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친구의 동정과 공감이 이제는 그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버나드는 야만인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함께 은밀한 불만을 뒤틀린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약간의 분풀이를 하려고 여러 작전을 곰곰이 궁리해보았다. 합창원대원장에게 불만을 품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고, 유리병 처리실 실장이나 기능 설정 보조원에게 복수를 할 가능성 또한 없었다. 버나드는 야만인이라면 희생자로 삼기에다른 사람들보다 무척 만만해 보였고, 다루기가 아주 쉬운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지닌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이란, 적들에게 가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보복들을 (보다 온건하고 상징적인 형태로)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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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고어(Al Gore, 1948년~) 에서 유나바머(Unabomber, 본명이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 1942년~)인 우편물 폭탄 테러리스트 -옮긴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는 다양한 지지자의 선언에서 볼 수 있듯이, 1970년대에들어 주류 환경 운동은 어느 정도 종교적인 면을 지닌 이데올로기, 녹색주의(greenism)와 결합했다.‘ 녹색주의 이데올로기의 출발점은 지구를 인간의 탐욕으로 더럽혀진 순진한 소녀의 모습으로 표상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에 모든 성직자에게 보내는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팔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 누이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서사에 따르면 피해는 멈출 수없이 악화되고 있다. "우리의 집인 지구가 점점 더 엄청난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근본 원인은 이성, 과학, 진보를 향한 계몽주의의 노력이다. "과학과 기술 발전이 인류와 역사의 발전과 동일시될 수없다고 교황은 썼다.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길은 근본적으로는 다른데 있다. 이를테면 "문제가 얽히고설킨 관계의 비밀과 (당연히도 "그리스도교 영성 체험의 보화를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그 길을 갈 수 있다.
우리가 역성장, 역산업화를 통해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과학, 기술, 진보라는 가짜 신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환경에 닥칠 심판의 날에무시무시한 벌을 받을 것이다.
다른 종말론적인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녹색주의에도 인간을 혐오하는 염세적인 태도가 가미되어 있다. 기아 문제를 외면하고, 인구를 감소시키겠다는 잔인한 환상을 품고, 나치가 그랬듯이 인간을 해충, 병원균, 암에 비유하는 것이다.  - P196

경제 성장은 기술 발전뿐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를 통해서도 환경 쿠즈네츠 곡선을 휘게 만든다. 환경에 관한 우려 가운데 일부는 철저하게 현실적이다. 이를테면, 도시의 스모그나 녹지를 뒤덮은 아스팔트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우려는 더욱 정신적이다. 검은코뿔소의 운명이나 2525년을 살아갈 후손들의 행복은 중대한 도덕적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당장 그것부터 걱정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라 할 수 있다. 사회가 부유해지고 식탁에 올릴 음식이나 머리 위를 덮을 지붕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욕구의 위계를 타고 오르고, 관심의 범위 역시 시공간적으로 더욱 확장된다.  - P200

어쨌든 이 증가는 일시적이다.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출산율은 정점에 이른 뒤 하락한다. 우선 부모로서는 자녀가 일찍 사망할 것에 대비해 아이를 많이 낳을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여성은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된다. 그림 10.1은 세계인구 증가율이 1962년에 2.1퍼센트로 정점에 이른 뒤 2010년에 1.2퍼센트로 떨어지고, 아마 2050년에는 0.5퍼센트 이하로 하락한 뒤, 2070년에 0에 가까워져서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리라 예측한다. 출산율이 가장 눈에 띄게 하락한 곳은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이지만, 종종 그렇듯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갑자기 쑥 떨어져 인구학자들을 놀라게 할 수도 있다. 이슬람 사회는 서양을 변형시킨 사회적 변화에 거부감이 크고 따라서 영원히 유스퀘이크(youthquake, 젊은 세대의 인구 비율이 높아 그들의 행동이 다른 세대보다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옮긴이)에 시달릴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출산율은 이란에서는 70퍼센트, 방글라데시와 아랍 7개국에서는 60퍼센트가 하락하는 등 지난 30년간 40퍼센트가 하락했다. - P201

게다가 사람들이 ‘자원을 필요로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먹을거리를 키우는 방법, 이동하는 방법, 집을 밝히는 방법, 정보를 나타내는 방법 등과 같은 인간 안녕과 복리의 원천들이다. 사람들은 생각을 통해 이런 필요를 충족시킨다. 물질 세계를 조작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요리법이나 공식, 기술, 청사진, 알고리듬 등을 활용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끝없는 조합능력을 통해 무한한 생각의 공간을 탐사할 수 있으며, 이것은 땅에 묻힌 특정한 물질의 많고 적음에 제한되지 않는다. 한 생각이 더는 유효하지않게 되면 다른 생각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이것은 확률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이야기이다. 인간이 자기 욕망을 물리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자연 법칙이 많지도 적지도 않게 꼭 한 가지만 허락해 주었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P204

