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원틴: 굴드 교수와 저는 그 논문에서 적응을 너무도 손쉽게 양산해내는 그 당시 진화생물학계의 풍조를 일러 ‘적응주의 프로그램‘이라며 호되게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형질이 자연선택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했죠. 굴드 교수께서는 이런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적응주의의전형적인 실수를 스팬드럴spandrel‘이라는 공간에 빗대어 설명한바 있습니다. 굴드 교수의 재치 하나만큼은 하여간 알아줘야 합니다. 굴드 : 원, 별 말씀을 화면을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스팬드럴은 대체로 몸을 지탱하는 둥근 아치들 사이에서 형성된 역삼각형모양의 구조를 가리키죠.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에 있는 스팬드럴에는 네 명의 기독교 사도가 그려져 있는 타일 모자이크 장식이 있습니다. 적응주의자들이라면, 이런 스팬드럴을 보고는 틀림없이 기독교적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구조물이라고 여길 겁니다. 그건 아치 위의 돔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구조적 부산물일 뿐인데 말이죠. - P79
핑커 : 저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the mind works》(1997)에서인간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인 종교와 예술 등이 매우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자연선택에 의해 직접적으로 진화한인지적 적용이라기보다는 다른 적응들로 인해 생겨난 부산물이 라고 했죠. 적응을 양산(혹은 남발)했던 1970~1980년대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지금은 세련된 적응주의자들이 활동 중인 시기이니까요저는 딸기치즈케이크를 아주 좋아하는데요. 저뿐만 아니라틀림없이 다들 좋아하실 겁니다. 왜 그럴까요? 딸기치즈케이크를 위한 미각을 진화시켰기 때문은 아니겠죠. 우리가 진화시킨건,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한 맛에서 소박한 기쁨을, 견과류와 고기에서 지질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촉을, 신선한 물에서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회로들입니다. 치즈케이크에는 자연계의 그 무엇에서도 찾을 수 없는 감각적 충격이 풍부하게 농축돼 있죠. 거기에는 우리 뇌 속의 ‘즐거움 버튼‘을 누르기에 충분한, 인공적인 조합을 이룬 과다한 양의 유쾌한 자극들이 가득채워져 있습니다. 포르노 역시 또 다른 즐거움의 테크놀로지일테고요. 저는 예술이 말하자면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이청각적인 치즈케이크라면, 미술은 시각적 치즈케이크라고 할까요. 예술은 우리 뇌 속의 ‘즐거움 버튼이 눌릴 때마다 생기는부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80
도킨스 : 윌슨 교수님, 그렇게까지 물러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동료 철학자 데닛 교수는 <다윈의 위험한 생각Darwin‘s dangerousideas》(1995)에서 굴드와 르원틴의 ‘스팬드럴‘ 비유가 왜 잘못됐는지 신랄하게 비판했는데요. 아, 저기 방청석에 앉아 계시네요. 데닛의 요지인즉슨, ‘스팬드럴‘도 적응이라는 거죠. 건축에서급경사진 지붕 아래를 채우고 지지력을 주고자 지붕의 처마 바로 아래에 만드는 ‘코벨corbel‘이란 양식이 있습니다. 벽에서 약간 돌출하여 무거운 구조물을 지지하는 돌받침을 가리키는 말이죠, 코벨은 중세 초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에서 잘 쓰이던 건축 양식이었는데, 그 위에 그로테스크한 무늬가 기발하게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건축가들은 지붕을지지해주는 방법으로써 스팬드럴을 설계할 수도 있고, 코벨을 만들 수도 있었다는 거죠. 산마르코 대성당의 스팬드럴은 이렇게 다른 여러 건축 양식들 가운데 선택된 겁니다. 즉 미적인 이유가 됐든 아니면 구조적인 이유가 됐든 간에, 건축가가 신중히 선택한 것이지 단지 부산물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두 분이 든 비유를 이렇게 뒤집어 보면, 부산물로 여겼던 것들도 알고 보면 적응으로 분류해야 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요. 이건 어쩌면 진실입니다. 자연계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놀라운 적응들로 가득하니까요. - P82
인간의 언어는 어떻게 진화했나? 사회자 : 촘스키 교수께서는 언어의 보편 문법을 주장하시면서도 언어 능력이 자연선택의 산물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걸로압니다만, 맞습니까? 촘스키 : 그렇습니다. 언어 기관이 생득적이긴 합니다만, 언어 능력은 기본적으로 두뇌가 커졌다거나 일반 지능이 발달하는 가운데 그 부산물로 생긴 거라고 보죠. 굴드 교수도 저와 같은 견해일 텐데요. 언어는 기껏해야 두뇌 활동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언어의 신비는 생물학보다는 오히려 물리학에 의해서 벗겨지리라고 봅니다. 흔히 언어가 의사소통을 위해 자연선택됐다고들하지만, 저는 언어의 일차적인 기능이 ‘독백‘이라고 봐요. 자기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종의 정신언어인 셈이지요. 핑커 : 바로 이 대목이 촘스키 교수님과 제가 의견을 달리하는부분입니다. 뇌가 커져서 언어 능력이 생기게 됐다는 주장에는 몇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해부학적으로, 인간의 발성 기관, 특히 성도vocal track 는 하나의 적응임을 시사합니다. 촘스키와 굴드 교수님 주장처럼 언어가 두뇌나 지능의 부산물이라면, 이런 특별한 발성 기관의 존재를 설명하긴 힘들겠죠. 또한 언어 습득에 관한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시피, 문법 습득 능력은 1.5세에서 7세에 이르는 결정적 시기 동안 뚜렷이 발휘되다가 점차 줄어드는데, 이런 추이는 일반 지능의 발달 추이와도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언어 능력과 일반 지능이 항상 같이 발달하는 건 아니더라는 거죠. - P84
