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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의 장례식 그리고 다윈의 식탁

"윌리엄 해밀턴 박사, 아프리카 콩고에서 급성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사망."

2002년 5월 20일, 이메일을 여는 순간 내 몸은 얼어붙었다. 영국옥스퍼드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도널드 해밀턴williamDonald Hamilton 박사가 아프리카 콩고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5월17일 혼수상태에 빠졌고, 그 후 사흘 만에 운명을 달리했다는 부고였다. 내 눈을 의심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그 슬픈 소식은 이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장례식은 열흘 후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뉴칼리지의 예배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 P6

제가 한 일 중에서 독창적인 것은 그럼 무엇이냐고요? 저는맨 처음으로 ‘생명의 나무‘ 개념을 창안했습니다. 저 이전의 사람들은 (적어도 서양사람들은 생명을 한 줄로 세워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그들의 존재론은 ‘생명의 사다리‘라고할 수 있지요. 그 사다리의 맨 위에는 신이, 그 밑에는 천사가그리고 그 밑에는 인간, 침팬지, 원숭이 등이 서열대로 배치되어있는 구도였습니다. 이 사다리에서 인간은 자연계의 수장이었습니다.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라는 당대 시인은 이것을 ‘존재의 대사슬‘이라고도 불렀지요. 이 사슬의 특징은 고리 하나하나가 전부 고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생각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 창조론자들의 구미에도 딱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창조의 순서를 이야기하는 대목과 "각 종류대로 만들었다"는 구절은 종간 서열과 종의 불변성을 전제하는 생명의 사다리 개념 속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다리 대신에 ‘생명의 나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나무의 줄기에서 가지들이 뻗어 나오듯이, 한두 개의 공통 조상에서 출발한 생명이 다양하게 분기해왔다는 주장이지요. 저는 1837년에 이미 이런 생각에 도달했지만 20년 후에야 《종의 기원》을 통해 제 생각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단 하나의 그림이 바로 생명의 나무입니다. 이 개념은 그 이전에 종의 변화를 주장했던 라마르크 선생의 존재론과도 다릅니다. 그는 종의 가변성을 주장하면서도 이전 사람들럼 생명의 위계질서를 인정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라마르크의 아이디어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생명은 어디에서 시작하든 시간이 지나면 더 복잡한 상위의 존재로 변화한다.
생명의 직선적 위계는 본래부터 존재한다.‘ 고정된 사다리가 아니라 아래서 위로 이동하는 에스컬레이터라고나 할까요?
- P22

윌리엄 페일리 William Paley 같은 신학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정교한 생명체들을 보면 완벽한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지요. 그러나 저는 생명체의 다양성과 정교함을 초자연적 원인이 아닌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과학자입니다.
물론 페일리의 아이디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정말 매력적입니다. 시계를 떠올려보시지요. 요즘은 시계보다 복잡한 것이넘쳐나지만 18세기만 해도 시계는 복잡한 기계의 상징이었습니다. 페일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계를 보라. 그것은 복잡한 기계이기에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 그것을 만들 만큼 훨씬 더 복잡하고 뛰어난 지적인 존재, 즉 시계공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시계보다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는 자연계의 특성들,
가령 시각 장치(눈)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신과 같은 지적인설계자가 만든 것일 수밖에 없다." - P27

사실 저는 ‘진화evolution ‘라는 용어를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저, 즉 ‘다윈‘ 하면 떠올리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도 정말 싫었어요. 그런데 제가 살던 때 매우 인기 있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두 용어로 제 이론을 너무 널리 알리는 바람에 저도 울며 겨자 먹기로 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적자생존‘은 《종의 기원》 5판부터, ‘진화‘는 6판에 가서야 썼습니다. 그럼 ‘진화‘라는 용어 전에는 뭘 썼느냐고요?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용어를 줄곧 사용했습니다.
좀 더 길긴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이지요.
진화를 시간에 따른 종의 변화라고 한다면 그 변화를 이끄는힘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자연선택이라고 했고, 그것은 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요. 자연선택 메커니즘이 작동하기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1. 모든 생명체는 실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자손을 낳는다.
2.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이라도 저마다 다른 형질을 가진다.
3. 특정 형질을 가진 개체가 다른 개체들에 비해 환경에 더 적합하다.
4. 그 형질 중 적어도 일부는 자손에게 전달된다. - P28