한가지 열쇠는 생산성과 자원의 결합을 깨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더적은 물질과 에너지에서 더 많은 이득을 뽑아낼 수 있다. 이제는 밀도에 프리미엄이 붙는다." 더 적은 땅, 물, 비료를 사용해서 더 많은 단백질, 열량, 섬유질을 만들어 내도록 품종 교배를 하거나, 개량 작물을 재배해서 농업을 집약화하면 그만큼 농지를 절약할 수 있고, 절약한 만큼을 자연 서식지로 되돌릴 수 있다. (생태 모더니스트는 식량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 데 훨씬 많은 땅을 필요로 하는 유기 농법은 더 환경적이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면 시골 지역의 땅이 남게 될 뿐 아니라, 누군가의 천장이 누군가의 바닥이 되어 출근, 건축, 난방에 필요한 자원도 절약하게 된다. 고밀도 조림지에서 자연림의 5배에서 10배에 이르는 목재를 수확하면 임지를 확보하고 그곳에 서식하는 깃털과 털과 비늘이달린 동물을 지킬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지구의 또 다른 친구라고 할 탈물질화(dematerialization)가 큰 도움이 된다. 기술 진보 덕분에 우리는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85그램이었던 음료용 알루미늄 캔은 이제 15그램도 되지 않는다. 휴대 전화는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전신주와 전화선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디지털 혁명은 원자를 비트로 대체함으로써 우리 눈앞에서 세계를 탈물질화하고 있다. 내가 수집한 몇 세제곱미터의 LP판들은 몇 세제곱센티미터의 CD들에 자리를 내주었고, 뒤이어 CD는 아무 부피도 없는 MP3에 자리를 내주었다. 아이패드(iPad)는내 아파트를 채우던 신문의 홍수를 잠재웠다. 테라바이트 단위의 저장공간을 갖춘 노트북이 있어 이제는 상자 단위로 책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스마트폰 하나로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라. 전화기,
자동 응답기, 전화번호부, 카메라, 캠코더, 녹음기, 라디오, 자명종 시계, 계산기, 사전, 주소록, 달력, 거리 지도, 손전등, 팩스, 나침반, 심지어 메트로놈과 실외 온도기, 음주 측정기 등 40여가지 물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금속, 종이를. - P214

주목할 만한 이 경향에는 강제력, 법률, 혹은 도덕적 교화 운동도 필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환경 법안이 불필요하다는 의미냐면 전혀 아니다. 어떻게 보아도 환경 보호 기구, 에너지 기준의 의무화, 멸종 위기종의 보호,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대기질 및 수질 개선을 위한 법안은 엄청나게 유익한 효과를 가져왔다. 오히려 그것은 인류를 휩쓴 근대성의 물결이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자원 사용과 낭비의 카니발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기술의 본성, 특히 정보 기술의 본성에 포함된 무언가가 인류의 번영을 물리적인 물질과의 결합으로부터 떼어 놓고 있는 것이다. - P216

여기에 우리가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두 가지 심리적 장애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인지적인 장애물이다. 사람들은 규모를 생각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000톤, 100만 톤, 10억 톤 단위로 감축하는 행동들을 서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수치, 속도, 가속도, 고계 도함수를 구별하지도 않는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의 비율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 있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수치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 있으며, 지구의 기온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 있다. (이산화탄소 수치가 증가하지 않고그대로 유지되더라도 기온은 상승할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언급한 것들 가운데 마지막 사안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규모와 변화 순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정책에 만족하기 십상이다.
두 번째는 도덕적인 장애물이다. 2장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도덕감각은 특별히 도덕적이지 않다. 인간의 도덕 감각은 탈인간화("돼지 같은 정치인")와 처벌 목적의 공격성("오염을 일으킨 기업에 돈을 물려서")을 부추긴다. 또한 낭비를 악에, 금욕을 선에 빗대 아무 의미도 없는 희생 정신을 신성화한다. 다양한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금식, 순결, 자기 부정을 다짐하고, 장식품을 불태우고, 동물(때로는 인간) 제물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올바름을 과시한다. 현대 사회에서조차 타인에 대한 존경심은 상대가 얼마나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는가보다는 이타적인 행위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포기했는가에 달려 있다.  - P223

해로운 결과를 막는 데 필요한 급격한 탄소 배출량 감소의 징후는 아직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것보다는 정책과 기술을 활용해 탈탄소화 과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의견을 ‘대폭적 탈탄소화(Deep Decarbonization)‘라고 부른다.
대폭적 탈탄소화의 시작은 탄소 유료화(carbon pricing)이다. 탄소 유료화는 사람과 기업이 공기 중에 탄소를 배출해서 일으키는 피해에 비용을 청구하는 것으로, 탄소 배출에 세금을 매기거나 국가들끼리 할당량을 거래할 수 있는 ‘탄소 배출 상한제‘를 도입하면 된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경제학자들도 정부와 시장의 고유한 이점을 잘 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목소리로 탄소 유료화를 지지한다. 원래 대기에는 소유자가 없으니, 사람(그리고 기업) 입장에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탄소 배출을 막고자 굳이 에너지 사용을 자제할 이유가 없다. 이와 같은 고약한 결과를 경제학자들은 ‘부정적 외부 효과‘라고 부른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공공재 게임에서 말하는 ‘집단 비용‘, 공유지의 비극에서 말하는 ‘공유지 훼손‘ 등이있다.) 정부만이 부과할 수 있는 탄소세를 도입해서 공공 비용을 ‘내재화‘하면 사람들은 탄소를 배출하는 모든 결정에서 피해정도를 계산에 넣을 수밖에 없다. 수십억 인구가 자신의 가치관과 가격이 말해 주는 정보에 근거해서 무엇이 절약에 가장 유리한 방법인지 직접 결정하게 하는일은 분명 정부 분석가를 책상 앞에 앉혀 놓고 최선의 조합을 계산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인도적일 것이다.  - P230

