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성과 동정심을 사용해서 인류의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의 원리는 너무 뻔하고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게 들린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라는 이상을더욱 성심성의껏 지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너무 당연히 여긴다. 80년 이상 살아갈 신생아, 식량이 넘쳐흐르는 시장, 손가락을 까닥거리면 나오는 정수와 또 한 번 까닥거리면 사라지는 오수, 고통스러운 감염병을 없애 주는 알약,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는 아들, 안전하게 거리를활보하는 딸, 권력자를 비판하고도 감방에 가거나 총에 맞지 않는 평론가, 휴대하면서 쓸 수 있는 세계의 지식과 문화를 말이다. 하지만 이모든 것은 우주적 생득권(cosmic birthright) 이 아니라 인간이 이룬 업적이다. - P21

1장 감히 알려고 하라!

계몽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제목으로 한 1784년의 에세이에서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년)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계몽은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상태나 종교적 권위나 정치적 권위의 "도그마와 인습"에 "나태하고 소심하게 복종하는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모토는 "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이며, 여기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이다. "후세가 그들의 통찰을 확대해서 자신의 지식을 늘리고 자신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을 앞선 시대가 미리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범죄가 될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운명은 바로 그런 진보에 있기 때문이다." - P25

진화로 되돌아가 보자. 유전체 속 정보에 따라 배선되어 감각 기관을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의거해서 계산을 수행할 수 있게 된 뇌는 에너지를 포획하고 엔트로피에 저항하기 위해 동물의 행동을 체계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찍찍거리면 추적하고, 짖으면 피하라."라는 규칙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 추적과 도피는 단순한 근육의 수축 운동이 아니라 목표 지향적 행동이다. 추적 행동은 상황에 따라 달리기나 기어오르기, 뛰어오르기나 매복하기처럼 먹이를 잡을 가능성을 높여 주는 행동들이 될 수 있다. 도피 행동은 숨기나 꼼짝하지 않기나 지그재그 달리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되먹임(feedback), 혹은 제어(control)라고 불리는 20세기가 낳은 중요한 개념들을 만나게 된다. 이 개념들은 물질계가 어떻게 목적론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 다시 말해 목적이나 목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해 준다. 필요한 것은 네 가지뿐이다. 자기 자신과 환경의 상태를 감지하는 방법, 목표 상태 (원하는 것,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의 표명,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의 차이를 계산하는 능력, 그 결과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전형적인 행동레퍼토리. 만일 그계가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의 차이를 잘 줄여 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면, 그 계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면, 목표를 달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 선택은 이 원리를 항상성의 형태로 생명체에 장착했다. 우리 몸이 몸을 떨고 땀을 흘림으로써 체온을조절하는 방식이 좋은 예이다. 인류도 이 원리를 발견해서 처음에는 온도 조절 장치와 크루즈 컨트롤(cruise control, 선박이나 항공기, 미사일 등에 쓰이는순항 제어 장치) 같은 아날로그 체계에, 나중에는 체스플레이 프로그램과 자율 로봇 같은 디지털 체계에 응용했다. - P46

지상에 드리운 영적 기운처럼 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현실적인 것, 즉 에너지 획득 방식의 변화를 발견한 것이다. 축의 시대는 농업과 경제의 발전으로 에너지가 급격히 늘어나서 음식, 사료, 연료, 원자재 형태로 한사람이 하루에 획득하는 에너지가 2만 킬로칼로리를 넘어선 시대였다. 이 획득 에너지 급증 덕분에 문명들은 더 큰 도시를 세우고, 학자와 종교 계급을 만들고, 단기적인 생존에서 장기적인 조화로 우선 순위를 재설정할 수 있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년)는 몇 천년 후에 이렇게 표현했다. "먹는 것이 우선, 도덕은 그다음.."
산업 혁명이 일어나 석탄, 석유, 낙하하는 물에서 가용 에너지가 터져나오자 가난, 질병, 기아, 문맹, 조기 사망으로부터 탈출하는 행렬이 먼저서양에서, 다음으로 점차 전 세계에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것에 대해서는5~8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인간 안녕과 복리의 다음 도약 - 극빈의 박멸과풍요.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무수한 도덕적 이익의 전파 - 도전 세계가받아들일 수 있는 경제적, 환경적 비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술의진보에 의존한다.  - P50