 기린의조상은 지금처럼 그렇게 목이 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어떤 한 개체가 높이 매달려 있는 잎을 따먹기 위해 목을 열심히늘렸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그 개체 속에 존재하는신경액이 목 쪽으로 더 많이 쏠리게 되었고, 그 결과 그 기린은목이 길어졌지요. 기린에게 긴 목은 하나의 ‘획득 형질‘입니다. 그런데 라마르크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그 획득 형질이 자손들에 전달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부모가 늘린 목을 새끼들이 물려받는 일이 거듭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기린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라마르크의 유명한 ‘획득 형질의유전‘이라는 가설입니다.
어떤가요? 한편으로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노력해서 얻은 만큼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스토리는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형질은 생식세포(점자와 난자를 통해서만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가령 부모 기린이 아무리 목을 잡아 빼서 길어졌다 해도 그 변화는 절대로생식세포에 새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변화는 당대에서끝나는 것이죠.  - P36

이런 문제에 대해 저보다 100년이나 선배인 스웨덴의 식물학자칼 린네 Carl von Linné선생은 가장 자연적인 분류는 ‘중첩적 위계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이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운 ‘종, 속, 과科, 목ㅂ, 강, 문, 계‘가 바로 그러한 구조를 가진 린네의 분류법입니다. 예컨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동물계의 척삭동물문의 포유강의 영장목의 사람과의 사람속‘에 속한 존재입니다. 물론 그분의 분류학에는 자연선택이나 생명의 나무 개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진화론은 그가 세운 분류체계가 왜 가장 자연적인 것인지를 가장 잘 설명해줬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나무 개념을 받아들이면, 공통 조상이 과거 언제쯤에 있었느냐에 따라 서로 공유하는 특징의 수가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야말로 중첩적 위계 구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분기는 중첩적 위계구조를 낳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과 침팬지‘ 묶음은 ‘인간과 원숭이‘ 묶음에 비해 더 많은 특징을 공유합니다. 때문에 전자의 공통 조상은 후자의 공통 조상보다 더 최근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 P54

윌슨 : 안드로메다에서 외계생물학자가 지구를 이해하기 위해 파견됐다고 해봅시다. 그들은 틀림없이 인간의 언어 행위를 새들의 노래, 개들의 짖어댐, 침팬지의 팬트 후트, 벌들의 댄스, 심지어 개미의 페로몬 작용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고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행위가 각 동물들의 독특한의사소통 방식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만 특별한 문법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게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 양 특별함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정작 중요한 연속성을 못 보게 됩니다. 인간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외계생물학자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시선은 다윈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죠 우리 모두에게 큰 영감을 준 해밀턴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 P63