대폭적 탈탄소화의 두 번째 열쇠는 전통적인 환경 보호 운동의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낸다. 바로, ‘핵에너지‘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동시에 확장 가능한 탄소 없는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이다."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재생 에너지는 상당히 저렴해졌고, 세계 에너지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배 이상 증가하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전체 에너지 대비 1.5퍼센트에 지나지 않고, 앞으로 증가할 수 있는 정도에도 한계가 있다. - P231

긴 평화는 현실 정치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미국과 (구)소련 군부가가진 강력한 파괴력(핵무기는 제쳐 놓더라도) 앞에서 냉전시대의 초강대국들은 상대와 전장에서 겨루겠다는 생각을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로서는 놀랍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
하지만 국제 질서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오늘날 우리가 그 진가를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개념의 등장이다. 이제 전쟁은 불법이다. 인류사에서 거의 없었던 일이다. 힘이 곧 정의였고, 전쟁은 수단만 달리한 정치의 연장이었으며, 전리품은 승자에게 돌아갔다. 만일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의 대우가 부당하다고 느끼면, 그 국가는 선전포고를 하고잘못된 대우의 보상으로 상대 국가의 영토를 점령한 뒤, 합병에 대한 다른 세계의 인정을 기대할 수 있었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네바다, 뉴멕시코, 유타가 미국의 주인 것은 1846년 미국이 받지 못한 빚을 이유로 멕시코를 침략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세계의 국가들은 자위(自衛) 목적이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인준 없이는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국가는 불멸을 얻었고, 국경은 정해졌으며, 정복 전쟁을 벌이는 국가는 다른 세계의 묵인이 아닌 비난을 예상해야 한다. - P257

해서웨이와 샤피로는 국가간 전쟁의 불법화에도 폐해는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이 자신들이 점령했던 식민지 영토에서 철수한 뒤 그 자리에는 국경이 모호하고 인정을 받는 계승자가 단 한 사람도 없는 취약한 국가가 들어서고는 했다. 그런 국가는 자주 내전과 공동체 간의 폭력 사태에 휘말리고는 했다. 그러나 새로운 국제 질서 아래에서는 그런 국가들도 더욱 효율적인 힘을 가진 국가들의 정당한 침략 대상이 될 수 없게 되었고, 몇 년, 혹은 몇 십 년씩 준(準)무정부상태로 보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 P259

 또한 국가가 부유해지면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 의료, 교육, 치안 등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여유가 있으면 정부는 시민의충성심을 결집하는 측면에서 저항 세력보다 큰 경쟁력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군벌, 마피아, 게릴라(같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가 우두머리 노릇을하는 국경 지역에서 통제권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전쟁은 선제 공격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선제공격을 당해 전멸할지 모른다는 상호 공포에서 불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게임 이론 시나리오에서 안보의 딜레마(security dilemma) 혹은 홉스의 덫(Hobbesian trap)이라고 부른다.) 최초의 원인이 무엇이든 일단 한 지역에 평화의 빛이 밝혀진다면, 그 빛은 저 스스로 밝아질 수 있다. (거꾸로, 전쟁은 전염성이 강하다.) 이것은 지구의 대부분에서 평화가 유지되는 동시에 전쟁의 지리적 범위가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설명해 준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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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페르낭 폴 브로델(Fermand Paul Braudel, 1902~1985년)은 근대 이전에 유럽은 수십 년마다 한 번씩 기근에 시달렸다고 기록했다. 절박한 농민들은 곡식이 익기도 전에 수확했고, 풀이나 인육을 먹었으며, 구결을 하려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호시절에도 많은 이들이 빵이나 죽으로 대부분의 열량을 섭취했고 그마저도 풍족하지 않았다. 경제학자로버트 윌리엄 포겔(Robert William Fogel, 1926~2013년)은 기아와 조기 사망으로부터의 도피, 1700~2100년(The Escape from Hunger and Premature Death1700-2100)』에서 "18세기 초 프랑스 대표 음식의 에너지 양은 1965년완다- 그해 가장 영양이 부족한 국가였다. 대표 음식의 에너지 양만큼 낮았다."라고 썼다. 굶주리지 않은 사람들도 일을 하기에는 너무 허약했고 결국 빈곤 상태에 빠져들었다. 배고픈 유럽인들은 풍요의 땅 코케인(Cockayen) 이야기 같은 음식 포르노에 흥분했다. 코케인이라는 낙원은 나무에서 팬케이크가 자라고, 거리마다 빵이 깔려 있으며, 구운 돼지가 살을 쉽게 저밀 수 있도록 등에 칼을 꽂은 채 어슬렁거리고, 익힌 생선이 물 밖으로 뛰쳐나와 발밑에 떨어지는 나라였다.
오늘날 우리는 낙원에 산다. 우리의 문제는 열량이 너무 적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다. 코미디언인 크리스 록(Chris Rock, 1965년~)은 "이곳은 역사상 최초로 가난한 사람이 뚱뚱한 사회이다."라고 말했다. 제1세계는 대개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현대의 사회 평론가들은 기아에 쏟을 만한 분노를 비만이라는 신종 유행병에 퍼붓는다.  - P118

