 한없이 도취시키는 존재를 꿈에도 결코 상상해내지 못할 거라고. - P2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