엔트로피, 진화, 정보. 이 세 개념은 인간의 진보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이다. 우리가 어떤 비극 속에서 태어났고, 조금 더 나은 생존을 위해어떤 수단을 동원해 왔는지를 알려준다.
세 개념이 일러 주는 첫 번째 지혜는 불행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 혁명이 이룬 약진 가운데 하나 - 어쩌면 가장 큰 약진일지도 모른다. - 는 우주는 목적으로 충만하다는 직관을 논박한 것이다.
원시적이지만 도처에 널려 있는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것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고, 따라서 나쁜 일-사고, 질병, 기근, 가난이 일어나면분명 어느 행위자가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 그렇게 된것이다. 이 생각 때문에 한 개인을 불행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처벌하거나 재산을 쥐어짜서 피해를 보상하려고 한다. 만일 누구도 지목할 수가 없으면, 근처에 있는 종족적, 종교적 소수자 탓으로 돌려서 린치를 가하거나 학살을 자행한다. 만일 어떤 인간에게 그럴듯하게 책임을 돌릴 수 없으면, 마녀를 찾아내 화형에 처하거나 익사시킨다. 그마저도 실패하면 가학적인 신들을 탓하게 되지만, 신을 처벌할 수는 없는지라 기도를 올리거나 제물을 바쳐서 달래 보려고 한다. 게다가 업보, 숙명, 신탁, 우주적 정의 같은 실체 없는 힘들이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라는 직관을 보증한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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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 앞에서 언어, 마음, 인간 본성에 대해 강연을 하는 도중에 나는 굉장히 이상한 질문들을 받고는 했다. 어떤 것이 가장좋은 언어인가? 대합조개와 굴에도 의식이 있을까? 언제쯤이면 나의 마음을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 있을까? 비만도 일종의 폭력일까?
하지만 가장 솔깃한 질문을 받은 자리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진부해진 개념, 즉 마음 활동(mental life)은 뇌 조직들의 활성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설명하는 강연회였다. 청중 가운데에서 한 여학생이 손을 들고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죠?"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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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불완전한 2류 신들을 숭배할 수 있죠? 나는 애당초 하느님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옛날부터 생각했다.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로서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모델을 제공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런 이유가 없다면, 작은 냉장고만큼 배가나오고 곧잘 엉덩이를 긁어대는 저 아랫집 남자를 숭배해도 달라질것이 없을 것이다.
제이미는 이 점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는다. "우리는 불완전하기때문에 완전하고, 그건 신들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제우스는아동성애와 간통을 저질렀고, 폭군이었죠. 하지만 우리가 제우스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어요." 이교의 신들은 완벽한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교훈으로서 존재한다. 너희는 우리처럼 일을 엉망으로 만들지 말지어다. - P371

그런데 샤먼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샤먼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평소에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사실 잘 모르는 단어
‘중 하나다. ‘샤먼‘은 시베리아어로 ‘흥분한 사람, 마음이 움직인 사람‘을 뜻하는 사만(sanman)에서 유래했다. 마음에 든다. 샤먼은 동적이다. 샤먼은 인정을 베푼다. 그들은 환자가 어찌 되든 관심도 없는 차갑고 냉담한 치유사가 아니다. 샤먼은 환자에게 인정을 베풀 뿐만아니라 그들 자신이 바로 환자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치유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치유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돌려준다. 환자가 죽으면 샤먼이 받은 돈을 돌려주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우리 보건의료 시스템도 이런 환불 보장 제도를 도입하면 크게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샤먼의 또 다른 정의는 ‘아는 자‘다. 믿는 자가 아니라 아는 자. 이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샤먼의 세계에서 믿음은 설 자리가 없다. 오로지 지식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샤먼은 무엇을 아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아는 걸까?
샤먼의 힘은 마음대로 황홀경에 빠져들어 다른 의식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경우에 따라 향정신성약품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한다. 샤먼은 신도 정령도 아니지만 신과 정령을 알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샤먼은 중재자이자 여행자이며,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탐험한 뒤 평범한의식 세계로 돌아온다.  - P402