경제학자 스티븐 데버루(Stephen Devereux, 1959년~)는 2000년에 쓴 글에서 20세기의 세계 진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기근에 대한 취약성은 사실상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근절되었다. 아시아와 유럽의 고질적인 문제인 기근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 듯하다. 중국, 러시아, 인도, 방글라데시는 ‘기근의 땅‘이라는 가혹한 꼬리표를 떼어 버렸고, 1970년대 이후로는 에티오피아와 수단만 남았다. (그리고) 흉작과 기근 사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다. 최근에 가뭄이나 홍수로 야기된 식량 위기들은 지역과 국제사회 공동의 인도적 대응으로 적절히 해결되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20세기는 식량 부족으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한 최후의 세기로 기록될 것이다.‘

이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선진국의 빈곤층을 포함해) 굶주림은 여전히 존재하고, 2011년에는 동아프리카, 2012년에는 사헬, 2016년에는남수단에서 기근이 발생했다. 그밖에도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예멘이 기근에 가까운 상태를 겪었다. 하지만 수백 년 전에 정기적으로 발생한 대재앙의 수준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았다. - P123

맬서스의 수학은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그의 첫 번째 커브를 보자마자 여러분은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무한정 증가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부유해지고 아이가 더 많이 살아남을수록 사람들은 아이를 더 적게 낳기 때문이다. (그림 10.1 참조) 반대로, 기근 때문에 인구 증가가 장기간 꺾이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과 노인들이 대거 사망하는데, 형편이 나아지면 생존자들이 빠르게 인구를 보충한다." 한스 로슬링이 말한 것처럼 "가난한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는 인구 증가를막을 수 없다."
그의 두 번째 커브를 보고는, 지식을 응용한다면 얼마 안 되는 땅에서도 거두어들이는 식량의 양을 늘릴 수 있고, 식량 공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 P125

질소는 단백질과 DNA, 엽록소, 그리고 에너지 운반체인 ATP의 주성분이다. 질소 분자는 공기 중에 많지만 둘씩 짝을 지어 붙어 있고(그래서 화학식이 N.다.), 식물이 이용할 수 있도록 분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1909년에 카를 보슈(Carl Bosch, 1874~1940년)는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년)가 발명한 반응과 공정을 공업적으로 완성했다. 메테인(메탄)과 수증기를 이용해서 공기중의 질소를 추출한 뒤 이것을 비료로 만드는 대량생산공정이었다. 이로써 질소가 고갈된 토양에 질소를 재주입하는 데 쓰였던 어마어마한 양의 새똥을 비료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 두 화학자는 역사상 가장많은 생명 - 27억 명 - 을 구한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이다. - P127

그렇지만 전통적인 환경 운동가 그룹 - 생태작가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 1938년~)가 "기아에 대해 습관적으로무관심한 이들이라고 칭한 이들은 사람들이 유전자변형작물을 멀리하도록 광적인 반대운동을 벌였다. 선진국의 고급 유기농 식품 애호소비자들은 물론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농부들까지도 유전자변형 작물을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먼저 "자연스러움"이라는 신성하지만 무의미한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뒤, 유전자 변형 기술을 "유전자공해" "자연에 대한 농락"으로 매도하고 "생태 농업"을 기반으로한 "진정한 자연 식품을 장려한다. 그런 다음에는 과학에 무지한 대중이 가진 본질주의와 오염에 대한 원초적 직관을 활용한다. 그 결과, 일반인의 절반가량이 일반적인 토마토에는 유전자가 없지만 유전자 조작을거친 토마토에는 유전자가 있고, 식품에 유전자를 주입하면 그것이 음식을 섭취한 사람의 유전체로 흘러들며, 오렌지에 시금치 유전자를 삽입하면 시금치 맛이 난다고 믿는다는 우울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반인의 80퍼센트가 "DNA를 함유한" 모든 식품에 성분 표시 라벨을 붙이게 만드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데 찬성했다. 브랜드는 이렇게 말한다. "감히 말하건대, 환경 운동은 유전 공학에 반대함으로써 우리가 범한 그 어떤 과오보다 더 큰 손해를 끼쳤다. 우리는 사람들을 굶기고, 과학을 방해하고, 자연 환경을 해치고, 현장의 실무자들에게서 결정적인수단을 앗아갔다.""
브랜드가 혹독하게 비판한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최대 혜택을 누렸을지도 모를 일부 국가들이 유전자변형작물에 대한 반대운동 때문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아서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토양이 척박하고, 강수량 변화가 심하고, 항구와 가항) 하천이 부족한 자연 환경에 계속 시달렸으며, 도로, 철도, 운하의 연결망이 대규모로 개발된 적이 없었다." 모든 농지가 그렇듯 그곳의 토양도 황폐해졌지만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아프리카의 토양에는 화학 비료가 보급되지 않았다. 이미상용화된 동시에 아프리카에 맞게 설계된 유전자 변형 작물들이 무경간 농법(밭을 갈지 않고 도랑에 씨를 심어 농사 짓는 방법. - 옮긴이)과 점적 관개(작은관을 따라서 흐르는 물이 원하는 지점에서 방울방울 배출되도록 하는 관개법. - 옮긴이) 같은 현대식 기술과 함께 도입되었더라면 아프리카는 1차 농업 혁명의 침습적인 농법을 훌쩍 뛰어넘어 농업 증산을 이루었을 것이고, 아직도 남아 있는 영양실조의 문제를 퇴치했을 것이다. - P130

