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능력자‘라는 가면을 쓰게 되면 노력하면서 꾸준히 배워나가는 것이 어려워진다. 고생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을 맞닥뜨리자마자 "나는 원래 잘 못하는 사람"이라며 금세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임포스터들은 자신에게는 타고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운마저 없으면 혼자 힘으로는 잘해내지 못할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르면 "나는 원래 못하는 사람이라 그래"라고 합리화하거나 포기하는 게 맞다고 결론 내린다. - P107

사람들은 임포스터 학생들의 겉모습만 보고 "포기할 줄 모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의 실험에서 봤듯 그것은 메타인지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의 반영일 수 있다. 이런성향의 학생들에게는 메타인지를 활용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메타인지는 목표를 향해 무조건 전진하는 능력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으면서 학습전략을 조절하는능력이기 때문이다. - P118

다른 학생들이 시키는 것에 불평 없이 수긍만 하다 보니 늘 팀내에서 가장 많은 일을 떠안는 사람이 되었다. 하기 싫은 마음이있어도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에는 다 내 몫이 되었다. 남들에게 내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편했던 나는 이것이 내 역할에 맞는 행동이라고, 나는 원래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그 생각이 내 역할을 한계 지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떠한 역할을 맡느냐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을 올바로파악하고 어떻게 그 상황에 맞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다. 내가 메타인지를 느끼기도 전에 행동부터 해버리면 모니터링을 할 기회가 사라져버린다. ‘나 스스로 한번 판단해보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우선시되고 중시되어야 하는 과정인데, 이러한 자기판단의 과정 없이 행동하게 되면 가면을 쓸 확률이 높아진다. - P134

물론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큰 문제가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후과잉확신편향이 사회적 범죄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작용할 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편향이 범죄사건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킬 위험을 키울 뿐만아니라 사람들에게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편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반대로 생각하기‘가 도움이 된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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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버크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특별히 언어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논했다. 그리고 인간은 단어의 문자적 의미뿐만 아니라 소리와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것들에서도 어떤 감정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주장을 꽤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요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란 가축은 유용하다. 그리고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절대 숭고하지는 않다. 하지만 버크가 <킹 제임스성경(King James Bible>의 한 구절을 다른 단어로 바꾸어 표현하자, 말은 상징성을 지니게 됐다.
"목에 우레를 두르고 콧구멍에서 영광을 뿜는다. 그 녀석은 맹렬하고 격렬하게 땅을 집어삼킨다. 그 누구도 그것이 나팔 소리라고 믿지않는다."
이 구절에서 버크는 "말의 유용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끔찍하고 숭고한 감정이 모두 발산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언어의 힘을 이해할 수 있는 작가가 훗날 가장 주목받는 위대한 연설가가 된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 P262

넓은 관점에서 보면 당시 영국 정치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반적으로 휘그당은 런던의 금융과 상업세력과 동맹을 맺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영제국이 번창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번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해외 전쟁을 적극 지지했다. 토리당은 스스로를 군주에게 충성하고 가톨릭교를 신봉하는 전통주의자들이라 여겼다. 자신들이 낸 토지세가 전쟁자금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지방의 상류지주 계층은 토리당을 지지했다. 하지만 두 정당의 경계에는 구멍이 많았다. 성공한 상인은 주로 자신의 자녀들을 귀족 가문과 혼인시켰고 지방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 P269

당시 잉글랜드는 요즘 말로 최소주의 국가였다. 실질적으로 경찰조직이 없었고, 상품에 세금을 부과했지만 소득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가 거의 없었다. 화재예방, 고속도로 유지보수, 물 공급, 교도소 관리 등 지금 우리가 당연히 정부의 책임이라고 여기는 영역들의 대부분이 당시에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던 민간기업의 영역이었다.
그러므로 지역 주민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지 시의원과 지주가 지역의 니즈를 지역 안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가끔 지역을 순회하는 판사가 순회 재판소를 열어 심각한 범죄를 심리했다. 그 외에는 지주가 보안판사가 되어 일종의 지역 규율에 따라 경범죄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 P278

