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해밀턴의 장례식 그리고 다윈의 식탁
"윌리엄 해밀턴 박사, 아프리카 콩고에서 급성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사망."
2002년 5월 20일, 이메일을 여는 순간 내 몸은 얼어붙었다. 영국옥스퍼드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도널드 해밀턴williamDonald Hamilton 박사가 아프리카 콩고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5월17일 혼수상태에 빠졌고, 그 후 사흘 만에 운명을 달리했다는 부고였다. 내 눈을 의심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그 슬픈 소식은 이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장례식은 열흘 후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뉴칼리지의 예배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 P6
제가 한 일 중에서 독창적인 것은 그럼 무엇이냐고요? 저는맨 처음으로 ‘생명의 나무‘ 개념을 창안했습니다. 저 이전의 사람들은 (적어도 서양사람들은 생명을 한 줄로 세워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그들의 존재론은 ‘생명의 사다리‘라고할 수 있지요. 그 사다리의 맨 위에는 신이, 그 밑에는 천사가그리고 그 밑에는 인간, 침팬지, 원숭이 등이 서열대로 배치되어있는 구도였습니다. 이 사다리에서 인간은 자연계의 수장이었습니다.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라는 당대 시인은 이것을 ‘존재의 대사슬‘이라고도 불렀지요. 이 사슬의 특징은 고리 하나하나가 전부 고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생각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 창조론자들의 구미에도 딱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창조의 순서를 이야기하는 대목과 "각 종류대로 만들었다"는 구절은 종간 서열과 종의 불변성을 전제하는 생명의 사다리 개념 속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다리 대신에 ‘생명의 나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나무의 줄기에서 가지들이 뻗어 나오듯이, 한두 개의 공통 조상에서 출발한 생명이 다양하게 분기해왔다는 주장이지요. 저는 1837년에 이미 이런 생각에 도달했지만 20년 후에야 《종의 기원》을 통해 제 생각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단 하나의 그림이 바로 생명의 나무입니다. 이 개념은 그 이전에 종의 변화를 주장했던 라마르크 선생의 존재론과도 다릅니다. 그는 종의 가변성을 주장하면서도 이전 사람들럼 생명의 위계질서를 인정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라마르크의 아이디어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생명은 어디에서 시작하든 시간이 지나면 더 복잡한 상위의 존재로 변화한다. 생명의 직선적 위계는 본래부터 존재한다.‘ 고정된 사다리가 아니라 아래서 위로 이동하는 에스컬레이터라고나 할까요? - P22
윌리엄 페일리 William Paley 같은 신학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정교한 생명체들을 보면 완벽한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지요. 그러나 저는 생명체의 다양성과 정교함을 초자연적 원인이 아닌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과학자입니다. 물론 페일리의 아이디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정말 매력적입니다. 시계를 떠올려보시지요. 요즘은 시계보다 복잡한 것이넘쳐나지만 18세기만 해도 시계는 복잡한 기계의 상징이었습니다. 페일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계를 보라. 그것은 복잡한 기계이기에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 그것을 만들 만큼 훨씬 더 복잡하고 뛰어난 지적인 존재, 즉 시계공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시계보다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는 자연계의 특성들, 가령 시각 장치(눈)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신과 같은 지적인설계자가 만든 것일 수밖에 없다." - P27
사실 저는 ‘진화evolution ‘라는 용어를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저, 즉 ‘다윈‘ 하면 떠올리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도 정말 싫었어요. 그런데 제가 살던 때 매우 인기 있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두 용어로 제 이론을 너무 널리 알리는 바람에 저도 울며 겨자 먹기로 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적자생존‘은 《종의 기원》 5판부터, ‘진화‘는 6판에 가서야 썼습니다. 그럼 ‘진화‘라는 용어 전에는 뭘 썼느냐고요?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용어를 줄곧 사용했습니다. 좀 더 길긴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이지요. 진화를 시간에 따른 종의 변화라고 한다면 그 변화를 이끄는힘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자연선택이라고 했고, 그것은 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요. 자연선택 메커니즘이 작동하기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1. 모든 생명체는 실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자손을 낳는다. 2.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이라도 저마다 다른 형질을 가진다. 3. 특정 형질을 가진 개체가 다른 개체들에 비해 환경에 더 적합하다. 4. 그 형질 중 적어도 일부는 자손에게 전달된다. - P28