「20세기에 대규모 기근으로 사망한 7000만 명중 80퍼센트는 공산주의 정권이 강제한 집단농장, 징벌적 몰수, 전체주의적 중앙 계획의 희생자였다" 러시아 혁명, 적백내전,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구소련을덮친 기근,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1879~1953년)이 일으킨 홀로도모르(Holodomor, 대기근),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년)이 주도한 대약진 운동,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폴 포트(Pol Pot,
1925~1998년)가 강제한 영년(Year Zero) 운동, 1990년대 후반 북한에서 김정일(金正日, 1941~2011년)이 주도한 고난의 행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 P131

부의 창출創出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다시 한번 모호해지는 경우는 현대사회에서 부를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치 논쟁이 벌어질 때다. 그런 논쟁들은 애당초 분배할 만한 부가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ㅂ경제학자들은 총량 오류(lump fallacy)‘ 혹은 ‘물리적 오류(physical fallacy)‘라는 용어를 쓰면서 한정된 양의 부가 태초부터 마치 금광맥처럼 존재했고 그 후로 줄곧 사람들이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두고 다투어 왔다그 주장한다. 계몽주의의 발명품 중에는 부가 창출되었다는 자각이 포달되어 있다. 부는 주로 지식과 협력을 통해 창출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관계망을 이루어서 불가능해 보이지만 쓸모 있는 형태로 물질을 배열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재주와 노동의 결실을 결합하는 것이다. - P134

 재화, 서비스, 생각이 원활히 돌게끔 하는 제도의 발달이다.
오죽하면 애덤 스미스가 부를 창출하는 원동력으로 꼽았을까. 경제학자 더글러스 세실 노스(Douglass Cecil North, 1920~2015년), 존 조지프 윌리스(John Joseph Wallis), 배리 로버트인가스트(Barry Robert Weingast, 1952년~)는역사 기록과 오늘날의 세계 곳곳을 둘러볼 때 가장 자연스러운 국가 운영 방식 중 하나는 엘리트 계층이 서로 강탈하거나 죽이지 않기로 하는일종의 연고주의(cronyism)였다고 한다. 엘리트층은 그 대가로 영토나 참정권, 특권, 전매권, 세력권을 얻거나 경제의 특정 부문을 장악해서 지대(rent,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원에 대한 독점적 접근으로 얻는 수입)를 받아 먹고살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확보했다. 18세기 잉글랜드에서는 이 같은 연고주의가 누구나 타인에게 무엇이든 팔 수 있는 개방 경제로 대체되었고, 상거래는 법규, 재산권 법률적 강제력이 있는 계약, 그리고 은행, 기업, 정부 부처 같은 기관-인맥보다는 신의성실 의무로 운영되는 조직과 제도-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오늘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시장에새로운 종류의 상품을 들인다든지, 본인이 물건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면 다른 상인들보다 싸게 판다든지, 나중에 제공할 재화나 서비스를 위해 지금 돈을 받아 둔다든지, 몇 년 동안 수익이 나지 않을 장비나 토지에 돈을 투자해 묻어둘 수가 있다. 우유가 필요할 때 편의점에가면 선반에 1리터짜리 우유가 있고, 그 우유는 희석되거나 상하지 않았으며, 판매 금액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이고, 카드를 한 번 긁고 나면, 서로 만난 적이 없고,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으며, 우리의 진정한 거래를 증명해 줄 공동의 친구가 없다고 해도 편의점 주인은 내가 우유를 갖고 나가는 것을 허락해 준다. 두서너 집 건너에서 청바지나 전동 드릴컴퓨터,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거래를 비롯해 현대 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익명의 거래가 수월하게 이루어지려면 많은제도가 갖추어져야 한다. - P139