강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설령 손힐의 주장처럼 강간이 적음이라고 해도 그런 행위를 남성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강간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만 문제가 되는 비만보다 피해야 하는이유가 더욱 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만을 택하지 않듯,
대다수의 남성들도 강간을 택하지 않는다. 만일 강간 피의자가 본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가 강간을 너무 손쉽게 ‘택했다‘고 정죄할 수 있다.
요는 이것이다. 어떤 능력이나 행동의 적응성 여부는 옳고 그름의 여부와 별개라는 것. 같은 적응이라도 고도의 언어 능력은 좋지만 강간은 나쁜 행위이다. 자연은 윤리적 기준을 갖고 선택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일부 페미니스트의 주장처럼 여성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성 편도 아니다.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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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의 손을 빼냈다. 그 순간 진실이 점점 커지며 공포스럽고 빠르게 그 실체를 드러냈다. 그녀는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실패한 것이다. 실패는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 분명했지만 여태 깨닫지 못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그런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것이다. 다른 가정에서는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와 같이 지내면서 대화를 나누며 웃었고, 손주들은 할머니 무릎 위에앉았다. 그리고 다 같이 놀러 다니고, 뭔가를 같이 하고, 함께 식사하고 헤어질 때 키스했다. 올리브는 많은 가정에서 이렇게 하고 있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친구 이디스만 봐도 노인 주거지로 옮기기 전에는 자식들이 찾아와 집에서 지내다 가곤 했다. 방금 올리브가 겪은 것보다는 훨씬 나은 시간을 보냈을 게 틀림없었다. 난데없이 이렇게 돼버린 게 아니었다. 그녀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된 원인은 올리브 자신에게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지는 아주 오래됐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그랬을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알겠는가? 올리브는 잭놀란 것같았다의 맞은편에 앉아 자신이 눈먼 사람처럼 인생을 살아왔다고 느꼈다. - P148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잭에게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앤이 아들에게 소리지르는 걸 봤을 때 느낀 경악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식탁 앞에 앉은 이 순간 찾아온 깨달음은 앤이 크리스토퍼에게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순간은 우연히 어떤 관계의 어둠을 들여다보는 구멍과 같았다. 어두운 헛간에서 문이 바람에 순간적으로 열렸을 때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는 것처럼.
하지만 그 이상이었다.
그녀도 앤과 같은 행동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헨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누구 앞에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러고 싶어질 때마다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렇게 돼버린 것이었다. 아들은 엄마 같은 여자와 결혼했다. 모든 남자가결국에는 -이런저런 형태로-그렇게 하듯이.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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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뭐랄까, 사이비 과학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과학의기준은 명확하니까요. 사실이나 검증이라는 기준이 있죠. 그렇지만종교에는 사이비가 없습니다. ‘사이비종교‘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종교적 신념체계는 비사실적 증거, 막말로 한낮 루머로부터도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기독교 역시 예수가 부활했다는 루머 위에 서 있는 종교이죠. 부활의 사실성 여부 이전에 부활 신앙의 출발은 루머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대."이거든요. 그 사실성은 상관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복되다."는 식의 말을 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기반 위에 있든 그 신념 형태가 현실 생활 속에서 작동하고 있고 수많은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해결책 아니면어떤 길을 제시해 준 것은 분명하거든요. 그 와중에 무수한 폭력도만들어졌고 잘못도 있었지만, 종교 없이는 인류사를 이야기할 수 없어요. 저는 그러한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그의미를 되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 - P575