 황홀경에 빠졌을 때 샤먼의 의식 상태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는 샤먼들에게 자연스럽게 ‘미쳤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판단인가?
정신이 멀쩡한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였던 카를 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물리적 존재만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거의 웃음이 나올 만큼 우스꽝스러운 편견이다. 사실 우리가 가장 가깝게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 양식은 정신적인 것이다. 반면 물리적존재는 추론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감각이 전달해주는정신적인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물질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403

샤먼은 자연을 사랑한다. 성 프란체스코의 전통을 따르는 셈이다.
그들은 자연계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 가족으로 본다. 샤먼은 동물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우월한 지혜를 끌어다 쓰는 것을목표로 삼는다. 샤먼의 또 다른 특징은 작업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샤머니즘은 사람들(나도?)이 침묵의 명상으로는 몇 년이나 걸릴수도 있는 경험을 몇 시간 만에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영적인 지름길을 약속해준다. 인류학자였다가 샤먼으로 변신한 마이클 하너의 말이다. 내게는 이 말이 한없이 매력적이다. 솔직히 지름길을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 P403

내가 지금까지 탐색했던 모든 종교 중에서 유대교의 역사가 가장길다. 유대교도들은 수피교도들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 때, 불교도들이 명상을 시작한 때, 라엘교도들이 이성의 옷을 입기 시작한 때로부터 수천 년 전에 이미 유일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기술은 번쩍거리는 새것이 좋지만, 종교는 오래돼서 곰팡내를 풍기는 것이 환영받는다. 멋지게 낡은 것. 물론 오랜 역사가 반드시 진리와 동격은 아니다.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믿음이 진리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교적 진리는, 예를 들어 산술적 진리와는 다른 것 같다. 종교적 진리는 훌륭한 시나 소설의 진리와 같다. 우리가 지금도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그의 글이 좋을 뿐만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믿음의 문제에서는 오랜 생명력이 확실히 중요하다. 나는 유대교의 점수판에 조용히 몇 점을 더한다. - P442

모든 종교에는 창조설화가 있다. 카발라도 예외가 아니다. 카발라의 창조설화는 지금까지 내가 접해본 어느 창조설화 못지않게 화려하고 환상적이다. 기본적인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신이 우주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던 중에, 어이쿠! 이런, 우주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지금 우리는 그 파편들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이 깨진 조각들을 다시 하나로 붙여서 이 세상을 수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따라서 티쿤, 즉 ‘수리(修理)‘는 카발라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유대교도 마찬가지다). 카발라 추종자들은 우리 각자가 세상의 수리를 돕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의식을 수리해야 하는 독특한 과제를 안고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상승효과를 낸다는 것이 카발라의 가르침이다. 물질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미츠바, 즉 선행이 신적인 영역에서 반향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P464

"유대교는 운전과 같아요." 대니얼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운전을 배우려면 규칙을 알아야 하죠. 빨간 신호등의 뜻은 무엇이고, 양보 표지의 뜻은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제한속도도 지켜야하고요. 하지만 운전을 순전히 규칙의 집합체로만 보는 건 멍청한짓입니다. 우리가 차를 운전하는 건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예요. 어쩌면 아주 특별한 장소가 목적지일 수도 있겠죠. 때로는 순전히 운전하는 것이 즐거워서 차를 몰기도 합니다. 규칙은 운전이라는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에요."
이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아직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누가 봐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유대교의 규칙들은 뭐죠? 그러니까 항상 오른쪽 신발을 먼저 신어야 한다는 규칙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런 규칙에 무슨 목적이 있겠어요?
"오른쪽은 상냥함을 상징하고 왼쪽은 엄격함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먼저 상냥함으로 시작한 뒤에야 엄격함을 덧붙입니다. 신발을 신는 규칙은 그것을 일깨워주는 장치일 뿐이에요." - P495