이 논점은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 1929년~)가 2015년에 쓴 『불평등에 관하여(On Inequality)』에서 더 의미심장해진다. 프랭크퍼트는 불평등 그 자체는 도덕적으로 반대할 만한 것이 아니며, 반대해야 할 것은 빈곤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즐겁게 자극적으로 살 수 있다면, 이웃들이 얼마나 버는지, 집이 얼마나큰지, 차를 몇 대 모는지는 도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덕성의 관점에서 볼 때 모두가 똑같이 가져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문제가 아니다.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은 각자가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불평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을 편협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고르가 어떻게 하면 염소 한 마리를 얻을지 고민하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보리스의 염소를 죽일지 고민하는 것처럼, 그런 관점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불평등과 빈곤을 혼동하는 것은 총량 오류, 즉 부는 영양의 사체처럼 유한한 자원이므로 제로섬 방식으로 나누어야 하고, 따라서 더 많이 갖게 된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더 적게 갖게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부는 그렇지 않다. 산업혁명 이후에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곧 부유한 사람들이 더부유해졌을 때 가난한 사람들도 더 부유해졌음을 의미한다.  - P161

실험참가자나 국민이나 모두 - 더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나 아낌없이 베푸는 도우미, 공정한 복권에 당첨된 운 좋은 사람까지-분배 방법이 공정하다고 느낀다면, 그 결과가 불평등해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저자들은 "현재로서는 아이들이나 성인들이 불평등을 회피한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결론 내린다. 사람들은 국가가 능력을 중시한다고 느끼는 한 경제적 불평등을 받아들인다. 다만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경우에는 분노한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평등의 존재보다는 불평등의 원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더 크게 다가가는 듯 보인다. 정치인들은 복지여왕(welfare queen,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윌슨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년)이 일은 안 하면서 복지 지원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을 공격할 때 썼던용어.-옮긴이), 이민자, 외국인, 은행가, 가끔 소수 민족과 동일시되는 부자 등을 자기 몫보다 더 챙기는 사기꾼이라고 대중을 선동할 때 이 특성을 이용해 먹는다.
- P166

사회가 많은 부를 창출하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절대적 불평등(가장 부유한 사람과 가장 가난한 사람 간의 차이)이 증가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상적인 몫을 나누어 주는 ‘소득 분배청‘이 없는 상황에서는 운이나 능력,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군가는 남들보다 새로운 기회를 더 잘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편중된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상대적 불평등(지니 계수 혹은 소득 점유율로 측정하는 불평등)이 증가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매우 큰 현상이다. 경제학자 사이먼 스미스 쿠즈네츠(Simon Smith Kuznets, 1901~1985년)의 유명한가설에 따르면, 나라가 부유해지면 국민들은 덜 평등해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농사일을 그만두고 보수를 더 많이 주는 일을 찾아 농촌을 떠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농촌에 남아 가난한 채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결국에는 밀물이 차올라 모든 배를 들어 올린다. 더 많은 사람이 현대경제에 휩쓸리면서 불평등은 감소하고 뒤집힌 U자 모양을 그린다. 시간에 따라 뒤집어진 U자 모양 곡선을 그리게 되는 이 불평등 곡선을 쿠즈네츠 곡선(Kuznets curve)이라고 부른다.24우리는 이미 앞 장에서 나라 간 불평등이 쿠즈네츠 곡선을 그린다는징후들을 보았다. 산업혁명 시기에 유럽 국가들은 증기의 힘을 빌려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일찍 보편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위대한 탈출에 성공했다. 디턴의 주장처럼, "더 나은 세계는 차별적인 세계의 조건을 만들고, 탈출은 불평등의 조건을 만든다. 그런 뒤 세계화가 진행되고 부를
창출하는 노하우가 전파되면서 가난한 국가들이 유럽을 따라잡기 시작했고 거대한 수렴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아시아 국가의 GDP가 급부상할 때(그림 8.2), 전 세계 소득 분포의 형태가 달팽이에서 쌍봉낙타로, 그러다 단봉낙타로 바뀔 때(그림 8.3), 극빈 상태로 사는 사람의 비율(그림 8.4)과그 수(그림 8.5)가 급감할 때, 세계의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징후를 확인한 바 있다. - P169

샤이델의 경고는 장구한 역사에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근대는 그가언급한 기사들보다 좀 더 온화한 방법으로 불평등을 감소시켰다. 이미확인한 바와 같이 시장 경제는 우리가 아는 최고의 전국 빈곤 퇴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한 나라 안에서 교환할 것이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청소년, 노인, 환자, 불운한 사람들, 그리고 남부럽잖게 벌어 먹고살기에는 가진 기술과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들을 부양하기에는미흡하다. (달리 말하면, 시장 경제는 평균을 극대화하지만 우리는 분산과 범위도 신경 써야 한다. 나라에서 공감의 범위가 확대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포용할)한수록(그리고 사람들이 자기가 가난해질 것에 대비해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어 할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아 둔 자원 - 정부의 재정-의 일부분을 점점 더 많이 빈곤 퇴치에 할당한다. 그 자금은 어딘가에서 나와야 한다.
법인세나 소비세, 국부 펀드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주로 누진적 소득세에서 나온다. 누진세를 내야 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더 높은 세율로 세금을 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처럼 그 손실액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분배‘가 이루어지지만, 이 명칭은 다소 부적절하다. 실제로는 최상위층의 부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 목표는 최하위층을 끌어올리는 것이지, 최상위층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74