사회자ㅡ 이제 시간도 많이 늦었고, 논의를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과학과 종교 문제에 관해 앞으로 어떤 연구나 논의들이 있어야 할지.
혹은 선생님들께서 어떤 연구나 논의를 하실지 말씀 듣는 것으로마무리를 하면 어떨까요?
신재식ㅡ 당분간 인지 과학 쪽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고요. 또한 현대과학의 질문과 도전에 대한 신학적 응답의 문제를 고민하겠지요. 기화가 되면 신학 사상사를 진화라는 관점에서 검토해 보고 싶고요.
김윤성ㅡ 저는 과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제 관심은 역사적 비교입니다. 근대 이후 우리 사회 전반과 각종교들에서 ‘과학‘과 ‘종교‘를 개념화하고 이들을 연관 짓는 방식이어떻게 변해왔는지 하는 문제를 파고들까 합니다.
장대익ㅡ 저는 당분간 밈 이론에 천착하려고 해요. 종교 뿐만 아니라 과학에서 밈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전달되는지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탐구하려 합니다.
사회자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밤늦게까지 말씀 나누시느라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P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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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병세가 아주 깊었던 어느 날, 그가 침대에 누워 케일리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케일리가 가서 아버지의 입에 귀를 갖다댔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는 늘 너를 가장 예뻐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덧붙였다. "네 엄마는 브렌다를 가장 예뻐하지."
그의 입가에 하얗고 끈끈한 침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사랑해요, 아빠." 케일리가 말했다. 그러고는 티슈를 집어 그의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아주었고, 아버지는 따뜻한 눈빛으로그녀를 쳐다보았다.
케일리는 종종 그 순간을 아버지가 당신이 가장 예뻐하는 아이가 그녀라고 말해준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늘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지금은 시내치과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저녁에도 케일리에게 할말이 거의 없는 듯했고, 케일리는 종종 그것이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이따금 케일리는 실제로 아픔이 작은 파도처럼 가슴에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음의상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상처를 말하는 거라고.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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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되면서 기독교 내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각하기 시작한 게 바로 리더십 문제입니다. 이전까지 권력을 독점하던 목사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죠. 대신 평신도 리더십이 부상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조직화된 가톨릭 교회에서 ‘만인 사제설‘을 주장하고 갈라져 나온 개신교에서 리더십은 태생부터 분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사회의 다원화가 교회에도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에 통일된 조직 체계를 이룰 수가 없는 거죠. 대신 이런 현실에 적응한 조직들, 예를 들어 소그룹 조직들이 만들어져 평신도리더십을 만들어 내고 있죠. 이제 목사나 목회자의 역할은 권력을쥐고 교회 조직을 흔드는 게 아니라 이러한 소그룹 조직들을 서로 묶고,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과학 기술이 이 변화의 촉매로 작용했죠.
- P515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초대 교회에서는 신을 사물이나 존재로,즉 현실적인 물체나 인격체로 표현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했죠. 이것은 유대교에서부터 내려온 히브리 성경적 전통을 따른 거죠. 성경에서는 신을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하죠. 예를 들어 주기도문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 아버지"하고 시작하잖아요. 주로 ‘아버지, 반석, 깃발, 왕, 목자‘ 같은 사물들로 표현되었죠. 그런데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의 신 담론을 흡수하고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전지, 전능, 완벽, 완전, 무소부재(無所不在) 같은 속성들을 가지게 되죠. 사실은 이 개념들은 그리스 철학에서 신의 속성을 가리키는 거였죠. 기독교의 초기 역사에서는 이두 속성이 경쟁을 합니다.
그런데 수백 년간 경쟁하는 과정에서 결국 그리스적 속성을 띤 신담론이 승리하게 되죠.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인들이 기도하는 것을보면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하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는 식으로 기도를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파지요. 저는 이것이 개인으로서의 기독교가 조직으로서의 기독교로 변화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재의 변화를 본다면, 이 역시 다시 바뀌지 않을까싶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아버지"로 되돌아가지는 못하겠죠. 이미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이후이니까요. - P516

그런데 사실 이런 주술적 요소가 전혀 없는 종교란 세상에 거의없습니다. 근대적 종교이고 미신을 추방했다고 자처하는 개신교에서조차도 결코 사라진 적이 없지요. 저는 종교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문제가 중요하고, 이 주술적 요소가 종교의 수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지금 같은 제도 종교들이 없어진다고 해도, 주술적인 사고나 실천은 분명히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내러티브, 실천, 제도에 더해, 주술도 종교의 미래를 지속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추가해야겠네요. 아무튼 종교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명확하게 답을 할 수는 없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 P524

종교는 어떤 신념체계, 그리고 인간이 본성적으로 추구하는 소속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결합시켜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에서부터관혼상제까지 수많은 서비스를 완벽하게 제공해 왔습니다. 물론 사람들도 이에 납득하고 종교의 그 막강한 영향력을 받아들여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세요. 신념 체계와 조직이 분리되고 있지 않습니까? 과학이 발전하면서 기독교나 불교의 경전이나 교리를 진지하게믿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하는 설교를 싫어하는 기독교인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도 종교가 가지고 있는 조직 또는 공동체적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지 않고붙어 있습니다. 자신을 받아 줄 공동체를 갈망하는 거죠.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신념과 관계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종교 밖에서도 생겨나고 있지 않습니까?

김윤성 그렇죠. 신념 구조가 없는 조직에는 붙어 있기도 힘들고, 그조직 자체도 오래 살아남기 힘들죠.