웨이트리스가 우리에게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모세가 봤으면 자랑스러워했을 법한, 단단한 판으로 되어 있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신과 종교의 관계는 음식과 메뉴판의 관계와같구나. 메뉴판과 종교는 모두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해준다. 웨이터가 우리에게 메뉴를 추천해줄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우리다.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신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메뉴판을 읽었으므로 식사를 잘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전자의 행동이 후자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메뉴판과 종교는 모두 우리를 유혹하며 여러 약속들을 내놓지만 그 약속들을 항상 지키지는 않는다. 메뉴판과 종교는 또한 우리 앞에 즐거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지나치게 공들인 설명을 내놓지만 우리는 그 설명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건 독립 농장에서 키운 쇠고기로 만든 카르파초를 주문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다. 훌륭한 종교는 훌륭한 메뉴판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을 솔직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가격은 비록 조금 비싸기는 할망정 항상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 P499

우리는 결코 자신의 과거에서 완전히 도망칠 수 없으며,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과거의 지혜를 한 모금씩 마시면서 그들의진리를 빨아들이더라도 그들은 언제나 ‘타자(他者)‘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최대한 바랄 수 있는 것은 이 지혜의 조각들이 우리의골수로 스며드는 것이다. 이런 일은 내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것보다 더 흔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가 기본적으로 엉망진창인데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
사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목표다. 좋은 종교의 목표. 우리 자신 속에 있는 가장 불쾌한 부분들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랑해도 될만한 것으로 바꿔놓는 것. 융은 "우리의 어둠이 의식을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기도와 명상 같은 영적인 체조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이런 변화의 연금술은 궁극적으로 신비로운 과정으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것을 은총이라고 부르고, 불교도들은 실제(實際)라고 부르고, 도교 추종자들은 아예 이름조차 지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항상선물일 뿐,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일부러 찾기를 멈춘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 P507

한편 나의 도쿄 경험에는 아직 속편이 없다. 나는 이미 속편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기대야말로 경험의 커다란 적이니까. 그래도 나는 계속 기다린다. 가끔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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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다는 건 전염병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에요. 어쨌든 존은 원주민들에게서 그런 미친 사고방식이 옳았을 거예요. 물론 존이 그들과 무척 오래 같이 지냈기 때문이겠죠. 그들이 항상 존한테 못된짓을 하고, 다른 소년들이 함께 놀아주질 않는데도 말이에요. 덕택에 내가 걔를 조금쯤 길들이는 것이 훨씬 용이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건 잘된 일이기도 했어요. 존을 제대로 길들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요. 무엇을 알려고 한다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알지 못하는 게 굉장히 많았어요. 내 얘긴, 어린아이가 헬리콥터는 어떻게 작동하고 세상은 누가 만들었느냐는 따위를 물어볼 때를 의미하는데-글쎄요, 베타의 신분으로 항상 수정실에서만 근무한 사람이라면 그럴 때 무슨 대답을 할 수가 있겠어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고요." - P195

그는 포페를 점점 더 미워하게 되었다. 인간이란 겉으로는 미소를짓고 또 지으면서도 흉악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배반을 일삼고, 색욕적이고, 무자비하고, 흉악한 인간. 이런어휘들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일까? 그는 겨우 반쯤만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런 어휘들의 마력은 강렬했고,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에서 우르릉거렸다. 웬일인지 그는 여태껏 포페를 진심으로 미워한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따지고보면 얼마나 포페를미워하는지 적절하게 표현할 길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를미워하지 않은 셈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는 이런 어휘들이, 북소리와 노래와 마법 같은 어휘들이 생겨났다. 그가 알게 된 어휘들과, 그리고 바로 그런 어휘들로 엮어진 (그것들이 무엇인지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여하튼 멋지고도 멋지며) 이상하고도 이상한이야기들은 포페를 증오해야 할 이유를 그에게 마련해주었다.  - P209

가족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티쿤, 즉 수리를 실천하는 수단이라고 데이비드가 말한다. 나는 크리스핀 수도사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의 가족이 곧 우리의 사도"라는 말. 내가 다른 곳에서 영적인 영양분을 찾아다닌 것이 잘못임을 이제 알겠다. 나는 가족과 영성을 각각 다른 상자에 넣어두고 분리해서 생각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이 두 영혼은 말한다. 같은 상자에 넣어야 한다고. - P476