 소득 불평등을 크게 증가시킨 두 가지 힘에는 어떤 형태로든 소비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첫 번째 힘은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소득 면에서 승자와 패자를 양산하지만, 소비 면에서는 거의 모두를 승자로 만든다. 아시아의 공장, 컨테이너선, 효율적인 소매 판매 시스템 덕분에 과거에는 부자들을 위한 사치품이었던 것들이 대중에게 공급된다. (2005년에 경제학자 제이슨 퍼먼(Jason Furman, 1970년~)은 월마트 덕분에 일반적인 미국 가정은 매년 2,300달러를 절약한다고 추정했다.)" 또 다른 힘은 기술 발전이다. 기술은 (8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소득의 가치를 계속해서 변화시킨다. 인플레이션에 맞추어 아무리 크게 조정한다고 해도, 과거의 1달러보다는 오늘날의 1달러로 훨씬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다.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냉장고, 전기, 수세식 변기, 백신, 전화기, 피임 기구, 비행기 탑승권을 살 수 있고,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들도 더 나은 것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환원이 연결해 주던 공중 전화는 무제한 통화가 가능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기술 발전과 세계화가 손을 잡자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가난 혹은 빈곤의 말뜻이 변하게 되었다. 과거에 정형화된 빈곤의 이미지는 누더기를걸친 수척한 빈민이었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은 고용주 못지않게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똑같이 플리스, 스니커즈, 청바지를 입는다. 가난한 사람은 못 가진 자로 불리고는 했다. 2011년에는 빈곤선 아래에 속하는 미국 가정의 95퍼센트 이상이 전기, 수도, 수세식 화장실, 냉장고, 가스레인지, 컬러 텔레비전을 갖고 있었다. - P188

역사적으로 사회 지출은 계속 증가해왔다. 다음 단계는 보편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비슷한 것으로 엑소득세가 있다.)이다. 이 개념은 수십년 동안 떠돈 만큼 이제 안착할 때도 되었다." 사회주의의 향기가 나기는 해도 보편 기본 소득 개념은 정치적 우파로 분류되는 경제학자들에를 들어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년), 정치가들(예를 들어 리처드 닉슨)과 관련 주들(예를 들어 알래스카주)이 옹호해 왔고, 오늘날에는 정치 스펙트럼 전반에 있는 분석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생각이다. 보편 기본 소득을 도입하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재정수지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 교육, 노동, 위험 감수와 관련된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문제가 있다.) 그것이 가져올 이익은 무시할 수가 없다. 기본 소득이 생기면 누더기를 이어 붙인 것 같은숨은 복지 제도가 합리적으로 개선될 수 있고, 노동자가 로봇으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는 지금의 재앙이 풍요의 뿔로마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여신 코피아(Copia)가 지닌 물건.-옮긴이)로 바뀔 것이다. 로봇에게는 주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 넘어갈 것이고, 로봇이 제공해 줄 생산성, 안전성의 증대, 여가의 확대 같은 혜택은 널리 공유되는 한에서 사람들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기본 소득을 시험적으로 도입한 지역에 대한 연구 분석에따르면, 기본 소득이 사람들을 무기력, 무규율 상태에 빠뜨릴 것이라는우려는 필시 과장된 것으로, 시장과 로봇이 넘겨받지 못하는 공공 부문의 일자리는 여전할 테고, 하이테크 자원봉사 (high-tech volunteering)와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회들이 생겨날 것이다." 기본 소득의 실제 효과는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지만, 부수적으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하는 효과,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 P192

