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성과 동정심을 사용해서 인류의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의 원리는 너무 뻔하고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게 들린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라는 이상을더욱 성심성의껏 지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너무 당연히 여긴다. 80년 이상 살아갈 신생아, 식량이 넘쳐흐르는 시장, 손가락을 까닥거리면 나오는 정수와 또 한 번 까닥거리면 사라지는 오수, 고통스러운 감염병을 없애 주는 알약,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는 아들, 안전하게 거리를활보하는 딸, 권력자를 비판하고도 감방에 가거나 총에 맞지 않는 평론가, 휴대하면서 쓸 수 있는 세계의 지식과 문화를 말이다. 하지만 이모든 것은 우주적 생득권(cosmic birthright) 이 아니라 인간이 이룬 업적이다. - P21

1장 감히 알려고 하라!

계몽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제목으로 한 1784년의 에세이에서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년)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계몽은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상태나 종교적 권위나 정치적 권위의 "도그마와 인습"에 "나태하고 소심하게 복종하는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모토는 "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이며, 여기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이다. "후세가 그들의 통찰을 확대해서 자신의 지식을 늘리고 자신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을 앞선 시대가 미리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범죄가 될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운명은 바로 그런 진보에 있기 때문이다." - P25

진화로 되돌아가 보자. 유전체 속 정보에 따라 배선되어 감각 기관을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의거해서 계산을 수행할 수 있게 된 뇌는 에너지를 포획하고 엔트로피에 저항하기 위해 동물의 행동을 체계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찍찍거리면 추적하고, 짖으면 피하라."라는 규칙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 추적과 도피는 단순한 근육의 수축 운동이 아니라 목표 지향적 행동이다. 추적 행동은 상황에 따라 달리기나 기어오르기, 뛰어오르기나 매복하기처럼 먹이를 잡을 가능성을 높여 주는 행동들이 될 수 있다. 도피 행동은 숨기나 꼼짝하지 않기나 지그재그 달리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되먹임(feedback), 혹은 제어(control)라고 불리는 20세기가 낳은 중요한 개념들을 만나게 된다. 이 개념들은 물질계가 어떻게 목적론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 다시 말해 목적이나 목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해 준다. 필요한 것은 네 가지뿐이다. 자기 자신과 환경의 상태를 감지하는 방법, 목표 상태 (원하는 것,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의 표명,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의 차이를 계산하는 능력, 그 결과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전형적인 행동레퍼토리. 만일 그계가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의 차이를 잘 줄여 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면, 그 계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면, 목표를 달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 선택은 이 원리를 항상성의 형태로 생명체에 장착했다. 우리 몸이 몸을 떨고 땀을 흘림으로써 체온을조절하는 방식이 좋은 예이다. 인류도 이 원리를 발견해서 처음에는 온도 조절 장치와 크루즈 컨트롤(cruise control, 선박이나 항공기, 미사일 등에 쓰이는순항 제어 장치) 같은 아날로그 체계에, 나중에는 체스플레이 프로그램과 자율 로봇 같은 디지털 체계에 응용했다. - P46

지상에 드리운 영적 기운처럼 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현실적인 것, 즉 에너지 획득 방식의 변화를 발견한 것이다. 축의 시대는 농업과 경제의 발전으로 에너지가 급격히 늘어나서 음식, 사료, 연료, 원자재 형태로 한사람이 하루에 획득하는 에너지가 2만 킬로칼로리를 넘어선 시대였다. 이 획득 에너지 급증 덕분에 문명들은 더 큰 도시를 세우고, 학자와 종교 계급을 만들고, 단기적인 생존에서 장기적인 조화로 우선 순위를 재설정할 수 있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년)는 몇 천년 후에 이렇게 표현했다. "먹는 것이 우선, 도덕은 그다음.."
산업 혁명이 일어나 석탄, 석유, 낙하하는 물에서 가용 에너지가 터져나오자 가난, 질병, 기아, 문맹, 조기 사망으로부터 탈출하는 행렬이 먼저서양에서, 다음으로 점차 전 세계에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것에 대해서는5~8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인간 안녕과 복리의 다음 도약 - 극빈의 박멸과풍요.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무수한 도덕적 이익의 전파 - 도전 세계가받아들일 수 있는 경제적, 환경적 비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술의진보에 의존한다.  - P50

엔트로피, 진화, 정보. 이 세 개념은 인간의 진보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이다. 우리가 어떤 비극 속에서 태어났고, 조금 더 나은 생존을 위해어떤 수단을 동원해 왔는지를 알려준다.
세 개념이 일러 주는 첫 번째 지혜는 불행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 혁명이 이룬 약진 가운데 하나 - 어쩌면 가장 큰 약진일지도 모른다. - 는 우주는 목적으로 충만하다는 직관을 논박한 것이다.
원시적이지만 도처에 널려 있는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것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고, 따라서 나쁜 일-사고, 질병, 기근, 가난이 일어나면분명 어느 행위자가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 그렇게 된것이다. 이 생각 때문에 한 개인을 불행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처벌하거나 재산을 쥐어짜서 피해를 보상하려고 한다. 만일 누구도 지목할 수가 없으면, 근처에 있는 종족적, 종교적 소수자 탓으로 돌려서 린치를 가하거나 학살을 자행한다. 만일 어떤 인간에게 그럴듯하게 책임을 돌릴 수 없으면, 마녀를 찾아내 화형에 처하거나 익사시킨다. 그마저도 실패하면 가학적인 신들을 탓하게 되지만, 신을 처벌할 수는 없는지라 기도를 올리거나 제물을 바쳐서 달래 보려고 한다. 게다가 업보, 숙명, 신탁, 우주적 정의 같은 실체 없는 힘들이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라는 직관을 보증한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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