존이 얼른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문 바로 안쪽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주위를 둘러본 다음, 사슴 가죽신을 신은 발로 조심스럽고도빠른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건너가 국장 앞에 무릎을 꿇고 또렷한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란 아이를 낳는 현상에 관련된 도덕적으로 부정한 요소와 혐오감을 일차적으로 배제한 의미이기 때문에, 음탕하다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추악하고, 외설적이라기보다는 배설물처럼 더럽고야비함을 뜻하는 어휘여서 존이 외친 더럽고 우스꽝스러운 어휘는견디기 힘들 정도로 팽팽해졌던 긴장감을 크게 이완시켰다. 거의 발작적이라고 할 만큼 요란한 웃음이 터져 나오더니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아버지라니-그것도 국장님더러말이다! 아버지라니! 오포드 님이시여, 오포드 님 맙소사! 그것은정말로 너무나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다. 환호성과 고함 소리가 다시금 요란해졌다. 요원들의 얼굴은 흐물흐물 일그러지기 직전이었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정충이 담긴 시험관이 여섯 개 더 엎어졌다. 아버지라니!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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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여성적인 측면, 즉 아니마는 중요한데도 흔히 간과되곤 한다. 창조주는 오로지 뜨거운 유황불과 남성적인 기적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부드러운 측면도 있다. 거의 문명이 처음 시작될때부터 인류는 여신을 숭배했으며, 거의 모든 종교가 섬기는 신에게도 여성적인 측면이 있다. 유대교에는 세키나가 있고, 힌두교에는샤크티가 있다. 루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섬세한 베일을 통해빛나는 신이다." 그러니까 성별 바꾸기라는 이 라엘교의 행사도 그러한 신의 특징과 접촉하려는 시도인 것 같다. 혹시 내가 라엘교도들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는 걸까? - P278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다. 근사한 모습이다. 정말로 근사하다. 풍성한 금발이 풍만한 가슴 위로 멋지게 늘어져 있다. 방금 면도한 얼굴은 매끄럽고 볼연지는 내 얼굴이 섬세하면서도 건강하게 빛나는 것처럼 만들어준다. 그래, 의심의 여지가없다. 거울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나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다니. 적어도 나의 여성형인 이 모습에 마음이 끌린다. 나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잠시 생각해보지만, 이 생각이 향하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생각을 그만두고 행사장으로 향한다. - P279

하지만 사람이 뭔가를 상대로 열심히 싸운다는 것은 그 상대에게 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 싸우면 싸울수록 상대방과 더 얽히게 되어 있다. 증오는 우리를 집어삼키는 불꽃이라기보다는 겉으로 보기에 부정하고 거부하는 듯이 보이는 것과 우리를 묶어주는 아교와 같다. 터무니없는 아교. 중동은 이 현상의 살아 있는 증거이고, 라엘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톨릭과의 죽음의 포옹 속에갇혀 있다. 사실 라엘교 자체가 가톨릭교회를 뒤집어놓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에 세례가 있다면, 라엘교에는 ‘전이‘가 있다. 가톨릭에 수녀들이 있다면, 라엘교에는 라엘의 천사단이 있다. 라엘교도들은 정신과 의사들이 ‘반동형성‘(억압된 욕구와는 반대의 행동을 나타내는 것 - 옮긴이)이라고 부르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반(反)가톨릭 감정이 워낙 강한 나머지 자신이 가톨릭교회에 얼마나 단단히 얽매여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 P288

 종교와 우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로 얽혀 있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거의 모든 고대 다신교들에는 강력한 ‘하늘의 정령‘이나 ‘하늘 신‘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인간을 뜻하는 단어 안트로포스(anthropos)에는 ‘올려다보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올려다본다. 천체들을, 하느님을. - P290