기린의조상은 지금처럼 그렇게 목이 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어떤 한 개체가 높이 매달려 있는 잎을 따먹기 위해 목을 열심히늘렸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그 개체 속에 존재하는신경액이 목 쪽으로 더 많이 쏠리게 되었고, 그 결과 그 기린은목이 길어졌지요. 기린에게 긴 목은 하나의 ‘획득 형질‘입니다. 그런데 라마르크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그 획득 형질이 자손들에 전달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부모가 늘린 목을 새끼들이 물려받는 일이 거듭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기린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라마르크의 유명한 ‘획득 형질의유전‘이라는 가설입니다. 어떤가요? 한편으로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노력해서 얻은 만큼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스토리는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형질은 생식세포(점자와 난자를 통해서만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가령 부모 기린이 아무리 목을 잡아 빼서 길어졌다 해도 그 변화는 절대로생식세포에 새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변화는 당대에서끝나는 것이죠. - P36
이런 문제에 대해 저보다 100년이나 선배인 스웨덴의 식물학자칼 린네 Carl von Linné선생은 가장 자연적인 분류는 ‘중첩적 위계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이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운 ‘종, 속, 과科, 목ㅂ, 강, 문, 계‘가 바로 그러한 구조를 가진 린네의 분류법입니다. 예컨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동물계의 척삭동물문의 포유강의 영장목의 사람과의 사람속‘에 속한 존재입니다. 물론 그분의 분류학에는 자연선택이나 생명의 나무 개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진화론은 그가 세운 분류체계가 왜 가장 자연적인 것인지를 가장 잘 설명해줬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나무 개념을 받아들이면, 공통 조상이 과거 언제쯤에 있었느냐에 따라 서로 공유하는 특징의 수가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야말로 중첩적 위계 구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분기는 중첩적 위계구조를 낳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과 침팬지‘ 묶음은 ‘인간과 원숭이‘ 묶음에 비해 더 많은 특징을 공유합니다. 때문에 전자의 공통 조상은 후자의 공통 조상보다 더 최근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 P54
윌슨 : 안드로메다에서 외계생물학자가 지구를 이해하기 위해 파견됐다고 해봅시다. 그들은 틀림없이 인간의 언어 행위를 새들의 노래, 개들의 짖어댐, 침팬지의 팬트 후트, 벌들의 댄스, 심지어 개미의 페로몬 작용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고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행위가 각 동물들의 독특한의사소통 방식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만 특별한 문법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게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 양 특별함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정작 중요한 연속성을 못 보게 됩니다. 인간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외계생물학자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시선은 다윈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죠 우리 모두에게 큰 영감을 준 해밀턴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 P63
강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설령 손힐의 주장처럼 강간이 적음이라고 해도 그런 행위를 남성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강간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만 문제가 되는 비만보다 피해야 하는이유가 더욱 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만을 택하지 않듯, 대다수의 남성들도 강간을 택하지 않는다. 만일 강간 피의자가 본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가 강간을 너무 손쉽게 ‘택했다‘고 정죄할 수 있다. 요는 이것이다. 어떤 능력이나 행동의 적응성 여부는 옳고 그름의 여부와 별개라는 것. 같은 적응이라도 고도의 언어 능력은 좋지만 강간은 나쁜 행위이다. 자연은 윤리적 기준을 갖고 선택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일부 페미니스트의 주장처럼 여성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성 편도 아니다.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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