장대의 그런 의미에서 신과 인간, 사제와 평신도 같은 위계적인 조직과 신념 체계를 가진 기존의 제도 종교를 대신하는 신념과 조직을가진 동호회 같은 모임이 종교를 대체하는 상황이 곧 오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 모임의 행태와 신념 구조에 종교라는 이름을 붙일수 있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요. - P526

DNA 보세요. 그 역사가 수십억 년이잖아요. 인간의 언어와 심지어는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손에 넣은 종교라는 복제자는 그보다 수명이 더 길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지구 표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유기 분자에 불과한 DNA에 비해 디지털화된 밈들은 전파를 타고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복제자로서의 성능만 본다면 종교 밈의 수명이 더 길지도 모르죠.
장대익ㅡ 현재 종교가 가진 최고의 유용성 또는 기능은 뭘까요? 일종의 공동체성이 그 답이 될까요?
신재식ㅡ 공동체성이지 싶어요.
김윤성ㅡ 그것은 한두 차원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인식론적 차원도 지속될 겁니다.
신재식 그렇지만 인식론적 차원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할믿음의 내용을 가르쳐서 전도하는 게 아니거든요. 일단, 교회에나오게 되면 그때부터 믿음의 내용을 배우는 겁니다. 신념 체계가무엇인지 신이 무엇인지는 일단 괄호 속에 넣어 둘 수 있는 이차적인문제입니다. - P541

엘리아데가 그러지 않았나요? 종교의 기원은 직립하게 된 인간이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라고요.
김윤성ㅡ 예. 엘리아데가 그랬죠. 그런데 하늘을 우러러보고 숭배한게 종교의 기원이라는 식의 얘기는 아니고요, 직립한 덕분에 위아래라는 축이 생기고 이를 중심으로 전후좌우라는 방향이 생겨 이로부터 성스러운 중심과속된 주변을 구분하는 종교적 공간 관념이 생겨났다는 얘깁니다. 엘리아데는 직립의 결과 이런 종교적 공간 관념이생겨난 것이 인간을 다른 영장류와 본질적으로 다르게 만들어주었다고 봅니다. 상상력에 근거한 것이긴 해도, 왜 그럴듯한 해석이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영장류 사이의 연속성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구성하고 있는 특질들 중에는 다른 영장류와 단절된 것도 있지만 연속된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종교를 인간만 갖고 있는 것인지 하는 문제를 살펴려면 종교나 종교성이 진화에 있어서 단절의 영역에 속하는지 연속의 영역에 속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고고학에서는 매장풍습의 유물이나 그 흔적의 유무로 종교성의 대두를 판단하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보다 먼저 출현해서 한동안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의 유적에도 죽은 사람을 매장하고 꽃 같은 걸 바친 흔적이 남아 있고, 따라서 많은 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에게도 종교성이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죽음에 대한 태도를 종교성의 기준으로 삼는 거지요.
저도 아직은 종교성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만 지닌 특정한 정신적 능력과 관련된 현생 인류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547

장대익ㅡ 하지만 에드워드 윌슨이 사회 생물학에서 비유한 대로, 만약 외계인이 있어 지구로 내려와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관찰한다면인간의 종교적 의례와 동물의 강박 행동을 구별할 수 없을지도 모르죠. 아마도 외계인은 그런 행동들이 같은 기능을 한다고 판단할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물의 반복 행동이나 강박 행동을 가리키는용어와 종교적 의례를 가리키는 용어가 같다(ritual)는 것은 나름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 P548

김윤성ㅡ 지성을 가졌다면 당연히 종교도 갖고 있겠죠. 물론 우리가지금 지구상에서 보고 있는 종교와는 많이 다르겠지만요.
장대익 ㅡ저는 외계인에 대해서 그렇게 단언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함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교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종교성자체가 없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특히 종교성이 인지 능력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진화 과정에 따라서는 종교성 같은 부산물이 생기지 않고도 지성이 진화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지성의 진화 시나리오 중 한 가지만 알고 있기 때문에 확언하기는 힘들죠. - P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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