도킨스 : 영국의 시인 테니슨Alfred Tennyson은 자연을 ‘피범벅이된 이빨과 발톱red in claws and teeth‘이라고 읊조린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연은 피 튀는 정글 같다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경쟁은 자연계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좀 더 애정어린 눈으로 자연계를 보면 협동도 경쟁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특히 자연선택이 기본적으로 개체 수준에서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자기 자신의 적합도fitness를 훼손하면서까지 다른 개체와 협동하는 듯 보이는 현상은 분명히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지요. 실제로 다윈은 많은 진사회성 곤충eusocial insects, 가령 개미나벌, 말벌 등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자기희생적 행동이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에 위협이 될까봐 전전긍긍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협동의 진화에 관한 물음이 다윈 이후로 진화생물학의 중심에 자리 잡아왔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것이 못 됩니다. - P100
윌리엄스 : 하지만 1960년대 중반에 저는 적응과 자연선택Adaptation andNatural Selection》(1966)에서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형질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집단 내에서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그 형질들이 진화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집단의 이득을 위한 행동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사실은 개체에게 더 큰 이득을 주었기 때문에 진화한 행동들이라고 분석했지요. 암사자들이 혼자 사냥을 해서 먹이를 독점할 수 있는데도 왜 두세 마리씩 모여 함께 사냥을 해서 먹이를나누는지 아십니까?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생물학자는 집단을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자의 그런 공동 사냥 행동은, 혼자 사냥할 때보다 더 많은 고기가 개체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협동 사냥은 서로에게 일종의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죠. - P103
도킨스 : 만일 일벌이 수컷과 짝짓기를 해서 정상적으로 자식을 낳는다고 칩시다. 그 자손은 모친 일벌의 유전자를 반만, 즉 50퍼센트를 공유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만일 일벌이 자식을 낳지 않고 여왕벌의 자식 낳기를 돕는다면 75퍼센트의 유전적 친밀도를 갖고 있는 다른 자매들이 더 생깁니다. 일벌의 유전자에게 어느 쪽이 더 이득입니까? 75퍼센트가 50퍼센트보다 25퍼센트나 더 크니까 당연히 일벌이 자식을 낳지 않고 여왕벌을 돕는것이 더 이득이겠지요. 바로 이것이 자연계에 불임 일벌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일벌의 불임은 별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일벌 자체를 위한 것도 아니며, 오직 유전자의 이득을위한 행동인 것이지요. 자연계의 존재 방식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 설명이죠. 이렇게 뒤집어 보면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 survival machine 이며 운반자 vehicle일 뿐입니다. 주체가 인간 집단이나 개체에서 유전자로 바뀌었지요. 닭이 알을 낳는게 아니라 알이 닭을 낳는다는 식이지요. - P107
트리버스 :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배신이죠.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입니다. 만일 두 용의자가 모두 협력했다면 1년 형을 살았을 텐데, 논리적으로는 두 용의자가 모두 배신하는 것이 각자에게 제일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왔기에 배신하고 3년 형을 살게 된다는 것이지요. 해밀턴과 액설로드는 이 죄수의 딜레마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다 ‘TFT(일명 텃포탯Tit-For-Tat) 전략‘을 발견하게 되었죠. TFT 전략이란 처음에는 무조건 상대방에게 협력하되 이후의 만남에서는 상대방의 직전 행동과 동일하게 행동하도록 프로그램된 간단한 알고리듬으로, 일종의 협동 전략입니다. 즉 먼저 배신하지 않되, 상대방의 배신에는 즉각적인 응징을 하고, 상대방의 이전 배신들에 대해서는 눈감아주는 전략이지요. 마치 성서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유사합니다. 해밀턴과 액설로드는 미래에 상대방과 다시 만날 확률이 어느 선 이상이 되면 TFT 전략이 항상 배신하는 전략에 비해 더 이득이 되는 전략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것은 협동 전략인 TFT 전략이 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요. 여기에 혈연관계는 필요 없습니다. - P113
도킨스 : 제가 유기체의 중요성을 무시한다고 많은 이들이 비판하는데, 그건 명백한 오해입니다. 자연선택에 직접 노출되는 것이 유기체라는 의미에서 유기체는 중요하죠. 하지만 유기체는 유전자의 ‘운반자‘일 뿐입니다. 개체나 집단은 유전자에 비하면 한시적인 존재죠. 마치 흘러가는 구름처럼 순간 머물러 있다가도 이내 사라지는 존재라고 할까요. 굴드 : 역시 동물행동학자는 스케일이 문제예요. 개체를 구름에비유하여 자연선택의 단위에서 제외시켰죠? 제가 묻겠습니다. 한 유전자의 수명이 도대체 얼마나 길답니까? 600만 살쯤 된 침팬지 종보다 더 긴가요? 3만 년쯤 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보다 더 깁니까? 유전자가 뭡니까? DNA 서열 아닙니까? 이 서열이 어떻게 불멸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전자도 세대를 거치면서 섞이고 삭제되고 새로 생겨나는데 말입니다. - P118
|