종속의 원칙에서 소수집단은 그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지위에서 나오는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근면하고 유용한 노동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고 "우연히 노동자들 위에 서게 된 선택된 소수는 자신의 시간을이익이나 영예를 추구하고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거나 학문을 닦거나사회적 의무, 즐거운 행위 그리고 심지어 사회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를하는 데 쓴다"고 했다.
에드워드 기번은 세상에서 자신의 지위를 정확하게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운이 좋아서 적지 않은 재산을 물려받았고 일하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회고록에서 그는 로마제국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지위는 노예, 미개인 또는 무식쟁이였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자유로운 문명화된 나라에 과학과 철학의 시대에 행운을 타고난 훌륭한 가정에 태어나게 해준자연의 너그러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복종은 절대 다수의 범죄, 심지어 죽음으로 처벌받아야 할 범죄조차도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여기는 냉혹한 현실의 철학적 토대였다. 존슨은 법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성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로마제국쇠망사>에서 기변은 "사회의 내부 평화를 깨트리는 범죄의 대다수는 필요하지만 불공평한 규제 때문에 발생한다. 물권법은 다수가 탐내는 물건을 극소수만 소유하도록 제한하여 인류의 욕망을 억누른다"고 했다. - P281

"법과 정부는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부유한 자들의 결합체로 봐야 한다. 법과 정부는 가난한 자들의 공격으로 파괴될 불평등을 부유한 자신들을 위해 보전한다. 하지만 정부는 법으로 가난한 자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으면 그들을 자신들과 평등한 지위에 두고 노골적인공격을 가한다." - P282

1790년 초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을 발표했다.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에서 그는 어떻게 선의의 혁명이 대학살과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군인들을 다루는 법을 알고 진정한 지도력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장군이 사람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군대를 이끄는 자가 그대의 주인이 된다." - P285

데이비드 개릭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복원하려고 작으나마 그만의 연출력을덧붙이려고 노력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관객의 기대에 완전히 부응했다. 햄릿이 그의 어머니에게 하는 욕설은 삭제됐고, 비극에서 저속하거나 웃긴 장면도 삭제됐다. <리어왕(King Lear)>에서 바보광대는 사라졌고, <맥베스>에서 술 취한 짐꾼도 사라졌다. 그리고 <햄릿>에선 무덤지기가 등장하는 장면과 펜싱 시합을 하는 장면이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비극 작품에서 희극적 요소를 제거했을 뿐만아니라 비극적 요소도 대부분 제거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1681년 네이엄 테이트(Nahum Tate)가 각색한 <리어왕>은 해피엔딩이었다. 코델리아는 마지막에 죽지 않았고 에드거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리어왕의 왕국을 물려받았다. 한편 리어왕은 왕좌에서 물러나 글로스터와 켄트와 함께 평화로운 노년을 보냈다. 아서 머피에 따르면, 이 해피엔딩을 본 관객은 환희에 휩싸여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1823년이 되어서야 비극적 결말이 복원됐고, 바보광대는 1838년에 <리어왕>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P295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존슨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개략을 비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보즈웰은 존슨을 약올릴 생각으로 개릭이 자신의 명성에 대해서 너무 자만한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듣고 존슨이 보즈웰을 쏘아붙였다.
"이보게, 개릭이 겸손한 걸세. 생각해보게나. 자네가 언급했던 유명인사들은 저 멀리 떨어져서 박수갈채를 받지. 하지만 개릭은 면전에서 박수갈채를 받고 그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리지. 그리고 매일 밤 수많은 찬사와 박수갈채를 마음에 담고 집으로 돌아간다네. (중략) 이 모든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면, 친구 두어 명에게 긴 막대기를 두고 내 앞을 걸어가라고 하겠네. 그러면서 그 긴 막대기로 내가 가는 길을 막는사람들을 넘어뜨리게 말이야."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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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펑파이가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자네도 저 청년만큼이나 어리고 순진하군. 계급적 정의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전의 필수적인 수단이야. 의심나는 경우에는 보다 적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이 죽여야 해.
자네는 지주들이 지배했던 하이펑의 실정과 그들이 자행한 잔인한 짓거리를 모르고 있어. 만일 내가 본 것을 자네가 직접 보았더라면 여기에 아무런 의문도 없었을거야. 농민들의 행위는 지주들이 한 짓거리의 100분의 1도 안되네. 지주들에 비하면 농민들은 아주 극소수밖에 죽이지 않았지. 자기를 방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농민들은 알고 있네. 만일 자신들의 계급적 적을 혼쭐내지 않으면 농민들은 사기를 잃을 것이고,
혁명의 성공에도 의심을 품게 될 것이네. 이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또한 자네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 P262

