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버크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특별히 언어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논했다. 그리고 인간은 단어의 문자적 의미뿐만 아니라 소리와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것들에서도 어떤 감정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주장을 꽤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요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란 가축은 유용하다. 그리고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절대 숭고하지는 않다. 하지만 버크가 <킹 제임스성경(King James Bible>의 한 구절을 다른 단어로 바꾸어 표현하자, 말은 상징성을 지니게 됐다. "목에 우레를 두르고 콧구멍에서 영광을 뿜는다. 그 녀석은 맹렬하고 격렬하게 땅을 집어삼킨다. 그 누구도 그것이 나팔 소리라고 믿지않는다." 이 구절에서 버크는 "말의 유용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끔찍하고 숭고한 감정이 모두 발산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언어의 힘을 이해할 수 있는 작가가 훗날 가장 주목받는 위대한 연설가가 된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 P262
넓은 관점에서 보면 당시 영국 정치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반적으로 휘그당은 런던의 금융과 상업세력과 동맹을 맺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영제국이 번창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번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해외 전쟁을 적극 지지했다. 토리당은 스스로를 군주에게 충성하고 가톨릭교를 신봉하는 전통주의자들이라 여겼다. 자신들이 낸 토지세가 전쟁자금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지방의 상류지주 계층은 토리당을 지지했다. 하지만 두 정당의 경계에는 구멍이 많았다. 성공한 상인은 주로 자신의 자녀들을 귀족 가문과 혼인시켰고 지방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 P269
당시 잉글랜드는 요즘 말로 최소주의 국가였다. 실질적으로 경찰조직이 없었고, 상품에 세금을 부과했지만 소득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가 거의 없었다. 화재예방, 고속도로 유지보수, 물 공급, 교도소 관리 등 지금 우리가 당연히 정부의 책임이라고 여기는 영역들의 대부분이 당시에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던 민간기업의 영역이었다. 그러므로 지역 주민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지 시의원과 지주가 지역의 니즈를 지역 안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가끔 지역을 순회하는 판사가 순회 재판소를 열어 심각한 범죄를 심리했다. 그 외에는 지주가 보안판사가 되어 일종의 지역 규율에 따라 경범죄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 P278
종속의 원칙에서 소수집단은 그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지위에서 나오는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근면하고 유용한 노동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고 "우연히 노동자들 위에 서게 된 선택된 소수는 자신의 시간을이익이나 영예를 추구하고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거나 학문을 닦거나사회적 의무, 즐거운 행위 그리고 심지어 사회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를하는 데 쓴다"고 했다. 에드워드 기번은 세상에서 자신의 지위를 정확하게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운이 좋아서 적지 않은 재산을 물려받았고 일하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회고록에서 그는 로마제국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지위는 노예, 미개인 또는 무식쟁이였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자유로운 문명화된 나라에 과학과 철학의 시대에 행운을 타고난 훌륭한 가정에 태어나게 해준자연의 너그러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복종은 절대 다수의 범죄, 심지어 죽음으로 처벌받아야 할 범죄조차도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여기는 냉혹한 현실의 철학적 토대였다. 존슨은 법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성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로마제국쇠망사>에서 기변은 "사회의 내부 평화를 깨트리는 범죄의 대다수는 필요하지만 불공평한 규제 때문에 발생한다. 물권법은 다수가 탐내는 물건을 극소수만 소유하도록 제한하여 인류의 욕망을 억누른다"고 했다. - P281
"법과 정부는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부유한 자들의 결합체로 봐야 한다. 법과 정부는 가난한 자들의 공격으로 파괴될 불평등을 부유한 자신들을 위해 보전한다. 하지만 정부는 법으로 가난한 자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으면 그들을 자신들과 평등한 지위에 두고 노골적인공격을 가한다." - P282
1790년 초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을 발표했다.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에서 그는 어떻게 선의의 혁명이 대학살과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군인들을 다루는 법을 알고 진정한 지도력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장군이 사람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군대를 이끄는 자가 그대의 주인이 된다." - P285
데이비드 개릭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복원하려고 작으나마 그만의 연출력을덧붙이려고 노력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관객의 기대에 완전히 부응했다. 햄릿이 그의 어머니에게 하는 욕설은 삭제됐고, 비극에서 저속하거나 웃긴 장면도 삭제됐다. <리어왕(King Lear)>에서 바보광대는 사라졌고, <맥베스>에서 술 취한 짐꾼도 사라졌다. 그리고 <햄릿>에선 무덤지기가 등장하는 장면과 펜싱 시합을 하는 장면이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비극 작품에서 희극적 요소를 제거했을 뿐만아니라 비극적 요소도 대부분 제거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1681년 네이엄 테이트(Nahum Tate)가 각색한 <리어왕>은 해피엔딩이었다. 코델리아는 마지막에 죽지 않았고 에드거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리어왕의 왕국을 물려받았다. 한편 리어왕은 왕좌에서 물러나 글로스터와 켄트와 함께 평화로운 노년을 보냈다. 아서 머피에 따르면, 이 해피엔딩을 본 관객은 환희에 휩싸여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1823년이 되어서야 비극적 결말이 복원됐고, 바보광대는 1838년에 <리어왕>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P295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존슨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개략을 비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보즈웰은 존슨을 약올릴 생각으로 개릭이 자신의 명성에 대해서 너무 자만한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듣고 존슨이 보즈웰을 쏘아붙였다. "이보게, 개릭이 겸손한 걸세. 생각해보게나. 자네가 언급했던 유명인사들은 저 멀리 떨어져서 박수갈채를 받지. 하지만 개릭은 면전에서 박수갈채를 받고 그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리지. 그리고 매일 밤 수많은 찬사와 박수갈채를 마음에 담고 집으로 돌아간다네. (중략) 이 모든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면, 친구 두어 명에게 긴 막대기를 두고 내 앞을 걸어가라고 하겠네. 그러면서 그 긴 막대기로 내가 가는 길을 막는사람들을 넘어뜨리게 말이야."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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