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3년 5월 16일은 보즈웰에게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시작됐다. 그는 템플과 아침을 먹었다. 오후에 데이비스의 서점에서 그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존슨이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보즈웰은 <존슨전>에서 이 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극적인 전환점이었다고썼다.
"우리가 앉아 있던 방의 유리문을 통해 그가 걸어오는 것을 본 데이비스는 그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 모습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장엄했다. 데이비스는 마치 햄릿의 아버지 유령을보고 ‘보십시오, 왕자님 나타났습니다!‘라고 햄릿에게 외치는 호레이쇼를 연기하는 배우 같았다." - P165

◆코르시카
마운트스튜어트 경과 헤어진뒤 보즈웰은 그랜드 투어를 끝내고 코르시카로 향했다. 코르시카는 외부인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지역이었지만, 연일 뉴스에 등장했다. 중세시대부터 그 지역을 지배하던 도시국가 제노바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파스콸레파올리(Pasquale Paoli) 장군이 이끄는 코르시카 독립군은 산악으로 둘러싼 내륙을 점령했다. 코르시카 독립군이 승리하여 자유를 얻어낸다면, 이 장군이 코르시카의 첫 대통령이 될 것이었다. 그가 코르시카의조지 워싱턴이 되는 셈이었다.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에서 장 자크 루소는 유럽에서 진정한 공화국이 탄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코르시카라고 했다. 코르시카는 고립되었고 아직 현대화가 진행되지 않은 곳이었다. 루소는 "어느 날이 작은 섬이 유럽을 크게 놀라게 할 것이란 예감이 든다"고 썼다. 보즈웰은 코르시카에서 기회와 가능성을 봤다. 그는 코르시카 사람들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처럼 바위투성이의 산악지대에서 외세에 맞서 자유를 지키는 용감한 민족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자유에 대한 그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만약 파올리 장군과 코르시카 독립군을 알게 된다면, 후에 그들에 대한 책을 써서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영예를 얻고자 그는 많은 꿈을 품었다. 실현되지 않은 다른 수많은 꿈들과 달리, 보즈웰은 코르시카를 통해 큰 명성을 얻게 된다. - P207

1764년 초반에 레이놀즈는 존슨에게 유쾌하고 매력적인 친구들을 모아서 클럽을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클럽 회원으론 9명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전원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활발히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한 수라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훗날 더 클럽의 어느 회원은 "아주 쾌활한 사람들을 회원으로 뽑는 것이었고, 9명 중에서 오직 2명만 모임에 나오더라도 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이 더 클럽의 취지였다"고 말했다. 존슨과 레이놀즈는 라틴어 ‘에스토 페르페투아‘를 모토로 삼았다. 이 말은 ‘영원하라‘는 뜻으로, 그 모임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더 클럽의 규모가 커지면서 신입회원은 기존회원이 만장일치로 뽑는다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단 한 명이라도 반대를 하면, 대상자는 더클럽에 들어올 수 없었다. 1766년 잉글랜드로 돌아온 보즈웰은 더 클럽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1773년이 되어서야 그는 더 클럽의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더 클럽의 회원들은 보즈웰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의 장점이라고는 존슨에 대한 헌신밖에 없는 가벼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P215

한편 에드먼드 버크는 가격에 놀란다.
"1,000기니!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동물상은 없습니다."
존슨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철학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이보게, 그것은 그 조각상의 값이 아니라네. 그 조각상을 만든 기술이 높게 평가받은 거지. 인간의 힘을 극대화하고 누군가 불가능한 일을 해냈음을 보여주는 것들은 모두 가치가 있지. 가령, 코 위에 지푸라기를 올려 균형을 맞춘 최초의 사람이나 한 번에 말 3마리에 올라탄 존슨(유명한 기수)처럼 무언가를 최초로 해낸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받을 자격이 있어. 그들이 한 일의 효용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실력 때문이지.
- P227

C.S. 루이스(C. S. Lewi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부르주아 소년이었을 때, 상위계급이 나의 사회적 계급을 부르주아라고 불렀다. 부르주아는 ‘귀족적이지 않아 천박한 계급‘을 의미했다. 하지만 내가 20대가 되었을 때 부르주아의 의미가 변했다. 하위계급이 나의 사회계급을 비난했다. 부르주아는 ‘노동자계급이 아닌 기생충 같고 반동적인 계급‘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계급에 속하는 것은 언제나 치욕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성직자, 시인, 철학자, 과학자, 음악가, 화가, 의사, 건축가 그리고 행정가가 부르주아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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