 존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받아들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즐거웠다. 어느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이번에도 나는 어쩌면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UFO나 외계인이나 유전공학은물론이고 심지어 관능적인 여행 등에 관한 터무니없는 이야기들까지 죄다 상관없다. 라엘교는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추종자들에게 공동체 의식, 소속감, 인간이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을 제공해준다.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믿는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존이 라엘교를 지칭하는 말이 그들‘에서 ‘우리‘로 바뀌었음을 눈치챘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이 목에 라엘교 펜던트를 걸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진짜 라엘교도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 P296

좋은 종교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 좋은 종교는 사람을힘들게 한다. 좋은 종교는 사람을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며 헤셸이 다급하게 던진 질문과 정면으로 씨름한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 눈을 들어 자신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가?"
라엘교도들은 외계인이나 비행접시 얘기를 계속 늘어놓으면서도가슴 높이 이상 시선을 들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 높이로는 충분하지 않다. 충분한 높이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 P299

"그건 도교가 무정형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빌이 말한다. 의도적으로 모호한 종교라는 것이다. 《도덕경》은 모호함이라는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빌은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상상하는것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붙여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찬양하기 위해지어진 한 편의 시." 그 ‘어떤 것‘은 ‘도‘를 뜻한다. 도는 대개 ‘길‘로 번역되지만 우주, 자연, 신, 위대한 무, 위대한 신비 등으로도 번역된다. 단순히 "세상 이치로 번역될 때도 있다. 《도덕경》 또한 모든 구절들을 읽는 방법이 무한해 보인다. 그래서 그토록 수많은 번역본과 주석이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경전보다도 많다. 다들 《도덕경>의 의미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도교의 초석을 하나 더 꼽는다면, 무위(無爲)라는 개념이 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수백 년 전 중국의 게으름뱅이가 게으름을 정당화할 구실을 잘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빌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무위는 사실 ‘힘들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것과 어떤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두는 것의 차이. 도교 추종자들에게 저항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기도 하다. 불필요한 노력인 것이다. 무위란 삶을 전쟁으로 보기보다는 항해로 보는 것이다.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교도들의 말처럼, 조금 조사가 필요하다. - P307

차분함뿐만 아니라 부드러움도 있다. "부드러운 기수가 날뛰는 말을 다스리듯이 세상에서도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노자는 이렇게 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 우리는 부드러운 것보다 강한 것을 좋아하고, 우리가 쓰는 언어에도 이런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은물론이고 심지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도 감탄한다. 부드러움은 약점, 성격상의 결함으로 여겨진다. "날 물렁하게 대하지 마." 우리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간청한다. 부드럽다는 말을 칭찬으로 쓸 때조차 거기에는 항상 약간의 경멸이 섞여 있다. 마음이 부드럽고 약한 사람은 멍청이라는 듯이.
생각해보면, 강한 것을 선호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갓난아기는 부드럽고, 시체는 딱딱하다. 부드러운 것은 휘어지지만 강하고 딱딱한 것은 부러질 뿐이다. 도교는 부드러움 속에 숨어 있는힘을 본다. 예를 들어 물은 어느 물질 못지않게 부드럽고 잘 휘어지지만 수백 년 동안 강물이 흘러서 그랜드캐니언을 만들어놓았다. 부드러운 힘의 작용이다. - P326

"지금 말하는 신이 무슨 뜻인지 먼저 알아야겠어요. 우리가 ‘신‘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즉각 자기들이 생각하는 신의 이미지를 마음에 떠올려요. 나도 뭔가를 믿기는 하지만 그걸 정확히 설명해줄 수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초창기의 번역가들 중에는 ‘도‘를 ‘신‘으로 번역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옳지 않죠. 도는 신이 아니라 길이니까요. 이 둘은 달라요."
"좋아요. 하지만 지금껏 찾고 있던 해답을 도교가 제공해주던가요?"
"난 해답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경험을 바랄 뿐이에요."
나는 미끄러운 두부와 씨름하면서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동양 종교와 유대교-그리스도교를 구분 짓는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믿음보다 경험을 강조하는 것. 도교, 불교, 힌두교,자이나교 등은
"무엇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이것은 서구의, 특히 그리스도교의 버릇이다. 동양의 특징은 행동, 경험, 결과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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