불평등은 빈곤과 다르고, 인류의 번영을 좌우하는 기본 요소도 아니다. 전 세계 각국의 행복감을 비교해 볼 때 불평등은 부의 총량에 비해중요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불평등의 증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희가 보편적 빈곤에서 탈출할 때는 더 불평등해지기 마련이며, 새로운부의 원천이 발견될 때마다 불평등의 물결은 다시 인다. 불평등의 축소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것들은 전염병, 대규모 전쟁, 격렬한 혁명, 국가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계몽주의 시대부터 시작된 역사의 장기적인 추세는모든 사람의 부가 증가하는 것이었다. 현대 사회는 막대한 부를 생산하는 것 외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을 향상시키는 일에 그 부를 점점 더많이 할당하고 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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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남은 여기서 마쳐야 하겠어요. 동구는 너무 늦기 전에집에 가야 하고, 실은 제가 오늘 밤에 광주에 내려가야 하거든요.
할머니 생신이라서요. 원래는 밤차를 타고 내일 아침에 닿을까 했는데 지금 시간이 별로 늦지 않았으니까 서두르면 늦은 밤에라도할머니 댁에 가서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내일 저녁에 바로 올라오십니까?"
"아니오. 19일이 할머니 생신이라서 그날 아침에 미역국이라도같이 먹고 올 생각이에요. 학교에는 월요일에 휴가를 내겠다고 말씀드려 놓았어요. 할머니 생신 때문에 휴가를 낸다니 참 유난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키워주셨기 때문에 제겐 아주 각별한 분이세요. 제가 휴가를 내기 어렵다고하면 할머니가 교장 선생님께 전화라도 하실 게 분명해요. 우리 할머니는 그런 분이죠. 오늘도 토요일인데 왜 일찍 내려오지 않느냐고 학교로 네 번이나 전화하셨어요."
"손녀 사랑이 지극하시군요. 그럼 서울에 올라오신 후에 다시 한번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모처럼 만난 자리였는데 참 아쉽네요." - P251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만······ 박영은 선생님은 돌아가신 것 같다. 믿을 만한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다. 그러니까 선생님을 더 이상 기다리지 말아라."
머리 위를 덮고 있는 숲에서 저녁 해가 아까워 온통 귀를 찢어발길 듯이 울고 있던 매미들이 한순간 잠잠해졌다. 귓속의 압력이 갑자기 심해져서 고막이 터질 것 같았고 머리가 아팠다.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오면서 숨이 막혀 나는 입만 뻐끔거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삼촌은 계속 고개를 내젓고 눈을 끔벅거리고 손을 무릎에 두었다 발바닥을 만졌다 얼굴을 쓰다듬었다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는데 가만보니까 손이 얼굴로 갈 때에는 황급히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는 것 같았다. 어리석은 곰처럼 못난 그 모습을바라보고 있으려니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서 나는 바위에서 뛰어내리고는 고함을 질렀다.
"세상에 그런 헛소리가 어디 있어? 박 선생님이 죽긴 왜 죽어?
그런 거짓말이나 하려고 나를 불렀어? 삼촌은 정말 바보야! 세상에서 제일 바보천치 똥개야!!!" - P278

서늘한 손가락이 내 목덜미에서 등골까지 서두름 없이 훑어내려갔다. 장독대로 올라가는 시멘트 계단 모서리에 무언가 어두운 얼룩이 묻어 있었다. 영주의 귓속에서 색깔 어두운 애벌레가 느릿느릿 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애벌레는 생전 처음으로 맡는 밤공기내음이 마음에 드는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귓바퀴의 물렁뼈 위에서 몸을 부풀리며 휴식을 취했다. 내가 바지를 쥐어뜯으며 바라만 보는 동안, 영주는 마지막으로 느릿하게 눈을 한 번 깜박이더니 여전히 하늘의 별들만 골똘히 쳐다보면서 여리게 떨던 손가락의 움직임도 멈추어버렸다. 영주의 귀에서 길고 끈적한 몸을 드러내면서 귓바퀴 계단을 한 칸 한칸 내려온 어두운 애벌레는, 할머니가 일구어놓은 향기로운 검은 흙을 만나자 탐욕스럽게 고개를 처박았다. - P294

나는 창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장님의 부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나섰다. 대문이 닫히면서, 아름다운 정원의 정경이 차츰 좁아지더니 마침내 가느다란 광채의 선이 되었다가, 갑자기 시야에는 녹슨 철문의 모습만 들어왔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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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줄 알아? 삼촌, 그런 일만 가지고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줄 알아? 그게 아니야. 선물을 준 아이들을 편애하는 선생님은 드물지 않으니까. 하지만 오준근 선생님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나를이용해 먹고 있다구. 나는 인질이나 포로처럼 이용당하고 있어. 허혁. 숨이 막힐 것 같아. 하지만 계속 이야기할 수 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무지개의 가장 사랑하는 외동딸같은, 그분을 위해서라면 내가 목숨조차 아깝지 않게 바칠 수 있는 나의 박영은선생님에게 추근댄단 말이야.
왜 나를 이용하냐구? 그것도 몰라? 삼촌은 바보야. 박영은 선생님이, 천사처럼 착한 박영은 선생님이 나를 귀여워하시니까 그런거지. 나의 교육 문제를 상담한다는 핑계가 아니라면 오준근 선생님 같은 사람이 감히 어떻게 박영은 선생님의 곁에나 앉아볼 마음을 먹겠어? 그러니까 나 때문에, 4학년이 되도록 한글도 잘 읽지못하는 바보천치 돌대가리 한동구 때문에 불쌍한 박영은 선생님은찰거머리 같은 오준근 선생님의 희롱을 꾹 참아주시는 거지. 손이참 이쁘십니다? 연애를 해본 일이 있으신가요?
허억허억. 울고 있냐구? 날더러 울고 있냐구? 삼촌은 정말 바보야! 내가 울긴 왜 울어? 땀이 나는 거지. 미칠 것 같아서, 박영은 선생님이 괴로움을 당하는 건 결국 다 나 때문이니까 심장이 터질 것같아서 땀을 흘리는 거지. 땀이 아니라 눈물이라구? 내가 여자애처럼 울고 있는 거라구? 삼촌도 똑같아! 오준근 선생님이랑 똑같이바보천치 멍텅구리야! 삼촌한테 괜히 이야기했어!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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