그날 밤 우리는 한 천주교 성당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책이 몇 권 있었다. 아무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성경책을 집어 들고 신약을 읽었다. 예수가 하이루펑에 있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무엇을 명령하였을까? "나는 눈물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고 말했으리라. 예수는 민중을 갈취하는 지주와 환전상(換錢商)을 미워하였다. 그는 선한 것과 악하지 않은 것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악을 멸망시키는 것은 선하다. 악을 권력에 머물러 있게 하여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선하지 못한 것이다.
- P266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 박애라는 것이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박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동지들끼리는 그토록 친절하면서도 적에 대해서는 그토록 잔인하다. 톨스토이 같은 박애주의자는 이럴 때 뭐라 말하고 무엇을 느낄까? 틀림없이 톨스토이는 러시아 백성들이 나무에 묶인 채 맞아죽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잔인함을 끝장내는것은 잔인함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이 어둠을 비춰주는 빛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처형되는 것을 보았는데 나는 항상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내전에 참가하여 싸우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각자 자기의 철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남에게 그런 고통을 주기보다는 내가 그런 운명에 떨어지는 쪽이 더 견디기 쉽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누가 죽느냐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안다. 지배계급은 학살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수세대에 걸쳐서 살육을 해왔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싸울 뿐이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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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가을 내가 광저우에 도착하였을 때 이른바 중국 ‘대혁명‘에 뛰어들어 투쟁하기 위하여 모인 조선인은 겨우 60명에 불과했고, 그 대부분이 의열단의 테러리스트였다. 그러나 1927년까지 800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광둥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우리 조선의 활동적 지도자의 정예가 여기에 다 집결한 것이다. 모두가 혁명적 정치가였으며, 대개는 지식인이었다. 일본에서는 노동운동 지도자가 대략 20명 가량 왔고, 만주에서는 공산청년동맹원이 많이 몰려들었다. 우리들의 평균나이는 23세였다. 일부 중학생은 열너덧 살밖에 안되었고, 800 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도 마흔이 채 안 되었다.
만주의 독립군 약 400명이 의용병으로 왔고, 시베리아에서는 러시아에서 10월혁명 이래 계속 투쟁한 경력을 갖고 있거나 다년간에 걸쳐서 시베리아 유격대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100명 이상 왔으며, 또한 국내에서도 100명이 왔다. 모스크바에서 직접 훈련을 받은 마르크스주의 학생 30명도 보로딘의 고문단에 끼어 함께 왔다.
조선독립군 출신자 400명의 대부분을 제외하고는, 앞에서말한 800명은 거의 다 공산주의 사상에 동조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공산당원이었다. - P203

다음으로 통일된 민족주의 정당을 만드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결정되었다. 이것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정당은 국내에서는 만들 수가 없었으므로 의열단을 중심으로 하여 해외에서 발전시켜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다. 의열단의 명칭을 조선민족독립당으로 고치고, 새로 11명의 위원을 선출하였다.
마침내 분파주의에 대해 승리하였다. 조선혁명청년연맹과 민족독립당 두 개가 공개적인 조직이었으며, 비밀단체인 K.K가 저변을 잇는 통일의 끈을 장악하였다. K.K는 보로딘과 모스크바에서 보낸 참모부와 직접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 P206

1921년에 조선소비에트위원회 밑에 시베리아 소비에트의 일부로서 조선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다. 당시 시베리아에는 조선인이 약 70만명 정도 살고 있었다(우리의 추정에 의하면현재 소련에는 대략 80만 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다. 러시아인, 조선인, 에스키모인, 소수의 일본인과 약간의 몽골인을 합한 총 400만 명의 시베리아 인구 중에서 조선인의 수는 큰 비중을 차지했다). - P208

세 사람 모두 노동자였는데, 단정하고 지적인 얼굴로 보아 학생 같아 보였던 뤄류메이(羅劉梅)라는 소녀는 칠흑 같은 머리를 짧게 자른 무척 예쁜 소녀였다. 그들은 앞으로 일으킬 총파업에 대한 선전활동을 하고 유인물을 배포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거리를 끌려 다니면서도 그들은 공산청년 인터내셔널 노래를 소리 높이 불렀으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 세 사람을 생각한다.
수백 명의 군중들이 형장까지 따라갔지만 울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들을 쫓아 거리를 뛰어가는 동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경찰이 나를 동조자로 보고 체포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이 일을 단지 흥밋거리로만 생각하는것 같았다.
"이렇게 잔혹한 나라에서는 살 수가 없어. 절대로, 절대로,
못 살아. 이들은 사람도 아니야."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인력거가 멈춘 것은 3시였다. 무거운 사슬이 벗겨지자, 세사람은 형장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갔다. 한 청년의 신발이 벗겨졌다. 그러자 그는 굉장히 느린 동작으로 허리를 구부려 신을 고쳐 신는 것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 몇 초라도 더 살고 싶어 하는구나.‘
세 사람은 모두 냉정하였다. 총될 지점에 도착해서 10명의 병사들이 정렬하는 사이에 그들은 구호를 소리 높이 외쳤다.
"제국주의와 국민당을 때려 부수자! 중국혁명 만세! 때려잡자 장제······.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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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 5월 16일은 보즈웰에게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시작됐다. 그는 템플과 아침을 먹었다. 오후에 데이비스의 서점에서 그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존슨이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보즈웰은 <존슨전>에서 이 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극적인 전환점이었다고썼다.
"우리가 앉아 있던 방의 유리문을 통해 그가 걸어오는 것을 본 데이비스는 그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 모습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장엄했다. 데이비스는 마치 햄릿의 아버지 유령을보고 ‘보십시오, 왕자님 나타났습니다!‘라고 햄릿에게 외치는 호레이쇼를 연기하는 배우 같았다." - P165

◆코르시카
마운트스튜어트 경과 헤어진뒤 보즈웰은 그랜드 투어를 끝내고 코르시카로 향했다. 코르시카는 외부인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지역이었지만, 연일 뉴스에 등장했다. 중세시대부터 그 지역을 지배하던 도시국가 제노바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파스콸레파올리(Pasquale Paoli) 장군이 이끄는 코르시카 독립군은 산악으로 둘러싼 내륙을 점령했다. 코르시카 독립군이 승리하여 자유를 얻어낸다면, 이 장군이 코르시카의 첫 대통령이 될 것이었다. 그가 코르시카의조지 워싱턴이 되는 셈이었다.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에서 장 자크 루소는 유럽에서 진정한 공화국이 탄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코르시카라고 했다. 코르시카는 고립되었고 아직 현대화가 진행되지 않은 곳이었다. 루소는 "어느 날이 작은 섬이 유럽을 크게 놀라게 할 것이란 예감이 든다"고 썼다. 보즈웰은 코르시카에서 기회와 가능성을 봤다. 그는 코르시카 사람들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처럼 바위투성이의 산악지대에서 외세에 맞서 자유를 지키는 용감한 민족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자유에 대한 그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만약 파올리 장군과 코르시카 독립군을 알게 된다면, 후에 그들에 대한 책을 써서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영예를 얻고자 그는 많은 꿈을 품었다. 실현되지 않은 다른 수많은 꿈들과 달리, 보즈웰은 코르시카를 통해 큰 명성을 얻게 된다. - P207

1764년 초반에 레이놀즈는 존슨에게 유쾌하고 매력적인 친구들을 모아서 클럽을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클럽 회원으론 9명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전원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활발히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한 수라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훗날 더 클럽의 어느 회원은 "아주 쾌활한 사람들을 회원으로 뽑는 것이었고, 9명 중에서 오직 2명만 모임에 나오더라도 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이 더 클럽의 취지였다"고 말했다. 존슨과 레이놀즈는 라틴어 ‘에스토 페르페투아‘를 모토로 삼았다. 이 말은 ‘영원하라‘는 뜻으로, 그 모임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더 클럽의 규모가 커지면서 신입회원은 기존회원이 만장일치로 뽑는다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단 한 명이라도 반대를 하면, 대상자는 더클럽에 들어올 수 없었다. 1766년 잉글랜드로 돌아온 보즈웰은 더 클럽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1773년이 되어서야 그는 더 클럽의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더 클럽의 회원들은 보즈웰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의 장점이라고는 존슨에 대한 헌신밖에 없는 가벼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P215

한편 에드먼드 버크는 가격에 놀란다.
"1,000기니!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동물상은 없습니다."
존슨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철학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이보게, 그것은 그 조각상의 값이 아니라네. 그 조각상을 만든 기술이 높게 평가받은 거지. 인간의 힘을 극대화하고 누군가 불가능한 일을 해냈음을 보여주는 것들은 모두 가치가 있지. 가령, 코 위에 지푸라기를 올려 균형을 맞춘 최초의 사람이나 한 번에 말 3마리에 올라탄 존슨(유명한 기수)처럼 무언가를 최초로 해낸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받을 자격이 있어. 그들이 한 일의 효용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실력 때문이지.
- P227

C.S. 루이스(C. S. Lewi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부르주아 소년이었을 때, 상위계급이 나의 사회적 계급을 부르주아라고 불렀다. 부르주아는 ‘귀족적이지 않아 천박한 계급‘을 의미했다. 하지만 내가 20대가 되었을 때 부르주아의 의미가 변했다. 하위계급이 나의 사회계급을 비난했다. 부르주아는 ‘노동자계급이 아닌 기생충 같고 반동적인 계급‘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계급에 속하는 것은 언제나 치욕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성직자, 시인, 철학자, 과학자, 음악가, 화가, 의사, 건축가 그리고 행정가가 부르주아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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